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출격 준비 완료, '클리프 블레진스키'가 말하는 '로브레이커즈'

인터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8개 |



'그들만의 리그', '고인 물', '우물 안 개구리'... 국내 게임업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게이머들이 쓰는 단어들이다. 반은 틀렸다. 국내 게임사들이라고 해서 굳이 한국 시장만을 바라보고 게임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리고 끝없이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간혹 그러다 보면 세계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는 국산 게임들도 등장하곤 한다.

반은 맞는 말이'었'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시장에서 국산 게임들은 엄청난 영향력을 보여주며 높은 소득을 올리곤 한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 시장의 메인이라 할 수 있는 서구권 PC, 콘솔 패키지 시장에서는 국산 게임을 찾아보기 정말 힘들다. 간혹 등장하긴 했지만, 이미 닳고 닳은 게임들이 어쩌다 새 플랫폼에 입점한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PS4와 공급 계약을 맺어 콘솔 시장 진출을 노리는 작품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이게 국산 게임인가 싶을 정도의 성공을 거두고 세계 시장에서 극찬받는 작품도 생겼다. 시대가 변했다. 조금 느리게 걸어왔을지언정, 한국 게임들도 본격적으로 세계 시장과 융합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다.

'넥슨'이 퍼블리싱하고 '보스 키 프로덕션'이 개발 중인 '로브레이커즈'도 이와 같은 사례라 할 수 있다. 100% 한국에서 개발한 게임이라곤 할 수 없지만, 아무렴 어떤가. 원래 다 이렇게 시작하는 거다. E3 2017, 2일 차. '트위치' 오픈 부스에서 줄기차게 인터뷰를 하고 온 '클리프 블레진스키'가 한국 기자들 앞에 섰다. 한국에서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긴장 따윈 전혀 없이 자신감에 찬 모습.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은 그가 '로브레이커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 보스 키 프로덕션, 클리프 블레진스키 대표



Q. 현장에 와서 살펴보니 게이머들의 반응이 정말 뜨겁다. 보고 있으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에픽게임즈에서 20년간 팀 스위니 밑에서 일하고, 은퇴하는가 했더니 넥슨이라는 새 친구와 함께 또 일하게 되었다. 사실 어느 정도 압박감도 느끼고 있고 긴장도 되며, 가끔은 힘들다고 느낄 때도 있다. 얼마 전에는 거울을 보다가 흰머리가 난 것을 보았다. 보자마자 뽑아버렸다. 아직은 흰머리가 날 때가 아니다.

E3 현장에 와서 사람들이 게임을 하려고 줄을 선 모습을 보았고, "이거 e스포츠로 해도 괜찮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다. 그분에게는 일단 게임을 재미있게 즐기는 것에 집중하자고 말하고 싶다. 하여튼 6미터나 되는 배너와 긴 대기열, 그리고 팔뚝에 로브레이커즈 상징을 문신으로 새긴 사람까지 보고 나니 감회가 참 새로웠다. 농담이 아니고 20년 넘게 이어진 내 커리어에서도 지금처럼 마법 같은 경험을 한 순간이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커다란 배너로 걸린 게임 중에서 신규 IP는 로브레이커즈밖에 없더라.



▲ 현장 반응이 굉장히 뜨거웠다.


Q. 북미 시장에서 세 번의 테스트를 진행했다. 유저들의 반응은 어떤 편인가?

테스트가 진행될수록 반응이 좋아졌다. 이젠 28일과 30일에 두 번의 테스트를 남겨두고 있다. 보통 콘솔 게임 퍼블리셔들이 흔히 게임 정식 발매 일주일 전에 베타인척하면서 개똥 같은 베타를 진행하는데, 우린 그런 것 없이 게임을 더 좋은 게임으로 만들기 위한 베타를 만들려 한다. 물론 우리가 유저들의 피드백을 전부 다 반영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피드백이 반영되고 있다는 건 느끼실 수 있게 만들고 싶다. 개발자와 유저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히 이뤄진다면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 아닌가?


Q. PS4 버전도 함께 E3에서 선보였다. PC 기반의 게임을 이식하는 과정이 어렵지 않았나?

PS4로는 처음 개발하다 보니 꽤 새로운 경험이었다. 로브레이커즈는 기본적으로 키보드, 마우스 조작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이다 보니 키 매핑과 조작법을 정리하는 과정도 꽤 어려웠고, PS4의 환경에 맞춘 게임으로 다시 만들기까지 상당히 고생했다. 로브레이커즈는 공간을 굉장히 입체적으로 사용하는 게임이고, 복잡한 움직임을 요구하는 게임인데, 이를 패드만으로 가능하게 만들려다 보니 걸리는 요소가 꽤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있다. 우리는 듀얼쇼크4에 맞춰 골때리게 잘 맞는 조작법을 구축해냈다.

더불어 이식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의외의 소득도 있었다. PS4 환경에서 완벽하게 60프레임 구동이 가능하도록 최적화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PC에서 자연스럽게 144프레임으로 돌아갈 정도가 되어버렸다.



▲ PS4버전의 대기열도 굉장히 길었다.


Q. 다른 슈터 게임들과 비교할 때 '로브레이커즈'가 갖는 매력을 말하자면 뭘 말하고 싶은가?

'로브레이커즈'의 핵심은 중력을 거스르는 지역들과 각 캐릭터가 보유한 고유의 이동 스킬이다. 총을 뒤로 발사하는 기능도 괜히 넣은 것이 아니다. '로브레이커즈'의 게임 구도는 단순히 먼저 쏘는 쪽이 이기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도망치고, 쫓으며, 때로는 목표를 향해 적과 아군이 함께 달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아마 다른 슈터들과 비교하면 '움직임'의 측면에서 상당히 다른 점들이 느껴질 것이다.


Q. 게임 출시 일자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생각은 해 두었는데 게임에 포함하지 못해 아쉬운 부분은 없는가?

요즘은 게임이 인기가 좋으면 개발이 끝이 나질 않더라(웃음). 사실 게임 서비스와 개발을 함께 이어가는 "Game as a service"를 딱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인기가 이어진다면 그간 생각하고 있던 부분들도 꾸준히 개발해나갈 예정이다. 지금도 진영별로 9종류의 캐릭터를 만들어 두었는데, 이미 열 번째 캐릭터의 윤곽이 잡혔다. 인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앞으로 더 많은 캐릭터와 전장이 나올 테고... 러다 보면 언젠가는 밸런스가 뭉개지게 될 텐데, 그 시점에 이르러 밸런스 패치를 고민할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오래가기를 바랄 뿐이다.



▲ 게임은 꾸준히 업데이트가 이뤄질 예정


Q. '클리프 블레진스키'라는 이름값에 넥슨이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넥슨과 손을 잡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사실 은퇴했었다. 그런데 너무 심심해서 은퇴를 뒤집어버렸다. 그 후, 몇몇 대형 퍼블리셔들을 알아보면서 개발자 친구들과 이야기해 봤는데, 그 친구들이 그쪽은 절대 가지 말라고 하더라. 그러던 와중 넥슨에서 접촉이 왔다. 사실 전에 넥슨 게임을 해본 적은 없었지만, 진짜로 나와 함께 일하고 싶다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넥슨이라고 완벽한 퍼블리셔는 아닐 거다. 하지만 E3 2017에서 미친 듯이 큰 배너를 걸어 주고, SNS 타임라인에서도 꾸준히 로브레이커즈가 회자되는 것을 보면 넥슨이 힘을 써준 덕에 지금 로브레이커즈가 이 정도로 알려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Q. FPS에 흔히 등장하는 '저격수'가 등장하지 않더라. 저격수 캐릭터를 따로 마련하지 않은 이유가 있는가?

어떤 캐릭터나 기능을 게임에 넣는 이유가 "다른 게임에 있기 때문에"라면 그건 그냥 양산형 게임을 만드는 거나 다를 바가 없다. 이건 내가 지금까지 유지해온 일종의 좌우명이다. '오버워치'를 보면 기계 공학하는 드워프, 예쁜이 힐러, 활 쏘는 친구 등 클리셰에 결부된 캐릭터가 여럿 보인다. 어떻게 보면 이런 캐릭터 클리셰를 잘 다루는 것이 성공의 비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이런 '클리셰'를 퍽 싫어하는 편이다. 솔직히 말해서 저격수를 넣으려면 넣을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난 게임을 하다가 저격당하면 기분 다 잡치고 다른 게임이나 하러 가고 싶더라. 물론 뭐 '저격총'이라는 아이템 자체를 극도로 싫어한다거나, 저격수 캐릭터를 아예 배제한다는 뜻은 아니다. 요컨대 이런 거다.

우리는 저격총을 사용하는 캐릭터 컨셉을 하나 짜본 적이 있다. 하지만 총알이 적을 타격하는 것이 아니고, 총을 쏘는 순간 캐릭터가 탄착지로 순간 이동해 근접 공격으로 적을 썰어버리는 거다. 우리는 늘 이런 식이다. 뭔가 정석에서는 한걸음 비켜간다고 해야 할까? 근데 그러고 나면 다른 개발사 게임에 비슷한 캐릭터가 하나 나오곤 하더라.



▲ 단순한 저격수는 고려한 바가 없다


Q. PC 버전과 PS4 버전 중 어떤 버전이 더 인기를 끌 것이라 예상하는가?

로켓리그와 같이 다양한 플랫폼에 런칭해 많은 유저에게 인상을 심어주고 싶다. 사실 내가 더 좋아하는 건 PC 버전이다. 좀 단순한 이유인데, 게임을 보다 빡빡하게 하고 싶으면 PC버전이 낫고, 조금 느슨하게 하고 싶으면 PS4 버전이 낫다. 사실 뭐 어느 쪽이 더 인기를 끌지는 잘 모르겠다. XBOX 친구들에게 조금 미안하다. XBOX 버전은 계획에 없으니까.


Q. 비즈니스 모델을 풀프라이스 게임으로 잡았다. 그럼 게임 내 과금제는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는가?

쉽게 설명하자면 오버워치와 유사하다. 게임 내에서 상자를 까고, 이미 가진 아이템은 화폐로 전환되고, 레벨업을 할 때마다 상자를 받는 구조다. 간혹 'Pay 2 Skin'이라는 농담이 돌지만 뭐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다. 우리 게임 속 과금 요소들은 전부 캐릭터의 성능과는 무관한 코스메틱 요소이니 말이다.

하지만 스킨을 그대로 돈을 주고 살 수는 없다. 우리는 스킨만 사고 게임을 하지 않게 되는 것보다 상자 하나하나를 여는 과정에서 플레이어의 카타르시스가 폭발하게 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어려웠던 점도 있다. 기본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분명 캐릭터를 멋지게 만들어야 하는데, 너무 멋지게 만들면 또 안 됐다. 그러면 스킨을 쓸 의미가 없어지니 말이다.

뭐 과금 시스템은 게임사마다 다르고, 각자 정책이 다르긴 하다. 다만, 우리는 과금 요소가 게이머로 하여금 좋은 경험을 하는 수단이 되길 바랄 뿐, 라스베이거스에서 있는 대로 돈을 때려 붓고 숙취에 절어 나오는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다.



▲ 개성있게 잘 나온 캐릭터들


Q. 이번 E3에 유독 FPS 게임이 많이 나왔다. WW2나 배틀프론트2, 퀘이크 챔피언스와 울펜슈타인까지 말이다. 보면서 어떤 기분이 들었나?

솔직히 FPS 프렌차이즈는 늘 비슷한 모습이지만, 이번 콜오브듀티 시리즈에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다시 2차 대전으로 돌아가다니, 이건 대박이다 진짜. 하지만 딱히 경쟁의식이 들지는 않았다. 로브레이커즈는 다른 게임들과는 약간 지향하는 바가 다르고, 게임 내적으로도 꽤 다른 구조를 하고 있다. '오버워치'와 '로브레이커즈'를 두고 말하는 분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린 오버워치와 우리의 관계를 코카콜라와 펩시 콜라 정도의 관계로 생각하고 있다. 딱히 경쟁이라 하지 않아도 골고루 성공할 수 있다고 봐야 할까?


Q. 지금까지 세 가지 게임 모드가 등장했는데, 더 단순한 데스매치같은 게임 모드는 추가될 여지가 없나?

지금 게임 디자인이 기본적으로 팀 게임을 기본으로 두고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데스매치와 같은 모드에서는 캐릭터 선택의 편중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만약 데스매치를 넣는다고 해도 우리가 늘 하듯 모드를 좀 더 꼬아서 '어쌔신 대 타이탄'같은 모드를 만들지 않을까 싶다. 물론 사람을 쏘는 것은 늘 재미있는 일이지만 말이다.



▲ 사람을 쏘는 건(...) 늘 재밌다


P.S 인터뷰를 끝내며 클리프 블레진스키가 남긴 말

작년 11월에 서울에 있었다. 당시 넥슨에서 PC방에 데려다 줘서 간 적이 있는데, 너무나 좋았다. 담배 연기로 가득 찬 역겨운 바와 같은 느낌도 아닌데 왜 미국에는 이런 매장이 없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영화관이 그렇지 않나? 솔직히 우리는 집에서 보고자 하면 굳이 영화관을 갈 필요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영화관에서는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뿐만 아니라 특별한 사회적 경험을 함께할 수 있지 않나? 돈을 내고 함께 게임을 즐기고, 함께 먹고 즐기는 문화는 참 천재적인 비즈니스 같은데 왜 미국에서는 성공 못 했는지 궁금하다. 당시 방문한 PC방에는 오버워치가 가득 차 있었는데, 다음에 갈 때는 로브레이커즈를 즐기는 게이머들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웃음)

아 그리고 내가 이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서울 남산을 배경으로 하는 맵도 곧 공개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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