[리뷰] 더 많은 이들이, 더 멋지게 죽을 수 있도록... '다크 소울3'

리뷰 | 이명규 기자 | 댓글: 60개 |




⊙개발사 : 프롬 소프트웨어 ⊙장르 : 액션 RPG
⊙플랫폼 :
PC, PS4, XBOX ONE ⊙발매일 : 2016년 4월 12일


'게임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하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죠. 하지만 사실 기자는 그렇게 동감하지 않는 편입니다. 저 표현 자체가 모두 틀린 것이 아니라, 정확히는 스트레스를 푼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죠.

간단히 생각해서, 단순히 때리고 부수고, 화려하게 터트린다고 해서 우리가 생활하며 얻은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스트레스'란 단순한 짜증과는 많이 다르거든요. 보통 우리가 느끼는 스트레스들은 그 근원이 매우 복잡하고 생각하기 싫은 이유가 많이 있어서, 순간의 말초적인 즐거움으로 그 모든 게 풀린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눈앞에서 좀 웃기고 재미있는 코미디 쇼를 틀어준다고 그 스트레스가 다 사라지는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게임은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어떻게 일까요? 게임이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방법은,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주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는 여행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죠. 하지만 그 '경험'의 범위는 굉장히 많이 넓어요. 레이싱 게임만 해도 각자 즐거움을 느끼는 포인트가 다릅니다. 그게 뻥 뚫린 길을 시원하게 달려나가는 해방감일 수도 있고, 최적의 코너를 맞추어 돌아나가는 교묘한 느낌일 수도 있죠. 또는 기나긴 추격 레이스 끝에 상대를 재껴버리는 우월감일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유저를 행복하게 하는 경험은 굉장히 여러 가지 입니다. 때문에 때론 남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게임을 최고의 재미, 최고의 게임으로 뽑는 이들이 있곤 합니다. 그리고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다크 소울' 입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그런 스트레스만 받는 게임을 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요. 하지만 플레이어들의 이야기는 다릅니다. 이만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게임도 없다고 말이죠. 그렇습니다. 관건은 그 부분입니다. 이 게임, '다크 소울3'가 우리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시리즈의 정통성을 잇는 완성판의 딜레마


'다크 소울3'는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시리즈의 완전판'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다크 소울' 시리즈를 해본 사람에게 '다크 소울3'는 전혀 이질적이지 않습니다. 기존에 자신이 알던 것들은 그대로이며, 거기서 조금씩 나아진 것들, 특히나 훌륭하게 발전한 그래픽이나 보다 깔끔하게 다듬어진 전투 모션 등은 후속작이자 완전판의 냄새를 풍깁니다.




그렇다면 '다크 소울3'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이름만 후속작인 사실상의 확장팩일까요?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게임에는 그동안 보여주었던 보스들과는 다른, 또 다른 특별한 전투 방식과 컨셉을 갖춘 보스들이 넘쳐나며, 이들은 소름 끼칠 정도로 그 하나하나가 매력적입니다. 어려움을 떠나, 가장 멋지고 재미있었던 보스전이 무엇이었냐 묻는다면 정말 답을 내리기 힘들 겁니다. 모든 보스들의 연출은 장엄하기 까지하며, 전율이 돕니다. 패턴도 악랄합니다. 무엇보다도 아예 못 잡을 것 같은 느낌과 어떻게든 될 것 같은 정도의 사이를 아주 잘 잡았습니다.



3편 악마왕 중 한명, 법왕 설리번

보통 시리즈 작품들은 오랜 시간에 거쳐 시리즈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마련입니다. 그런 면에서 '다크 소울 시리즈'는 좀 독특한 케이스입니다. '다크 소울'이 2011년, 백번 양보해 '데몬즈 소울'까지 넣어도 2009년이 시리즈의 시작이고, '다크 소울 3'는 시리즈의 정식 넘버링 3번째 작품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다크 소울 시리즈'는 그 어떤 게임과도 구분되는 특이함이 있죠.

게임의 난이도는 개발자들에게 심각한 딜레마 입니다. 게임 경력이 깊은 마니아들이나 하드코어 게이머들은 그들의 재미와 난이도가 정비례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정 수준 이상의 고난이도를 요구하고 또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런 하드코어 게이머들에 비해 훨씬 수가 많은 일반 게이머들에게는 그 난이도 자체가 게임을 하지 않도록 하는 장벽이 되고 말죠.




사실 다크 소울 시리즈는 일반적인 게이머들 보다는 하드코어 게이머, 마니아들에게 강하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임이었고, 그렇기에 유명세 있는 다른 게임들처럼 수백만, 수천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게임은 아니었습니다. 소울즈 시리즈를 처음 내놓은 프롬 소프트웨어 역시 그다지 엄청난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는 후문이 있지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 다크 소울 시리즈는 그런 마니악함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유명한 게임이 되었습니다. 인터넷 문화에서 '다크 소울' 이라는 이름은 난이도가 높다 못해 악랄한 게임의 대명사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유저의 뒤통수를 거하게 휘갈기는 움짤들의 향연이 바로 대표적인 '다크 소울' 문화의 단면이죠.



이미 전세계 인터넷에서 전설이 되어버린 짤방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악랄함은 '다크 소울' 시리즈를 유명하게 만든 원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유명세에 비해 한참 적은 이들이 게임을 구입하게 하는 원인이었습니다. '아무나 못하는 게임' 이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반대로 일부 극성 팬들의 과도한 자부심이 독이되기도 했죠. 한 친구는 "나도 이 게임이 왜 재미있는지 알고 싶은데, 팬도 게임도 그럴 기회를 주질 않는다." 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다크 소울' 시리즈는 피도 눈물도 없는, 그저 철저하게 유저를 엿먹이기 위해서만 만들어진 바이러스 같은 존재일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큰 재미를 느끼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럼 이 게임에는 대체 어떤, 언뜻 보아선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숨겨져 있는 걸까요? 거기엔 바로 몇 가지 숨겨진 '법칙' 들이 있습니다.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을 만든 다양한 법칙들


그렇습니다. 프롬 소프트웨어가 만든 소울즈 시리즈 & 블러드본은 겉보기에 대책 없는 무자비함으로 무장한 것 같지만, 사실은 몇 가지 확고한 룰, 법칙을 숨기고 있습니다. 이 법칙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것은 디렉터가 달랐던 '다크 소울2' 정도 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다크 소울 시리즈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줍니다. 부정할 수는 없지요. 설명이 거의 없는 이 게임은 마치 고전 SNES 시절 게임들처럼 단순하면서 또 가차 없습니다.

이런 게임에서 스트레스와 성취감의 바로미터는 굉장히 민감하게 조율되어야 합니다. 화톳불을 찾아 헤매는 일반 구간에서, 플레이어는 어느 정도 진행을 하면 다음 화톳불, 혹은 이전 화톳불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나올지 대략의 감을 잡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동기부여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중요한 것은 정해진 목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목표를 한정하는 것입니다. '다크 소울' 시리즈는 언뜻 보기에 오픈월드 같지만, 사실은 거대한 일직선이며, 이 선이 모여 거대한 월드를 구성합니다. 이 일직선은 목표에 대한 동기부여와 그 목표에 대한 집중 모두를 잡아줍니다.

모든 필드는 안전 거점을 중심으로 일직선으로 이어진 던전의 형태를 기초로 하며, 각각의 구간에는 일정 거리마다 새로운 안전 거점이 놓여있거나, 기존의 안전 거점과 이어지는 빠른 지름길을 숨기고 있습니다. 이런 지름길들은 사다리, 엘리베이터, 숨겨진 벽, 한쪽에서만 열리는 문 등의 형태를 띠고 있죠. 전체 구역은 굉장히 넓지만, 중앙의 한 화톳불에서 각종 지름길을 통해 곳곳으로 이어지는 구조로 된 '깊은 곳의 성당'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렇게 처음 진행 시에는 일직선의 동굴이었던 맵은, 각종 숨겨진 지름길들이 드러나면서 비로소 사방으로 뻗어 나간 하나의 오픈월드가 됩니다.



이런 걸로 가끔 나오는 웃음

이 필드 구조의 룰은 '다크 소울' 에서 가장 중요한 룰입니다. 난이도의 높낮이를 떠나서, 플레이어들은 기약이 없는 모험을 떠나려 하지 않을 겁니다. 어느 정도 나아가면 새로운 길을 열고, 새로운 거점을 확보할지에 대한 대략적인 감각이 있어야 화톳불을 벗어나 끔찍한 세상에 뛰어들 겁니다. 그리고 이 감각은 전적으로 경험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이런 사소한 숨겨진 맵 요소들 하나하나가 일종의 도전과제인 겁니다.

여기서 벗어났던 것이 바로 앞서 말했던 '다크 소울2' 인데, '다크 소울2'는 가장 중요한 필드의 구조를 비틀어버렸습니다. 치밀하게 계산된 일직선 진행으로 시작해 서서히 확장되는 월드가 아닌, 처음부터 방사형으로 시작하는 구조를 두었고, 맵과 맵 사이에 놓였던 기발한 지름길들은 대거 삭제되었습니다. 유저들은 매듀라에서 자기가 원하는 곳을 먼저 골라서 탐험할 수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이는 요즘 게임들의 추세에 맞는 작업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크 소울2'에서는 이게 좋지 않게 작용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보상이 매력적이더라도 피할 수 있는 시련은 피하기 마련입니다. 오직 눈앞에 있는 구간, 눈앞에 있는 보스를 이겨내야만 비로소 한 발 내디딜 수 있다면 사람들은 고통을 감내하며 도전을 할 테고, 결국 결실을 맛보겠죠. 하지만 '다크 소울2'에서 사람들은 한 번 막혀버리면 다른 지역, 다른 보스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니게 되면, 게임 자체를 지속할 의욕을 잃어버렸죠.

사람은 동시에 여러 가지 시련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중요도도 보상도 엇비슷한 시련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하는 건, 사실 불가능하죠. 하나의 시련에 몰입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나 적었고, 이는 플레이어를 종반까지 끌고 나갈 힘의 부족을 야기했습니다. 때문에 개인적으로 '다크 소울3'에서 가장 걱정한 요소 중 하나는 이런 치밀한 레벨 디자인이 과연 부활하는가 여부였습니다.



헤라클레스의 12 과업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마치 12가지 과업을 짊어진 헤라클레스 같은 존재입니다. 만약 헤라클레스가 그때마다 각각의 과업에 집중할 수 없고, 우선순위도 정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했다면 그 12가지 시련을 모두 이겨낼 수 있었을까요? 두서도 없고, 각각에 대한 동기부여도 없이 마구잡이로 주어진 일들이었다면 그것이 정말 시련으로 다가왔을까요? 아니면 골치 아픈 숙제들이 12개나 쌓여있는 것에 불과했을까요?

이 대전제를 포함해, 굉장히 많은 법칙들은 '다크 소울' 이라는 시리즈를 지탱하는 근간입니다. 때문에 이 게임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느냐 없느냐는 이 법칙을 이해했는지 여부가 결정합니다. '다크 소울3'는 지금까지 시리즈 중 이 법칙을 가장 훌륭하게 지켜낸 게임이죠. 그러면, 과연 어떻게 사람들이 그 법칙을 이해하게 만들었을까요?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음극복을 경험하게 하는 방법


'다크 소울3'이 이루고자 한 대중화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약간 다릅니다. 그건 방금 말한 이 '법칙'에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이들이 게임을 플레이하게 하고 판매고를 높이기 위해 대중화를 노린 게임들은 엄청나게 많이 있습니다. 대중화와 독창성은 큰 딜레마죠. 그럼에도 '이 게임을 하지 않으면 안돼!' 하게 만드는 그 게임만의 요소가 있기 마련입니다.

모든 훌륭한 게임들은 저마다 이런 자기만의 룰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게임이 따라오지 못하는 그런 독특한 법칙에 매료되어 그 게임에 빠져들고 마니아가 되곤 하죠. 하지만 그런 법칙은 때로 장벽이 되곤 합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대중화를 노리는 게임들은 그런 법칙 자체를 부숴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대체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어요. 이 분야에서 톱은 역시 게임계의 공룡 퍼블리셔 EA가 흡수한 프랜차이즈들 대다수입니다.



절대 나쁜 게임은 아니었지만, 전작들과 너무 달랐다

사실 '다크 소울' 이후, 후속작들이 개발되고 출시될 때마다 걱정하던 부분은 이런 유명세 때문에 게임이 변하지는 않을까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례들은 무수히 많지요. '데드 스페이스' 역시 1편의 대호평 이후 후속작들이 결코 완성도가 낮지 않은 좋은 게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희석된 호러 요소와 액션 게임화로 인해 많은 비판을 들은 전례가 있고, 다른 장르를 돌아봐도 'Anno 2070'처럼 난이도를 낮춘답시고 게임이 몰개성해진 사례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다크 소울3'는, 여기서 자신이 가진 확고한 법칙을 부수고 무너뜨리기 보다는, 보다 많은 이들이 그 법칙을 이해할 수 있도록 조금만 더 친절해지기로 했습니다. '다크 소울'이라는 게임의 오리지널리티를 희석해서 다른 게임과 비슷하게 만들어 접근하게 쉽도록 만들기보다, 오히려 사람들이 '다크 소울' 이라는 게임의 독창성에 보다 빠르고 쉽게 매료될 수 있도록 한 거지요.




정말 말이 쉬운 일이지만, 실천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런 성공적인 대중화의 사례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아실 테죠. 그리고 '다크 소울3'가 갑자기 수천만 명의 플레이어를 양산할 만큼 대중화에 성공을 이뤄낸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히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다크 소울'의 가차없는 난이도를 가지고 유머를 펼치는 것은 이미 인터넷상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고, 수많은 이미지와 무용담이 나돕니다. 인지도 면에서는 더이상 부족할 것이 없죠. 수많은 예비 구매자들이 있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그들에게 이 게임 시리즈가 가진 '룰'을 납득시키는 것입니다.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돌발 현상들이 남아있는 네트워크

그러나 만약, 불친절과 가차 없음을 매력이자 장점으로 삼고 있는 이 게임이 입문자들을 위해 그 모든 걸 내버린 게임이 되었다면 기존 게이머들의 외면을 피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다크 소울3'가 택한 것은 간단합니다. 초반부의 난이도를 낮추고 이 룰을 계속 보여주어 적응을 시키면서, 후반으로 갈수록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는 거죠.

그런 기억이 있는데, '블러드본'은 프롬 소프트웨어의 게임 전체를 통틀어서도 정말 가차없이 초반부터 난이도가 높은 게임이었고, 제 주변에서도 많은 이들이 첫 네임드에서 게임을 그만두었습니다. 하지만 '다크 소울3'에서는 3번째 보스인 저주를 품은 거목까지는 가야 그때부터 '야 이게 깨라는거냐' 라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보스뿐만 아니라, 일일이 길을 다 가르쳐주고 사실은 지름길이 많이 있다는 걸 지적해주지 않으면 가중되는 스트레스 속에서 패드를 던져버리던 '블러드본'과는 달리, 몇 개의 화톳불과 지름길 이후로는 알아서 길을 찾아내고, 위험과 안전을 신중히 분별하는 새로운 플레이어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게 그들이 원하는 대중화라면, 팬 입장에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반길 일이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고 같이 즐기며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늘어난다니! 뭐, 배타적인 게이머라도, 암령으로 침투해 혓바닥을 잘라낼 피해자가 늘어가는 건 좋은 일일 테니까요.



반복되는 죽음과 부활의 굴레가 주는 막대한 카타르시스





마무리하며, 처음에 던진 화두, 우리가 왜 이 악랄한 게임을 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다크 소울' 시리즈는 온통 죽음과 고통으로 가득 찬 게임입니다. 그걸 부정할 수는 없죠. 하지만, '다크 소울' 시리즈 전반에 걸친 주제의식은 '죽음' 하나에만 얽혀있는 건 아닙니다. '다크 소울'은 그 자체로 큰 하나의 순환고리를 형성하고 있고, 이게 바로 이 게임이 왜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지에 대한 키워드입니다. 좀 거창한 이야기를 수박 겉핥기 해보겠습니다. 어느 책의 구절을 발췌해보죠. 머리가 지끈지끈하다면 그냥 지나쳐도 좋습니다.




‘낡은 삶이 부여하는 의무와 규율을 거부하며 사자처럼 으르렁댈 수도 있고, 약물을 복용해서 그 고통에서 도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체로 결코 긍정이 될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긍정의 아주 중요한 성질을 발견한다. 어떤 행위가 긍정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다음의 긍정에 의해 긍정될 때이다. 파괴가 긍정의 질을 갖기 위해서는 다음 번 생성이 있어야 한다. 즉 다음 번 생성의 긍정을 통해 파괴는 부정이 아닌 긍정이 되는 것이다.’

-고병권 저,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이 문구는 ‘니체’를 해석한 한 학자의 책에 적혀있는 글입니다. 쉽게 말해보자면, 결국 파괴 자체가 긍정적이며 좋은 것이기 위해선 그 후에 이어지는 창조가 긍정적이고 좋은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행위는 전과 후의 인과관계로 연결되어 있으며, 어느 하나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거죠. 그리고 그 연결이 계속 이어지면 하나의 순환고리가 완성됩니다.

일명 ‘영원회귀론’ 이라고 하는 이 이론은, 파괴와 생성의 반복을 통해 '순환' 이라는 영원에 다가가면서, ‘파괴’를 부정적으로 고정하는 것에서 벗어나, '파괴'에 이어지는 ‘생성’을 통해 ‘파괴’ 자체가 긍정적일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어디에선가 본 것 같지 않나요? '다크 소울' 시리즈를 이 순환의 고리로 보고, 게임을 플레이하며 우리가 겪는 무수한 죽음과 부활의 경험이 바로 ‘영원으로 회귀하는’ 과정이라 한다면, 게임을 클리어해 나가기 위해 겪는 셀 수 없는 죽음과 실패들은 그 이후의 성공을 통해 '긍정적이고 좋은 실패'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질리긴, 이제 시작이지!

즉, 더 많은 노력을 들여 더 크게 실패할수록 최종적으로 주어지는 성취감은 그만큼 더 커진다는거죠. 그것이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겪는 고통 어린 시련들을 인내하는 이유이자 원동력이며, 마침내 시련을 극복했을 때 얻어지는 막대한 카타르시스의 이유입니다.

사람은 원래 기대를 하고, 기대가 클수록 노력해 얻는 결과가 더 크고 기쁘기 마련입니다. 이 간단한 도식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삽니다. 고생을 왜 사서 하냐는 말도 있지만, 사서 하는 고생만큼 보상이 확실한 게 없듯이, '다크 소울' 시리즈는 기존 게임과는 다른 차원의 감정을 안겨줍니다.

수 시간의 헤딩, 분노에 찬 패드 쓰로잉, 살벌한 포효를 반복하다가도, 끝이 되어 찾아오는, 절로 방방 뛰게 만드는 희열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망자의 길을 택하십시오. 물론 감당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럼, 죽을 준비를 하십시오. Prepare to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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