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포켓몬스터 썬·문'이 역대급 타이틀인 6가지 이유

리뷰 | 정필권 기자 | 댓글: 125개 |



매번 그랬다. 포켓몬스터의 새로운 세대가 나오는 시점은 항상 국내 최대의 행사와 겹쳐있었다.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집에 도착하여, 비닐 포장을 뜯으며 남들보다 뒤늦게 흥분감을 맛보아야만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출시 전부터 쏟아지는 정보들에 비례하여 상승하는 기대감은 기자. 아니, 한 명의 포덕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기 충분했다. 결국엔 출시 당일, 점심을 포기하고 벡스코 근처 마트로 달려가 타이틀을 사오는 초유의 사태까지 이르렀다. 동료들이 "넌 진짜 답 없는 포덕이다."라는 측은한 시선을 보내기도 했을 정도다. 뭐... 결과적으로는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국내에서는 일주일 만에 9만 장, 일본에서는 발매 후 3일간 190만 장 이상이 판매되며 '역대급'이라는 평가와 판매량을 보여준 '포켓몬스터 썬·문'. 이번 작품이 역대급 시리즈로 자리 잡은 이유를 6가지 키워드로 정리해 봤다.



▲ 역대급이라는 평가는 다 이유가 있다.


"응~ 체육관 이제 없어" - 전통으로부터 탈피


썬·문으로 넘어오며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 시리즈의 전통이었던 '체육관'과 '사천왕' 등 기존의 게임 흐름이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점이다. 사실, 그동안 포켓몬스터 시리즈는 클리셰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유사한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몇몇 세대에서는 나름 훌륭한 이야기를 보여주긴 했지만, 체육관 - 사천왕 - 챔피언으로 이어지는 10여 년 간의 흐름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허나 이번 썬·문에서는 다르다. 알로라 지방이라는 새로운 무대에는 체육관이 존재하지 않고, 이를 '시련'이라는 요소가 대체한다. 네 개의 섬마다 독특한 시련 과제를 제시하고, 이를 유저로 하여금 해결하도록 구성했다. 시련에 등장하는 포켓몬은 강력해진 상태로 등장하고, 동료까지 부른다. 심지어 마을 밖에 시련 장소가 존재하기에 자유로이 회복도 할 수 없어 게임에 긴장감이 더해진다.



▲ 시련 중에는 소리만 듣고 퀴즈를 맞춰야되는 신기한 시련도 있다.

비록 일방통행식 구성이긴 하지만 새로운 도전과제의 제시와 시련 배치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모험이라는 포켓몬스터의 정체성을 강조할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알로라 리그를 세우는 과정도 스토리 진행과 자연스레 병행되도록 설계했다.

기존의 체육관과 유사한 흐름을 따라가되, 다른 느낌을 주려는 시도는 높이 살 수 있을 것이다. 20여 년간 계속되던, 어쩌면 없으면 어색한 '체육관'과 '관장', '리그 제패'라는 타이틀을 버리고도 플레이어에게 목적과 당위성, 익숙함을 충분히 부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 새롭지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어렵다. 이를 자연스레 풀어냈다.


"비전통이여 안녕" - 비전머신의 삭제


전통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시도는 '비전머신의 삭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풀베기', '공중날기', '괴력'등 맵 곳곳에 있는 장애물들을 파괴하는 퍼즐 요소들은 '포켓라이드'라는 시스템으로 대체됐다. 1세대부터 20년간 존재했던 비전머신의 삭제는 스토리 진행 측면은 물론이고 실전에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비전머신이 삭제되면서 플레이어는 자신이 원하는 포켓몬들을 육성할 수 있게 됐으며, 4개뿐이던 기술 배치 칸을 100%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전 시리즈까지 비전머신 때문에 반드시 특정 포켓몬을 육성한다거나, 특정 포켓몬에게 네 개의 비전기술을 몽땅 몰아준다든가 하는 플레이는 이번 시리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 대부분의 비전머신을 커버하던 비전... 아니 비버통.

포켓라이드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점도 나름 주목할 만 하다. 용도에 따라 포켓라이드를 구분 지어, 이리저리 번갈아가며 사용하는 나름의 재미를 부여한다. 맵이 좁은 대신, 밀도가 높은 편이라 상황에 따라 라이드를 바꿔가며 사용하게 된다.

이와 같은 변화는 실전 개체를 육성하는 하드한 유저들보다는 포켓몬스터를 오래간만에 즐기거나, 처음으로 접하는 유저들에 맞춘 변화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비전머신을 사용했던 과정을 되돌아보면, 굳이 없어도 되는 번거로운 제한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시리즈 팬들도 익숙하지만 불편했던 비전머신의 삭제를 반기고 있으니, 앞으로의 포켓몬스터에는 비전머신이 삭제되리란 전망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 이리저리 골라 쓰는 재미도 있고, 편하기도 하다.


"포즈로 파워업?" - Z기술로 폭넓어진 배틀


기묘하지만, 한편으로는 귀여운 포즈. 엔딩 전까지 메가진화를 대체하며 배틀 당 1회만 사용할 수 있는 필살기와 같은 개념의 'Z기술'은 썬·문의 정체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 게임 초반부터 엔딩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게임을 관통하며 유저들에게 선택권을 부여한다.

제대로 노린다면 전투 판도를 뒤집을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함을 자랑하므로, 어느 순간을 노려야할 것인지 고려해야 한다. 일부 반동이 있는 스킬의 경우, Z기술을 통해 변환한다면 별다른 리스크 없이 사용할 수도 있다. 실전을 겪어야 하는 시기에는 Z기술부터 시작되는 변수들이 자아내는 상황이 자못 흥미롭다.



▲ 사실, 공개한 정보로 봤을 때는 별로일 거라 생각했었다.

메가진화가 포켓몬을 강화해 능력치나 특성, 타입 등에서 변수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면, Z 기술은 기존 포켓몬의 외형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특정 기술의 강화를 통한 변수를 제공한다. 사용할 수 있는 변수가 늘어난 만큼, 유저 간의 포켓몬 배틀은 한층 더 폭넓고 깊어진 콘텐츠를 보여줄 수 있었다.

성능 외에도 Z기술의 연출이 뛰어나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요소다. 기술 사용 시 간단한 이펙트만 보여줬던 것과는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말 그대로 '이것이 필살기구나...' 싶은 연출들이다. 모 만화의 기묘한 자세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만 제외하면, 성능과 연출 양쪽을 모두 만족시킬 만하다. 정적인 배틀 연출에서 벗어난 격정적이고 화려한 연출은 게임 내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하겠다.



▲ 기묘하고, 귀엽고, 강하고, 멋지다. 그것이 Z기술!


"동료좀 그만 불러라..." - 상승한 난이도


얄궂게도 썬·문의 난이도는 역대 시리즈 중에서는 꽤 높은 편이다. 파티에 넣어둔 포켓몬들에게 경험치를 분배하는 '학습장치'라는 아이템을 초반에 지급함에도 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시련이라는 시스템의 특수성을 떠나서 필드에서 만나는 야생 포켓몬들이 플레이어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다름 아닌 '동료 부르기' 시스템 때문이다.

야생 포켓몬이 전투 중 동료를 부르는 이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2:1 싸움을 진행하도록 만든다. 동료가 등장한 순간부터 야생 포켓몬을 포획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상태이상 기술은 물론, 공격 스킬도 두 번씩 날아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당연히 난이도는 2배, 아니 그 이상이다.



▲ 졸지에 2:1 싸움이 되어버린다.

하나를 쓰러뜨린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불러서 등장한 포켓몬이 또 동료를 부르기도 한다. 그야말로 끝없는 연쇄가 벌어지는 것이다. 동료 부르기를 약 30~40회 반복할 때,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높은 능력치의 포켓몬이 등장한다는 이점도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최종 콘텐츠를 상정했을 때의 이야기. 일반적으로 스토리를 진행할 때에는 시련보다 더한 귀찮음과 스트레스를 불러온다.

덕분에 포켓몬 수집에도 애로사항이 꽃핀다. 동료 부르기로만 등장하는 몇몇 포켓몬을 포획하기 위해서는 장시간의 전투를 각오해야만 한다. 체력을 깎고 포획을 시도하는 것보다는 만나자마자 볼을 던지는 것이 편하다.



▲ 체력 깎다가 동료 때문에 스트레스 받느니.. 그냥 볼부터 던지는 게 제일 낫다.

이전 시리즈처럼 가볍게 전투를 즐기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는 수준임에는 분명하지만, 반대로 난이도가 있어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는 것은 장점으로 볼 수 있다. 솔직히, 이전까지의 시리즈는 스타팅 포켓몬만 제대로 육성해두면 레벨로 적당히 밀어붙일 수 있을 정도로 난이도가 낮은 편이었다.

호불호가 갈릴 테지만, 긴장감을 줄 수 있는 난이도는 개인적으로는 적당한 수준이라 생각한다. 동료 부르기가 게임 진행 중에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엔딩 이후 실전 개체를 육성하려는 시점에서는 확정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것과 노력치를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편의성이 증가했다 볼 수 있다.


"이게 비선실세인가요" - 매력적인 조연, 마무리된 이야기


5세대인 '블랙·화이트'와 '블랙2·화이트2'에서 보여줬던 매력적인 캐릭터와 이야기는 이번 작품에서 한층 더 강조된다. 바로 전 시리즈인 'X·Y'가 인상 깊은 캐릭터를 보여주지 못했던 것과는 반대의 모습이다. 등장인물들의 표정 변화, 개성 있는 캐릭터들은 플레이어가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는 도구로써 작동한다.

특히 눈여겨볼 것은 스토리의 초점이 주인공보다는 조연인 '릴리에'에게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순례자이자 제삼자이며, 이야기를 통해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은 조연인 릴리에가 차지한다. 전투를 전혀 하지 못하는 조연이 이야기를 거치며 한 명의 트레이너이자 독립된 개체로 성장하는 모습은, 나이든 포저씨들의 눈시울을 적시기 충분하다. 모험과 성장이라는 시리즈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셈이다.



▲ 이번 시리즈의 진정한 주인공 릴리에

매력적인 조연들을 보여줌과 함께 연출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스토리 진행은 대부분 인게임 연출로 구성되었으며, 흘러가는 대사들을 감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분량도 시리즈 중 가장 많다. 또한, 비교적 현실적인 캐릭터 등신대로 변경되면서 다양한 감정 표현을 살리고, 이를 연출로 승화시켰다. 다른 게임에서는 그저 그런 자그마한 변화이지만, 포켓몬 시리즈 20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큰 변화다.

조연의 정신적 성장과 이를 연출로 풀어나가는 것으로 게임의 이야기는 확실히 마무리된다. 엔딩에서 급전개를 보였던 지난 시리즈나 특정 조연에게 갈등을 모두 전가했던 타이틀과는 차별화된 모습이다. 포켓몬과 함께하는 시작부터 성장, 그리고 절정에 이르는 연출은 적어도 '덜 닦인' 느낌은 들지 않는다. 격정적이지는 않더라도 매력적인 조연과 함께 시리즈 최초로 깔끔한 마무리를 보여줬다.



▲ 아재 개그 전문 박사, 40대 애 엄마, 섬세한 갱스터 등 개성적인 캐릭터가 잔뜩.


"여기가 희망의 땅...!" - 리전폼 추가


시리즈마다 새로운 포켓몬을 선보이는 시리즈의 전통은 썬·문에 이르러 종보다는 횡적인 변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기존 1세대 포켓몬에 새로운 타입을 추가한 '리전폼'이 그것이다. 시리즈 팬들은 물론이고 1, 2세대만을 플레이한 초기 유저들 모두에게 충격을 준 결과물이다.

타입 변화와 함께 강렬한 외관을 선보여 많은 이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목이 길어진 나시는 '나아아아아시'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졸지에 돼냥이가 되어버린 페르시온이나, 머리털이 난 꼬마돌과 닥트리오 등 속성과 외관 모두 큰 변화를 거쳤다.



▲ 닥트리오에겐 머리털이 생겼다. 탈모인에겐 희망의 땅이다.

횡적인 변화는 포켓몬의 최종 콘텐츠인 배틀에도 영향을 미친다. 세월을 거듭하며 낮은 능력치와 성능으로 잊혀졌던 1세대 포켓몬들에게 새로운 활용 방법이 생겼기 때문이다. 리전폼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면서 앞으로의 변화를 기대해볼 수 있게 됐다.

이로써 이전 작품들처럼 100종이 넘는 새로운 포켓몬을 제시할 필요도 없어졌을뿐더러, 기존 포켓몬의 활용도와 주목도를 올리려는 선택은 일단은 성공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리전폼에 메가진화까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포켓몬들에 두 가지 요소를 활용하면, 작은 변화로도 새로움을 주기 충분하니 말이다.



▲ 메가진화와 리전폼으로 포켓몬의 다양성은 증가했다.


"이것이 발전이다" - 기념비적인 20주년을 맞이하며


포켓몬스터 썬·문은 '포켓몬 탄생 20주년'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콘텐츠와 편의성을 보여줬다. 전투 후 상태 이상의 부담감을 줄인 '포켓리프레', 유저 간의 커뮤니티 창구로 이용할 수 있는 '패스서클', 포켓몬 육성과 아이템을 수집하는 '포켓리조트'까지 소소하게 파고들 수 있는 콘텐츠들도 꽉 들어차 있다. 손이 많이 가던 포켓몬 박스는 한 번의 조작만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간소화시켰다.



▲ 박스 내 포켓몬을 활용하는 포켓리조트, 통신 기능을 집약한 패스서클까지. 전부 알찬 콘텐츠들이다.

게임 내적·외적인 변화들은 세대마다 발전해 온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발전을 정리하고, 총망라했다고 볼 수 있다. 출시 전의 반응인 '역대급 실험작'이 될 것이란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포켓몬에는 없었던 한껏 힘이 들어간 연출이 등장했으며, Z기술과 리전폼을 선보이며 IP 자체에 깊이를 더했다.

물론, '완벽한 게임인가?'라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라고 대답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시리즈마다 발전해 온 게임인가?'라고 묻는다면 확신을 가지고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을 수 있다.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발전을 계속해 온 게임프리크의 저력은 포켓몬스터 썬·문에 이르러 완전히 개화했다.

포켓몬스터식 발전의 완성형을 보여준 이번 작품은 'NDS, 3DS로 출시된 포켓몬 중 최고의 타이틀'이라는 평가가 아깝지 않다. 아마도 3DS로 출시되는 마지막 세대일 '썬·문'은 시리즈 골수 팬에게도, 초기 포켓몬스터 이후 게임을 처음 접하는 유저에게도 만족스러운 선택이 될 것이다.



▲ 어서 오세요. 흥분과 활력이 넘치는 땅, 알로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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