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C2017] 화이트데이의 교훈 "더 가치 있는 것에 매달려라"

게임뉴스 | 이현수 기자 | 댓글: 35개 |


▲ 가치온소프트 이규호 대표

[인벤게임컨퍼런스(IGC) 발표자 소개] 손노리 신규 게임개발 팀장이었던 이규호 대표는 어스토니시아 온라인 개발에 참여했으며, 가치온소프트를 설립한 후에는 화이트데이 모바일과 PS4 버전을 개발했다.

포스트모템(Postmortem). 포스트모템이란 부검(剖檢), 즉 사후 해부를 통해 사망 원인을 살펴본다는 뜻이다. 어감이 묘하게 부정적이지만, 사실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다. 프로젝트 이후 개발 과정을 되돌아보며 어떤 점이 좋았는지,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를 돌아보고 의견을 나누며 다음 프로젝트에서 자양분 삼을 교훈을 얻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PC 게임 '화이트데이'를 모바일로 리메이크한 가치온소프트의 이규호 대표는 리메이크를 결심한 계기부터 개발과정 등을 청중들에게 풀어놓았다.



■ 강연주제: '화이트데이' 개발 포스트모템

⊙ 태백의 폐교에서 시작한 화이트데이

화이트데이 시나리오는 태백에 있는 폐교에서 탄생했다. 이규호 대표는 형광등도 들어오지 않는 폐교에서 달랑 백열등 하나에 의지해 시나리오를 썼다. 주변에 버려져있던 스티로폼을 줏어다가 쌓으며 구조를 디자인했다. 한 달 보름 동안 폐교에서 시나리오를 쓰면서 화이트데이 개발에 대한 꿈을 키웠다.

화이트데이를 모바일로 리메이크함에 있어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컨트롤러였다. 개발진은 수도 없이 컨트롤 방식을 바꿔가며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러나 매번 모두를 만족하게 하는 컨트롤 방식을 찾을 수는 없었다.

게임 방식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한 어려움도 존재했다. 공격할 수 없는 적으로부터 도망쳐야 하는 게임이기에 구역을 이동할 때 로딩이 발생하면 게임의 몰입감을 떨어트릴 위험이 있었다. 그러므로 로딩이 없이 구역이 이어져야 했는데, 최적화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몇 번이나 처음부터 개발을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 폐교의 작업 공간


⊙ "우리는 정말 대형 퍼블리셔의 마음을 잘 만져주는 개발사구나"

이러한 어려움과 싸우며 우여곡절 끝에 가치오노프트는 퍼블리셔와 계약 했다. 당시 퍼블리셔는 RPG를 만들기를 원했다. 하지만 개발진에는 개발 인력도 부족했거니와 RPG 개발 경험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개발진은 자신들이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이야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야기 중심의 게임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엔딩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제한된 콘텐츠와 확실하지 않은 BM으로 이어졌다. 퍼블리셔가 좋아할 수 없는 요소들이었다.

개발진은 이를 해결하고자 세 개의 게임 모드를 추가했다. 부적을 날리며 귀신들을 성불시키는 슈터에 가까운 게임성이었다. 그들은 환호했다. "우리는 정말 대형 퍼블리셔의 마음을 잘 만져주는 개발사구나"라고 생각했다. 챕터별로 과금하는 수익 모델과 다양한 귀신 수집 콘텐츠, 아이템들로 수익모델을 꾸렸다.

유명 호러 IP에 슈팅을 가미한 '최강액션로멘스호러어드벤처'가 될 것만 같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러한 행동은 스스로 '화이트데이'의 독자성을 무너트리는 행위였다. 화이트데이 팬카페 사용자들이 요구보다 수익모델에 더 집중했다. 그런데 그때는 사용자들의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말 재미있는 새로운 '화이트데이'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버전을 본 이원술 대표가 이렇게 말했다. "이게 뭐야. 이게 화이트데이야?"



▲ 2012 버전은 완전히 폐기된다.


⊙ 개발 기조부터 시작해 모든 기반을 처음으로 돌리기로 했다.

그렇게 2012년 개발 버전을 완전히 폐기했다. 처음으로 돌아갔다. 화이트데이 원작을 만들 때 손노리는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공포게임'을 만들고자 했다. '이길 수 없는 존재'를 내세운 동양적인 호러 게임을 내고 싶다는 포부가 있었다.

개발진도 그 선상에서 다시 개발을 진행했다. 우선 국악작곡가 황병기를 만나'미궁'을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그리고 원작에서 존재했던 아쉬움, 엔딩을 극복하고자 만화가 윤태호에게 도움을 청했다. 윤태호 작가는 엔딩을 재해석하여 7개의 멀티엔딩을 만들어냈다.

14년 전과 같은 성우에게 목소리를 받았고, 2,000컷이 넘는 모션 캡쳐를 진행했다. 현장감 넘치는 소리를 위해서 고창에 있는 폐교서 효과음을 따기 시작했다.

완전히 초심으로 돌아가 사용자들의 요구에 들어맞도록 '무서운 게임'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진행했다. 리소스가 차곡차곡 모였다. 하지만 모바일 디바이스에서 모은 리소스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2015년 화이트데이 첫 간담회 때 공개된 황병기 선생의 인터뷰 영상]


⊙ 작은 화면에서...

기본적으로 '화이트데이'는 로맨스 호러를 표방한다. 우선 폴리곤 700개에 불과했던 원작 여성 캐릭터들을 1,500개로 늘려 로맨스 감정을 조금이나마 동할 수 있게 비주얼 부분을 업그레이드했다.

문제는 작은 화면에서 어떻게 공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느냐였다. 개발진은 비주얼적인 측면에서의 해결책보다는 청각에 집중했다. 현장감 있는 소리로 공포를 전달하기로 한 것이다. 고창에 있는 폐교에서의 녹음 작업은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녹음은 쉽지 않았다. 낮에는 마을의 소음이 있었고, 밤에는 우레와 같은 벌레 소리가 녹음을 가로막았다. 겨우겨우 온종일 대기하면서 소리를 하나씩 녹음해야 했다.

모바일 디바이스에서 조작법을 구현하는 것도 큰 장애물이었다. 다양한 방법을 테스트할 때마다 테스터들의 반응은 각각 달랐다. 무엇이 가장 좋은 방법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개발진은 가장 좋은 반응을 얻은 조작법 상위 3가지를 모두 구현하기로 했다.

작은 화면에서의 플레이는 사용자의 몰입감을 떨어트리는 요소 중의 하나다. '화이트데이'는 이야기 중심의 게임이기에 몰입도가 중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용자들을 계속 게임에 붙잡고 있어야만 했다. 개발진은 몰입감을 높이는 방법으로 '연출'을 선택했다.

연출이 사용자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고, 모든 연출을 세밀하게 콘티를 짜서 구현했다. 완성된 콘티로 모션캡쳐를 진행하여 세세한 흐름까지 표현하고자 했다. 연출 콘티와 더불어서 윤태호 작가의 콘티도 매우 큰 도움이 됐다. 게임을 잘 몰랐던 윤태호 작가는 게임을 이해하기 위해 개발진의 설명을 굉장히 귀담아들어 줬고 많은 고뇌 끝에 엔딩을 보강, 재해석했다.



▲ 티테일한 연출을 위한 콘티



▲ 윤태호 작가의 콘티


⊙ 팬들은 원한다

화이트데이 팬들은 올드팬들이 많다. 그렇기에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것이 많았다. 올드팬이 사랑해주는 게임이기 때문에 당연히 올드팬들에게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었고, 개발진은 엔딩에 대한 동기부여를 겸한 코스튬을 주기로 했다.

이와함께 게임의 수명을 높이는 수집 모드와 플레이 점수를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다. 원작에서는 텍스트로만 존재했던 귀신들의 서브스토리 21개도 게임에 추가했다.

가장 야심 차게 준비했던 것은 패키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오랜 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2001년의 감성 그대로를 느낄 수 있도록 모바일게임 최초로 한정판 패키지를 제작했다. 올드팬들의 반응은 환상적이었다. 패키지 상품은 매우 빠르게 매진됐다.

카페, 블로그, 미디어에서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개발자들은 화이트데이를 응원해주는 글을 보고 행복해했다. 힘들고 어려웠던 도전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너무나 행복했다.

화이트데이는 모든 마켓에서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고 현재 8개국 자막, 3개국 더빙으로 글로벌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 PC와 콘솔 버전 그리고 엄청난 질타

본래 화이트데이 PC 버전은 단순히 모바일 게임을 큰 화면에서 즐기고자 하는 사용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오롯이 이식하는 작업만을 할 예정이었다. 개발진이 잡은 일정은 개발 1개월, 서비스 준비 1개월이었다.

그런데 큰 스크린에서 모바일 버전을 돌리니 그래픽 퀄리티가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또한, 모바일 버전을 구입한 플레이어가 PC 버전을 또 구매하게 할 요건이 부족하다는 태생적 문제점도 안고 있었다. 그래서 개발진은 그래픽 리소스를 손보고, 한 사람 분량의 새로운 콘텐츠를 추가하기로 했다. 한 사람 분량의 콘텐츠에는 사운드, 모션캡쳐, 시스템 등 다양한 작업을 수반한다.

게다가 플레이스테이션4 버전도 개발해야 했다. UX가 전혀 다른 환경이기 때문에 조작법도 패드에 맞게 새로 만들어야 했다. 현지화 작업도 해야했다. 작업 볼륨이 갑자기 확 늘어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일이 커지다 보니 본래 계획했던, 회사가 감당할 수 있던 선을 넘어버렸다. 개발인력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6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돌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시나리오에 기반하고 있는 게임 특성상 반드시 전 세계 동시발매가 이뤄져야 했다. 본의 아니게 여섯 개 버전을 동시에 만들어야 하는 총체적 난국에 빠지게 된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플레이스테이션의 엄격한 검수(TRC. Technical Requirement Checklist)가 개발팀의 목을 졸라왔다. 텍스트양이 많은 게임인데 단어 하나하나 일일이 잡아내며 빌드를 해야만 했다. 실제 테스트 빌드를 만드는데 대략 3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6개 빌드를 모두 테스트하려면 빌드하는 시간만 어마어마하게 걸렸다.



▲ 8월 29일 전 세계 시장에서 출시를 완료했다.

개발자와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테스트할 환경은 열악했다. 실제로 완료 빌드는 출시 예정일 일주일 전에서야 나왔다. 부랴부랴 외부 QA 업체에 넘겼으나 시간은 이미 없었다. 개발진은 출시 연기에 대해서는 극도로 부정적이었다. 중국에서 넘어오기로 한 한정판이 넘어오지 않아 이미 연기한 이력이 있기에 출시 연기만은 막고 싶었다.

그렇게 제대로 QA도 못한 게임을 출시했고 엄청난 질타를 받아야만 했다. 출시 당일인 22일만 해도 두 번의 버그 패치를 진행해다. 또한, 해외 퍼블리셔와 커뮤니케이션이 잘못되어 스팀 출시 일자를 수정해야 했는데, 스팀 오류로 제대로 수정하지 못했다. 사용자들은 실망감을 오롯이 표현했다.

그들이 했던 수많은 밤샘과 퀄리티에 대한 자부심은 무너져 내렸다. 작은 실수가 모여 완성도 낮은 게임을 선보였다는 자괴감에 힘들었다. 현재 스팀 버전은 5번, 플레이스테이션 버전은 3번 패치를 진행한 상태다.

디자인적으로도 명백한 오판을 했다. 밸런스를 무너트려 버린 것이다. 콘솔 및 PC 버전에서는 수위가 일정 거리 이상 다가오면 캐릭터가 자동으로 밀려나는 모드를 뺐다. 과거에 많은 사용자가 부정적인 의견을 표하기도 해서 의도적으로 플레이어의 재미를 위해 어렵게 디자인한 것이다. '확실한 공포'를 경험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완전한 오판이었다. 현재는 패치를 통해 난이도를 조정해 가고 있다.


⊙ 화이트데이가 남긴 교훈, "더 가치 있는 것에 매달려라"

이들은 경험부족에서 온 실수와 오판을 체득했다. 그리고 경험을 바탕으로 VR을 지원하는 '화이트데이2:스완송'으로 세계 시장에 도전하려고 한다.

화이트데이 개발자들은 가치에 대해 많이 생각해 왔다. 어떻게 하면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수없이 했다. 하지만 어떤 결정을 하든 매번 후회는 찾아왔다. 그러면서 이들은 배웠다. '더 가치 있는 것에 매달려라'라는 교훈. 가치를 높여주는 것이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을 시행착오를 통해 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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