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하다가 나도 미칠 것 같아! '헬블레이드'

리뷰 | 유희은 기자 | 댓글: 35개 |




⊙개발사: 닌자 씨어리 ⊙장르: 액션 어드벤쳐 ⊙플랫폼: PC, PS4 ⊙발매일: 2017년 8월 8일

인벤에 갓 입사해 처음으로 작성한 기사가 바로 '헬블레이드: 세누아의 희생(Hellblade: Senua's Sacrifice)의 프리뷰였습니다. 찬 바람이 부는 3월, 기자 스스로 '헬블레이드'의 '세누아'가 된 상태라며 정식 발매를 기다리겠다고 썼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가만있어도 땀이 흐르는 8월이 되었습니다.

'헬블레이드'는 예정대로 2017년에 출시되었습니다. 기존의 헬블레이드 개발 영상을 꾸준히 봐왔던 사람으로서 트레일러에 새롭게 추가된 장면들이 반갑기 그지없었죠. 우선 각설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력한 액션 전투를 기대하고 플레이를 하면 '별로….' 라는 생각이 듭니다. 'DMC: 데빌 메이 크라이'를 만든 '닌자 씨어리'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였죠. 하지만 그 액션을 뛰어넘는 그래픽과 연출이 말 그대로 '예술'이었습니다.

▲ '헬블레이드: 세누아의 희생' 최종 트레일러

트레일러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세누아의 얼굴은 그 어떤 게임의 주인공보다도 현실적입니다. 특히 인 게임에서 세누아의 외형은 게임이 아닌 영화를 보는 것 같이 자연스럽게 그리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어있죠. 간혹 '헬블레이드'에 대한 정보를 잘 모르고 플레이를 시작했던 사람들은, 이 그래픽이 스무 명 남짓한 개발사에서 만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놀라곤 합니다. 소규모 인원으로 이 정도 퀄리티를 제작할 수 있다니….

단순히 외형을 완벽하게 묘사한 것뿐만 아니라 '닌자 씨어리'는 세누아의 감정선을 표현하기 위해 100개가 넘는 표정을 하나하나 스캔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게임 내 아주 잠시 스쳐 지나가는 세누아의 뒷모습도 이렇게나 자세하게 구현했습니다.



▲ 스쳐 가는 장면의 잔머리까지 디테일이..



▲ "활짝 웃어보세용~ 김치"



▲ 3D 모션 캡쳐 기술을 이용하여 움직임을 부드럽게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하려 들뜬 마음으로 '헬블레이드'를 켜면 '경고' 문구가 뜹니다.

본 게임은 정신병에 대한 묘사를 포함합니다. 이 묘사와 관련하여 정신병 경험자와 정신의학 전문가의 자문을 받았습니다. 본인이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 포함하여, 이 묘사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헬블레이드'를 처음 접할 때 어떤 점이 가장 인상 깊으셨나요? 저의 경우엔 '정신질환'을 가진 여전사가 주인공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쉽게 볼 수 없는 주제라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정신질환'이라는 소재가 어떻게 보면 은연중에 금기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요? 다루기 굉장히 민감한 소재이기도 하고요.

게임 진행의 거의 모든 것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정신질환'은 이 게임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만큼 플레이어의 몰입도와 세누아의 심리 변화를 더욱 정교하게 표현하기 위해 캠브리지 대학 폴 플래처(Paul Fletcher) 건강 신경 담당 교수의 자문과 실제 정신 질환을 앓았던 사람들의 경험담을 참고하여 게임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 세누아의 행동에 대해 의학적으로 설명하는 폴 플래처 교수



■ 말 그대로 미친듯한 연출,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스토리

'헬블레이드'는 북유럽 신화를 배경으로 영국의 하트퍼드셔 주의 애시웰에서 발견된 켈트 여신인 '세누나'를 모티브로 삼아 만든 여성 캐릭터 '세누아'가 죽은 남편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세누아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너 '헬'에 도착하며 시작됩니다. 게임은 세누아가 흠모하던 딜리온을 다시 살려내기 위해 죽은 자를 살려내는 권능을 가졌다고 하는 여신 헬라를 만나러 가는 동안의 여정을 다루죠.

어쩐지 LoL의 인간 사냥꾼 '니달리'가 생각나기도 하는 외형의 세누아는 게임 내내 끊임없는 환각과 환청을 경험합니다. 알 수 없는 주변의 소리와 일그러지는 배경, 플레이 당시엔 화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워 멀미가 나기도 했습니다. FOV(시야각) 값을 조절할 수 없어 이대로 참고 플레이 해야하나 싶다가 리뷰를 쓰며 돌아보니 닌자 씨어리는 정말 내가 '세누아'가 되게 하려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어쨌든 초반 스토리는 지루한 편입니다. 아래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천편일률적인 퍼즐 플레이와 무더기 전투, '나 진짜 어드벤쳐 게임이야!'라고 강조라도 하듯 하염없이 걷는 장면이 꽤 등장하거든요. 삭막하고 기괴한 배경의 길을 걷다 보면 정말 '헬'에서 걷고있는 비장함이 느껴지긴 합니다. 스킵 기능 없이 계속 걸어나가기엔 지나치게 길긴 하지만요.



▲ 세누아의 여정, 아직 갈 길이 머네요.

플레이 도중 신박했던 점은 세누아가 전투 중 사망하면 오른팔에 어둠의 싹이 올라오는데 이 어둠의 싹이 머리를 뒤덮으면 무려 게임이 초기화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게임이 초기화되면 스킵 조차 되지 않는 이 모든 씬을 다시 보며 플레이해야 한다니…. 이것이야말로 한국인에게 걸맞은 진정한 공포 게임(?)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 내 오른손에 잠재되어 있던 흑염룡이..



▲ 전투 시, 최대한 죽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플레이 타임은 7~9시간 정도로 타 게임에 비해 짧은 편이지만, 스킵이 되지 않는 스토리상 꽤 지루한 장면도 있어 그다지 짧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 그리고 엔딩에 대해 살짝 긔띔 정도만 하자면, 저처럼 마지막까지 중간중간 지루함을 느꼈을 플레이어들이 소름돋을만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연출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그래픽은 말할 것도 없고 사운드, 연기, 심지어 카메라의 세밀한 동선까지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요 근래 플레이 해본 작품 중에 가장 획기적이고 뛰어난 결말이었다는 점은 강조하고 싶네요. 힌트를 한 가지 드리자면 제목이 '헬블레이드 - 세누아의 희생'이라는 것.



■ 환청, '헬블레이드'를 ASMR 게임이라 불리게 한 이유

'헬블레이드'의 그래픽은 이미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지만,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오히려 그래픽보다 사운드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풀 3D 바이노럴 사운드로 사방에서 들리는 환청과 여러 가지 효과음들이 특히 엄청나죠.

게임 초반부에서는 너무 여기저기서 자꾸 말을 걸어, 이것 때문에 내가 정신병에 걸릴 정도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마디 속삭이는 수준이 아니라, 저마다 계속해서 '훈수'를 두니 '아! 이거 너무 꺼버리고 싶다!'라는 생각마저 들었으니까요. 게임 방송을 하는 스트리머들의 고통이 이런 것일까요. 그렇지만 어쨌든 돌이켜 보니 '닌자 씨어리'가 게임을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닌자 씨어리는 개발 영상 내내 플레이어가 세누아 '그 자체'가 되기를 원한다고 했었거든요.

▲ 게임 시작부터 본격적인 환청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 게임 내에서 세누아에 대해 설명을 해주던 그 목소리의 주인공, 'CHIPO CHUNG'



▲ 소름 돋는 연기력을 보여준 주인공 세누아역의 'Melina Juergens'



■ 퍼즐 액션 어드벤쳐 그리고 치명적 단점

서문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헬블레이드의 개발사인 '닌자 씨어리'는 DmC: 데빌 메이 크라이와 헤븐리 소드를 제작한 인원은 적지만 내실이 탄탄한 액션 개발팀입니다. 게임이 나오기 전부터 저뿐만이 아닌 많은 액션 게임 마니아들이 헬블레이드의 전투 시스템을 상당히 기대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헬블레이드'의 제어 기능

우선, 기본적으로 헬블레이드의 전투는 기존의 액션 어드벤쳐 게임들과 비슷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격, 막기, 회피 등의 기본 공격을 필두로 발차기 등의 근접 기술이 주가 됩니다.

'데밀 메이 크라이'나 '포 아너'와 같이 콤보 공격을 꽂아 넣어 적에게 일격을 날릴 생각을 하셨다면 아쉽게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엔 피지컬이 부족해 매번 콤보 실수를 하곤 하는데 헬블레이드에서는 콤보를 외워서 플레이하기보다는 플레이어가 전략적으로 전투 모션을 선택할 수 있도록 순간적인 판단을 요구하기 때문에 타 액션 게임에 비해서는 쉽게 클리어할 수 있었습니다.






▲ 전투 장면

강 공격, 약 공격, 막기, 회피 커맨드 등 조작이 매우 간단한 공격 모션에 비해 타격감은 괜찮은 편입니다. 여러 명의 적을 상대하고 있으면 특히 긴장감은 배가 됩니다. 다만 후반으로 갈수록 체력만 높은 비슷한 느낌의 적을 계속해서 만나는 것은 지루했고 게임 내 UI가 없어서 깔끔한 맛은 있으나 적의 체력이나 내 체력을 알 수 없는 점은 답답했습니다. 그저 내 시야가 흔들리고 피가 튀기는 것으로 '곧 죽겠구나….'라고 생각 정도 할 수 있는 수준이죠.



▲ UI 없이 화면이 전투 장면으로만 꽉 차있습니다.

전투 이외에는 특이점은 생각 보다 풀어야 할 퍼즐이 많다는 것. 난이도는 높지 않지만 계속해서 지형을 이용해 풀어야 한다는 점이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게임 내에는 UI가 없는데, 평소 게임을 할 때 맵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전형적인 길치 플레이어인 저에게는 많이 어지럽고 힘들었습니다.

전투는 지루함과 긴장감을 번갈아 느끼면서 플레이했지만, 솔직히 퍼즐을 푸는 구간은 내내 지루했습니다. 게다가 퍼즐을 풀려면 계속 걸어 다녀야 하는데 세누아의 이동속도가 매우 느려 답답한 부분이 있고요. 뭐, 사실 험난한 모험을 하는 여전사에게 계속 뛰어다니라고 하는 건 좀 미안한 일이긴 하지만요.






▲ 기괴한 느낌의 퍼즐들이 계속해서 등장

그렇지만 누군가 '이 게임에서 무엇이 가장 별로였느냐'고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자막'이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초반부는 비교적 괜찮은 편이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자막의 가독성이 심각하게 좋지 않거든요. 자막 전체 대사가 한 번에 나오기도 하고, 무엇보다 '싱크'가 맞지 않습니다.

특히 플레이어의 감정이 가장 극대화되는 중요한 엔딩 부분 에서요. 물론 게임을 20여 개국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나친 오역과 의역, 맞지 않는 싱크가 한껏 공들인 티가 나는 결말에 누를 끼치는 점은 많이 아쉽습니다.



▲ 자막의 가독성이..

'헬블레이드 - 세누아의 희생'에 대해 재미가 있고 없고에 대한 의견은 확실히 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취향을 많이 타는 게임이거든요.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렇게 독특한 게임은 오랜만이라는 것. 사실 그간 어떻게 보면 모두 비슷한 양산형 느낌의 게임에 많이 지쳐왔던 터라 중간중간 지루한 부분이 확실하게 있음에도 재미있게 플레이했습니다.

현재 메타크리틱에서 '헬블레이드'의 매체 점수는 83점 유저 점수는 8.1점으로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는 추세입니다. 여러 가지 아쉬운 점이 있지만 대중의 높은 평가만큼 깊은 여운이 남는 게임이었습니다. 이제 '세누아'는 제 손에서 떠났으니 다른 플레이어가 그녀의 길잡이가 되어주길 바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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