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차이나조이에서 느낀 '한한령(限韓令)'의 실체

기획기사 | 윤홍만 기자 | 댓글: 22개 |



사드와 한한령(限韓令). 올해 중국과 한국을 관통하는 대표적인 키워드다. 한국이 사드를 배치하자 중국이 이에 항의하는 목적으로 한국 수입품에 통상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대 중국 문화 콘텐츠 수출의 핵심인 게임에까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게임 업계에 대표적인 한한령 사례는 바로 판호 발급 중지다. 중국에 게임, 영상 등 문화 콘텐츠를 출시하려면 판호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사드 배치 이후 지금까지 한국 모바일 게임의 판호 발급 사례는 전무하다.

거기에 판호 발급 중단 때문인지 중국 퍼블리셔 측으로부터 갑작스럽게 계약을 취소하는 사례도 빈번히 발생하는 상황.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중국 현지인들이 느끼는 한한령의 영향과 한국 모바일 게임 퍼블리싱 취소와 관련해 지난 차이나조이 현장에서 만든 중국 퍼블리셔 관계자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해봤다.



■ 한한령(限韓令), 허상인가 실체인가

우선 가장 먼저 알아본 건 바로 한한령에 대한 실체였다. 과연 한한령이란 존재하는 걸까. 이런 기자에 물음에 중국 퍼블리싱 관계자들은 모두 입을 모아 답했다.

"한한령은 있다. 하지만 실체는 없다. 일종의 분위기다. 한국도 알고 있겠지만, 중국에서 한국 기업들이 불이익을 받는 사례는 알고 있을 거다. 또, 한국 모델이나 연예인들의 방송이 금지되는 것도 있고. 이런 분위기가 바로 한한령이다. 하지만 게임은 잘 모르겠다. 판호 발급이 안 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최근 분위기로 봐서는 점차 풀려가는 듯하다"



▲ 한한령에 대해 상세히 말해준 COG의 Kevin Cheng 부사장

요는 중국 퍼블리셔가 말하길 한한령이란 게임보다는 한국 연예인과 관련된 방송 콘텐츠가 주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공문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건 바로 저 분위기다. 중국 정부에서 기업 측에 "한국 게임들 퍼블리싱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속에 '한국 게임들 퍼블리싱 하지 마'라는 의도가 깔린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 분위기가 풀려간다고 했지만, 여전히 한국 모바일 게임의 판호 발급은 0이어서 분위기가 정말 풀려가는 것인지도 의문이 생겼다.

실제로 지난 차이나조이에서 한국 공동관은 운영 측으로부터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KOREA'라는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받았다. 그들의 말대로 정말 풀려가는 분위기였다면 'KOREA'를 빼달라고 요청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대만조차 'TAIWAN'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한 걸 보니 한한령과 관련해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는 느낌은 계속됐다.



▲ 'KOREA'를 빼달라는 요청은 한한령이 분위기라는 말과는 상충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그런 민감한 주제를 무턱대고 말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다소 에둘러 물어봤다. 한한령이 그저 분위기일 뿐이면, 매력적인 한국 모바일 게임이 있다면 퍼블리싱을 할 거냐는 물음.

"한국 게임들은 굉장히 그래픽이 좋고 방대한 세계관을 구축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좋다. 그렇지만 중국 유저들 성향에 맞지는 않는다. 단적으로 말해 중국 유저들은 투자(과금)한 만큼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걸 좋아한다. 한국 게임이 어떠냐고 물었는데, 좋고 나쁘고를 떠나 게임의 기획에서부터 중국 유저의 성향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건 한국 게임만의 사례가 아니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모바일 게임을 텐센트가 퍼블리싱 했는데 중국에선 망했다.

그리고 한한령 때문에 퍼블리싱을 안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기업이고, 우리의 목표는 돈을 버는 거다. 정말 돈을 벌 수 있는 게임이 있다면 기업들이 나서서 중국 정부를 설득해 판호를 받고 퍼블리싱할 거다"




▲ 텐센트는 '리니지2 레볼루션' 판호 발급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결국, 판호를 떠나 이제는 중국 퍼블리셔가 한국 모바일 게임에 흥미를 잃었다는 의미였다. 예상했기에 놀랍지는 않았다. 물론, 그들이 말한 것처럼 한한령이 분위기일 뿐이고 정말 대박날 게임이라면 기업들이 나서서 정부를 설득하겠다는 얘기는 제쳐두더라도 퍼블리셔가 한국 모바일 게임을 수입하지 않는 이유는 확실해 보였다. 그들에게 있어선 한국 모바일 게임이 더는 매력적이지 않은 게 이유였다.

한편, 그러던 중 퍼블리싱 관계자들로부터 흥미로운 얘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한한령과 판호 발급 중지에도 불구하고 한국 개발사가 중국에서 돈을 쓸어가고 있다는 거였다. 이런 분위기인데 돈을 쓸어간다니 무슨 말인가 싶어 재차 묻자 그들은 '크로스파이어', '뮤', '라그나로크', '열혈강호', '미르의 전설2' 등을 예로 들며 "이렇게 많은 게임들로 돈을 쓸어가는데 한한령으로 한국 개발사가 죽어가고 있다는 게 말이 되냐"고 반문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들의 이런 의견은 분명 사실이었다. 스마일게이트는 중국 국민게임이 된 '크로스파이어'로 인해 한국 최대의 게임 개발사로 성장할 수 있었고, 웹젠 역시 '뮤' IP가 있었기에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 분명 중국에서 대박을 내고 있는 게임들도 있지만...

하지만 그런 개발사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대형 개발사들이야 한한령으로 인해 판호 발급이 중지된다고 해도 당분간 버틸 수 있는 자본이 있다. 그리고 IP를 활용한 중국 게임들은 판호 발급에 아무런 영향도 없는 만큼, 직접 개발을 하지 않아도 지금까지처럼 라이선스 비용으로도 수익을 낼 수 있다. 문제는 그렇지 못한 중소개발사다. 계약할 것처럼 말해 시간과 돈을 들여 게임을 개발하던 그들은 갑작스러운 퍼블리싱 중단, 판호 발급 중단에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문제는 이런 계약 취소만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중국 퍼블리셔가 개발에 들인 비용에 비해 너무 낮은 계약금을 부르는 문제도 있었다.

중국 시장이라는 우위에 있기 때문일까. 기자와 만난 국내 개발자 중에서도 "10억을 들여 게임을 개발했는데 중국 퍼블리셔가 계약금으로 2~3억 정도 부르더라. 중국이란 시장을 생각하면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할 수밖에 없었다"며 분통을 터트린 경우도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들도 나름 인정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 중국은 한국의 최대 게임 수출국이다

"그렇게 볼 수도 있는데 우리라고 엄청 잘되는 건 아니다. 중국에서 퍼블리셔 1위는 텐센트이고 2위는 넷이즈다. 이 둘은 엄청난 수익을 내고 있다. 그리고 그 뒤로 온갖 퍼블리셔가 살아남기 위해 피 말리는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는 합리적으로 계약금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또, 정말 대박 타이틀이라면 그에 합당한 계약금을 제시하기도 한다"

짧지만 여러 퍼블리싱 관계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의견을 하나로 정리하자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졌다. 그들에게 있어서 한한령은 실체 없는 분위기이며, 결국 한국 모바일 게임에 대한 흥미가 없기에 퍼블리싱에 나서지 않는다는 거였다.

하지만, 끝내 들을 수 없는 대답도 있었다. 그저 분위기일 뿐이며 그럴듯한 한국 모바일 게임이 없어서 퍼블리싱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얘기까지는 일견 납득이 된다. 그렇다면 어째서 판호 발급조차 막는 것일까. 아쉽게도 이 물음에 대해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무슨 이유가 있지 않겠냐며 대답을 회피했다.



■ 두려운 허상, 한한령(限韓令)

실체가 있는 것만이 두려움을 주진 않는다. 실체가 없어도 허상만으로도 사람들은 불안감에 휩싸이고 두려움을 갖는다. 한한령도 마찬가지다. 실체가 없지만 두려운 허상이다. 그래서일까. 중국 퍼블리싱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한한령 때문이 아니라 한국 모바일 게임 중 매력적인 게 없어서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파고들면 그 안에는 판호 발급 중지라는, 퍼블리셔가 관여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 판호 발급 중지를 놓고 보자면 한국 모바일 게임이 중국 시장에 먹히지 않아서라는 그들의 말은 신빙성을 잃는다. 판호를 발급하는데 게임이 중국 시장에 통할지 안 통할지를 판단하진 않을 테니까.

한편, 한한령과 더불어 판호 발급 중단을 마냥 비관적으로 볼 필요도 없다는 게 사실이다. 한한령 최우선 순위랄 수 있는 한류 스타들이 등장하는 광고와 한류 드라마들이 방송을 재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게임 쪽으로도 텐센트가 '리니지2 레볼루션'을 올해 4분기 서비스하겠다고 밝히며 판호 발급을 확신하고 있다.



▲ '검은사막' 역시 판호 발급 대기 중이지만 대대적으로 홍보할 정도로 판호 발급은 낙관적이다

그렇기에 지금 현시점에서 잠시 한숨 돌리고 중국 진출을 위한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퍼블리셔 관계자들 역시 판호 발급이 문제가 아닌,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들라고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중국에는 '문을 걸어 잠그고 뭘 만들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한국 개발사들에게도 이 말을 해주고 싶은데, 게임을 만들기에 앞서 중국 시장을 염두에 뒀다면 우선 중국 시장을 조사하라고 권하고 싶다. 거기에 중국 게임 시장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걸 한국 개발자들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어떤 경우에는 계약에 앞서 찾아가니 대뜸 계약서를 들이미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이 모든 게 '이 정도 게임이면 당연히 중국에서 먼저 계약하겠지'라는 생각에서 그런 걸 텐데 아니다. 시장이 변했고, 우리 역시 꼼꼼히 조사한다. 다만, 아직 한국 개발사들은 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국과 중국 업계 관계자들 모두 판호 발급 중단은 조만간 풀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니 지금 이 시기를 두려움에 떨면서 보내지 말고 중국 퍼블리싱 관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들이 원하는 게임이 뭔지, 조사하는 기간으로 삼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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