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C2017] 번지의 이훈 아티스트, "미국 개발사에 취업하고 싶어요?"

게임뉴스 | 이현수 기자 | 댓글: 20개 |


▲ 번지 이훈 시니어 아티스트

[인벤게임컨퍼런스(IGC) 발표자 소개] 번지의 이훈 아티스트는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며 게임업계에 입문, 이후 블리자드, 엔씨소프트, EA 등을 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회사 중 하나인 번지에서 '데스티니2'의 캐릭터 아티스트로 일하고 있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희박해진 요즘, 직종을 막론하고 커리어 관리는 매우 중요한 키워드로 떠올랐다. 대부분 사람은 이직을 준비하면서 의사결정에 소용돌이를 접하게 되는데, 지금까지 무엇을 어떻게 해왔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번지의 이훈 아티스트는 다양한 미국 회사에 다니면서 느낀 점, 특징과 파이프라인 등을 설명하고, 미국 게임 업계에 입사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야 하는지, 왜 공부해야 하는지를 면접 꿀팁과 함께 공유했다.

전달의 용이함을 위해 화자의 시점에서 작성한 기사입니다.



■ 강연주제: '데스티니2' 개발자가 들려주는 미국 게임업계 입사 팁

⊙ 나의 커리어

나는 7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언어도 문화도 생소했던 나에게 취미 생활은 게임이었다. 이민 초창기 힘든 시절,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 게임은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보통 이민자 가족은 자녀가 대학 들어갈 때가 되면 공부 쪽으로 진로 잡기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달랐다. "네가 거기에 길이 있다고 믿으면 그 길을 지원해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블리자드의 '워크래프트2'에 어마어마한 감명을 받은 상태였다. 게임 도입부에 나오는 동영상을 보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3D로 움직인다는 것은 엄청나게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나를 지원해줬다. 사립대에서 4년의 공부를 끝내고 2004년도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업계에 진입할 수 있었다.




말처럼 쉽게 툭 하고 들어간 건 아니다. 졸업을 앞두고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해서 만든 포트폴리오를 서른 군데 이상의 회사에 보냈다. 단 한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취업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그러다 어느 날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옵시디언이었다. 옵시디언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RPG에 노하우를 가진 회사다. 서양적인 아트스타일을 기반으로 골수팬들을 거느리고 있다. 옵시디언은 나의 포트폴리오에 흥미를 느끼고 입사를 제안했고 나는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무슨 포지션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가겠다고 그랬다. 그렇게 내 첫 인턴 시절을 시작했다.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할 때였다. 하지만 너무 좋았다. 언젠가는 내가 작업한 결과물들을 게이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무척 행복했다.

옵시디언 입사 4개월 차에 한 회사에서 전화 면접 제의가 왔다. 어느 회사인지도 밝히지 않았지만, 언제나 면접은 환영이었다.

전화 면접 내용

"안녕, 케빈(이훈의 영어이름)은 요즘 게임 뭐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 좋아해."

"오 정말?", "진짜 재미있는 게임이거든"

(그러자 상대는 계속 와우에 대한 질문만 해왔다. 너무 즐겁게 즐기는 게임이라서 면접인 걸 까먹고 한참 수다 떨다가 수화기 건너편으로 "같이 와우나 하자"라고 전했다.)

"좋지, 그런데 와우 아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만약 내가 거기서 근무했다면 이러 이러한 점은 바꾸고 싶어."

"하하, 그런 의견 엄청 좋은 것 같아. 참, 여기는 블리자드야."

"... 거짓말... "

"진짜야, 우리가 검토한 후에 1주일 있다 다시 전화 줄게"

전화를 끊자 뒤늦게 당황스러워졌다. 일하는 둥 마는 둥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연락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블리자드처럼 경력자가 많은, 실력자가 많은 회사에서 전화 면접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부심을 느꼈다. 언젠가는 나도 진짜 블리자드를 갈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조금 지난 후 블리자드에서 문자가 왔다. '면접 보러 우리 회사에 올래?'

너무 기뻤다. 사실 블리자드가 날 선택했다는 것보다 블리자드에 방문한다는 그 자체가 설렜다. 워크래프트2 CD와 블리자드 게임 그림책을 모두 챙겨가서 싸인 받을 생각에 들떴다. 실제로 내가 면접장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한 일도 싸인을 받는 것이었다.

의외로 블리자드는 나를 높이 평가해줬다. 나의 열정에 반했다고 했다. 나처럼 발전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다고 했다. 전화 면접 중 "만약 내가 근무했다면 이것을 바꾸고 싶어"라는 말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물론 나도 블리자드의 이 말에 감동 받았다.



▲ 워크래프트2 영상은 충격이었다.

그렇게 6년 동안 와우팀에서 캐릭터 아티스트로 활동했다. '불타는 성전'을 개발할 당시에는 캐릭터 아티스트가 3명밖에 없었고, 그래서 야근을 많이 하곤 했다. 커리어의 초창기고 어렸을 때라 여기서, 이 동료와 일할 수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 블리자드에서 마야, 맥스, 포토샵 그리고 와우 엔진을 만졌다.

당시 블리자드는 지금처럼 덩치가 크지 않았다. 그래서 캐릭터 아티스트가 부족했고 개개인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방향을 선택했다. 나도 컨셉, 모델링, 텍스쳐, 리깅 등을 할 줄 아는 사람으로 발전했다.




6년간 블리자드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한 프로젝트를 오래 하다 보니 긴장감이 떨어졌다. 앞으로 30년 이상 이 일을 할 텐데 조금이라도 젊을 때 도전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블리자드를 나왔다. 추천을 받아 엔씨소프트 북가주 디비전의 신규프로젝트팀으로 들어갔다. 두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둘 다 공개되지 않았다.

엔씨소프트에서는 지브러시(Zbrush), 마야, 맥스, 포토샵을 사용했다. 유니티 엔진도 처음으로 만지게 됐다. 엔씨소프트에서 일하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도 느낄 수 있었다. 분위기도 좋았다.

그리고 블리자드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블리자드는 프로젝트가 취소되어 팀이 와해되어도 인원은 다른 팀으로 옮겨갔다. '스타크래프트 고스트' 팀이 해체된 후 팀원은 해고되지 않고 다른 프로젝트 팀으로 흡수됐다. 애초에 프로젝트가 넘어진다고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개념이 없었다.

그런데 엔씨소프트는 달랐다. 프로젝트가 엎어지면 디비전 자체를 닫아버렸다. 어느 날 퇴근하고 있었는데 회사 동료에게서 "형, 돌아와. 내일 회사 문 닫는다고 짐 챙기래"라는 전화를 받았다. 충격이었다. 실제로 다음 날 출근해보니 사장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월급은 얼마를 줄 테니 다음 기회를 찾아라"라고 말했다. 내 옆에 동료는 울었다. 정말로 충격이었다. 게임 업계가 모두 블리자드처럼 안정적인 곳이 아니라는 것도 이때 깨달았다.

그렇다고 엔씨소프트의 팀원들이 실력이 없던 것도 아니다. 다들 실력이 좋았고 블리자드의 동료들 보다도 뛰어난 사람도 많았다.


엔씨소프트에서 나온 후에 EA에 들어갔다.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는 회사는 아니지만, 피파, 매든, 배틀필드 등 훌륭한 IP를 가지고 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실력만 있다면 여러 팀을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A에서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북미 유저들이 최악의 게임사를 뽑는 투표를 매해 진행하는데 EA가 2년 연속 1위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때 캠퍼스 차원에서 "야 어쨌든 1등이잖아, 케이크나 먹자"고 했을 만큼 캠퍼스 생활은 재미있었다. 사실 이날 4강전에 EA가 올랐을 때부터 EA를 응원하기는 했다. 이왕 올라온 김에 1등 하자고.

난 EA에서 '데드스페이스3'와 '배틀필드 하드라인' 그리고 '던게이트' 개발에 참여했다. 개인적으로 MOBA를 좋아해서 던게이트에 지원을 했다. 그곳에서 아트 스타일의 방향성을 모색하고 스컵팅, 모델링, 텍스쳐 작업을 했다. 이그나이트 엔진, 스포어 엔진, 프로스트 바이트 엔진은 EA에서 처음 접했다.

EA는 독특한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다. 짧은 기간에 효과를 못 보면 잘라버린다. 우선 팀을 많이 만들어둔다. 약 20개의 팀을 조직하고 성과가 나오지 않는 팀들을 해체한다. 결국에는 3개에서 5개의 팀만 생존한다. 정말로 많은 팀이 새로 생기고 없어지고를 반복한다.

우리 팀이 해체되는 날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100명이 넘는 인원이 2년 넘게 이 정도 개발했는데 설마 자르겠어?' 그런데 진짜로 잘랐다. CEO가 직접 와서는 모바일 프로젝트로 넘어갈 건지 퇴직금을 받을 건지 선택지를 건네줬다.




그렇게 EA를 떠나 들어간 회사는 스타트업 '파이어포지'였다. 블리자드 인원이 설립한 스타트업으로 나 역시 블리자드 시절 인연이 추천해 준 곳이었다. 중국의 큰 회사에서 투자를 받기도 했고 비전도 괜찮은 것 같았다. 사실 미국 내 큰 회사랑 연락을 주고받는 상태였는데 스타트업을 한 번 경험해 보고 싶어서 파이어포지에 입사했다.

스타트업의 모험성 짙은 도박에 매력을 느꼈다. 도박하지 않으면 보상이 없으니까. 그런데 이 스타트업 생활은 무척 힘들었다. 인원이 적어서 이것 저것 많은 것을 해야만 했다. 원래 캐릭터 아티스트로서의 작업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투자 미팅도 다녀야 했다. 나는 처음으로 따라간 비즈니스 미팅 장소에서 '사람이 만나서 숫자 이야기만 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충격이었다.

결과적으로 여러 분야를 많이 공부할 수 있었다. 다만 투자가 끊겨서 프로젝트가 엎어졌다. 나는 인섬니악으로 옮겼다.




인섬니악으로 옮긴 첫날, 내 바탕화면에는 '플레이'라고 쓰여 있는 버튼이 떠 있었다. 버튼을 눌러보니 마블 로고가 나왔다. 그리고 스파이더맨이 나왔다. 뜬금없지만, 스파이더맨의 팬으로서 즐거운 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인섬니악 로고가 떴다. 놀랐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이게 뭐냐고 물어봤다. 바로 내가 투입될 프로젝트였다. 아니, 스파이더맨이라니!

나중에 알고 보니 소니와의 계약 때문에 신규 인력을 뽑을 때 '스파이더 맨' IP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라고 말을 해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너무나 행복했다. 그런데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출퇴근 시간이 기차로 왕복 4시간에 달했던 것이다.

처음 3개월은 너무나 행복한 작업에 힘든지 몰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다 보니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태블릿을 사서 기차 안에서 그림도 그리고 별 행동을 다 해봤는데도 힘들어서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였다. 통근 기차 안에서 메일 한통을 받았다.


번지에서 온 메일이었다. 번지에 지원 한 적도 없는데 일자리를 제안한 것이다. 사실 번지는 아티스트 사이에서 평이 좋지 못한 회사 중 하나다. 모든 아티스트를 계약직으로 고용하기 때문에 2~3년 있다가 잘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일단 거절했다. 계약직 문제도 있었지만, 시애틀로 삶의 장소를 옮겨야 한다는 건 나에게 있어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하지만 번지는 꾸준했다. 그들은 계속 나에게 시간을 투자했다. 그리고 이즈음 해서 번지는 자사의 나쁜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모든 아티스트들과 풀타임 계약만을 맺었다. 그래서 난 번지로가서 '데스티니'의 막바지 작업과 '데스티니2' 개발에 참여했다.

번지의 일하는 환경이나 직원 혜택은 정말 최고였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이 있는 시애틀에서 경쟁하기 위해서 어느 회사와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을 만큼의 혜택을 제공했다. 경영진의 비전도 뚜렷했고, 액티비전이라는 든든한 퍼블리셔도 있었다.




무엇보다 팀원의 분위기가 무척 좋았다. 번지의 직원들은 서로 가족처럼 대해준다. 들어오기는 어려운 대신 한 번 들어오면 '영원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 팀원이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업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팀장이 팀원들에게 스케쥴을 나눠주면서 회복할 때까지 편안한 업무를 유도한다. 서로 믿고 챙겨주는 분위기가 확실히 정립되어 있다. 팀 원들도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아티스트들이 바로 내 옆에서 일하고 있다.

번지 아티스트들은 시니어-주니어 미팅을 하고는 하는데 정말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한다. 주니어라도 좋은 의견을 말하면 모든 아티스트들 앞에서 데모할 기회를 주고, 실제 게임에 투입하기도 한다. 수평적인 조직 문화도 잘 갖춰져 있는 회사다. 큰 회사는 정치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데 번지에는 진짜로 없다.

사장과 부사장이 정기적으로 모든 직원을 모아놓고 자유롭게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인상적이다. '이런 질문을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별별 질문을 많이 한다. 그리고 사장과 부사장은 거기에 답해 준다.


⊙ "첫날부터 나는 노력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아서 겁이 안 났어."

나는 이런 과정을 겪어왔다. 내 경력을 자랑하기 위해서? 아니다. 이걸 말하고 싶었다. 80%가 넘는 아티스트 지망생들은 단순하게 게임을 좋아해서, 그림을 좋아해서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물론 좋아하는 일에 도전하는 것이 멋지기는 하지만, 단순히 좋아한다고 시간을 투자하는 건 너무 큰 위험이다.

왜냐하면 게임 업계의 경쟁은 대단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AAA급 게임을 만드는 회사는 손으로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캐릭터 아티스트는 한 프로젝트에 5명, 많아야 10명이 참여한다. 미국 AAA급 개발사에서 캐릭터 아티스트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이 봐야 200명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200개의 자리도 전부 빈자리는 아니다. 기존에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있으니까. 보통 1~2자리 정도가 나기 마련이고 이를 미국 전체로 확대해봐야 10명에서 15명만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경쟁이 정말 심한 곳이다.

스스로를 납득시킬만한 뚜렷한 목표가 없다면, 이유를 만들지 않았다면 무턱대고 도전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업계다.



▲ 자신을 파악하는 게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

뚜렷한 목표가 있다면 본인에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아는 것도 필요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일찍 깨닫고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그림을 그렸다. 대학 동기 중에 '나는 최고이니까 대충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었다. 물론 실력은 뛰어났다. 그러나 대학 4년 후 그는 게임 산업에 들어오지조차 못했다.

또 다른 대학 동기는 나조차 그림을 못 그린다고 생각할 정도로 실력이 좋지 못했지만, 4년을 열심히 했고 졸업할 때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자 친구는 "첫날부터 나는 노력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아서 겁이 안 났어. 바닥부터 올라가는 건 겁이 나지 않아. 위에서는 먹힐까 봐 겁이 나잖아? 그래서 난 계속 도전했어"라고 대답했다.


⊙ 유학은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 개발사에 취업하기 위해서는 유학을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 중국, 유럽에서 경력을 쌓은 경력자를 미국 개발사로 데려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간혹 해외에서 스카우트되어 회사에 들어오면 회사 전체에 이메일이 발송되고는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왔는지 궁금해하면서 구경하고, 포트폴리오를 뜯어보기도 한다. 그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포트폴리오를 볼 때 엄청나게 뛰어나지 않으면 근처에 사는 사람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다른 대륙 있는 사람과 접촉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했는데,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면 엄청난 손해이기 때문이다.

미국 회사들의 선호이므로 좋든 싫든 간에 취업확률을 1%라도 올리려면 미국으로 가는 게 당연하다.

단순히 선호를 제외한다고 해도 현실적인 이유로도 유학이 취업에 유리하다. 미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쌓는 인맥이 굉장히 도움되기 때문이다. 시그래프, E3, 지브러시 세미나 같은 행사가 열리는데 보통 대학에서 그룹단위로 뭉쳐서 함께 가고는 한다.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기에 포트폴리오를 서로 봐주기도 하고 정보도 공유하기도 한다.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 이러한 인맥이 쌓이면 취업의 기회가 많아진다. 연락이 연락을 부르고 그 연락은 또 다른 연락을 부르기 마련이다. 또, 인맥을 쌓는 과정은 미국의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 좋든 싫든 간에 취업확률을 1%라도 올리려면 미국으로 가는 게 당연하다.


⊙ 막상 미국에 도착하면 무엇을 해야할까

보통 한국 유학생들은 처음 미국에 도착하면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인들끼리 뭉치는 경향이 있다. 한국 사람끼리 뭉쳐서 좋은 점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매우 아쉬운 행동이다. 그렇게 지내다가는 막상 면접 볼 때 떨어지기 때문이다. 면접에서는 기술적인 측면만 보지 않는다. 문화에 잘 적응하는지 팀원과 융화를 할 수 있는지도 본다. 그래서 생활 영어와 담을 쌓고 지내다 보면 영어 울렁증에 빠지게 된다. 문화는 자연스럽게 생활을 통해 체득되는 것이지 억지로 공부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한국 유학생들은 시간을 간과하고는 한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기회를 많이 제공하기는 하지만,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졸업 후 3개월에 불과하다. 졸업 후 3개월이 지나면 비자 문제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한국에서 미국 취업을 준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졸업 후에 포트폴리오를 부랴부랴 만드는 건 이미 취업에 늦었다는 뜻이다. 그냥 준비해도 어려운 취업을 한국인 유학생들은 3개월이라는 압박감 속에서 취업해야만 한다. 평균적으로 졸업 후 일자리를 얻기까지 6개월이 걸리는 것을 고려하면 졸업을 앞두고 준비하기보다는 졸업작품으로 고되고 힘들지라도 졸업 1년 전에 취업을 준비해야 한다.


⊙ 취업 전선에서의 팁

가장 중요한 것은 포트폴리오다. 그리고 포트폴리오를 만들 때 반드시 KISS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KISS는 Keep it Simple, Stupid(간단하게 만들어 바보야)의 약자로 보기 쉽게, 열기 쉽게 임팩트 있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괜히 멋 부린다고 이상한 것을 넣으면 포트폴리오는 열자마자 휴지통에 버려지게 될 것이다.

또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 잡다한 작품 10개보다는 인생 작품 1개에 무게를 실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사 담당자가 여러 포트폴리오를 보고 눈을 감았을 때 생각나게 하는 그 작품이 취업으로 이끌 작품이기 때문이다.

많이 간과하는 사실 중의 하나인데 지원 회사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번지에서 포트폴리오를 많이 받아보는데 모바일 포트폴리오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애초에 고려도 하지 않는다.

또한, 인맥이 있다면 민폐라고 생각하지 말고 도움을 부탁해야 한다. 내가 취업 준비할 때는 '링크드 인'같은 서비스도 없어서 내가 좋아하는 슈팅게임을 클리어한 후 올라가는 크레딧을 모조리 스크린 샷을 찍어서 이름이 나오는 모두에게 포트폴리오를 보내기도 했다. 지금은 도움을 받지만, 나중엔 나도 베풀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 취업할 때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해야한다.



▲ 취업할 때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해야한다.


⊙ 미국의 전화 면접

전화 면접에서는 면접자의 성격이 어떤지, 작업물이 본인 것인지를 확인한다. 한국 사람들은 전화로만 행해지는 면접에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때는 익숙한 곳, 이를테면 자신의 차나 방 등 편안한 곳에서 통화하면 한결 나아진다.

미국 회사들은 항상 전화 면접 말미에 "회사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니?"라고 물어본다. 대부분의 한국 구직자들은 영어 면접이 잘 끝났다는 안도감에 '아니'라고 말하는 데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 일부로 아니라는 대답을 듣기 위해 질문을 하는 회사도 있다. 면접은 회사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구직자가 회사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반드시 되풀이하는 게 좋다. 내가 블리자드와 통화할 때처럼 "만약 내가 거기서 무엇을 했다면 이런 점은 이렇게 바꾸고 싶다"란 식으로 말하는 게 큰 도움이 된다.


⊙ 미국의 대면 면접

미국 회사에서 대면 면접을 진행한다는 것은 그림 실력은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대면 면접에서는 기술보다는 팀에 어울리는지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를 판단한다. 미국 문화를 잘 아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대면 면접에서 드러난다. 아무 이유 없이 "이번 주말에 풋볼 경기 봤니?"라고 물어보는 건 구직자가 어느 정도의 개방적 사고를 가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전화 면접 때와 마찬가지로, 되풀이하며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 미국에서 개발자로 취업하기

미국에서 개발자로 취업하는 현실은 정말 힘든 과정이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의 90%는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는 한다. 시간이 갈수록 일자리 경쟁은 심해진다. 그래서 난 1년간 도전을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빠르게 포기하는 것도 추천한다.

미국에서 취업하는 건 실력보다는 운이 더 많이 따라줘야 한다. 운은 타이밍이다. 하지만 그 기회를 잡으려면 실력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당장 기회가 안 된다면 일단 작은 회사에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졸업하고 나서 3개월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3개월 안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미국을 떠나야 한다.

이렇게 힘든 일 투성이지만, 미국에서 개발자로 산다는 건 좋은 점도 있다. 우선 미국은 개발자를 많이 존중해 준다. 특히 아트에 많은 자부심을 품고 있어서 대우를 잘해준다. 세계에서 모여든 인재들과 함께 공부하고 생활함으로써 더 발전하게 하는 것도 장점이다. 무엇보다도 AAA급 게임 개발에 도전할 기회가 많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물론 나는 이민을 간 상태였기에 여기 여러분과 상황이 달랐다. 비자 문제도 없었고, 군대도 다녀오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 게임 업계에서 성공하는 한국인들을 보면 존경할 수밖에 없다. 힘든 환경에서 도전했고 성공하는 게 너무나 뿌듯하다.

나는 실패를 많이 겪었다. 그러나 실패를 두려워 말고 도전할 기회가 생길 때 기회를 잡는 편이 더 좋다는 것도 깨달았다.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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