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노트④] 또 한 번 안녕! 성지 시애틀을 떠나며

기획기사 | 신동근 기자 | 댓글: 17개 |



화려했던 도타2 디 인터내셔널6(이하 TI6)는 중국의 윙즈 게이밍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MVP 피닉스를 연상케하는 호전적인 모습, 그러면서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넓은 픽풀과 상대 운영에 완벽한 카운터를 치는 여우같은 면모, 마지막으로 퍼지나 기술단과 같은 '트롤픽'을 함으로써 현장에 환호성을 불러 일으키기까지. 여러모로 중국 팀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신선했던 윙즈 게이밍을 보고 MVP 피닉스의 코치진과 선수들은 입을 모아 "우승할 만한 실력과 자격이 있는 팀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MVP 피닉스는 패자전 4라운드에서 영원한 천적인 프나틱에게 또 한 번 발목이 잡혀 탈락하고 말았죠. 선수들 또한 승리를 자신했던 경기에서 패한 여파였는지 패배 후 많이 상심한 표정이었습니다. 다른 선수들은 그래도 훌훌 털어버리고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라고 말하며 서로를 격려했으나 'MP' 표노아 선수만은 유독 패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스위트룸 복귀 직후 말 한 마디 꺼내지 않으면서 소파에 축 늘어져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었죠. 그만큼 프나틱전 패배가 아프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최윤상 총감독은 선수들을 격려하면서 '여기까지 정말 잘했고, 이왕 키 아레나에 왔으니 기념으로 단체 사진이나 하나 남기자'고 말했습니다. 이 단체 사진을 마지막으로 MVP 피닉스의 선수들은 각자의 시간을 가졌고, 이후 선수 전원이 키 아레나의 스위트룸에 모이는 일은 없었습니다.




▲ TI6 결승전 축하 무대와 선수 소개 영상

TI6가 끝난 후에는 애프터파티가 빠질 수 없죠. 선수들, 코치진, 매니저, 중계진 및 관계자들 모두가 한 데 모여 술과 음식과 춤을 즐기는 자리인 만큼 선수들끼리 사석에서 하는 얘기들을 많이 들을 수도 있었습니다. 결승전이 끝나고 애프터파티에 가는 밴을 기다리는 동안 호텔 로비 바깥에서 최윤상 총감독과 '큐오' 김선엽 선수, 팀 리퀴드의 '힌' 이승곤 코치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죠.

인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김선엽 선수가 중국 미녀들에게서 굉장한 사랑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이승곤 코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김선엽 선수의 얼굴을 가만히 보더니 "아니... MVP 피닉스에 애들 인물이... '포렙', 'MP', '두부', '페비' 다 얘보다 인물이 훨씬 나은데 얘가 왜요?"라며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김선엽 선수는 '내가 이 정도 되는 사람이다'란 표정으로 이승곤 코치의 어깨를 툭툭 쳤고, 이승곤 코치는 한참을 진지한 태도로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단 표정으로 "아니, 얘 생긴 것도 완전 웹툰 그거... 마음의 소리 닮은 놈인데"라며 묵직한 한 방을 날렸고 김선엽 선수를 포함해 모두가 큰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애프터파티가 열리는 EMP 뮤지움은 작년과 다를 바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지난 번에는 식사 테이블만 있던 1층 자리에 고전게임 오락기 여러 대가 있었다는 것 정도일까요? 오리지널 슈퍼마리오, 동키콩, 스트리트 파이터 등 80년대 출생 세대가 오락실에서 봤을 법한 기계들이 있었습니다. 2층에는 제가 어릴 때 슈퍼패미컴으로 한창 플레이했던 슈퍼마리오 월드, 그리고 닌텐도 Wii 버전 슈퍼마리오까지 있더군요. 여기 밸브 애프터파티 맞는 거겠죠?

작년 데드마우즈가 디제잉을 했던 장소에서는 여전히 디제잉이 한창이었습니다. 작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고 있더군요. 한국 클럽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절제된 듯한 분위기였다고 할까요? 작년 애프터파티 때는 사진만 찍느라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던 데다가 이번 기회가 지나면 앞으로 클럽 입구에서 쫓겨날 나이가 된다는 생각이 들자 저는 앞뒤 잴 것 없이 들어가 모든 것을 불사르고 숙소에서 기절해버렸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언제나 옳은 도시 시애틀을 떠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죠. '두부' 김두영 선수와 '페비' 김용민 선수는 개인적인 이유로 캐나다로 이동한 뒤 따로 귀국하기로 했고, 남은 인원들은 모두 함께 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점심을 먹으면서 애프터파티 얘기를 꺼내자 최윤상 총감독은 어제 TNC의 '데몬'이 오더니 "나 정말 열심히 할 수 있고, 시키는 거 다 할테니까 MVP에서 다시 뛰게 해 주면 안되냐"고 진지하게 물었다고 합니다.

3년 전 NSL 당시 MVP 피닉스 팀에 잠시 합류하면서 한국 도타판에 선진 문물을 알려주고 떠난 '데몬'. 애프터파티에서 그냥 한 번 던지는 장난이 아니라 정말 진지하게 물어봤다고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데몬'이 돌고 돌아 3년 만에 다시 MVP에 들어오게 된다면 그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 김선엽 선수는 팀 리퀴드의 '쿠로키'와 팀 시크릿의 '퍼피'가 애프터파티에서 자기보고 자기 팀에 들어오라며 진지한 스카웃 제의를 했다고 합니다. 물론 거절했다는 말과 함께요. '퍼피'나 '쿠로키' 모두 고집이 세고 목소리가 너무 강할 것 같다나요. 그 외에도 저는 온갖 팀 로스터 변경에 대한 풍문을 들었으나 그걸 여기다 적기에는 여백이 너무 부족하군요.




100억 원의 상금을 손에 넣은 평균 연령 19.6세의 윙즈 게이밍, TI6 공식전 단 1승으로 5-6위를 따낸 MVP 피닉스, 충격의 '광탈'을 한 OG와 팀 시크릿 등 16개 팀의 희비가 교차한 끝에 TI6의 모든 여정이 끝났습니다. 서버도, 대회도 없는 나라에서 랜 토너먼트 우승을 따내고 TI6 5-6위까지 차지한 MVP 피닉스의 새로운 여정은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앞으로 1년 동안 바뀔 MVP 피닉스의 모습, 그리고 다가올 TI7에서는 더 많은 승리를 거두는 모습을 기대하며 성지 시애틀을 떠납니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