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질병화 논란③] 이장주, "게임 장애 등재, 게이머와 부모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

인터뷰 | 정필권 기자 | 댓글: 76개 |


▲ 이락 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이장주 박사

그동안 국내에서는 '게임 장애(중독)'과 관련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다. 게임을 중독 물질로 규정하는 '4대중독법'에 보건복지부는 꾸준하게 찬성해왔으며, 2014년에는 본격적인 지원 의지를 내비쳤다. 특히, 2015년에는 게임 중독 공익광고를 송출하여 많은 비판을 받고 송출을 중단했으며, 2016년에는 "게임은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고 언급하여 질병 코드 신설을 추진할 것이라 밝히기도 했다.

이렇듯, 이번 WHO의 ICD-11 초안 등재 이전부터 '게임 장애'는 국내외에서 많은 논란이 이어졌던 문제다. 때문에 게임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은 이슈가 점화된 2014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하게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인물이 이락 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이장주 박사다.

이장주 박사는 칼럼과 강연 등을 통해 꾸준하게 게임을 중독과 관련하여 바라보는 시각을 지적해 왔다. 보건복지부가 질병화 의지를 보인 2014년부터 사회문화심리학적 측면에서 분석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했고, 몇 년간 계속해서 해당 이슈를 다뤘다.

오는 5월 확정이 나게 될 WHO 게임 중독 등재. 업계를 관통하는 이번 이슈에 대해서 이장주 박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인벤에서 이장주 박사를 직접 만나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 "게임의 병리화, 자기 결정권과 책임의 문제다"

그간 게임중독과 관련된 여러 일이 있었다. 판단하기에 이번이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는가?

= 문턱이라는 게 있지 않나. 이번이 ICD-11 등재 건은 결국에는 문턱을 넘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공식 질병이나 사인들이 발생했을 때, 게임 때문에 사망했다고 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기점이다. 이제는 추정이나 이런 것이 아니라, 혈전으로 사망했든 다른 이유 때문에 사망했든 게임이 원인이 된다. 이게 무섭다는 것이다.

순박한 현실주의 이런 것을 보면 어떤 것을 이름을 지을 때, '있으니까 이름을 짓는다'고 한다. 전통적인 기표, 기의라고 하는 오래된 이론이다. 이번 게임 장애도 마찬가지다. '게임 장애는 있으니까 게임 장애로 명명한다'는 인식론이다. 이게 잘못됐다고 보는 것이다. 개념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것만 보이는 것이다.


보려고 하는 것만 본다는 의미인가?

= 새로운 정체성이 갑자기 부여되는 순간이 오면, 세상이 달리 보이기 마련이다. 어떤 것이 있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안경이나 잣대가 들어오는 순간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이는 언어가 세계를 구성한다는 구성주의 이론에서 출발한다.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손에 망치를 든 사람은 못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망치를 들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할 수 있는 못을 보는 것이다. 이를 게임 장애 건에서 보자면, 결국 망치를 들려주겠다는 의미다. 그럼 정상적이던 것들이 다 못으로 보일 것이고, 망치를 휘둘러 박아넣어야 할 것들로 변하게 된다.

근거가 타당하면야 인정해야겠지만, 지금처럼 장애로 못을 박기에는 근거가 너무 약하지 않겠는가.


근거에 관한 이야기는 계속해서 나오는 것 같다. 어떤 면에서 부족하다고 보나?

= 방법론적으로 따지면 상관이냐 인과냐는 중요한 문제다. 봄이 오면 제비도 오는데, 봄이 오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제비를 다 잡아버린다고 봄이 오지 않는 것인가? 또, 여름철에는 아이스크림이 잘 팔리는데, 익사사고도 늘어난다. 그렇다면 익사사고를 막으려면 아이스크림을 판매하지 않으면 될까?

학문 외의 영역에서는 이렇게 의심해볼 수 있다. 하지만 공부를 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것이 되지 않겠나. 지금 게임이 딱 그런 모습이다. 우울이나 불안이 비정상인 것처럼 극도로 행복한 상태도 비정상이다. 보통 사람은 이렇지도 저렇지도 않은 상태가 정상적인 모습이다. 어느 한 쪽 상태를 유지하지 않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게임을 하는 것을 병리로 만드는 순간, 큰 문제들이 생긴다. 자신을 조절하거나 실패를 통해서 배우는 이런 경험들이 사라지고 결국에는 자정 능력이나 조율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 게임이 치료해야 할 대상이 된다면, 개인에게 있어서는 자정 능력이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스스로 조절할 기회를 앗아가는, 자기 결정권의 문제다?

=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제도나 타인에게 끌려다니면 무슨 일이 발생하겠는가. 책임감이 없어지고, 심드렁해진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일을 시킨 사람들에게 책임을 돌리기 마련이다. "네가 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나에게는 책임이 없다. 네가 책임져라"하고. 게임 외의 사회 구조적 문제,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숨 쉴 공간이 게임인데 이를 닫겠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리고 하는 이야기가 '건전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건강한 사람의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고. 만약 기준이 있다면 건강하게 사는 사람을 한 번은 보여 달라고 하고 싶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보게. 그렇지도 않은데 게임을 하는 사람이 문제라고 할 수 있겠는가.

또, 정상적인 취미는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재미있게 사는 사람을 대상으로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가. 이런 것들을 다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의도에서 진정성이 있다고 하더라 고민해야 하는 것은 또 있다. 이런 몰입에 관한 것들이 부정적인 장애라고 한다면, 병리적 현상임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정상적 상태에 있다는 것은 증명해야 하지 않겠나.


경험적인 사례를 들면서 치료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 않나.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 재미를 치료하는 것은 문화적으로도 그렇고 법리적으로도 잘못된 것이다. 내가 재미있어서 한다는데, 어떻게 말릴 수 있나. 막으면 다른 것으로 표출되기 마련인데, 이것마저 막으면 치료가 안 된다. 정신장애에는 완치가 없다고들 한다. 과연 그게 치료 대상이냐는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근본적으로 봤을 때에는 중독은 적응 현상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망가지지 않고, 망가지더라도 스스로 느끼는 것이 있다면 빠져나온다. 그리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한계를 넘어 먹지는 못하지 않나. 시간이 지나면 적응이 되고 다시 중간 상태로 복귀한다. 게임도 질릴 때까지 한다면 안 하게 된다. 그렇기에 결국 중요한 문제는 자기가 선택해서 뭔가를 하는, 자기결정권의 문제다.


논문을 살펴보면, 부정적인 연구 결과들이 먼저 눈에 띈다. 긍정보다는 부정적 효과를 탐구한 것들이 더 많지 않나.

= 게임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이 게임을 원인을 찾다 보니까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 아니겠나. 애초에 결론을 짓고 바라보는 데 연구가 필요하겠는가. 답을 딱 정해놓고 하면 원하는 결과만 나올 것이다.

세상에 순수하게 좋거나 나쁘거나 하는 것이 어디 있나. 한 개만 나쁜 것이 있어도 결과적으로는 나쁜 것이 되기 마련이다. 출발 선상 자체에 대해서 비판적인 검토를 해봐야 한다. 폭넓은 시각 속에서 게임을 바라보는 과정도 필요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건강한 사회가 무엇이고, 기술과 문화가 충돌할 때 어떻게 최선의 합의를 내릴 수 있는지로 가야 한다. 옳다. 그르다로 딱 잘라 판단하는 것은 전쟁의 이야기다.



■ "게임사 외에도 IT, 기술 면에서도 함께 대응해야 한다"




기술과 문화의 충돌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이게 게임 중독과도 연관이 있을까.

= 과거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 문화와 관련돼서 드러나는 것 중 하나는 너무 빨리 바뀐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할 공백들이 생긴다. 대표적인 것이 교육에서의 공백이다. 과거에는 윗세대가 아래 세대를 교육하면서 권력적인 형태로 문화를 연속시키는 것이 주요한 기능이었다.

하지만 IT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역전된다. 이제 어른들에게 배울 것이 없어지고 공백이 생긴다. 인터넷에서 충분히 더 최신의 정보를 접할 수 있다. 그래서 불안이 생긴다. 기존 구조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내 역할을 찾고 싶어하고 남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과거든 현재든 간에, 생존이 걸리는 문제에서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워진다.

그렇기에 이번 문제는 넓은 시각에서도 바라볼 수 있다. 그저 게임을 하는 사람들과 하지 않는 사람들의 충돌이 아니라, 기술과 미래, 과거와 미래를 보는 사람들의 시각차이라고 본다. 새로운 기술들이 등장하는 미래에는 더 심해질 것이다. 그런 면에서 게임 장애 등재는 기술로 말미암은 변화, 충돌의 첫발이 되는 것이다.


이번 게임 장애 등재는 기술과 윤리적 문제의 갈등에서 일종의 시험대와 같은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 스마트폰만 해도 그렇다.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로 SNS, 인터넷을 통한 참여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기도 했다. 기기를 사용하면서 평등이라는 생각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고, 무언가에 참여하고 싶다는 욕망이 강해진다.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어쩔 수 있는 것으로 변화하는 과정이다.

좋은가 나쁜가. 되냐 안되냐는 다른 측면이지만, 앞으로는 기술이 세상과 가치를 바꾸는 데에 사용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생체칩과 같이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과 침해받아선 안 되는 것까지 들어가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와 관련하여 다른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합의할 것이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번 WHO 게임 장애 등재 문제는 단순히 게임과 관련 있는 사람들만 관련 있는 것이 아니다. 조금 더 큰 측면에서 봐야 하지 않을까. 이후의 이야기기는 하지만 게임사뿐만 아니라 IT, 기술 면에서 함께 대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외에도 의학계와의 이권이 얽혀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어떤 무언가가 생기는 것, 특히 전문영역에서 생기는 것은 결국에는 담을 친다는 이야기와 같다. 그런 면에서 의학적 영역이라는 담은 아무도 못 넘는다. 결정권은 의사밖에 못 가져간다. 그렇다면 질문을 해야 하지 않나. 다양한 사회적·문화적 현상인 문제를 왜 의사만이 다뤄야 한다는 것이냐.

일부 사람들은 좋은 의도에서 게임 장애,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서 이를 진행한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사실 지금 제도가 없어서 못 도와주는 것은 아니지 않나. "지금도 치료를 하자면 치료를 충분히 할 수 있을 텐데, 왜 만드느냐. 너의 실력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그게 문제라면 너희의 실력을 키워야지" 이렇게 가야 한다.

정말로 신중하게 이번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게임 장애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폭탄이 될 수 있다.



■ "게임 장애 등재는 큰 문제를 일으킬 폭탄이 될 수 있다"

폭탄이 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더 큰 문제가 등장할 것으로 생각하나.

= 다음 컬럼을 통해서 아마 더 자세하게 전달하겠지만, 간단하게 생각하면 모든 핑곗거리가 게임이 될 수 있고 책임이 돌아가면서 생기는 문제들이다. 군대에 가기 싫은 사람들을 예로 들어보자. 게임 장애가 등재된다면, 앞으로는 그냥 1년 동안 PC방에서 살면 면제가 될 것이다. 군대 2년 갈래 아니면 PC방에서 1년 살래? 이렇게 질문했을 때 다들 PC방에서 산다고 대답할 것이다.

또한, 강도나 절도로 잡혀 왔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겠다. "원래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GTA를 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 게임 때문에 그렇다" 처럼 책임을 돌릴 수도 있다. 책임과 의무 문제에서 혼란이 올 것이 분명하다. 모든 것을 게임 탓으로 돌리면 되니까.

이런 것들이 정신 장애가 가지고 있는 취약점이다. 책임과 의무에서 면제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2018년 현재, 게임 중독은 공익근무요원 소집해제 조건에서 제외된 상태다. 병무청은 2015년 2월 사회복무요원 복무부적합자 소집해제 처리규정을 기존 "알코올, 마약, 게임중독 등으로 6개월 이상 치료(교정)을 요하는 사람으로서 정상적인 직무수행이 곤란한 사람"에서 "알코올, 마약 등 물질 관련 장애로 6개월 이상 치료(교정)을 요하는 사람으로서 정상적 직무수행이 곤란한 사람"으로 개정한 바 있다.




정신병·술로 인한, 이른바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 문제가 게임 장애에서도 이용될 수 있다?

=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추진하는 쪽은 이렇게 쌓이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겠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게임 장애를 만들었을 때 발생하는 새로운 문제에 대한 준비가 없다. 과연 누가 책임을 질 수 있겠느냐를 물어야 한다. 당장 정신질환자의 숫자부터 늘어날 것이고, 앞으로는 조서에 다 게임 이야기만 나올 것이다.

단순히 어떤 하나를 막아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막게 되면 '나 책임져'가 된다. 이런 상황이 왔을 때 추진자들이 책임을 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결국에는 자기결정권과 책임에 대한 문제다. 과학적·윤리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면에서도 치명타가 된다.



▲ 당연하게도, 심신미약은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부분이다. (출처: SBS)

이미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게이머들에게도 직접적인 피해, 인식 변화가 올 것이라 보는가.

= 플라시보의 반대 효과로 노시보 효과가 있다. 플라시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노시보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게임이 이런저런 장애를 가지고 있고, 문제가 나온다면? "너도 그러니? / 아. 나도 그런 것 같아. / 야, 이거 하면 안 되겠어" 이런 반응들이 나올 것이다. 옛날의 개구쟁이들이 지금 ADHD 환자, 병원에 가야 하는 오염된 아이들로 인식되듯, 부정적 인식이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이외에도 앞으로 자신이 과거 게임 장애였었다는 간증들이 생길 것이라 본다. 현재를 정당화시키기 위해서는 과거가 엉망이어야 한다. 성공 스토리를 만들기 위한 기가 막힌 배경이 된다. 스스로 과거를 비하하고 게임을 했던 사람들을 가르는 그런 요소가 된다.

이런 요소들이 서로 엉켜 작용하면 결국에는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내고,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소위 말하는 헬게이트, 지옥을 만들어 버린다. 앞으로 다양한 문제가 생길 텐데, 이에 대한 청구서는 누가 지불할 것인가. 결국, 게임 장애 등재는 성공할 확률이 낮은 비싼 사회적 도구다.

그렇기에 물어봐야 한다. 누군가의 조언, 훈수를 듣고 결정을 했다면, 결정을 내린 정치권과 위정자들의 문제다. 그게 정치고 정책이다. 책임은 결국 책임자들이 지기 마련이다. 이들에게 "이런 문제가 나올 텐데,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봐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좋은 방향이 될 수 있을까.

=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온라인 게임은 결국 게임을 하고 노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노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과 노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이러한 본성을 병리화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부정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비슷한 또래와 어울릴 기회를 주고, "게임 말고도 다른 재미있는 것들이 있으니까. 해보는 것은 어때?" 하는 방식으로 제안해야 한다.

사람을 만나는 장소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과거 기준으로 온라인을 병리화 시키고 비정상화 시키는 시각 자체를 고쳐야 하는 것이 아닌가.



■ "게임 장애 등재, 게이머와 부모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




암울한 이야기기는 하지만, 냉정하게 보자면 등재가 거의 확정된 상태가 아닌가?

= 안타깝게도 거의 그렇긴 하다. 막아야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묘안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에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건강한 시민사회를 구축하고 일부 교육, 논쟁을 통해 대적전선을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회 문화적으로 많은 피해자가 나올 것이라는 시각이다. 누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라 생각하나.

= 게이머. 그리고 부모다. 부모들은 졸지에 자식이 정신 장애 유병자가 된다. 문제가 심화한다면 청소년들이 병자가 되고, 딱지가 붙게 된다. 말했던 것처럼, 정신 장애는 완치가 없다. 평생 유병이다.

결국에는 아이들이 잘되라고 하는 길이 아니라 아이를 망치는 길이 된다. 아이들을 위하는 듯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자식을 볼모로 평생 병원을 왔다갔다하라고 하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가. 이런 문제들과 관련해서 부모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본다.

단순히 보건 의료와 게임의 문제가 아니다. 확장을 시켜서 기술과 가정의 문제, 그리고 개입에 관련해서 어떻게 대처를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부모 모두가 게임에 적대적이지는 않다. 게임 장애 등재 문제가 심화하면 자식이 정신과 의사의 볼모가 된다는 것을 설명해야 한다.


앞으로 업계, 사회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보는가.

= 대적전선을 게임계만으로 구축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를 포용할 수 있는 전략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그래야 정치권을 움직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최대한 아군을 많이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 결국에는 투표 아닌가. 폭탄을 감당할 수 있는지. 그리고 미래에 게임 외에도 기술로 말미암은 문제가 나올 것임을 주지시켜야 한다. 그리고 같이 대응하자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정도 마찬가지다. 신기술에 열광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다. 지금의 게임은 과거 부모세대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새로운 기술, 개념에 대해서 인내심을 가지고 찾아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 자식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보호나 치료가 아니라, 지원이다.

또한, ICD-11에 등재되더라도 적어도 KCD(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는 넣지 말아야 한다. WHO선에서 막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이게 안 된다면 KCD에서는 막아야 하고, 정치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 원천적으로 막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바람직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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