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C2017] 'HP 소드' 제작 노하우? "일단 만들어! 그리고 부숴!"

게임뉴스 | 이두현 기자 | 댓글: 16개 |


▲ 김다찬 개발자

[인벤게임컨퍼런스(IGC) 발표자 소개] 김다찬 개발자는 청강문화산업대학교 3학년으로, 현재 ‘팀 글로벌 버블’에서 ‘HP 소드'의 기획자 및 애니메이터로 개발 중이다. 졸업 작품으로 제작한 ’HP 소드는‘ 부산 인디 게임 페스티벌 출품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IGC 2017의 마지막 날인 9월 2일, 많은 사람이 GB1 센터 강연장으로 모였다. 이들이 기다리는 강연은 엄청난 경력을 가진 개발자가 아닌, 이제 막 첫 게임을 만들고 있는 김다찬 개발자의 강연이었다.

초보 개발자의 첫 작품, 대학생의 졸업 작품에 이토록 많은 관심이 쏟아진 이유는 100% 수작업 도트 액션 게임인 ‘HP 소드’의 게임성 때문일 것이다. 초보 개발자는 어떻게 이런 도트 액션을 내놓았을까? 김다찬 개발자가 단상에 올라 답을 들려주었다.

“일단 만들어! 그리고 부숴!”

※본 강연 기사는 주제 특성 상 강연자의 시점에서 서술했습니다.



■ 강연주제: 소년이여 개발자가 되어라 - 계획성 0% 막무가내 HP소드 개발기

안녕하세요. 발표하게 된 김다찬입니다.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 3학년 재학 중이고, ‘HP 소드’의 기획자 및 애니메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약력은 이게 끝입니다.

‘HP 소드’는 2017년도 청강화산업대학 졸업 작품이고, 횡 스크롤 도트 액션 게임입니다. HP의 UI를 무기로 사용합니다. 영화 데드풀스러운 느낌이 있고요, 3명이 2년간 만들었고, 2018년 말 개발 완료 예정입니다.

이 자리에는 제가 우러러볼 개발자 선배님들도 있으신데요, 처음 개발에 뛰어든 병아리의 우렁찬 울음소리라고 귀엽게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망생 여러분들은 ‘쟤도 하는데 나라고 못 할까’라고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게임 키드에서 개발 지망생으로

4년 전, 청강 크로니클 행사에 참관한 적이 있습니다. 청강 크로니클은 청강대 게임과 학생들이 결과물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행사입니다. 3학년이 발표하고 2학년은 앱 게임 결과물을 발표하죠. 개인적으로 청강 게임과의 진짜 축제라고 생각하는 행사입니다. 그때 느꼈던 것은...

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멋있다!

기숙사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행사를 다시 생각하는데 가슴이 두근거리더군요. ‘나도 어서 저런 게임들을 만들어서 자랑해야지’ 하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발표를 마친 선배가 돌아와 한숨 내쉬는 모습을 봤습니다. 선배가 “제대로 돌아가는 게 하나도 없고 매일매일 힘들어 죽겠다”라고 말했는데, 사실 전 아는 게 없다 보니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습니다.





저희 대학에서 별바람 교수님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액션 게임은 학생들의 무덤이다” 이유는 “쉽게 도전하기 힘들고 또 어려워서 추천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액션 게임을 좋아했었죠.

그래서 결심한 네 가지가 있습니다. 다른 데 정신 팔지 말고 기획에 집중하자. 팀원을 존중해 내 취향을 너무 몰아붙이지 말자. 목표를 작게 정하자. 괜히 액션 한다고 패기 부리지 말고 퍼즐 게임으로 도전 하자입니다.



▲ 당시 읽었던 기획 관련 책들

기획에 집중한 이유는 아트와 프로그래밍을 못 해서입니다. 그리고 3년 동안 정말 공부만 했습니다. 그런데, 공부할수록 드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내가 진짜 게임을 만든다고 할 수 있는 걸까?’ 게임을 만든다기보다 팀을 관리하고 사람을 관리하는, 리소스를 관리하는 느낌이 났습니다. 특히 학교에서는 기획자가 그 역할을 맡아야 하는데, 제가 꿈꿔온 게임 개발자와는 다르다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아트와 프로그래밍을 못 한다는 의미는 곧, 게임의 아키텍처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상태였던 거죠. 어떻게 굴러가는지 모르는데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약사가 약의 성분이 어떻게 적용되고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야 약을 제조하듯, 개발자도 게임의 각 요소가 어떻게 적용되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야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3년 동안 기획 공부를 하고서야 느낀 점입니다. 기획은 조금 더 내실을 다지고 다시 공부하자고 결심했습니다.


개발을 시작하는 가장 근본 없는 방법

본격적으로 개발을 시작했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먼저 최대한 기획에서 멀어지는 일을 해보자. 그래서 많이 추천하는 유니티로 개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진짜, 겁나, 엄청, 많이, 꽤나, 좀 어려웠지만... 재밌었습니다! 코딩하면 내 생각대로 나오는 게 재밌었습니다. 하지만 그 재미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아는 게 없다 보니 바로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버그로 HP UI가 쭉쭉 늘어나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빨간 바가 프레임을 뚫고 나가거나 여기저기 날아다니기도 하고 캐릭터 위치까지 날아와서 찌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이게 칼이 되면 재밌지 않을까?

그렇게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개발 공부는 때려치우고 다시 기획으로 복귀했습니다. 처음에는 총 6명의 팀원을 모았습니다. 기획자인 저와 그래픽 디자이너 4명, 프로그래머 1명입니다. 그렇게 무식하게 시작한 첫 프로젝트가 ‘HP 소드’입니다. 이건 분명 재밌을 거야! 왜? 아무도 안 했던 거니까! 내가 알기로는! 그렇게 기대하고 프로토타입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프로토타입은 정말 재미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HP가 칼날이 된다는 컨셉은 아이디어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험이 중요했는데 아이디어에 집착해서 보지 못했습니다. “와 신기하다!”라는 반응은 10초 후에 “그래서 이게 뭐가 재밌는데?”로 이어졌습니다.

스토리, 세계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재밌긴 한데, 그게 게임이랑 무슨 상관이지?”라는 반응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번개 같은 강렬한 아이디어였지만 지속 시간도 번개 같아서 글 한 줄도 못 읽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해서 게임은 지속성이 있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HP 소드’는 애초에 모순을 안고 있던 게임 시스템이었습니다.




이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팀원 대거 탈퇴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6명 중 4명이 탈퇴한 거죠. 절대 싸운 건 아니고 당시엔 그게 서로에게 더 좋은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팀원 탈퇴로 이전 리소스를 쓸 수도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많은 고민을 했죠. 이대로 접고 다른 팀에 병합? 2명이 만들만한 게임으로 다시? 1년 쉬고 다시? 학생 입장에서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고민 끝에, 그냥 내 마음대로 한 뒤에 박살 나기로 결정했습니다. 나중에 아쉬운 것을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기 전에, 죽기 전에 “아 그때 그 게임을 만들었더라면...”과 같은 말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냥 둘이서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소년이여 개발자가 되어라

먼저 했던 생각은 ‘내가 진짜로 경험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입니다. 듣기에 그럴싸한 것, 일시적인 경험 말고 게임을 하면서 느끼고 싶었던 건 뭘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답이 나왔습니다.

적을 멋있게 썰어 넘기는 액션 게임을 하고 싶다.

초보는 막 눌러도 멋진 공격이 나가고, 고수는 여러 기술을 연결해 콤보를 쓰는 액션 게임을 말이죠.




앞서 말한 별바람 교수님 말이 떠올랐지만,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발동했습니다. 이 생각은 지금도 제 작업의 원동력입니다.

기본 모토는 3無입니다. 계획과 일정, 그리고 근본이 없습니다.




소수팀의 장점을 살려, 우선 문서를 쓰지 않습니다. 2명이 개발하는데 문서 쓰는 시간이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옆에 앉아 입으로 개발했습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바로 직접 해버렸습니다. 물론, 말만 하면 척척 만들어주는 프로그래머가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 “일단 만들어! 그리고 부숴!”

다음으로 토르비욘식 개발입니다. 거창한 건 아니고, 일단 만들고 아닌 거 같으면 버립니다.

아트 워크의 배경에 대해 말씀드리면, 일단 아트 워크를 담당할 팀원이 없으니 내가 직접 아트 워크를 담당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림의 ㄱ자도 모르는 상황이었죠. 특히나 유저 입장에서는 기획자가 찍건, 프로그래머가 찍건, 세계 최고의 픽셀 아티스트가 찍었건 알 바 아닙니다. 그래서 부담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라는 고민이 컸습니다.

하지만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토르비욘식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일단 찍어 보자!




도트 처음 찍었을 때 작업물입니다. 처음 찍었던 도트는 저도 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레퍼런스를 찾았습니다. ‘Owl boy’와 같은 작업물은 애초에 무리고, 기본기의 영향이 적은 저 해상도 그래픽, 명암과 질감을 생략한 플랫 스타일을 추구했습니다.




리워크를 거듭할수록 개선되는 것이 보였습니다. 물론, 이건 실력이 낮을 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죠. 그러다 점차 봐줄 만한 결과물이 나왔고 무료 게임이면 다운은 받을 만하다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러다 도트에 라이팅이 들어가야 예쁜 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본 배경을 다 만들고서야 라이팅을 넣고 싶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하지만 만들어둔 배경에 라이팅을 추가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쉈습니다.

다음으로 성 컨셉으로 찍었습니다. 어둡고 친숙하고 휘장, 갑옷, 책상, 촛불 등 여러 오브젝트를 추가하기도 쉬우니까. 그렇게 아래의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불이 움직여 실시간으로 라이팅 변화까지 주게 되었습니다. 또, 외관이 좀 후줄근해 보이니까 기술이라도 적용하자는 마음에 ‘도트 노말맵’까지 적용했습니다. 이러니 좀 봐줄 만 하더군요. ‘아니, 이럴 수가’라던가 ‘내가 이렇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 새로운 그래픽 디자이너 팀원이 합류했습니다. 그래픽 디자이너는 당연히 저보다 아트 실력이 좋으니, 제가 찍은 도트에 작업을 이어나가려면 실력을 낮춰야 했습니다. 그러면 아트 작업이 꼬이게 되고, 퀄리티는 더 낮아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부쉈습니다.

이후에 수족관, 한약방, 폐허, 욕실 컨셉을 부쉈습니다. 폐허는 무채색이라 밋밋해서 버렸고 욕실은 캐릭터 컨셉이 맞지 않아서 버렸습니다. 현재 연구실 컨셉으로 개발하고 있지만 언제 또 버릴지 모르겠습니다.




계속 만들고 부쉈지만 확실한 건, Ctrl+Z 키와 Delete 키를 누를 때마다 우린 강해진다는 점입니다. 물론, 돈 벌 생각 없고 시간은 넘쳐나는 대학생만 가능한 방식일 것입니다. 애초에 커리어가 없으니 기회비용이 0인 거죠. 제 생각입니다.

다음은 캐릭터입니다. 먼저 탄생 비화를 고백하겠습니다. 팀원 탈퇴로 이전 리소스를 사용할 수 없게 됐고, 고민이 많았을 때 팀원인 프로그래머 선배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눈 지 30초 만에 결정됐습니다. 100% 실화입니다.




게임의 주인공 캐릭터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애초에 내가 만드는 게임이고, 남이 투자한 것도 아니니 내가 좋으면 장땡이란 생각이었습니다. 세상에는 나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 반드시 있습니다. 점차 팬아트를 그려주는 사람도 생기더군요. 그러니 인디게임이나 졸업 작품을 만들 때 남의 시선, 취향에 집착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개발하기 싫을 때마다 팬아트 폴더에 들어가 다시 의욕을 불태웁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정말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만들겠습니다.


플레이

플레이 구축에 관해 얘기하겠습니다. 처음에는 “액션 게임? 좋지! 바로 만들어야겠다! 그런데 어떻게 만들지?”와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좋아하는 것과 만드는 것은 달랐습니다. 액션 게임에 대해 막연한 인상은 있지만 명확한 결정 사항이 없었죠.

졸업 작품 끝낸 선배님이나 교수님에게 고민을 얘기하면 일관된 답변이 있습니다.

“맨땅에 헤딩하듯 하세요!”

전 그 답을 듣고서 ‘어떻게 해야 더 효율적으로 헤딩하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맨땅에 헤딩은 이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데이터나 정보가 있어야 분석을 하는데,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봐야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헤딩의 흔적으로, 먼저 공격의 종류가 너무 적어서 재미가 없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예전 ‘바람의 나라’처럼 휘두르기 공격만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할 수 있는 액션을 무작정 늘려보았습니다. 일반 공격, 어퍼컷, 공중공격, 내려치기, 공중 내려찍기, 백스텝 공격 등을 만들고 연결했습니다. 그 결과 훨씬 나아진 조작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진 미묘한 재미일 뿐이었습니다.



▲ 헤딩의 흔적들

다음으로 적의 종류가 너무 적어서 재미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무작정 다양한 타입의 적을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중요도가 높은 것을 우선해 정식 리소스로 제작했습니다.



▲ 다양한 타입의 적, 세 타입은 살아남아 현재 게임에 적용함




▲ 정식 리소스로 제작

그리고 적들이 너무 바보라서 재미가 없었습니다. 좀 더 까다롭게 만들어 보자 해서 적에게 슈퍼아머를 적용했습니다. 방어를 높이고 적의 체력이 25% 소모될 때마다 슈퍼 아머가 깨지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난이도가 올라가는 문제가 생겼고 콤보 넣는 재미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강제적으로 깰 수 있는 액션을 넣거나 원거리에서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 또는 다른 방법으로 몬스터를 까다롭게 만들까 고민했습니다.

점차 정보가 쌓이고, 그 정보로 다음 헤딩 계획이 생기고, 계획을 통해 더 정밀한 헤딩을 하고...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상당한 결과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가끔 버그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때도 있었습니다. 이때는 기분이 좋죠.

감이 오지 않을 때는 일단 뭐든 해보길 권합니다. 반드시 무언가 얻을 수 있습니다. 만든 게 아까워서라도 얻을 점을 찾아내기도 하고요. 버릴 때 버리더라도 아무것도 안 한 것보다야 낫습니다.

단, 버릴 때는 가차 없이 버려야 합니다.



▲ 수많은 헤딩의 흔적들



애니메이션




외국인이 트위터로 제게 “짱 멋져! 어떻게 만들었어? 배우고 싶어!”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전 “에이스프라이트로 만들고, 스케치하고, 색을 채우고, 그냥 다듬고 다듬고 다듬고를 반복했어. 특별한 건 없어”라고 답했습니다. 그냥 하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화내시겠죠?

우선 전 잘한 작품을 훔칩니다. 요즘 널리고 널린 게 레퍼런스입니다. 그래픽 하시는 분들은 아래와 같은 폴더가 다 있을 텐데요. 하지만 정말 내가 원하는 느낌의 레퍼런스를 찾기 힘듭니다.



▲ 디자이너라면 다 있을 폴더 속 모습

예를 들어, ‘걷는 이미지’는 어디든 다 있습니다. 하나를 추가해서 ‘암살자가 걷는 애니메이션’을 다소 찾기 힘들지만 있기야 있습니다. 또 추가해 ‘15살 여자아이 암살자가 걷는 애니메이션’은 운이 좋다면 찾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마음속에 깊은 원한을 가진 15살 여자아이가 걷는 애니메이션’은 어떨까요? 이 정도 되면 사실상 없습니다.

그래서 일상에서 접한 것들을 모으는 게 중요합니다. 했던 게임의 걷는 모션이 참 좋았다거나 영화에서 강렬한 폭발 장면을 눈여겨봅니다. 또 친구의 걷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라면 나중에 게임에 써먹는 것도 괜찮습니다.

실제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검색하면, 경험상 마음에 드는 것은 절대 빗나가지 않습니다. 평소에 많은 작품을 접해 자기 자신만의 DB를 업데이트하길 바랍니다.

또는 미리 공부하는 것도 좋습니다. 혹자는 “영웅은 공부 따윈 안 한다네”라고도 말하지만 필요할 때 써먹으려면 공부는 평소부터 미리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말해놓고도 전 잘 지키지는 않습니다. 다만, 필요해질 것들을 예상하고서 때가 닥치기 전까지 짬짬이 공부...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사례를 들면, ‘액션 게임이니까 무조건 폭발이 나오겠지?’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폭발 장면을 도트로 찍어 연습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못 봐줄 퀄리티였지만 점차 나아졌고 지금은 게임에 도입했습니다.

물론, 배우려고 마음먹고 공부한 것보다 닥칠 때마다 구르면서 배우는 게 훨씬 더 많았습니다. 토르비욘 정신이죠.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

결론은 내가 돈 주고 사고 싶은 게임입니다. 게임 개발 시작할 때 결심했고,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아! 이건 돈 주고 살만하다’라는 게임만 사서 플레이했습니다. 내가 돈 주고 사고 싶지 않은데, 남에게 권하기에는 양심이 꺼립니다. 그래서 ‘HP 소드’는 내가 감동하였던 것들로 채우자고 생각했습니다.

다음은 ‘어떻게 했는지 감도 안 온다’라고 하는 것보다 ‘이 미친 짓을 진짜 했다고?’ 싶은 것입니다.




제가 그 생각을 했던 ‘메탈슬러그3’입니다. 메탈슬러그를 잘 보면 캐릭터마다 불타거나, 좀비가 되거나, 공격하는 모든 장면마다 도트를 찍었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은 ‘아이콘’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지금 서 있는 거예요, 공격하는 거에요’라고 말하는 듯한 애니메이션은 안 됩니다. 그래픽의 존재 의의는 ‘내 손이 당신의 상상력보다 멋지다’라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그래서 ‘HP 소드’는 초당 16프레임 애니메이션 제작을 결정했습니다. 인디 도트 게임에서는 흔치 않은 사례입니다. 이름도 없는 어느 잡몹에는 기본 동작에 116프레임을 할당했습니다. 또한, 모든 애니메이션에 항상 동일한 재생 속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굳이 넘어지는 동작과 포션 마시는 모습을 만들었고, 굳이 수작업으로 폭발 이펙트를 만들었습니다.

그 게임의 컨셉에서만 나올 수 있는 고유한 플레이를 추구합니다. 'ROM CHECK FAIL'은 여러 세계관이 합쳐진 게임입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 마리오, 링크, 팩맨 등 다양한 세계관이 하나의 게임에 모였는데, 일정 시간마다 그래픽이 깨지면서 여러 게임이 혼합됩니다. 원작에 충실해 좌우로밖에 못 움직이는 잔기, 그냥 적을 공격할 수는 없고 흰 점을 먹어야 하는 팩맨 등, 오직 ‘ROM CHECK FAIL’에서만 즐길 수 있는 재미가 있습니다.

‘HP 소드’ 역시 이런 플레이를 추구합니다. HP를 소모해 칼날을 던지거나 튕겨 나온 칼날을 받아먹으면 HP를 회복하는 플레이는 ‘HP 소드’이기에 가능하고 납득할 수 있는 플레이일 것입니다. ‘던전 앤 파이터’는 캐릭터에 중독되면 HP가 보라색으로 변하는데, 여기서 착안해 ‘HP 소드’는 독에 걸리면 무기에 속성이 추가되는 특성을 추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스템과 강력하게 결합한 컨셉의 게임을 만들고자 합니다. 주인공이 되살아나는 이유부터 멀티 플레이까지 설정으로 설명하는 컨셉의 끝판왕 ‘다크 소울’과 같이 말이죠. 일종의 메트로배니아 게임처럼 진행에 따라 기능이 해금되는 컨셉입니다. 대표적으로 ‘모모도라: 달 아래 진혼곡’이 대표적입니다.



▲ 'HP 소드'는 UI를 되찾아 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두 개를 합쳐 ‘HP 소드’만의 게임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적에게 빼앗긴 게임 시스템’을 되찾아 오는 여정입니다. 체력바, 마나바, 아이템 창 등을 찾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게임 진행에 따라 하나씩 더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엉망진창 개발론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나 엉망진창이냐면... 아까 네 가지 결심을 말했었습니다. 하지만...



▲ 결국 이렇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이런 게 ‘인디’ 아닐까요? 이런저런 규율과 법칙에 얽매이지 않는 것, 내가 좋아하니까 넣고, 내가 싫어하니까 뺄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내 마음대로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만들었습니다.

내 마음대로 만들었지만, 그 결과물은 지금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점은 정말 감사드리며 ‘HP 소드’를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그리고 조금만 더 제 마음대로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질의 응답

Q. 게임을 만들 생각이 있습니다. 발표자처럼 기술도 없고 코딩은 조금 알고, 아트 워크는 전혀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 상황에서 첫 게임을 만드는 데 얼마나 걸렸나요?

지금이 첫 게임을 만드는 중이라서 기간에 대한 답변은 못 드리겠습니다. 저도 이게 첫 헤딩이라서요. 하지만 기간은... 짧은 기간 여러 개 해보는 사람이 있고 처음부터 크게 저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이 더 좋은지는 선택할 수 없고, 성향에 따라 맞춰야 할 거 같습니다.


Q. 게임 기획자를 희망하는 학생입니다. 혹시, 첫 멤버 구성 때 어떻게 모았나요? 친구나 친분 있는 사람을 우선으로 했는지요.

우선, 친분이나 친구는 지양하길 권합니다. 게임을 만들 때는 취향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친분이나 친구라고 해서 취향까지 같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취향이 맞는 사람과 함께 하면 저절로 친분이 쌓입니다. 명확한 비전을 갖고 팀원을 모집하길 바랍니다.


Q. 저도 최근에 아이디어로 팀원을 모으다, 시스템에서 모순을 발견하고 팀이 깨졌습니다. ‘HP 소드’는 어떻게 극복했나요?

여러 가지 방편을 마련했습니다. 체력 포션을 마련하거나, 긴급구조장치를 마련했습니다. 일부 게임에서 보면 체력이 점멸하니, 반짝거리면 데미지가 더 상승하게 만들기도 했고요. 모순 때문에 팀이 망하고 게임 제작을 접었다면, 반대로 모순점만 없거나 극복했다면 굉장히 멋진 게임이 나왔을 것입니다. 극복하고 좋은 게임 만드시기 바랍니다.


Q. 팀원을 보니 음악 쪽은 없으시던데, 배경음이나 효과음은 어떻게 하셨나요?

전혀 작업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앞으로 구르며 작업해야 합니다(웃음).


Q. 기획자로서 기획만 파다 보면 다른 파트에서 이해가 부족하니, 다른 파트도 공부하려고 합니다. 다른 파트에 대한 이해나 공부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고민이 의미가 있을까 생각합니다. 프로그래머, 기획자, 그래픽 디자이너 등 편의를 위해 나누지만 결국 게임 만드는 사람입니다. 프로그래머 역시 기획자의 방안에 대해 기술적으로 조언해 다른 방안으로 이끄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는 프로그래머가 기획자가 되는 것입니다. 너무 구분에 경계를 두지 않았으면 합니다.


Q. ‘HP 소드’는 너무 기대하는 게임입니다. 2018년 말 출시 예정이라 했는데 그 전에 미리 해볼 기회가 없을까요?

일단, 9월 15일 부산 인디 게임 페스티벌 출품작으로 선정되어 참가합니다. 거기서 해볼 수 있습니다. 그 외 베타나 데모 버전 공개는 조금 더 고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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