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덕 칼럼] 무엇을 위한 자동 전투인가?

칼럼 | 양영석 기자 | 댓글: 59개 |



인벤에서는 게임과 관련해 남기덕 비평가의 기고를 소개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AI에 기반한 바로 '자동 전투'입니다. 자동 전투는 예전부터 조금씩 등장해온 시스템이지만, 유독 모바일 게임의 자동 전투에 대해서는 유저들이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과연 이 현상을 왜 발생했고 우리는 왜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일까요? 그리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선행되어야 하는지, 심층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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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기덕 비평가]는 현재 이락 디지털문화연구소에서 책임연구원으로 게임 연구를 총괄해서 맡고 있습니다. 게임 업계에서 PD, 총괄 PM, 개발 팀장,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를 경험했고, 현재는 게임학 전공으로 게임 디자인과 프로젝트 매니징에 대한 대학 강의, 각종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 디자인 발전을 위해 중소&인디 개발사 및 개발자가 되고 싶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16년 3월,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이 이루어졌다. 4승 1패로 전체 전적에서는 알파고의 승리가 결정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이세돌 9단의 1승에 환호했다. 그런데 의문이 하나 생겼다. 그 어느 국가보다 경쟁이 치열하고 패자에게 냉혹한 한국에서 왜 이렇게까지 패자의 1승에 열렬하게 환호를 보냈던 것일까?

    필자는 이 이유를 무섭게 발전하고 있는 AI(Artifical Intelligence)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는 AI의 발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를 했다.

    "완전해진 AI는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 수 있다. 진화 속도가 느린 인간은 자체 개량이 가능한 AI의 등장으로 경쟁에서 밀리고 결국 AI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Stephen Hawking) –

    이처럼 저명한 과학자조차 AI가 인간을 뛰어넘는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나타내고 있다. AI로 인해 인간의 가치가 무의미해지는 것을 경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인간보다 뛰어난 AI에 대한 거부감으로 치환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세돌 9단의 1승은 아직까지는 인간이 AI에 비해 가치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 된다.

    2017년 현재, 한국 게임에서 확률형 아이템과 더불어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자동 전투다. 인터넷 상에서 게임과 관련된 어느 곳에 가봐도 ‘자동 전투는 일단 거르고 본다’라는 글을 찾아보는 건 어렵지 않다. 어째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 고민해보기 위해 다음의 3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1. ‘믿고 거르는 자동 전투’의 의미는 자동 전투와 무엇이 다를까?


    ‘자동 전투’라는 용어를 그대로 풀어 쓰면 플레이어 캐릭터에 AI를 적용하여 자동으로 전투할 수 있도록 한 게임 시스템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자동 전투는 타이쿤류 같은 경영 시뮬레이션을 비롯하여, 넓게 보면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이하 RTS)에서 주로 활용되어 왔다. 플레이어가 경영이나 전략에 보다 집중할 수 있도록 플레이어 캐릭터들이 상황에 맞추어 어느 정도 알아서 움직이게 한 것이다.

    자동 전투는 RPG장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게다가 RPG가 시작된 초창기부터 말이다. 1987년 출시된 과거 일본 3대 RPG라고 불렸었던 여신전생의 첫 작품인 '디지털 데빌 스토리 여신전생'에서도 자동 전투는 존재하였다. 그리고 이후 여신 전생 시리즈는 물론 외전인 '페르소나' 시리즈에서도 자동 전투 시스템은 어김없이 등장해왔다.



    ▲ 디지털 데빌 스토리 여신전생의 AUTO 메뉴

    멀리 돌아갈 필요도 없이 얼마 전부터 인기를 얻고 있는 중국 모바일 게임 중 '소녀전선'만 봐도 자율 전투라는 이름으로 되어있으나 의미상 자동 전투 시스템을 포함하고 있다. 이처럼 지금 이 순간에서도 플랫폼과 장르를 떠나 많은 게임들이 자동 전투를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게이머들은 앞서 언급했던 게임들에 있는 자동 전투를 보고 ‘믿고 거르는 자동 전투’라며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게이머들이 거부하는 이것은 단순히 자동 전투라는 용어가 의미하는 것 이상의 무엇이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게이머들이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는 자동 전투를 ‘한국식 자동 전투’라는 용어로 분리하고자 한다. 과연 한국식 자동 전투에는 다른 국가의 게임이 가진 자동 전투와 어떤 점이 다르기에 이토록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일까?


    2. 왜 한국식 자동 전투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일까?


    필자는 RTS나 경영 시뮬레이션은 물론이고, 위저드리를 비롯한 초창기 RPG부터 즐기고 있었기에 기존의 자동 전투에 대해 거부감을 그다지 느끼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노가다를 편하게 해주는 자동 전투는 반갑기까지 했다. 하지만 '몬스터 길들이기'를 시작으로 최근의 'AxE'에 이르기까지 한국식 자동 전투에는 심각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렇다면 그냥 거부감이 느껴졌다에서 끝이 아니라 왜 거부감이 느껴졌을까 생각해보자.

    첫째, 기존의 자동 전투는 플레이어가 보다 더 가치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플레이어를 보조하고 지원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다시 말해서 AI를 적용한 것 이외의 시스템 중에서 플레이어에게 게임 디자인 상에서 더 가치있는 것을 제공한다는 의미다. 경영, 전략, 수집, 성장 등이 더 가치있다고 판단해서 플레이어가 이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이다.

    반면 한국식 자동 전투에서는 PvP등 최종&만렙 콘텐츠마저도 자동으로 이루어져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더 가치있는 콘텐츠나 시스템을 발견하기 힘들었다.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것은 대사 스킵과 결제정도였다. 그렇다면 개발사는 진정 액션보다 대사 스킵과 결제가 플레이어에게 더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배려했다고 봐야하나?

    둘째, 기존의 자동 전투는 플레이어가 수동으로 직접 플레이 하는 것보다 일반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 보스전이나 적의 레벨이 높은 필드에서 자동 전투로 플레이하면 깨지 못하는 것을 플레이어의 전략과 기지를 발휘한 수동 전투로 고난을 이겨 나갈 수 있게 의도적으로 디자인되어있다. 즉 이들 게임에서는 AI보다 인간이 더 가치있다는 긍정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정녕 이들의 AI기술이 한국보다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이런 수준의 자동 전투를 넣었다고 생각하는가?

    반면 한국식 자동 전투는 플레이어가 수동으로 직접 플레이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내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맵 이동부터 헤맬 일이 없으며 퀘스트 몹도 알아서 찾아서 제거해준다. 즉 이들 게임에서는 인간이 AI보다 못하다는 부정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이렇게 디자인된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게임을 하는 것은 멍청한 행동이다. 이러한 경험은 불쾌감을 넘어 거부감으로 바뀐다. 물론 애초부터 직접 플레이하는 것을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자동 전투 기능만을 사용한다면 이러한 점은 느끼지 못할 것이다.



    ▲ AI보다 인간이 더 가치있다 vs 인간이 AI보다 못하다, 어느 쪽이 마음에 드는가?

    셋째, 일각에서는 타이쿤류와 방치형 RPG가 비슷하게 ‘보는 재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의견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타이쿤류에서 보는 재미는 부가적인 것에 불과하며 핵심적인 재미가 따로 있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되기 어렵다. 게다가 방치형 RPG는 그냥 자동으로 돌려놓을 뿐이다. 전혀 다른 것을 하면서 스킵이나 시작 버튼 등을 누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화면을 거의 안 보는데 보는 재미가 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보는 재미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게임 디자인은 기술이 아니다. 플레이어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기술적인 관점에서 좋은 AI는 인간의 뇌를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성능이 뛰어난 것이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게임 AI는 단순히 성능이 높은 AI가 아니다. 플레이어가 “AI 꽤 똑똑한데? 하지만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길 수 있겠어”라고 플레이어에게 도전 정신을 주되 AI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절묘하게 만들어 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가지고 있는 AI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게임에 어떻게 적용할지는 별개의 문제다.


    3. 자동 전투는 게임에 있어서 없어져야 할 존재인 것일까?


    직장인들이나 바쁜 일정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모바일 게임이라고 해도 오랜 시간 직접 플레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게임을 하는 것보다 게임 방송을 보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본다. 이것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편한 것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부분의 게이머들이 모두 자동 전투가 있는 편한 게임만 원할까?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중국 모바일 게임 '붕괴3rd'의 순위만 봐도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모바일 게임 순위에서 자동 전투가 없는 게임은 상위권에 올라가기조차 힘들다는 몇몇 개발사의 주장은 이제 변명이 되었다. 그들이 제공했던 액션RPG의 액션이 그동안 게이머들을 만족시키기에 부족했을 뿐이며 발전시키기 보다 이것을 한국식 자동 전투로 감추려 했을 뿐이다.



    ▲ 자동 전투가 없어도 게이머들이 원하는 수준의 액션이 있으면 상위권에 올라갈 수 있다.

    자동 전투는 하나의 게임 시스템이며 게임을 디자인하기 위한 도구나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자동 전투는 없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 개선되어야 하는 도구이며, 게임 디자이너가 넣을지 말지를 결정해야할 선택의 문제이다. 플레이어에게 더 가치있는 것을 주기위해서 부가적인 부분을 수월하게 해주고자 자동 전투를 넣는다면 나쁜 선택만은 아닐 것이다.

    현재의 한국식 자동 전투에서 개선되었으면 하는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동 전투가 가장 문제가 되는 장르는 흔히 방치형이라고도 불리는 모바일 액션 RPG이다. 자동 전투로 인해 액션이 무의미해진 장르를 굳이 액션 RPG라고 칭하는 것은 소비자의 반발만 살 뿐이다. 방치형 RPG라는 용어가 싫다면 용어를 하나 만들어서 장르부터 변경했으면 한다. 유자차에 유자가 들어가 있지 않는데 유자차라고 판매한다면 이는 소비자를 우롱하는 행위이다.

    둘째, 해당 게임에서 정말 자동 전투가 필수라고 판단된다면, 아예 자동 전투를 디폴트로 하고, 수동 전투를 없애는 것이 어떤가? 자동 전투보다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 수동 전투는 의미가 없다. 차라리 그 개발 기간과 비용으로 자동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또는 그 이후에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더 가치있는 시스템과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 전략이 되었건 수집이 되었건 그 무엇이 되었건 플레이어가 직접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 그 게임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셋째, AI에 대한 기술력을 올리는 것은 좋다. 하지만 게임에 적용할 때는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그들이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신중하게 고려해서 디자인해야 한다. 게임은 AI기술력을 자랑하기 위한 어플리케이션이 아니다.



    ▲이세돌이 승리한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제4국

    다시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이야기로 되돌아가보자. 비록 1승에 불과했지만 이세돌 9단의 1승은 AI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전 인류의 가능성을 재확인한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기뻐했던 것이다. 반대로 한국식 자동 전투는 플레이어에게서 의미있는 것을 빼앗아 가 버렸음에도 더 의미있는 시스템이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

    이렇기 때문에 많은 게이머들이 한국식 자동 전투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고 본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AI에 대한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AI기술만이 아니라 AI를 게임에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게임 디자인에도 투자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가치있음을 느낄 때 비로소 재미라는 감정에 눈뜰 수 있다.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재미라고 하지만, 재미를 주기 이전에 필요한 것은 플레이어가 스스로 가치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전체적인 추세가 편한 것을 선호하게 바뀐다고 할지라도 결국 게임은 인간이 가치있다라는 긍정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범위에서 디자인되어야 한다. 게임은 AI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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