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FPS e스포츠와 핵 논란, 그 필연적 악연에 대해

기획기사 | 박범 기자 | 댓글: 11개 |



'핵'은 해킹 프로그램의 범주에 해당하는 것으로 게임에서는 게임 프로그램을 해킹하고 임의로 수정하여 원래와 다른 방식으로 동작하도록 유도하는 모든 것을 통틀어 표현하는 단어다. 전장의 안개를 밝혀 원래 볼 수 없던 정보를 보게 해주는 '맵핵'이 가장 유명하며, 그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핵이 존재한다.

이러한 핵은 모든 게임 장르를 통틀어 불법 프로그램으로 간주되며 이를 사용하다가 적발될 경우 해당 게임을 이용할 수 없게 되는 등 다양한 불이익을 받게 된다. 게임 개발사 입장에서는 핵을 막아 유저들이 핵 유저로부터 피해를 받지 않게 해야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게임 내 핵은 여전히 존재하며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유통되고 있다.

최근 유행하는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이하 배틀그라운드)에도 핵이 존재한다. FPS 장르에 속하는 배틀그라운드에는 과거부터 이어졌던 다양한 FPS 전용 핵이 판을 치고 있다. 상대의 위치를 알려주는 핵을 비롯해서 해당 유저의 조준점을 상대에게 정확하게 고정시켜주는 '에임핵', 남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동하게 만들어주는 '스피드핵', 벽을 관통해서 상대를 쓰러뜨리게 해주는 '월핵' 등.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유저가 이런 핵을 사용해 일반 유저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

심지어 이러한 FPS 핵이 게임에서 뿐만 아니라 e스포츠에서도 활용되고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말도 안되는 것처럼 들리는 FPS e스포츠에서의 핵 사용 이슈는 꽤 오래 전부터 이어졌다.


# 끊이지 않는 FPS e스포츠 핵 논란

게임에서는 모두에게 최대한 공평한 출발선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게임 개발사 입장에서는 이를 위해 게임 내 밸런스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하게 되고 이를 게임 내용에 패치라는 이름으로 반영한다. 완벽할 순 없지만 최대한 모두의 출발선을 비슷한 수준으로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그럼 유저들은 각자의 게임 숙련도에 따라 자신과 비슷한 실력을 가진 다른 유저들과 게임을 하게 된다.

이를 방해하는게 위에서 언급했던 핵이다. 특히 FPS 장르의 게임에서는 핵이 갖는 파괴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FPS 장르는 특성상 유저의 손빠르기와 그 정확성이 가장 중요하다. 마우스로 화면에 표시되는 '에임(조준점)'을 빠르고 정확하게 상대 쪽으로 움직여 격발해야 이기는 게임이기 때문.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을 유저가 아닌 AI가 대신 해준다면? 그 격차는 쉽게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FPS 장르 자체에서도 핵이 문제를 일으켰지만, FPS e스포츠에서도 핵 관련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마치 축구선수가 스피드와 파괴력 모두 인간의 것을 상회하는 인공지능형 다리를 부착하고 대회에 출전한 수준이랄까. 하지만 문제는 대회에서 핵을 활용하는 선수들을 적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핵을 활용하는 방법이 점점 치밀하고 교묘해지면서 발생한 일이다.

FPS e스포츠 초창기에는 대회에서 특정 플레이나 장면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면 대부분 게임 내에 존재하는 버그 때문이었다. 만약 핵으로 의심되는 플레이가 나와도 핵을 대회에서 활용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저 '또 다른 버그가 발생했나보다' 정도로 여겼다.




문제는 FPS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늘고 규모도 커지면서 생기기 시작했다. 카운터 스트라이크와 서든어택, 카운터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이하 CS:GO)는 물론,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 등 정말 다양한 종목으로 진행되는 대회에서 핵 논란이 빚어졌다. 대부분 오프라인 대회가 아닌 온라인 대회에서 논란이 발생했고, 몇가지 이슈들은 지금도 그 진위 여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CS:GO 해외 대회에서는 핵 사용 여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과거 디그니타스 소속이었던 'K0nfig'와 현재 프나틱 소속 'Flusha'가 그랬다. 이들이 대회에서 선보였던 플레이 영상은 각종 커뮤니티에서 이슈를 몰고 다녔다. 영상을 확인해본 결과, 충분히 핵 활용 이슈가 발생할 만 했다. 갑자기 에임이 상대 머리 쪽으로 순식간에 이동하거나 벽 뒤에 있는 적을 정확히 조준하고 격발하는 등 남들과는 조금 다른 움직임을 자주 보였다.

▲ 출처 : 유투브 채널 unn


▲ 출처 : 유투브 채널 cubeR


과거에는 NiP 소속 선수가 오프라인 대회 중에 마우스 드라이버 핵 논란이 휩싸였다. 마우스 드라이버에 핵을 심어 대회에 출전했다는 주장이 나온 것. 대회 중에는 특이사항이 없었지만, 핵을 만든 프로그래머가 직접 유투브에 관련 영상을 게시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하지만 해당 사건은 끝내 확인 불가 정도 선에서 마무리되고 말았다. 대회 운영 측의 공식 입장 발표는 없었지만, 해당 사건 이후로 해외 오프라인 대회에서는 선수들의 마우스 드라이버를 검사하는 규정이 생기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대회 진행 중에 핵을 사용했던 사건이 있었다. 카운터 스트라이크에서 활동하던 A 선수는 핵을 사용하다가 적발됐다. 뛰어난 유망주로 인정받았던 선수는 사건 발생 이후 서든어택으로 종목을 변경했고, 과거 자신의 과오에 대해 인정한 바 있다.




최근 e스포츠 대회가 열리기 시작한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에서도 핵 활용 논란이 있었다. 얼마 전에 마무리된 IEM 오클랜드 북미 지역 예선에서 1위를 차지한 고스트 게이밍의 'Miccoy'가 도마 위에 올랐다. 논란을 불러 일으킨 영상에 따르면, 'Miccoy'는 건물 안에 몸을 숨겼다가 창밖을 정찰했고, 그 이후에 언덕 뒤편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적의 머리 부분을 정확하게 조준하고 격발했다. 뿐만 아니라, 작은 초소 안에 숨어있는 상대의 머리 역시 정확히 조준하기도 했다.

▲ 출처 : 유투브 채널 TeamGetfight - CS:GO & PUBG


# '실력? 핵?' 반박에 나선 선수들

이처럼 프로게이머들이 대회에서 핵을 활용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자, FPS e스포츠 팬들은 조금이라도 수상한 플레이가 나오면 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만큼 불신이 쌓였다는 증거였다. 예전에는 프로게이머의 슈퍼 플레이로 여겨졌던 장면들이 '저건 핵이야' 라는 말로 대체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각종 커뮤니티에는 FPS e스포츠 프로게이머들이 핵을 활용한 것처럼 보이는 영상들과 이에 대해 분석하는 영상들이 끊임없이 게시됐다. 어떤 경우에는 팬들의 분노가 과열되어 입이 담기 힘든 욕설까지 오갔다. 문제는 실제로 해당 선수가 핵을 활용했다고 결론이 난 것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잦았다는 점이다.



▲ Cloud 9 시절 '슈라우드'(출처 : 리퀴피디아)

상황이 이렇게 되자 몇몇 선수들은 논란이 되고 있는 자신의 플레이 영상에 대해 정면으로 맞섰다. CS:GO Cloud 9 소속이었던 '슈라우드'는 유투브에 올라온 자신의 핵 의심 영상을 개인방송에서 재생한 뒤, 해당 영상에서 지적하는 부분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하지만 실제로 핵이 맞는지 아닌지 여부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그에 대한 핵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 인벤 방송에 출연하여 실제 플레이를 선보인 게구리 선수

얼마 전까지 오버워치 락스 오카즈 소속으로 활동했던 '게구리' 김세연은 '슈라우드'보다 한 단계 더 직접적인 대응을 보였다. 과거 오버워치가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게구리'는 핵 활용 논란의 중심이 됐다. 당시 그녀는 오버워치 넥서스컵 한국 대표 선발전에서 자리야로 팀원들의 위치에 정확히 에임을 멈추는 플레이를 보여 팬들로부터 핵 의혹을 샀다. 옵저버 화면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힌 블리자드의 공식 입장 발표에도 몇몇 사람들은 과도한 분노를 표출했다.

이에 '게구리'는 인벤 방송국에 직접 출연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영상보다 한층 높은 수준의 실력을 몸소 입증하면서 논란에서 벗어났다. 실제 그녀의 플레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팬들은 그동안 과한 분노를 표현했던 사람들에게 화살을 돌렸다. 그만큼 '게구리'의 방송 출연은 과감했지만 결과적으로 올바른 선택이 됐다.



# 신속하고 정확한 제재 필요, 더욱 강력한 규정 생기길

FPS는 종목 특성상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대회가 많다. 그리고 온라인 대회에서는 프로게이머가 핵을 사용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힘들다. 이러한 경우에 논란을 일으킬 만한 플레이가 나오면 이미 비슷한 일을 많이 겪어봤던 FPS 팬들은 또 다시 해당 선수를 의심하고 비난할 것이다.

다행히 큰 규모의 대회에서는 세세한 규정과 이에 따른 강력하고 빠른 제재가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로 해외 CS:GO 대회 경기 도중에 몇몇 선수들이 핵 활용으로 밴을 당한 사례가 있었다. 곧장 대회를 중계하던 플랫폼의 채팅창은 불타올랐고, 중계진들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이 경우에는 게임 내에 적용되고 있는 자체 핵 탐지 프로그램과 밴 시스템이 올바르게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회에서의 핵 사용은 용서받을 수 없는 수준의 규정 위반이기 때문에 조금 더 강력하고 철저한 규정 하에 제재되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대회에서 핵을 사용할 것인지 고민했던 프로게이머들은 처벌이 무서워 함부로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할 것이고, FPS 팬들은 웬만한 논란에는 게임 개발사와 대회 운영팀을 믿고 기다려보자는 의견을 선수 비난보다 더 많이 보일 것이다.

모든 선수들이 '게구리'처럼 수많은 의혹과 논란에 일일히 대처할 수는 없다. 과감한 결단으로 의혹을 끝낼 수도 있지만, 어설픈 입증 시도나 해명은 오히려 팬들 사이에 걷잡을 수 없는 의심과 비난을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핵 논란에 휩싸인 프로게이머가 이를 방관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실제 핵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의심을 사고 비난받는 프로게이머는 연습이나 대회 경기에 집중하기 힘들 것이다.

때문에 게임 개발사와 대회 운영 측의 강력하고 즉각적인 제재가 있어야 한다. 물론, 대회에는 이와 관련된 규정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지만 이를 더욱 강화하고 철저하게 실행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FPS e스포츠는 지금처럼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핵 논란'이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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