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노트③] 중국에서 먹히는 남자 '큐오'? 세 번째 우승, 그 후

기획기사 | 신동근 기자 | 댓글: 29개 |
둘째 날 MVP 피닉스가 결승 진출을 확정지은 뒤, 시간을 보니 밤 9시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숙소에 복귀하면서 열심히 일한 스스로에게 상을 주기로 결정했죠. MVP 피닉스 팀과 제가 묵고 있는 숙소에는 실외 수영장이 하나 있었는데, 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제게 수영장에서 단 30분 만이라도 놀 시간을 주자고 말입니다.

예정대로라면 9시 30분 정도에 버스가 숙소에 도착했어야 했는데, 도중에 버스에 문제가 생기면서 갑자기 멈춰버리더니 20분 동안 정비를 하는 게 아니겠어요? 애간장을 태우며 버스가 다시 출발하기를 기다렸고,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호텔에 도착해서 수영장을 가려고 했더니 밤 10시에 문을 닫는다고 하더군요. 호텔에 도착했을 때 시간이 9시 55분이었습니다. 저는 눈물을 머금고 방으로 돌아가야 했죠.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떠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생각할수록 더 화가 났습니다.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버스 고장 때문에 그것도 못해? 울화가 치민 저는 정해진 시간에 출발하는 아침 버스를 타지 않고 기어이 수영장에 들어가서 물놀이를 한 뒤 자비로 택시를 잡아 경기장으로 떠났습니다. 마음 속에 맺힌 응어리가 풀리더군요.




지금까지 PGL 2016 섬머 대회를 하는 동안 매 끼니마다 M모 패스트푸드가 제공이 됐습니다. 대회 스폰서 중 하나가 거기라고 하더군요. 패스트푸드를 워낙 좋아하고 또 많이 먹는 편이기 때문에 별로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매번 똑같은 메뉴로 삼시세끼를 때우다 보니 솔직히 물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날도 점심과 저녁으로 M모 패스트푸드가 제공됐는데 도저히 더 먹기가 힘들어 선수들이 연습하고 있던 연습실로 도망쳐 같이 도시락을 시켜먹어야 했습니다.




워크래프트3, CS:GO, 도타2 결승전이 모두 끝나고, MVP 피닉스 선수들은 이미 한 번 이겼던 CDEC를 상대로 3:0 완승을 거두면서 세 번째 국제 대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숙소로 복귀하기 전, 중국 스트리밍 채널에서 방송을 하던 '미녀' 중계진들이 '큐오' 김선엽 선수에게 일제히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김선엽 선수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미녀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었고, 촬영이 끝나자 미녀 캐스터 중 한 명이 'MP' 표노아 선수에게도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걸 본 MVP 피닉스의 선수들은 "우리 'MP'가 드디어 여자랑 엮이는 일이 생기는구나"라며 감격해 마지않았죠. 기다리는 동안 김선엽 선수는 자기가 중국만 가면 굉장히 인기가 많다며 중국에서 '먹히는' 얼굴임을 강조했습니다. 김선엽 선수의 발언을 시작으로 MVP 피닉스 선수들은 각 멤버가 어느 나라에서 먹히는 얼굴인지 서로의 외모에 대해 품평회를 하면서 버스에 올랐습니다.




얼굴 품평회가 끝나자 '페비' 김용민 선수는 "내가 도타 하기 전에는 진짜 인기 장난 아니었는데 도타 시작하면서 얼굴이 이상해져서 인기도 다 떨어졌다"며 왕년에 매우 잘 나가던 얼굴이었음을 어필했습니다.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팬클럽도 있었고 러브레터도 받은 적이 있었다나요. 자기가 삭발을 한 적이 있었는데, 자길 따라다니던 여학생이 편지로 '네 머리는 변했지만 널 향한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아'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김선엽 선수와 '두부' 김두영 선수는 "그 얘기만 지금 15번은 들은 거 같다. 말도 안되는 소리 좀 하지 마"라며 김용민 선수의 말을 일축했고, 김용민 선수는 온몸으로 억울함을 표현하면서 나중에 자기 집에서 증거를 갖고 오겠다고 말했습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숙소에 도착했을 때 시각이 새벽 1시 가량이었습니다. 새벽 4시 버스로 공항에 출발해야 했기에 잠을 자기에도 애매해서 저희는 한 방에 모여 룸서비스를 시키기로 했죠. 굉장히 비싼 음식들을 마구잡이로 주문하자 임현석 감독님은 "2년 전만 해도 손 떨려서 이런 거 시킬 생각이나 했겠나"하면서 뿌듯해했습니다.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김용민 선수와 표노아 선수, 그리고 저는 노트북을 펼치고 정인호 해설이 중계한 방송을 다시보기로 시청했습니다. 두 선수는 이따금씩 경기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았는데, 3세트에서 김용민 선수의 리치가 상대 클링츠의 기습에서 희미한 망토를 써서 살아남는 장면이 나오자 김용민 선수는 "나이가 어려서 피지컬이 좋으니까 산 거야. 이거 '마치' 형이었으면 죽었다"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놀러 나갔던 김선엽 선수는 방에 들어와서 뭘 하고 있나 잠시 보더니 "또, 또 리플레이 보면서 이러고 있네. 이런 것 좀 하지 마"라며 매서운 일침을 날리고는 다시 놀러 나갔습니다. 실제 표현은 저렇게 점잖지 않았고 남자들이 저런 상황에서 흔히 내뱉는 그런 말이었는데, 그걸 차마 기사에 쓸 수는 없는 노릇이죠.




새벽 4시에 호텔 방을 나온 후, 피곤에 지친 모두는 말이 없었습니다. 오직 김용민 선수와 김선엽 선수만이 게임 플레이에 대한 방향 등에 열띤 토론을 할 뿐이었죠.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잠드는 바람에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거의 듣지 못했지만, 나중에 김두영 선수의 말로는 둘이 서로 자기 말이 맞다면서 한 얘기 또 하고를 계속해서 반복했다고 합니다. 덤으로 옆 자리였던 김두영 선수는 자고 싶었는데 둘이 떠드는 소리가 귀에 자꾸 꽂혀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4박 5일 간의 우한 출장은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하면서 그렇게 마무리 됐습니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MVP 피닉스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팀원들 간의 분위기나 선수와 감독 간의 분위기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단점이나 게임 내에서 잘못한 점을 즉각적으로 피드백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죠. 2016년 들어 MVP 피닉스가 세 번이나 해외 대회 우승을 따낸 데는 이런 화기애애하고 유쾌한 분위기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 같습니다.

이제 PGL 2016 섬머에서 모든 점검을 마친 MVP 피닉스는 1년 농사의 끝을 보는 대망의 TI6 출격을 위해 하루 뒤인 26일 저녁, 시애틀행 비행기에 오릅니다. MVP 피닉스는 이번 TI6에서 작년의 기록을 넘어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갈 수 있을까요? TI6까지 남은 시간은 약 1주일. 시간만이 그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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