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리니지 '말하는 섬'의 추억, 옛날에는 에일리언보다 셀로브가 더 무서웠다

게임뉴스 | 장요한 기자 | 댓글: 17개 |
엔씨소프트의 신작 모바일 게임 리니지M이 사전예약을 시작했습니다. 원작 리니지1을 즐겼던 많은 유저들이 리니지M의 출시를 기다리고 있는데요. 인벤은 리니지M이 출시되기 전, 과거의 추억을 함께 되살려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1998년 8월에 에피소드1 '말하는 섬'으로 상용화를 시작한 리니지는 당시 말 그대로 말하는 섬밖에 없었다. 군주와 기사, 요정, 그리고 나중에 추가된 마법사까지 모두 말하는 섬에서 시작했다. 이 시절에 캐릭터를 만든 유저들은 클래스가 달라도 고향과 출신 지역이 같았다. 심지어 스승까지도.

요정이 바다 건너 글루디오 북쪽 숲에 터전을 마련하고, 기사가 사막 너머 숨겨진 계곡으로 이사를 간 후에도 초보 유저들은 다시 말하는 섬으로 회귀하는 본능을 발휘했다. 본토를 여행할 수준으로 성장하기 위해 15~20레벨까지 말하는 섬에서도 죽치는 이들도 많았다.

그렇기에 리니지 유저라면 말하는 섬에서의 추억 하나씩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꼭 90년대 후반이 아니더라도 시기만 다를 뿐, 같은 형태의 추억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번에는 작은 섬에서 겪을 수 있었던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해보려 한다.



▲ 말하는 섬의 전체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캐릭터를 생성하면 본격적으로 기본기를 다지는 수련이 시작된다. 여러 캐릭터가 몇 개 있지도 않은 허수아비를 둘러싸며 열심히 칼질을 해댔다. 기본적인 전투 방식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최대 5레벨까지 올릴 수 있었다.

과거에는 허수아비를 치는 게 제법 스트레스였다. 캐릭터를 생성한 이들이 끊임없이 수련장으로 향했는데, 허수아비의 수가 너무나도 적었다. 사람이 몰릴 시간에는 허수아비를 여덟 방향에서 둘러 쌓아 칼질을 반복시켜 두고, 자리를 비우는 일도 잦았다. 허수아비를 같이 때리면 경험치가 8등분 되어 5레벨을 달성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본격적으로 경험치 획득이 감소하는 4레벨부터 5레벨까지의 구간은 나름 지옥이었다. 적중이 낮은 마법사는 허수아비로 5레벨까지 달성하는 게 훨씬 더뎠고, 요정은 화살이 고갈되는 경우도 잦았다. 그래서 4레벨에 중도 하산하여 북섬(말하는 섬의 북쪽 지역)으로 향하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돌 골렘에게 먼지 나게 밟히고 수련장으로 되돌아오는 이들도 많았다.

수련장을 졸업한 이들은 본격적인 모험(이라 쓰고 시련이라 읽는)을 떠나게 된다. 수중에 쥐어진 것이라고는 단검과 가죽 재킷뿐. 돈 한 푼도 없이 꼴랑 무기와 방어구 하나씩이라니... 이 시절의 리니지는 정말 '불편함의 끝판왕'이었다.



▲ 요즘은 허수아비를 때리는 것조차 군터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마을을 기준으로 동서남북 방향으로 나갈 수 있었다. 북쪽에는 돌 골렘, 늑대 인간, 난쟁이가 출몰하고, 남쪽에는 오크 무리의 밭이 있었다. 남쪽 끝에는 장로와 셀로브 같은 무시무시한 몬스터가 돌아다녔기에 대부분의 유저는 북쪽으로 향했다.

유저들은 말하는 섬 북쪽 끝자락을 '북섬'이라 불렀다. 돌 골렘, 늑대 인간이 자주 보이던 곳으로 기억한다. 돌 골렘을 제외하면 선공하는 몬스터가 없었기에 모두 몸빵을 하지 않으려고 남이 치던 것만 골라치며 경험치를 올렸다. 선공을 날리고 도망가는 역할은 대부분 요정과 마법사가 맡았다.

가장 인기 있던 몬스터는 난쟁이와 오크 전사, 늑대 인간이었다. 이들이 떨구는 난쟁이/오크족 아이템이 꽤 쏠쏠했기 때문인데, 언월도와 오크족 사슬 갑옷은 각각 660, 400 아데나에 팔 수 있었다. 장검이나 부츠를 먹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받을 정도였다.





100 아데나 이하로 팔 수 있었던 오크족 투구와 우럭하이 방패도 주요 수입원 중 하나였다. 여러 개를 모아 판도라에 갔다 파는 과정을 반복하는 노가다도 있었을 정도. 우럭하이 방패 1개면 고기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도 중요했다. 고기 20개 가량을 배부르게 먹어야 포만감이 올라 HP가 자연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간혹 오크족 방어구가 몸에 들러붙을 때도 있었다. 그나마 오크족 투구나 고리 갑옷이면 모를까 우럭하이 방패가 들러붙으면 정말 기분이 별로였다. 이걸 떼려면 약 100 아데나 정도 하는 저주 풀기 주문서를 사야 했다. 판도라가 우럭하이 방패를 약 45 아데나 정도에 매입했기에 '우럭'이 몸에 들러붙으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장사였다.

또 오크족과 친하게 지내며 양초는 5분, 등잔은 15분 유지되고, 기름을 부어 유지하는 이른바 '리필' 형태라는 것도 알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이들은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열심히 4,000 아데나 정도를 모아 열심히 '장검 삽니다'를 외쳤다. 보통 캐릭터를 만들고 3일 이내에 장검 한 자루를 마련했다면 '그 계정은 성공한 거야'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 나중에는 저주 아이템을 컬렉션으로 모으는 이들도 있었다


북섬에서 열심히 늑대 인간을 잡아 가죽 부츠를 먹고, 아데나를 열심히 모아 장검을 사는 것까지는 어렵지 않았다. 난쟁이/오크족 방어구를 열심히 모아 판도라를 만나러 가는 재미도 있었다. 마치 첫 아르바이트를 했던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월급봉투를 들고 은행에 가는 기분이랄까.

이렇게 오크족이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할 때쯤, 대부분 더 넓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여 남쪽 셀로브 밭으로 향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부분 기사가 그랬다. 언월도나 장검 한 자루 갖춰놓고 '나 이제 좀 강해졌다'고 느낀 기사들은 무턱대고 남쪽으로 갔다가 영혼까지 탈탈 털린 뒤, '교훈은 경험을 통해 얻는다'는 말을 곱씹으며 북섬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운이 없었던 이들은 어렵게 맞춘 언월도와 장검을 고스란히 떨구고 오기도 했다. 그만큼 셀로브는 공포의 대상이자 말하는 섬 졸업을 위해 넘아야할 산과도 같았다. 기본 이동 속도가 매우 빨라 도망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는데, 15레벨 이하의 캐릭터는 자신을 쫓아오는 순간 죽었다고 생각해야 했다. 촐기 먹을 아데나도 아까운 마당에 귀환 주문서를 들고 다니는 이들도 적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유저들이 짧은 거리는 그냥 걸어 다녔다. 본토 업데이트 후에는 텔레포트로 이동할 수 있었지만, 아데나를 아끼려고 배를 타고 나가기도 했다.)

대체로 '내가 조금 강해졌다'고 느낄 시기가 10레벨 전후다. 주변 사람 혹은 혈맹원(북섬에서 처량하게 사냥하던 군주의 꾐에 넘어가 시작되는 인연이 부지기수)과 협력하여 몬스터를 처치해야 했기에 개인이 얻는 경험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운이 좋아서 혹은 노력에 따라 장비 파밍은 앞서나갈 수 있었어도, 경험치 만큼은 쉽게 올릴 수 없었다. 그래서 13레벨에 이동 및 공격 속도가 매우 빠른 셀로브를 제대로 상대할 수 있는 이들은 손꼽힐 정도로 적었다.



▲ 다리 많은 벌레가 엄청 빠른 속도로 쫓아오는데 어떻게 피하리


레벨과 장비가 좋은 이들은 셀로브를 일부러 마을까지 데려오기도 했다. 주로 마법사들이 자주 그랬다. 물약과 힐로 버티며 마을에 셀로브 2~3마리 정도를 데려오고, 자신은 텔레포트로 도망가버린다. 어그로 대상이 사라진 셀로브는 타겟팅을 바꿔 마을에 있던 무고한 이들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기재를 발휘해 작은 빈집에 들어가 숨는 이들도 있었다. 마우스 클릭만으로 문을 열고 닫을 수 있었기에 순발력이 좋은 이들은 집 안에 숨어 참사를 피해가기도 했다. 간혹 셀로브에 타겟팅이 된 캐릭터가 차마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문을 열어둔 채 죽기도 했다. 좀비 영화에서 민폐 조연 1명이 생존자가 몰려있는 곳에 좀비를 데리고 오는 것과 같은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텔레포트를 배운 요정과 마법사는 셀로브의 학살을 느긋하게 지켜보기도 했다. 자신이 타겟팅 되면 텔레포트 마법으로 도망갈 심산으로 말이다. 도망간다고 텔레포트를 썼는데 제자리나 바로 옆에 떨어지는 바람에 죽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럴 땐 바닥에 누워있던 이들 모두가 비웃기도 했다.



▲ 요즘은 보스 몬스터 아르피어가 셀로브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재밌는 것은 글루디오와 켄트, 윈다우드, 사막 등 여러 대형 업데이트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셀로브는 공포의 대상이라는 타이틀을 잃지 않고, 그 악명을 계속 이어나갔다는 점이다. 이유는 '대마법사 게렝' 때문이다.

원작 스토리상 아덴 최고의 마법사였던 하딘이 케레니스에게 목숨을 잃자, 게렝이 대마법사의 계보를 잇게 된다. 하딘에 못 미치지만 게렝은 백마법사 '조우'를 키워내며, 데포로쥬를 도와 켄라우헬을 물리칠 수 있게 도왔다. 지금은 일선에서 은퇴했고, 말하는 섬 동남쪽에 작은 거처로 이사하여 유저들에게 마법을 알려주며 지내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게렝이 사는 집의 '위치'다. 게렝의 집은 말하는 섬 마을을 기준으로 5시 방향 꽤 깊숙한 곳에 있다. 셀로브 서식지 바로 옆이라 게렝의 집 근처에는 셀로브가 자주 지나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초보 마법사들이 게렝에게 마법을 배우려면 목숨을 걸고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게렝의 집 위치를 두고 유저들 사이에서 재밌는 이야기가 파생되기도 했다. 한 기사 유저가 "게렝은 위험 요소이자 악명 높은 셀로브를 억제하기 위해 저곳에 있는 것이다"며, "군터가 본받아야 할 부분"이라 말한 적이 있었는데, 이에 마법사들은 "무슨 소리냐 던전에 봉인된 바포메트가 제일 위험하다. 제자인 조우가 바포메트를 봉인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르느냐, 근데 스승이라는 놈은 저한테 마법 배우러 가는 제자들을 사지로 몰고 있다"고 받아친 일화는 꽤 유명하다.

비록 은퇴했지만, 조우의 스승이자 대마법사 칭호를 가졌던 자에게 마법을 배우는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재밌는 의견이 이어지면서 공식 홈페이지의 웹툰으로 재구성되기도 했다. 그 시절 마법을 배우려면 저레벨 마법사와 요정, 군주는 목숨을 걸고 남쪽으로 향해야 했던 것이다.



▲ 사실은 허접스러운 마법사라 이런 곳에 숨어 있는 게 아닐까


말하는 섬을 벗어나 본토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서는 졸업 과정인 '군터의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15레벨에 받을 수 있었던 퀘스트인데, 대체로 16~18레벨쯤 돼야 통과할 수 있었다. 특히, 기사 클래스는 20레벨이 넘어도 통과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셀로브'를 처치하여 '발톱'을 얻어야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촐기 하나 사 먹는 게 힘들었던 시절이고, 발톱을 무조건 드랍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무수히 많은 빨갱이가 필요했다. 비용적인 부담이 매우 컸고, 변신을 해서도 안 됐다. 또 아이템 룻팅에 우선권이 있었던 것도 아녀서 간혹 기사도를 저버린 동료 기사가 발톱을 '먹자'하는 일도 빈번했다.

또 셀로브를 1:1로 처치해야만 했고, 다른 유저가 마법이나 활질로 도와주게 되면 퀘스트에 실패한 것으로 간주됐다. 그래서 셀로브와 1:1을 하는 유저가 있다면 "시험중?"이라고 물어보는 것이 나름대로 졸업을 위해 시험을 치르는 자들 간의 예의였다. 간혹 "군터 시험 중"이란 말을 들어도 고의로 셀로브를 1~2대 공격하고 도망가는 이들도 있었다.

군터의 시험에 통과하면 클래스에 따라 붉은 기사의 망토와 붉은 기사의 검, 민첩성 향상 요정의 활(생명력 향상 요정의 활), 마나의 지팡이가 주어졌다. 큰 사람이 되라는 졸업 기념 선물인 셈. 또 선착장에서 본토로 가는 배에 승선할 자격도 주어졌다. 그리고는 글루디오에서 펼쳐질 새로운 모험을 기대하곤 했다.

하지만 또 하나의 난관이 있었으니 바로 해적들이다. 배표를 판매하는 상인(NPC)을 죽이고, 배에 승선하는 입구를 막은 채 통행료를 요구하는 새빨간 아이디가 꽤 많았다. 적게는 500 아데나. 많게는 5,000 아데나까지 뜯어갔는데, 거래 도중 PK가 발생하면 돈은 돈대로 잃고, 바닥에 누운 채 출항하는 배를 쓸쓸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본토행 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모습, 이곳은 곧 전쟁터가 된다


※ 이미지 출처 : 리니지 공식 홈페이지(play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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