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 정의준 교수 "게임이 중독 물질이란 논리는 틀렸다"

게임뉴스 | 이두현 기자 | 댓글: 16개 |


▲ 정의준 건국대학교 교수

"(로맨틱 소설)을 보게 내버려 두면, 여자들을 모두 젊은 남자와 썸을 탈 것이고 거기에 빠져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잊어 결국 가정 파탄으로 이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여자들을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How reading is being reimagined - 19세기

“(만화책)은 선정성과 폭력성으로 청소년 일탈을 유도하고, 동성애를 조장한다. 따라서 (만화책)의 내용은 법으로 철저히 검열되어야 한다”
미국 상원위원회, 심리학자 Fedric Wertham의 증언 - 20세기

“(게임)을 오래 이용한 청소년은 폭력에 대한 모방과 학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공격적이게 되며, 이에 장시간 중독된 청소년은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여 현실 세계에서 범죄를 야기할 수 있다”
미국 총기사건 대법원 청문회, 미디어 심리학자 Craig Anderson의 증언 - 21세기

괄호 안의 답은 '드래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정의준 건국대학교 교수는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주관한 ‘2018 불법 온라인게임물 사후관리 강화 포럼'에서의 발표에 앞서, 위와 같은 퀴즈를 제시했다. 정의준 교수는 게임과 도박을 같게 보려는 이들이 있으며, 그들은 학문적이지 않은 근거로 동일시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그들의 논리가 '모럴 패닉(moral panic)'에 근거한다고 주장했다.

'모럴 패닉'은 주류 집단이 여성이나 청소년과 같은 비주류 집단은 판단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주류 집단)가 이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다. 모럴 패닉에 따라 로맨스 소설과 만화책이 주범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최근에는 게임에 주홍 글씨가 새겨지려 한다.

게임을 중독 물질로 규정하려는 이들은 '중독성'과 '폭력성', '사행성'을 근거로 든다. 그러나 이 근거들은 학계에서도 논리가 부족해 중독 물질의 근거로 보지 않는다. 아직 정신의학회는 게임을 중독을 정신병으로 인정하지 않고, 증상에 대한 통계적 근거가 부족해 DSM-5 등재를 취소하기도 했다. 최근 WHO가 게임 장애를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에는 넣었지만,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 게임을 향한 '모럴 패닉'은 지역 별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정의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게임이 중독 물질이란 근거가 부족해지자, '주류 집단'은 게임과 도박의 연관성을 찾고 있다. 이미 도박은 중독 물질로 구분되어 있으므로, 게임이 도박과 같다면 중독 물질로 보인다는 논리다.

게임과 도박을 동일시하려는 이들은 둘의 메커니즘이 유사하고, 우연성을 포함하며, 보상과 만족의 연결고리를 근거로 제시한다. 게임이라는 개념 뒤에 도박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의준 교수는 "게임과 도박은 다르다"라고 강조하며 네 가지 이유를 근거로 들었다. 네 가지 근거는 둘의 중독기준 효과 차이, 심리적 영향 차이, 가상체험 메커니즘의 차이, 커뮤니케이션 기능의 차이로 나뉜다.

먼저 DSM-4/5에 따른 도박 중독 기준은 내성, 금단, 도피, 통제력 상실, 거짓말, 부정적 결과, 집착, 추격매수, 구제요청이다. 그러나 이 기준은 게임에 네 가지(통제력 상실, 부정적 결과, 추격매수, 구제요청)만 적용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추격매수와 구제요청은 '다른 분야 흥미 감소'와 '강박적인 이용'으로 다르게 적용했다. 정의준 교수는 "게임이 도박과 같다면, 기준의 반만 적용될 리 없다"고 설명했다.



▲ 도박 중독의 근거를 게임에 적용하기 위해선 논리를 비약해야 한다

다음으로 게임은 도박과 다른 심리적 효과를 일으킨다. 정의준 교수가 제시한 연구 발표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도박은 사람의 자존감을 낮춘다. 반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자존감이 높다. 도박은 운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져 사람의 노력이 개입될 수 없지만, 게임은 노력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노력에 따라 성취감을 주는 게임은 나아가 사회적 책임과 이타성까지도 가져다준다. 이는 도박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

이외에도 도박은 물질 가치가 게임보다 높으며, 중독지수 또한 게임보다 월등히 높다. 도박의 보상은 현실에 쓰이는 돈이지만, 게임의 보상은 레벨이나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 각 그래프의 왼쪽이 게임, 오른쪽이 도박이다

다음으로 정의준 교수는 게임과 도박의 심리적 메커니즘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도박은 현물이 쓰이는 만큼 뇌의 '보상 회로'가 활성화되지만, 게임은 '인지 회로'가 활성화된다. 도박은 체험보다 보상이 중요시되고, 게임은 스토리텔링에 따라 체험하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또한, 도박은 시청각적 연출이 제한적이며 각성 효과에 집중된다. 반면 게임은 서사적 호응을 통해 게임 세계의 체험을 극대화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게임을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봤을 때 상호작용성, 다중모드성, 사회성, 서사성, 구체적인 경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게임은 쌍방향 소통으로 이뤄지며,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이나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의 만족을 추구한다. 또한, 게임은 여러 플레이어와 함께하거나 정보를 공유하는 등 사회성이 요구되며, 뚜렷한 목적과 고유의 역할, 미션을 제공한다. 이런 특징들이 게임과 도박을 구분 짓는다고 정의준 교수는 강조했다.

이 근거로 그는 게임이 도박과 메커니즘이 유사하지 않다고 말한다. 게임의 궁극적인 목표는 '체험'과 '자아성취를 통한 인지적 재미'이기에 투입 이상의 현실적 보상을 원하는 도박과는 차이가 분명하다. 또한, 우연에 기반하는 도박과 달리 게임은 플레이어의 숙련도와 노력의 영향이 크다. 그리고 보상과 만족의 연결고리 역시 게임과 도박은 차이를 보인다.

끝으로 정의준 교수는 일부 게임이 도박의 사행성을 모방하기 때문에, '모럴 패닉'의 대상이 된다고 지적했다. 게임이 도박이 되어야만 이득을 보는 집단은 일부 '사행성을 모방한 게임'을 도박과 유사하다는 근거로 내세운다. 이런 콘텐츠가 많아진다면, 게임이 도박과 동일시되는 일도 많아진다. 정의준 교수는 게임사와 게임물관리위원회가 협업해 이들 게임을 정확히 가려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사행성 게임을 철저히 가려내 순수한 게임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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