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글화만으로 다시 날아오르다, 카이로소프트 게임들의 약진

기획기사 | 김강욱 기자 | 댓글: 67개 |




“안 해봤으면 꼭 해봐라. 얘네는 게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알아.”

누군가 카이로소프트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게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아는 개발사라고. 사람들이 어떤 점에서 재미를 느끼는지, 그리고 자신들이 만드는 게임 속에 그것을 어떻게 녹여내야 하는지 아는 개발사라고. 유료 게임으로서 ‘돈 값’은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구글과 애플 양대 마켓의 유료게임 순위를 볼 때마다 카이로소프트의 팬으로써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블록버스터 급 신작이나 타 플랫폼 인기작이 모바일로 출시된 것이 아니다. ‘온천골 이야기’의 한글화 이후 놀랄만한 속도로 ‘던전마을 이야기’와 ‘게임개발 이야기’까지 한글화되면서 카이로소프트 게임들이 양대 마켓을 점령하고 있다. 몇 년이나 지난 구작들이 오로지 공식 한글화 덕분에 순위표를 역주행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카이로소프트 열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이로소프트는 중독성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의 소규모 개발사이다. 게임의 출시 주기가 빠른 편이고 진행 방식이 유사해 게임을 찍어낸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매 작품마다 뛰어난 중독성을 자랑해 모바일계의 타임머신으로 불리기도 한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시뮬레이션, 매니지먼트 장르임에도 폭넓은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카이로소프트 게임들이 가진 매력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카이로소프트 게임의 패턴은 대부분 비슷하다. 자신의 사업체(?)를 매우 작은 규모로 시작해 점차 키워나가는 방식이다. 특유의 2D 도트 그래픽 역시 매 시리즈 동일하다. 하지만 비슷한 패턴이라고 해서 게임들이 모두 비슷하다는 생각은 금물. 카이로소프트 게임의 매력은 자신들만의 방식을 식당은 물론 축구 구단, 레이싱 팀, 온천이나 백화점, 피라미드나 도시 등 다양한 소재에 훌륭하게 녹여낸다는 점에 있다.

비슷한 UI와 진행 방식 덕분에 카이로소프트 게임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다른 게임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을 정도지만, 각 소재에 어울리는 포인트를 잘 살려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자신들이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를 100% 활용할 줄 안다는 의미이다.

게임의 구성도 수준급이다. 초반에는 자금과 인력 등 모든 부분에서 굉장히 빡빡하기에 “어떻게 하면 유지비를 벌 수 있을까”, 즉 ‘생존’이 목표가 된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다 특정 선을 넘어서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지만 제한시간 안에 모든 것을 다 이루기에는 살짝, 아주 살짝 부족하다. 시뮬레이션 장르 후반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루즈해지는 구간을 시간제한이라는 요소로 훌륭하게 메꾼 것이다.

물론 16년 이후에도 게임을 계속 진행할 수는 있지만 마음속 한 구석이 공허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때문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기간 안에 모든 것을 달성하기 위해 이전 플레이에서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2회차, 3회차 플레이를 하게 된다. 전회차에서 달성한 부분의 일부를 다음 회차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계승 시스템 덕분에 플레이어들은 반복플레이에서 오는 지루함을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다.

카이로소프트 게임에서는 힘든 과정을 거쳐 경쟁자를 물리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쾌감과 그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게임이 줄 수 있는 가장 기본이면서도 중요한 보상인 재미와 로망이 있다. 이미 수차례 검증된 재미가 있기 때문에 비슷한 게임을 만들어도 유저들은 믿고 구매하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카이로소프트 게임들을 즐길 수 없었던 것도, 한글판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이전에도 팀 그린나래 등에서 비공식 한글화를 제작해 배포했고, 덕분에 국내에서도 많은 유저들이 즐길 수 있었다. 또한, 어떻게든 게임을 즐기기 위해 영문판이나 일본판을 구매해 사전을 봐가면서 플레이했다는 유저들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공식 한글화 첫 작품인 ‘온천골 스토리’가 발매되었을 때 솔직히 걱정이 더 많았다. 할 만한 사람이라면 비공식 한글화 버전이나 영문판, 일본판으로 즐겼을 것이고, 지금도 게임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 시장에 진출한다 해도 판매량이 저조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오히려 기존에 카이로소프트 게임을 해본 사람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게임을 구매하고, 또 홍보했다. ‘취향에 맞는’ 게임을 찾은 사람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이제 사람들은 다음 한글화 작품을 기대하고 있다.

다년간 축적된 기술과 기기 자체의 발전으로 모바일게임도 PC나 콘솔게임 못지않은 퀄리티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이 모바일게임을 바라보는 눈높이도 높아졌다. 새로 나오는 작품들은 유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더욱 많은 콘텐츠, 더욱 좋은 그래픽, 더욱 탄탄한 스토리와 큰 볼륨을 내세우며 노력하고 있다. 게임의 질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고, 블록버스터 급 작품들을 한 달에도 몇 개씩 만나볼 수 있다. 모바일게임 마니아로서 이보다 더 좋은 시기는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뭔가가 아쉽다. RPG, 전략, 카드, 스포츠, 리듬액션 등 분명 다른 장르의 게임임에도 기시감이 느껴진다. 아직까지 화면이나 조작법 등이 제한적인 모바일 환경에서 유저들에게 더 많은 콘텐츠와 즐길 거리를 제공해주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리라 이해할 수 있지만, 새로 설치한 게임에서 느껴지는 기시감은 때로는 불쾌하게 다가온다.

게임을 가장 게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카이로소프트 게임들이 주는 메시지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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