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학교에 PC방 만들고 프로게이머 배출한 '교장선생님' 이야기

게임뉴스 | 박태학 기자 | 댓글: 23개 |


▲ 아현정보산업학교 방승호 교장


PPT 단 한 장, 자신을 '가수'라고 소개한 방승호 교장의 강연은 시작부터 끝까지 독특했고, 또 유쾌했습니다. 공부에 흥미가 없는 학생들을 '천재'로 바꾼 그의 사연을 생생하게 적어봤어요. 강연장에 통기타를 왜 들고 왔는지는 기사 중간 즈음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저희 아현정보산업학교는 학생들을 뽑을 때 뭘 보냐, 성적 볼까요? 얘네들 성적 다 비슷해서 그거론 못 뽑고... 출결로 뽑아요. 여기 와서 애들 보고 있으려니까 궁금증이 생기더라고요. 얘들이 언제 공부를 포기했는지.

- 상담했죠. 10명 쯤 넘어가니까 공통 분모가 있어요. 엄마 아빠 사이가 좋은 부모님이 없어요. 부모님 사이가 안 좋으니깐, 아이들이 의존 대상을 부모님으로 둘 수가 없는 거예요.

- 그럼 아이들이 공부 안 하고 새로운 의존 대상을 찾아요. 얘네들이 찾는 게 뭐일 것 같아요? 아시는 분 있어요? 뭐, 여러가지가 있는데 크게 두 개예요. 게임이랑 담배.

- 게임하는 애들한테 뭐라고 해봐야 안 들어요. 대신 이걸로 뭔가 재밌는 거 해볼 수 없을까 고민해봤죠. 회의하다 이런 얘기가 나왔어요. 게임 많이 하는 애들만 모아서 '과' 만들어보자고. 농담 비슷하게 나온 건데 어, 이거 재밌어보이는 거예요. 결국 만들었어요. 과 이름이 뭐였을 거 같아요? 'e스포츠 과'였어요.허허허, 그거 만들고 첫해 경쟁률도 장난 아니었지. 30명 뽑는데 지원자만 100명이 왔었나? 어마어마했죠.

- 과는 만들었는데, 이게 가르친다는 게 현실적인 거거든요. 얘네들을 어디서 가르치겠어요? 일반 교실은 말도 안 되고, 학교 컴퓨터실은? 컴 사양 구려서 애들 게임도 못해요 그거로는. 그렇다고 과 활동 할때마다 PC방 가기도 그렇고... '야 그냥, 이 참에 학교 안에다 PC방 만들어버리자' 해버렸어요. TV 쫙 깔고, 컴퓨터도 좋은 거 놓고. 게임 끝나면 자기 경기 복기 가능하게도 해놨는데... 지금 봐도 진짜 잘 만들었어요. 퍼펙트하게.

- 제가 교직 생활이 올해로 31년째거든요. 이렇게 수업태도 좋은 애들 처음 봤어요. 허허허, 옆사람하고 얘기? 안 해요. 지각생? 없어요. 얘네들이 화장실 갈 것 같아요? 화장실도 안 가요. 진짜 안 가. 가더라도 뛰어갔다와요. 허허허허, 그 정도로 몰입하는 거예요. 어우, 엄청납니다. 이렇게 아이들 바뀐거 보고 있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 이게 과 활동이라는 게 장비나 학생들도 중요하지만, 이걸 가르치는 '선생님'도 중요하거든요. 시설도, 예산도 되지, 예산 되니까 나름대로 신경써서 여기저기 잘 만들어놨는데... 그런데 선생님 뽑는 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게임하는 애들 다 이해해주고 이런 수업 진행할 선생님? 게임하는 선생님이 임용고시를 붙었다? 허허허, 이거 생각해볼 문제잖아요. 임용고시가 얼마나 어려운데... 이러다보니 선생님을 뽑을 수가 없는 거예요.

- 저희 학교가 공립이에요. 서울시 중고등학교들 대상으로 공문을 5개쯤 보냈어요. 게임 가르칠 선생 있냐고. 다 없다고 합디다. 계속 머리 싸메고 누구 시키지 하는데, 마침 옆에 있던 총무님이 컴퓨터 과목 선생님인 거예요. '좋다, 너가 여기 맡아라' 했는데, '아유, 교감님(당시에는 교감) 저 게임에 게 자도 몰라요'라고 하는 거예요. 그냥 막 꼬셨죠. 내가 다 책임질게. 너 일단 오고 너랑 제일 잘 맞는 사람 데려오라고 했어요.

- 결국 그 선생이 임용고시 동기 한 명 꼬셔서 같이 오더라고요. 그러고 그 둘이 e스포츠 과를 일주일 정도 가르치더니만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교감님. 감사합니다. 이 과 수업 너무 좋아요!" 막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인사하고. 허허허허.

- 그럴만도 하죠. 애들이 떠들길 해, 도망을 가. 지각도 안 하고. 그 선생님들은 하는 일도 거의 없어요. 칠판에 애들 대전표 하나 딱 그려놓으면 하루가 가요.

- 그런데 3주쯤 지나니까 두 선생님들 표정이 좀 이상하더라고요. 4주 정도 되니까 저한테 이랬어요. "교감님, 저 더이상 못 하겠어요."

- 왜 그러냐고 물어봤죠. 여러분도 아실 거예요. 게임하는 아이들, 안 건드리면 정말 조용해요. 그런데 건드리면 과격해지는 거야. 아이들이 막 뭐라고 하니까... 남자 선생님은 1년 만에 근무 더 이상 못하겠다고 돌아갔어요. 이제 한 명 남은 여 선생님까지 나간다면 그냥 끝나는 상황이었지. 당시 제가 맨날 하는 일이라는 게, 그 여 선생님 가지 말라고 부탁하는 거였어요.

- 그러면서 시간 지나고 어느날, 그 여 선생님이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있다는 거예요. 얘길 듣자 하니, 그 당시에 스타크래프트에 프로구단들이 인기가 엄청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 사실 알고, 바로 프로구단 감독님들 쫒아다녔어요. 우리학교 한 번만 와달라고, 강의 한 번만 해 달라고 간곡하게 요청을 했죠.결국 한 감독님께서 저희 얘기 들어주시고 일일 강사로 한 번 오신 적이 있어요.

- 여러분, 종교 있으세요? 저는요. 그 때 존경의 의미를 처음으로 알게 됐어요. 감독님 오니깐, 애들 표정이 그냥... 아주 신을 영접한 표정인 거예요. 허허허허, 전 예수님 부처님 후광을 본인이 내는 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애들이 쏴 주는 거였더라고요. 허허허.

- 그 여 선생님은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요? 신과 동급이 됐어요. 감독님 모시고 온 분이라고, 아이들이 그 선생님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거예요.

- 여 선생님이 여기서 뭔가 깨달은 게 있는지, 어느날 저한테 또 오더니만 이러더라고요. "교감님. 저 믿고 1억 5천만 원만 주세요."

- "1억 오... 뭐? 너 어디 아프냐?"라고 했죠. 그런데 하도 확신에 차서 얘기를 하니깐 이거 그냥 듣고 넘기기도 뭐한거예요. 자기가 다 하겠다는데 어떻게 해요. 시의원한테 가서 설득했지. 의원님, 도와주시면 저희가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고. 교육청장, 구청장 다 설득했어요.

- 그런데 당시엔 게임에 대한 인식이라는 게 정말 없었어요. 이런 과가 있는지도 몰랐고, 왜 있는지도 몰랐죠. 그냥 안 되나보다 생각하고 접으려 하는데... 그때 참 운이 좋았죠. 서울시 교육청에 엄청나게 큰 규모로 예산이 배치된 거예요. 저한테 연락이 오더라고요. "그 때 얼마 필요하다고 했죠?" 아, 이거 됐구나! "1억 5천 만 원입니다."

- 그 돈은 우리나라에 있는 e스포츠팀 감독님들, 관련직에 있는 전문대 교수님들 모셔오는 데 썼어요. 수업 위주로 다 쓴거죠. 애들이 어떻게 변했을까요?

- 전 그때 너무 많은 걸 깨달았어요. 애들이 다 천재로 변하더라고요. 게임할 때 관련한 영어 단어라던가 뭐 그런 간단한 거를 조금씩 알려주려고 했는데 애들이 배우는 속도가 엄청난거예요. 그리고, 게임 엄청 하는 애들한테는 자기가 게임하는 시간 기록하라고 노트를 줬는데, 이게 또 효과가 컸어요. 처음에는 과몰입 판정 나온 애들이, 이거 수료할 때쯤 되니까 평균적이라고 나온 경우도 많았고.

- 그당시에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에서 준프로 선발하는 대회가 있었는데, 우리 학교에서 준프로가 3명이 나왔어요. 그리고 그 해 7월인가 8월인가에 우리 학교에 손석희라는 학생이 세계대회 나가서 막 올라가는 거예요. 인터뷰도 나가더니만, 나중에는 '삼성전자 칸'에 입단했어요. 석희가 지금은 외국 팀에서 활동하더라고요. 이거 진짜 엄청난 거예요.

- 예전에 아이들한테 꿈이 뭐냐고 물으면 대부분 대답이 '졸업이요...'였어요. 집중도 오른 애들이 이제 이 꿈을 완전히 넘어서... 독서 대회 나가면 책을 그냥 완전히 암기를 해버리더라고요. 칙센트미하이 박사가 말한 '몰입'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이게. 제가 그때 정말로, 포기할 아이가 하나도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그때.

- 마지막으로 제 이야기도 조금 해볼까요. 아이들한테 맨날 꿈이 뭐냐고 묻다보니 어느날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 꿈은 뭐였지 하는. 그 때 곰곰히 생각해보고 알았어요. 아, 내가 노래하는 걸 엄청 좋아했구나.

- 애들한테 막 얘기하고 다녔어요. 제 좌우명이 '선 뻥, 후 조치'거든요. 허허허, '선생님 가수될거야', '너네도 꿈 있듯, 나도 꿈 따라갈거야' 했죠. 그리고 1년 지나고 2년 지나니까 제 앨범이 하나 둘 씩 쌓이더라고요. 제가 학교에서 일하니까, 학교에서 나는 일들을 노래로 풀었어요. 학부모송, 지각송, 금연송... 5집에는 게임송이 들어갔는데, 이건 엠넷에서 10등까지 했어요. 박수 쳐주시면 노래 한 곡 하고 마저 이야기할게요. 허허허.

▲ NDC 2017 방승호 교장 게임송 'Don't Worry' live


- 전 학교에서 호랑이 탈 쓰고 다닌 적도 있어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일할 때였는데... 애들이 다 자는 거예요. 이거 어떻게 깨울까 고민하는데, 하늘에서 메세지가 오더라고요. '탈을 쓰거라' 하고... 허허허.

- 처음엔 되게 창피했는데, 뭐 쓰고 다니다 보니까 좀 적응이 되더라고요. 한 500명 쯤 되는 애들 손 다 잡고 하이파이브 하고 했는데, 선생님들이 그랬어요. 애들 수업받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이렇게 한 사람의 작은 용기가 전체 문화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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