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울어도 봤고, 웃어도 봤다... 그래도 웃는 게 낫더라" - '고스트' 장용준

인터뷰 | 손창식, 남기백 기자 | 댓글: 151개 |



승부의 세계에는 승자와 패자로 나뉜다. 승자에게는 부와 명예 그리고 온갖 찬사가 쏟아진다. 반대로 패자는 비판은 물론, 많은 비난을 받는다. 인터뷰도 마찬가지다. 마치 승자만의 전유물과도 같다. 패자는 말이 없는 법이라는 말처럼 '고스트' 장용준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속마음을 말할 기회가 없었다.

프로 통산 성적 193전 64승 129패. 33.2%의 처참한 승률.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크레이머' 하종훈, '비디디' 곽보성, '하루' 강민승이 승승장구할 때 '고스트'만은 그러지 못했다. 동료들이 성과를 달성하는 동안, 지켜보던 '고스트'의 심경이 궁금했다.

의외로 '고스트'는 "울어도 봤고, 웃어도 봤다. 그래도 웃는 게 낫더라"며, 쉽게 웃어넘겼다. 그리고는 연패가 거듭되던 시기의 팀 분위기와 압박감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어쩌면 마지막일 수 있는 이번 기회에 대한 각오 역시 들어볼 수 있었다.





Q. 데뷔 후 단독 인터뷰 기회가 없었다. 막상 이야기하려니 어떤가.

사실 타이밍이 좋지는 않다(웃음). 그래도 이렇게 인사드리는 게 신기하면서도 기분이 좋다. 이번 인터뷰만큼은 다들 조마조마하지 마시고, 마음 편히 봐주셨으면 좋겠다. 이제 나는 더 내려갈 곳도 없으니 즐겨주시길 바란다.


Q. 연차가 쌓여서 그런지 인터뷰 스킬이 좋아진 것 같다. 노련해졌다고 해야 하나.

아마 플레이도 그렇고, 평소 태도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다. 신인 시절에는 겁도 없고, 상당히 무모했다. 지적받기 일쑤였다. 연차가 쌓이면서 조심스러워지긴 했지만, 성과가 없어 위축됐다는 표현이 더 알맞다. 아직 노련하다고 스스로 말할 수 없다. 그냥 현재는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서 신예 때의 느낌이 나지 않는 것뿐이다.


Q. 그동안 많은 비난 때문에 많이 위축된 모습이다.

지금은 괜찮아졌는데, 솔직히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 그냥 내 플레이와 별개로 패배를 하면 부스 밖으로 나오는 게 무서웠다. 경기장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과 마주치기가 두려웠다. 마치 나를 보면서 비웃는 것 같아서 누군가와 눈을 보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프로가 못하면 욕먹는 게 당연하고, 나만 그런 것도 아니라면서 위안도 삼아봤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혼자 있을 때 그저 막막했다. 부모님이 속상해할까 봐 말도 못 하겠고. 항상 내 기사를 찾아보시는데, 어느 순간은 안 보신다고 하더라.

한 번은 부모님께서 정 힘들면 그만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하시더라.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하셨다. 정말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수십 년 인생을 생각했을 때 이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고 조언도 해주셨다. 물론, 지금 당장 하는 일에는 충실해야 한다는 말도 빼먹지 않으셨다.


Q. '못한다'라는 말 자체도 상처가 됐을 것 같다. 프로게이머들은 자신이 못한다는 걸 인정하기가 어렵다는데.

못했으니까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 건 당연하다(웃음). 그건 내가 인정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외부 평가가 그렇다는데, 변명거리가 없다. 심지어 내가 롤챔스를 돌려 봐도 저 때는 왜 저렇게 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웃음).





Q. bbq 올리버스에서의 성적이 아쉬울 법하다.

bbq 올리버스 때는 참 서로 합이 안 맞았다. 그러다 보니 따로 플레이하는 느낌이 강했다. 플레이하는 우리가 느낄 정도인데,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더 답답했을 것 같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냥 하나의 팀이 되질 못 했다. 그 안에는 각자의 문제도 있었고, 내 잘못도 충분히 많았다.


Q. 그래서 경기석에서 플레이할 때마다 표정이 어두울 때가 많았다. 특히 데스를 기록했을 때가 유독 심해 보였다.

과거 우리 팀과 경기했던 '칸' 김동하 선수가 과호흡 증세를 보인 적이 있었다. 압박감 등의 문제라고 알고 있는데, 나도 데스를 기록할 때마다 '칸' 선수가 왜 아픈지 이해가 됐다. 한 번 죽으면 심장이 빨리 뛰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 그러다 눈앞에 하얗게 되고, 아무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렇게 정신 못 차리고 대회를 하니 결과가 좋을 리 없다. 그렇다고 마음가짐이 흐트러지진 않았다. 충분히 집중해서 연습하고, 꾸중도 들으면서 안 좋은 습관도 고치려 노력했다. 그런데 패배가 거듭되고, 실수가 반복될수록 마음처럼 잘 안 됐다.


Q. 결과적으로 팀이 강등되면서 팀을 떠나게 됐다. 그때는 어떤 기분이었나.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bbq 올리버스 사무국에서 정말 잘 챙겨주셨는데, 너무 안 좋은 성적을 남기고 떠나게 돼 죄송스럽다. 그것도 내 손으로 최하위 성적을 만들었으니 나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이렇게 200전 가까이 플레이한 선수 중에 나만큼 성과를 못 낸 선수가 있을까. 그냥 못하는 선수라면 그만하는 게 맞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마음은 여전히 프로게이머로서 성공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하니 나도 답답할 노릇이었다(웃음).





Q. 샌드박스 게이밍에 합류했다는 소식을 듣고 참 신기했다. 경쟁이 빡빡한 국내에 다시 남은 이유는 무엇인가.

해외팀도 고려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 생각했다. 이대로 떠나면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 되는 것 같았다. 아쉬움이 커서 국내 팀의 제안을 계속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고 보니 유의준 감독님이 테스트를 권유하셨다. 그때 나는 테스트라도 봐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빠른 시기에 결과가 나왔다. 감독님이 함께 하자고 다시 연락 주셨고, 그때 나도 이제는 정말 마지막 기회구나 싶어서 팀에 합류하게 됐다. 이건 분명한 팩트다. 2019년에도 못한다면 정말 끝일 수 있다. 프로니까 당연히 잘해야겠다고는 하겠지만, 아직은 겁이 조금 난다(웃음).

일단 아직 팀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지원도 많고 팀원들이 무척 가족 같아서 좋다. 플레이도 주도적으로 하려고 노력해서 호흡만 잘 맞춘다면 충분히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Q. 혹시 다른 국내 팀의 제안은 없었나.

아쉽게도 없었다(웃음). 당연히 마음 같아서는 안정적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는 팀에 가고 싶다. 이건 어느 선수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현실이 그렇지 않은데, 내가 그 정도로 현실감각이 떨어지진 않는다. 비어있는 자리들도 많았지만, 내가 들어갈 곳이 없다고 빨리 인정했다. 그래야 다른 곳에서 제대로 의지를 갖고 도전할 수 있으니까.

뛰어난 커리어를 지닌 선수들은 서로 연락하고, 같이 하자고 대화를 하지만 나와 전혀 다른 세계다. 부러우면서 나중에는 나도 팀을 선택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다른 팀들이 나를 원하는 만드는 것. 이게 내 1차 목표다.


Q. 그럼 자신감을 가지고 본인의 장점 좀 알려달라.

아직 온전히 보여드린 적은 없지만, 나는 주도적인 플레이를 선호한다. 그리고 게임 안에서 팀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브리핑 능력은 그래도 나쁘지 않다는 평을 받긴 했다(웃음). 때마침 샌드박스 게이밍이 주도적으로 플레이하려는 팀이라 나만 잘한다면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Q. 비시즌 기간에 옛 동료들이랑은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크레이지' (김)재희 형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그리고 종종 연락해 주시는 강현종 감독님이나 정제승 코치님에게도 정말 감사하다. '샤이' (박)상면이 형이랑 '하루' (강)민승이 형도 항상 힘내라고 응원해준다. '비디디' (곽)보성이랑은 정말 오래된 친구라 굳이 힘내라는 말을 나누지는 않는데, 같이하자고는 끝까지 안 하더라(웃음). 농담이다.


Q. 아까 1차 목표는 밝혔는데, 그 외 다른 목표는 없는지.

못한 만큼 잘해져서 롤드컵에서 우승하고 싶다. 지금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데, 프로의 세계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배웠다. 힘든 시기를 겪다 보니 자연스럽게 깨우친 게 많다. 다 같이 열심히 한다는 마음을 프로게이머 생활 내내 꼭 새겨 넣고 잊지 않겠다.


Q. 아직 하지 못한 말이 있다면 해달라. 팬들에게도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는데.

개인적으로 팬들한테 궁금한 게 있다. 나와 관련된 기사 댓글에 '그 성령'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걸 좋은 뜻으로 알고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혹시 다른 의미가 있다면 말해달라......

2019년에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임할 생각이다. 어떤 경우에도 2018년처럼 마무리하고 싶지 않다. 최소한 후회 없는 플레이를 하고 싶고, 내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보고 가슴 아파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잘하겠다고 이 인터뷰로 약속했으니 심한 욕만큼은 자제해주셨으면 좋겠다. 힘들 때 웃으면 '일류'라고 하는데, 아직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감당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중간마다 응원해주는 분들이 계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마냥 응원해주지 않아도 좋다. 못하면 못한다고 하셔도 좋고, 어떤 상스러운 욕도 괜찮다. 그러니 비난의 대상이 내 주변으로 퍼지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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