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질병화 논란②] 위정현 "WHO 게임 장애, 결국 누군가의 돈벌이 수단"

인터뷰 | 김규만 기자 | 댓글: 57개 |


▲ 위정현 중앙대학교 교수 겸 한국게임학회장

지난 월요일(19일), 한국게임산업협회가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의 비과학적인 질병화 시도에 반대한다는 입장의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작년 12월, WHO가 공식적으로 게임 중독 및 게임 장애를 정신건강질환으로 분류하겠다고 발표한지 약 석 달 만이다.

이렇듯 오는 5월 ICD-11의 공식 승인을 앞두고 업계 및 학계에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입장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아직 성명를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자리를 통해 ICD-11의 게임 장애 항목 등재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온 사람도 존재한다. 2018년 1월 1일 한국게임학회장에 취임한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또한 이들 중 하나다.

1월 26일 중앙대학교에 진행된 제9대 한국게임학회 출범식에서 그는 게임 질병 공식화는 물론 확률형 아이템 문제, 각종 게임 규제 정책 등 게임업계의 주요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 등 주요 게임회사의 창업자들과의 원탁회의를 제안하기도 했다.

9대 게임학회의 출범식 이후 약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ICD-11 초안이 정식 승인되는 5월까지는 이제 채 3개월도 남지 않은 지금. 위정현 학회장은 이번 이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게임학회 차원에서는 이에 대응하기 위한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인벤에서 직접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WHO 게임 공식 질병화 논란 기사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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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 과몰입, 사회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

WHO에서 게임중독 및 장애를 정신건강질환이라고 분류하겠다고 갑자기 나선 이유가 있을까?

기사를 통해서도 알려졌지만, WHO 관계자가 "아시아 국가의 압력을 받고 있다"고 밝힌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특정 국가를 언급하지 않았어도 쉽게 유추가 가능한데, 먼저 일본은 해당 사안에 대해 큰 관심이 없고, 개인적으로는 중국도 아니라고 보고 있다. 2004년 정부 대표로 참여해 중국 정부 관계자와 회의를 가져본 적이 있는데, 이들은 WHO와 같은 국제기구의 권위를 빌려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중국 정부는 자체 주도로 모든 일을 진행할 수 있다고 믿으며, 또 그럴 능력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시아권 국가 중 국가 차원에서 소위 '4대 중독법'을 추진하는 움직임을 보였던 나라는 어디일까? 이 두 가지를 합쳐 보면 남는 것은 한 국가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WHO에 압력을 넣고 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다. 하지만, 당시 4대 중독법을 추진했던 한국중독정신의학회가 이를 두고 '숙원사업'이라는 표현을 써 이슈가 되지 않았나. 때문에 이번 ICD-11 초안에 등재된 '게임 장애' 이슈도 이것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 이해관계에 놓여 있는 것, 그것이 문제라고 본다. 청소년들을 사업의 대상, 돈벌이 대상으로 보는 '중독 코드'를 만들어냄으로써 누가 이익을 볼 것인가? 과거에 이런 시도를 했던 사람들이 누구였으며, 왜 그 당시에 성공하지 못했는지 일련의 흐름을 지켜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4대 중독 법안을 발의한 당시 국내 반발이 심했기 때문에, 이번에 WHO와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렇다면, WHO의 '게임 장애' 등재와 관련한 개인적인 입장이 궁금하다.

이러한 ('게임 장애' 등재의)배경 자체에 대해서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이를 두고 의학계 및 심리학계 등에서도 토론과 논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해외의 경우 정부가 먼저 손을 쓰기 이전에 학계에서 연구와 토론이 진행되는데,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추적조사나 연구, 토론 등 그 역사가 없다. 이렇게 연구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게임 질병화를 진행하는 것은 정치적인 이해관계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밖에 보일 수 없다.



▲ 그는 게임 과몰입의 주 원인으로 사회 구조적 문제를 꼽았다

하지만, 게임 장애와 관련하여 '경험적인 사례'가 있음을 지적하며, 치료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게임 과몰입' 문제는 사회 구조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시간과 돈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이러한 원인을 무시한 채 과몰입이라는 결과만 가지고 상담, 약물 투여 등의 치료를 한다고 해도 집에 가면 똑같아진다. 우리나라 교육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이기도 한데, 경제적으로 안정된 가정에서는 학원을 보내면 되지만, 경제적 취약 계층의 청소년들은 집에 가도 아무도 없고, 학원도 가지 못한다. 이러한 현상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게임 과몰입' 문제는 계속 대두될 것이다.

물론 게임뿐 아니라 스포츠와 독서 등 삶의 균형을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현재 우리나라 입시 제도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 일은 기성세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는데도 불구하고 사업 수단으로 보는 현실이 안타깝다. 심지어 멀쩡한 청소년들조차 질병 코드로 지정해 치료 대상으로 만들면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게임 과몰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패널 데이터 수집 조사 결과 '게임 과몰입'이라고 불리는 집단이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들이 게임에 과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 사회, 경제적인 요인에서 작용하는 것이 더 크다. 조사 결과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청소년층과 결손가정, 편모 또는 편부, 조손가정 등에서 게임에 과몰입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2008년에 게임 기반 콘텐츠 연구의 일환으로 중/하위권 경제적 약자를 위한 방과 후 학교를 진행했던 적이 있다. 게임 기반 콘텐츠로 영어, 수학 수업을 진행하는 형태였고, 경기도 지역 60여개 학교에서 2-3년간 계속했는데, 당시 교장들의 95%가 방과 후 학교를 계속하고 싶다는 서명을 보내기도 했다. 게임으로 수업을 하는 형태에 대해서도 효과가 있다는 의견도 받을 수 있었다.

경제적 약자층 청소년들에게 방과 후 수업 지도를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 바로 학교 끝나고 남으라고 하면 다 도망가버리는 것이다. 이런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봐야 부모님들은 집에 안 계시고, 또 부모님 입장에서는 자녀를 가만히 두는 것보다 PC방에 보내는 것이 마음 편하기 때문에 돈을 쥐여주고 PC방에 보내게 된다.

때문에 G러닝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얻은 결과가 더 의미를 가진다. 또, 다른 연구를 통해서는 교과서로 공부하는 청소년 집단보다 게임 기반 콘텐츠를 통해 공부하는 청소년들의 과몰입 지수가 오히려 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학년이 늘어날수록 하루 게임 플레이 시간이 증가하는데 반해 G러닝반 학생들은 오히려 시간이 줄어들었다.



■ "게임 장애 등재, 셧다운제보다 훨씬 더 큰 결과를 초래할 것"




'게임 장애'가 정식으로 ICD-11에 등재될 경우, 이후 어떤 변화가 찾아오리라 예상하는가?

이런 식으로 질병코드가 부여되면 게임산업에 종사하는 개발자들은 마약 물질을 생산하는 제조업자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약 또한 일부는 의료용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일당 사람들이 먼저 거부감을 갖지 않나. 게임이 그렇게 지정된다면 다음 단계는 바로 국내에서 또 다시 중독법 비슷한 법안이 등장할 것이다. 지금까지 게임 과몰입이 일부 청소년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사안이었다면, (질병 코드)이후에는 게임 자체가 마약이나 다름없다는 시각이 등장할 것이 우려된다.

질병 코드가 지정되는 순간 게임 개발자들의 머릿속에 이러한 인식이 굳어지는 것도 걱정된다. 등급 분류도 마찬가지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기준'이 이미 개발자의 머릿속에 들어있게 되면 고도의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영역에서 제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개발자들이 위축되면 산업 생태계 또한 급격히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게임산업에 대한 규제 논의가 다시 가속화될 것이며, 4대 중독법 이야기가 또 나올지도 모른다. 여론의 눈치를 봐야 하는 정부가 진흥보다 규제 중식 정책을 펼치게 되는 것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질병 코드 도입으로 당장 매출이 줄어들거나 하는 이슈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는 5월에는 ICD-11 초안이 정식 승인 절차를 거치게 된다. 하지만 이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그렇다 할 움직임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다들 (질병 코드 도입이)얼마나 심각한 이슈인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제도가 한 번 도입되면 그것을 철폐하는 것은 10배 이상 힘든 일이다. 단적인 예로 셧다운제를 지금 폐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러한 선례가 있음에도 이번 문제를 쉽게 생각하는 업계 또한 둔감하다고 생각한다.

셧다운제 때의 과오를 범해선 안 되는데, 이번 WHO 이슈는 그보다 열 배, 스무 배는 큰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 1월 제9대 한국 게임학회장 취임식 자리에서 주요 게임 업체 창업자들과의 원탁회의를 제안했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게임 업계의 창업자들이 의지를 함께 하겠다는 것을 표명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게임업계가 영화업계와 대비적인 부분인데, 영화계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공동체라는 의식이 강하다. 스크린쿼터제로 투쟁에 나설 때도 영화업계에서는 감독과 배우가 모두 입을 모았다. 게임업계는 초창기 게임산업협회를 만들 당시 이후에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항상 그것이 대비가 된다고 느꼈다.

분명 게임 장애가 정식으로 등재되면, 일련의 움직임을 통해 '매출 1% 징수' 이야기가 또 나오게 되어 있다. 강원랜드가 기금을 내는 것은 도박사업을 인정하기 때문이듯, 기금 조성을 찬성하는 것 자체가 게임업계가 마약 판매상임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 정도로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야 할 때고, 관전할 타이밍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탁회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현재 공문을 보내놓은 상태다. 게임업계 창업자들이 축적한 재산에 비해 국민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제 존경받아야 할 때가 오지 않았을까, 물론 사회적 요구에 반응할 때에.


WHO의 '게임 장애' 등재를 막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최소한 WHO에 대해서 '게임 장애' 등재를 철회까지는 안되더라도, 연기를 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마 이를 추진하는 입장에서는 5월 안에 결정이 되도록 압력을 가할 것이다. 이러한 일정들에 맞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생각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게임학회에서 이 사안에 대해 어떤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말해달라.

실질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그 방법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고, 촛불집회의 형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촛불집회의 전체 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걸 가르쳐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중요한 것이 당사자들의 목소리인데, 그것이 빠져있다. 청소년들의 의견을 우리는 묻지 않고 있잖나. 학부모들 또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멀쩡한 아들딸들이 하루아침에 중독자가 될 지도 모르는 이슈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응에 있어서, 협회나 정부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특히 문체부가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이유는 그렇게 되면 보건복지부와 갈등 구조가 되기 때문인데, 부처 간 이해관계 대립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문체부도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협회 단체들 또한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에 전면에 나설 경우 국민들의 차가운 시선을 마주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건 지난번 셧다운제에서도 이미 확인하지 않았나.

결국은 학계가 중심이 되어 함께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한국게임학회는 중독 코드 대응 TF를 결성했으며, 국회와도 연대해 나갈 방침이다. 게임 질병화를 추진하는 세력 외 모두와 연대하는 것이 목표로, 문화예술계와도 연계해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호소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국민이 어떻게 보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게임 중독법안을 추진하는 이들도 이를 용의주도하게 생각하고 있다. WHO나 UN 등 국제기구에 우리나라가 약하다. 말하자면 외세를 업고 다시 (중독법)을 추진하려는 모양새를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들은 내용보다 WHO가 이야기했다는 사실 하나만 인식하게 될 수도 있다. 그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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