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민 교수 "뇌건강을 위해 게임 처방하는 시대 온다"

인터뷰 | 박광석 기자 | 댓글: 9개 |


▲ 서울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장 이경민 교수

지난 17일, 게임과학포럼과 서울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가 주최한 제1회 태그톡(T.A.G talk) 행사에서 신경과 의사이자 인지과학 연구자인 이경민 교수를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이경민 교수는 현재 사회에 만연해있는 게임에 대한 부정적, 혹은 긍정적인 시선들을 과학적인 근거하에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는데요. 다양한 과학 분야의 전문가들과 힘을 합쳐 '게임을 바라보는 공정한 관점'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그들은 게임을 어떤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는지, 간단한 인터뷰를 통해 직접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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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게임 관련 연구를 하시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궁금한 질문입니다. 교수님도 자주 게임을 하시나요?

- 최근에는 '배틀그라운드'를 아들에게 배워서 함께 하곤 했어요. 지금은 군대에 가 있는데, 휴가를 나올 때마다 함께 즐기곤 하죠. 마인크래프트가 정말 좋은 게임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아직 해보지 못했네요.

사실 연구자들이 게임을 자주 접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아요. 물론 경험을 많이 한 사람들이 게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인지과학자이자 생명과학자로서 게임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게임을 오랫동안 플레이하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실전 경험은 다소 부족해도,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죠.


Q. 최근에도 폭력 사건과 게임을 같이 묶으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정말 게임은 폭력성과 연관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요?

- 원인과 결과라고 하는 부분을 깊이 있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상으로 선행한다고 해서 무조건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죠. 미국에서 총기난동을 부린 사람이 그날 아침에 피자를 먹고 총기난동을 했다고 피자가 그 원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마찬가지예요. 만약 어떤 사람이 게임을 하다가 총기난동을 벌였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게임을 하게 된 원인부터 다른 원인으로는 무엇이 있을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해요. 미국에서는 실제로 비디오 게임 판매량 증가에 따라 청소년 강력 범죄율이 낮아졌다는 조사 결과도 공개됐죠. 이처럼 게임이라고 하는 것에 더 나쁜 행동을 막는 대체재 효과가 있을 수 있다면 게임을 원인으로 무조건 단정하면 안됩니다. 섣부르게 시간적 결과로만 판단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게임을 바라보는 섣부른 논리적 비약은 지양해야 한다


Q.게임을 중독물질로 규정하려는 움직임과 시선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뇌과학 측면에서, 정말 게임을 할 때 뇌에서 발생하는 현상과 마약이나 술을 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 동일한가요?

- 게임은 동기유발 효과가 아주 크다는 측면에서 도파민과 연결된 뇌의 기전과 분명한 관련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동기부여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인지를 발달시키고, 뇌를 발달시키고, 스스로를 향상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전입니다. 중독이라고 하는 것은 동기부여의 기전이 잘못 돼서 생기는 것이죠. 동기부여를 시키는 기전 자체, 동기를 부여하는 요소들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생물학적으로 봤을 때 '게임 중독'에 걸리는 성향이 많은 사람들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숫자적으로도 많지 않고, 이에 빠지는 이유도 게임 자체의 원인보다 해소되지 않은 사회적인 스트레스라든지, 억압 같은 것의 영향이 더 큰 편입니다. 이에 대한 탈출구로서 게임, 혹은 마약이나 술에 중독되는 경향이 생기게 됩니다. 문제 자체는 게임을 악마화하는 것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죠. 원인과 결과의 문제에서 원인에 대한 처방이 단편적이라면, 처방은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단편적인 처방은 문제 해결에 오히려 장애를 일으킬 가능성이 많아요. 결국, 단순 논리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회적 태도가 빨리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그렇다면 반대로 '게임이 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밝혀진 연구 결과들도 중독물질로 규정하려는 시선을 볼 때와 같은 방식으로 바라봐야 할까요?

- 먼저 게임을 중독물질로 판단하려는 사람들의 근거를 알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근거는 '과용을 한다'는 점에 있어요. 다른 측면으로는 단절 효과나 의존성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함께 보면 둘은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게임이라고 하는 것은 일정 정도 성취를 이루고 난 뒤에는 재미가 없어지는 것이 특징이에요. 예를들어서 MMORPG를 플레이할 때도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루면 더는 하고 싶어지지 않고, 다른 쪽으로 발전하게 되죠. 외출하거나, 혹은 다른 게임을 하게 되기도 하고요. 반면 마약은 의존성이 생기면서 끊을 수 없는 단계로 빠져들게 됩니다. 또한, 게임은 문제 발단의 단계 등에 따라 저마다 동기부여 효과와 매력이 달라지는데요. 이런 특성들은 마약에서는 볼 수 없죠. 이런 것들이 중독물질이라고 판단하려는 사람들에게 반대 근거로 제시할 수 있는 점입니다.



▲ 단순 논리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Q. '게임을 바라보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관점'을 만들기 위해 현재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 게임과학포럼은 세 가지 기준을 잡고 활동하고 있어요. 첫 번째는 기존의 여러 가지 과학적 활동에 대한 소개입니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무작정 하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으므로 과학적인, 객관적이고 공정한 정보를 수집하여 연구하고,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조사를 통해 연구되지 않은 부분들을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팀을 짜서 함께 연구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일입니다.

세 번째는 이런 것들을 통해 실생활에 기여할 수 있는 여러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뇌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여할 수 있는 게임에 대해 활동할 수도 있고, 뇌 건강활동을 위해 사회적 캠페인을 할 수도 있죠. 정리하자면 '자료 조사와 정보교류', '연구 활동', '사회적인 기여'가 포럼의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제1회 태그톡' 행사에도 학부모들이 많이 참여했는데요. 학부모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게임을 활용할 때, 과연 어떤 게임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현재 학부모 단체들이 모여서 이럴 때 활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어떠어떠한 인지 영역들을 증가시키는 게임으로는 어떤 게임이 있다'라는 것을 함께 토론하고, 전문가들이 이 의견을 종합해서 작성하는 방식이죠.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지나친 폭력성, 선정성 같은 것을 조사해서 게임에 등급을 매기는 것과 상반되는 것일 수 있겠네요. 이 가이드라인이 완성되면 어떤 게임을 하면 인지 영역, 공간능력, 집행기능, 운동능력 등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분류할 수 있게 됩니다.

또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최근 학부모들은 인공지능의 발달로 직업들이 사라질 것만 걱정하는데, 인간에 관한 관심이 깊어질수록 새롭게 생기는 직업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바로 '게임 코치' 같은 직업이죠.

게임 코치는 피지컬 트레이너와 비슷한데, 대상자에 대해 알맞은 '게임'을 처방하는 직종입니다. 이러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게임에 대해서는 물론, 인지과학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전문적인 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상상하건대, 인간의 뇌 발달과 활용을 위해서, 그리고 뇌 건강을 위해서 꼭 필요한 직군이 될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어떤 게임을 하면 머리가 좋아질까요?'라고 묻기 전에 대상을 구체적으로 하고, 그것에 맞는 것을 특정하거나,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그렇다면 교육적으로 '좋은 게임'과 '나쁜 게임'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 위에서 말했듯, 절대적으로 좋거나, 나쁜 것은 없습니다. 어떤 목적이 있는지가 중요하죠. '내 아이에게 좋은 게임이 무엇인가?'라는 답을 내기 위해서는 학부모가 함께 고민해야 해요. 외부에서 말하는 기준을 무작정 따르지 말고, 내가 직접 참여하고 함께 경험하는 상호작용을 통해 알아가야 합니다.

보통 나쁜 게임 하면 떠오르는 확률형 아이템을 예로 들어봅시다. 대부분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분명히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떠한 경험을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으니까 돈으로 사겠다는 거죠. 사회적으로 무조건 악마화할 필요가 없어요. 관점을 바꿔서 내가 이 게임을 통해 성취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면 자연스럽게 해답이 나오게 될 거에요.

물론 어린아이들이 과시욕을 위해 부모님의 신용카드로 무작정 큰 금액을 결제했다면 이건 해로운 것이겠죠. 이때 학부모가 함께 관여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학부모로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 해결 방법이 됩니다. 사실 문제 대부분이 부모와의 소통으로 해결될 수 있는데, 사실 부모와 많이 소통하는 학생들이 별로 없어요. 그러다 보니 문제의 원인을 게임으로 몰고 가는 경우가 많아지는 거죠. 이는 자기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Q. 일반 유저들도 게임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최신 연구자료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창구가 있을까요?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 그런 상황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창구가 없으므로 게임과학포럼에서는 그것을 함께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이번 태그톡이 첫 단계이자, 최초의 작업이라고 할 수 있죠. 앞으로도 정보 소통의 장으로서 계속 활동할 것이므로 많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대중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행사도 한 해에 세 번 이상 개최할 예정이니 많은 의견을 주시길 바랍니다.


Q. 게임과학포럼에서 계속 추진하는 연구와 활동은 '뇌'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후에는 어떤 분야를 다룰 예정인가요?

- 앞으로 포럼의 다른 분과를 계속 만들 계획이에요. 예를 들어 게임에 대한 여론이 현재 어떤 상황인지, 정책은 어떻게 할 것인지 과학적 근거에 의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처음은 뇌과학 쪽이었는데, 교육학 쪽으로 확대할 수도 있고, 사회적인 문제 해결 같은 정책적 차원으로 넓혀나갈 수도 있을 계획입니다.


Q. 인지과학 연구자로서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들에게 전하고 싶은 당부나 조언이 있다면?

- 게임을 할 때 '게임은 내 삶의 일부다'라는 것을 꼭 기억했으면 해요. 게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결국 나를 바꾸고, 그것이 나의 삶에 반영되어 나를 풍족하게 하거나, 혹은 빈곤하게 할 수도 있어요.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너무 한쪽에만 치우치면 다양한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일부 잃게 되기 때문이죠. 게임을 통해 내 삶이 어떻게 풍부해지고 발전할 수 있을지 계속 염두에 두면서 게임을 즐기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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