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DC2018] 'MazM: 지킬 앤 하이드'로 발견한 스토리텔링 게임의 역할과 가능성

게임뉴스 | 윤홍만 기자 | 댓글: 6개 |
"게임의 스토리는 포르노의 그것과 같다. 있으면 좋겠지만, 중요하진 않다."

지금도 화자 되는 존 카멕의 명대사로, 오래도록 게임계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주제다. 누군가는 말한다. 스토리는 그저 게임의 데코레이션에 불과하다고. 일례로 '배틀그라운드'의 경우 이렇다 할 스토리가 없음에도 전 세계적인 흥행을 하기도 했다. 존 카멕의 말대로 스토리가 중요치 않다는 걸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그렇다고 게임에서 스토리가 중요치 않다는 건 아니다. 너티독의 '라스트 오브 더 어스'의 경우 한 편의 영화와 같은 스토리텔링을 선보이며 2013 GOTY를 거머쥐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누군가는 '라스트 오브 어스'를 평범한 게임이었지만, 스토리텔링 덕에 GOTY를 거머쥐었다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보면 스토리의 힘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한 셈이다.

'NDC(Nexon Developers Conference) 2018' 1일 차인 금일(24일), GB1 타워에서는 자라나는 씨앗의 김효택 대표가 'MazM: 지킬 앤 하이드로 발견한 스토리텔링 게임의 역할과 가능성'을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책을 게임으로 읽자'는 슬로건 하에 남들과는 다른 노선을 걸어가는 자라나는 씨앗이다. 그들이 원작이 있는 스토리 게임을 만들면서 고려한 건 뭐였을지와 그들이 전체 게임 시장의 5%밖에 안 되는 스토리 게임에 도전한 이유를 이날 강연을 통해 들어볼 수 있었다.

※ 내용 전달의 편의성을 위해 강연자 시점으로 서술합니다.



▲ 자라나는 씨앗 김효택 대표



■ 창업과 죽음의 계곡을 지나




내가 좀 오래된 세대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진부하지만 처음에는 교육과 게임을 결합한 앱을 만들고 싶었다. '생각이 자라나는 수학'이라는 앱인데, 잘 안 됐다. 위기가 찾아왔고 그럼 뭘 만들까 고민하다가 고전 소설이라는 아이템을 발견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레 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등 유명 소설의 경우 지금도 영화나 뮤지컬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무려 100년이 넘도록 말이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고전에는 100년이 넘도록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스토리의 플롯이 가진 힘이었다. 그래서 이런 고전 소설을 잘 해석해서 스토리 게임으로 만들면 영화나 뮤지컬 같은 하나의 콘텐츠가 될 거로 생각했다. 그렇게 'MazM'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물론, 안 될 거란 말들도 많았다. '오버워치', '배틀그라운드' 같은 게임들이 있는데 어른도 안 읽는 고전을 배경으로 한 게임을 누가 하겠냐는 거였다. 그 말을 들으니 더 자신이 없어지더라. 그래도 고전이 가진 장점은 명확했다.

100년 이상 검증된 플롯에 2차 저작물도 넘쳐났고 저자 사후 70년이 지나면 저작권이 만료돼 저작권이 무료라는 장점이었다. 저작권의 경우 일부 예외가 있었지만, 이런 뛰어난 저작물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건 우리 같은 소규모 개발사에겐 더 없이 매력적이었다.

그런 고전 원작의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투 더 문' 같은 게임을 만들고자 했다. 어찌 보면 목표랄 수 있었다. 2D 도트 그래픽과 아름다운 BGM, 그리고 엔딩에서 가슴저리는 그런 게임을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스토리 어드벤처 게임을 개발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이 시장은 굉장히 작은 시장이었다. 전체 게임의 5%밖에 안 되는 시장, 당연히 국내는 이보다 더 작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단점이 명확한 거였다. '회색도시'를 예로 들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정말 재미있게 즐긴 게임이었지만, 결국 팀이 해체됐다. 한번 구입하면 끝나니 수익성이 낮았고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 끝낼 수 있었다. 리텐션이 낮은 거였다. 여기에 전체 게임의 5%밖에 안 된다는 좁은 유저층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만큼 매니악한 장르였다.

그래도 꼭 하고 싶었기에 오즈의 마법사를 원작으로 한 '옐로 브릭스'를 개발했다. 처음에 교육용 앱으로 시작한 회사여서 그런지 동화라는 잔재가 좀 남았던 작품인데, 결과적으로 말해서 처참히 망했다. 1년 6개월 동안 노력해서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한 게임이었는데 1년간 3천 다운로드에 불과했고 수익도 600만 원밖에 되지 않았다.



▲ '옐로 브릭스'는 1일 최고 다운로드가 고작 30건 정도에 불과했다

포기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면서 도대체 왜 망했는지 알고 싶었다. 정말 못 만들어서인지 아니면 유료여서 인지 그걸 알아보고자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양철 나무꾼의 에피소드를 각색한 외전작 '하트리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여기에 엔딩에서 '옐로 브릭스' 페이지가 뜨도록 일종의 마케팅 성격을 가미하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출시한 '하트리스'였는데 호평 일색이었다. 순식간에 5만 다운로드를 돌파했고 평점은 4.8에 '자기 전에 하다가 울 뻔했다'는 리뷰가 달릴 정도였다. 그걸 보면서 내부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옐로 브릭스'의 리소스를 거의 그대로 쓴 게임인데 왜 '하트리스'는 이렇게 호평이었을까. 그 해답은 스토리텔링이었다. 스토리 게임의 핵심은 스토리텔링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너무나도 늦게 깨달은 거였다.




'옐로 브릭스'의 스토리는 내가 짰는데 이른바 원작에 충실한 스토리였다. 반면, '하트리스'는 다른 개발자가 스토리를 짰는데 원작에 충실한 한편, '슬픔'이라는 감정 코드를 명확히 했고 그 덕분에 10~20대 여성 분들이 많이 즐기고 공감하는 게임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하트리스'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는 한편, 다른 스토리 게임들의 특징을 취합하고 살린 건 살리고 버릴 건 버리면서 최종적으로 우리가 취해야 할 요소를 분명히 했다. 어드벤처 요소, 깨알 재미, 스토리의 완성도, 감동적인 연출, 엔딩 시점에서 감정적인 메시지를 분명히 해야 함을 말이다.

그 결과, 마침내 MazM의 세 번째 프로젝트 '지킬 앤 하이드'가 탄생했다.



■ 'MazM: 지킬 앤 하이드'의 작은 한걸음




'지킬 앤 하이드'는 원작의 재구성을 통해 플롯을 완전히 새로 만든 게임이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라는 누구나 아는 원작이 있는 만큼, 더 재미있게 살릴 필요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감성 돋는 느낌의 아트, 영화를 보는 듯한 음악 연출을 함으로써 어떻게 하면 감정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노력했다.

그렇게 완성된 게임이었지만, 내부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나쁘진 않은데 우리가 해도 '와! 이거 진짜 재미있다!' 이런 얘기가 없었다. 이미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인데 과연 통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기본 무료인데 과연 추가 결제를 할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런 여러 걱정 속에 '지킬 앤 하이드'를 출시했는데 다행히도 반응이 너무 좋았다.

양대 마켓 60만 다운로드, 무료 인기 게임 구글 7위, 애플 2위에 올랐을 뿐 아니라 유료 전환률도 괜찮았다. 다만, 이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장르가 가진 약점도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유저풀이 명확하기에 50~60만 다운로드를 넘어서면서 더는 유저가 늘어나지 않았고 광고 없이는 노출이 어려웠다.

이러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데에는 역시 플롯의 재구성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지킬 앤 하이드'는 원작을 재구성하는 데 있어서 플래시백을 이용해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연출을 선보였다. 현재의 지킬 박사가 약으로 인해 점차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플래시백을 통해 과거에 약을 막 만들 당시에 기뻐하던 그를 보여줘 엔딩에서 지킬 박사의 과거와 현재의 극명한 대조를 통해 허무함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원화가가 정성을 기울인 일러스트와 BGM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 플래시백 연출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지킬 박사가 점차 명확한 대조를 이루도록 했다

한편, 유료 전환률도 괜찮았다고 했는데 기본적으로 무료 게임이지만, 일종의 감독판 개념으로 일종의 비하인드 스토리나 삽화, 특별한 업적 등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무료로도 게임을 즐기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이런 추가 요소 덕분에 높은 유료 전환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여기에 BGM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애초에 스토리 게임이었던 만큼, 게임보다는 스토리 콘텐츠에 가깝게 생각해 처음부터 드라마, 영화 등의 음악을 제작한 업체를 찾았고 그 결과 우리가 원하는 게임에 녹아든 BGM을 만들 수 있었다.


게임과는 별개로 의외로 성과를 거두기도 했는데 우리 게임을 즐기고 나서 원작 소설을 사거나 원작과 비교해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찾아보는 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에 말한 게임이 영화나 뮤지컬 등과 같은 스토리 콘텐츠 중 하나가 될 수 있음을 그때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 'MazM: 지킬 앤 하이드'를 통해 배운 것들




'MazM: 지킬 앤 하이드'를 통해서 우리는 세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하나는 메카닉과 스토리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였다.

지금도 회사에서는 이걸로 싸우는데 메카닉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스토리라고 생각한다. 우리 게임을 즐기는 유저 분 중 몇몇은 게임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영화나 뮤지컬 같은 스토리 콘텐츠로서 게임을 즐기는 걸 볼 수 있었다. 새로운 스토리 콘텐츠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두 번째는 원작에 충실할지 아니면 재창조할지에 대한 고민인데 난 원작에 충실히 하고자 하는 쪽인데 대부분 패배했다. 사실 이에 대한 유저들의 의견은 반반으로 나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원작을 경험하고자 하는 유저의 요구를 들어주되 한발 더 나아가 재해석해 기존에 원작을 알던 사람들도 신선함을 느끼도록 했다.




이번 주 목요일에 출시하는 '오페라의 유령'에서도 이런 재해석을 찾을 수 있다. 영화나 뮤지컬을 통해 매력적인 에릭만 아는 사람들에게 원작의 비열한 에릭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원작에는 없던 새로운 인물을 넣음으로써 자라나는 씨앗만의 스토리 콘텐츠를 선보일 생각이다.

끝으로 세 번째는 멀티 엔딩의 필요성이다. 스토리 게임들의 경우 멀티 엔딩인 게임이 많아서 그런지 우리 게임에도 멀티 엔딩에 대한 요청이 많다. 그런데 멀티 엔딩을 만들려면 여러 분기가 필요한 데 그러면 게임 하나를 만드는 수준의 노력이 들어간다. 있으면 좋지만, 필수는 아닌 셈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선 하나의 스토리를 통해 만족을 주는 데 집중하고 있다.

스토리 게임은 기존 게임과는 다른 측면에서 마케팅을 펼쳐야 한다. 우리는 팬덤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돈을 써서 마케팅을 펼칠 수도 없고 이러한 스토리 게임을 좋아하는 팬층이 정해진 만큼, 기존의 팬들을 공략하면서 스토리 콘텐츠를 좋아하는 유저를 공략해야 한다.



■ 새로운 시장의 가능성




전체 게임 시장에서 5%밖에 안 되는 스토리 게임 시장이지만, '초이스: 스토리즈 유 플레이(Choices: Stories You Play)'처럼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도 분명히 있다. 넥슨이 인수했을 정도인데, 이러한 스토리 게임이 커지면 장기적으로는 영화, 뮤지컬 등과 같은 스토리 콘텐츠에 게임이 당당히 포함되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이 소설책을 읽는 이유는 그 안에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명작을 본 감동을 삶에 적용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삶이 변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알다시피 점차 책을 안 읽는 분위기다. 그렇기에 영화나 뮤지컬이 그 대체재가 되고 있다. 자라나는 씨앗에게 있어선 그게 게임이다. 앞으로도 자라나는 씨앗은 게임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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