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게임 + 영화? 당신은 올바르게 속았다" 넷플릭스 '밴더스내치'

리뷰 | 강승진 기자 | 댓글: 16개 |
나와 당신. 고층 건물 난간에 선 두 사람. 당신은 말한다.
'둘 중 누가 뛰어내릴까?'. 떨어지면 무조건 죽는다.
나는 말한다. '내가 떨어지겠다.'.
다음을 기약하며 나는 난간 너머로 뛰어내렸다.
바닥이, 닿으면 모든 게 끝날 것 같은 바닥이 점점 가까워진다.


뛰어내려선 안 된다고? 괜찮다. 어차피 다른 루트로 이어질 테니까.

* 기사 내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음.


넷플릭스의 신작 영화 '블랙미러: 밴더스내치(앞으로는 밴더스내치로 통일)'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비디오게임의 중흥기로 불리던 1984년. 젊은 디자이너 스테판이 '밴더스내치'라는 게임을 개발하며 겪는 이야기를 다뤘다. 조용한 마을의 특별할 것 없는 청년의 이야기. 극 중 말마따나 '넷플릭스라는 21세기 오락거리로는 사람이 볼 만한 이야기가 되지 않는' 지루한 내용이다.

아, 이 설명이 빠졌다. '밴더스내치'는 넷플릭스의 신작 '인터랙티브' 영화다.

영화는 당신에게 선택지를 내놓는다. 고를 수 있는 건 2가지. 무엇을 고르냐에 따라 극 전개가 달라진다. 영화는 사소하게는 어떤 시리얼로 아침을 대신할지부터 등장인물의 죽음 등 이야기 흐름을 뒤흔드는 선택까지 보는 이의 선택에 맡긴다. 텔테일의 '워킹데드'나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등으로 대표되는 퀀틱 드림의 게임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선택은 당신의 몫.

영화 속 주인공인 스테판의 게임도 똑같다. 그가 만들고자 하는 게임 '밴더스내치'는 플레이 내내 2가지 선택지를 부여한다. 시간은 10초.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진행이 바뀐다. 게임은 작중 인물 제롬 F. 데이비스의 동명 소설 '밴더스내치'를 기반으로 한다. 소설 역시 독자에게 특정 선택지를 주고 이에 따라 정해진 페이지로 이동하는 게임 형식을 띠고 있다.

마치 게임을 하듯 선택으로 전개되는 스토리텔링을 강조한 인터랙티브 드라마. '밴더스내치'는 대형 미디어 플랫폼 넷플릭스의 위대한 도전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넷플릭스는 이미 '마인크래프트: 스토리 모드'나 '장화 신은 고양이: 동화책 어드벤처' 등 인터랙티브 미디어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그리 새로운 시도라고는 보기 어려운 셈이다.

게임으로 보기에도 '밴더스내치'가 가진 게임적 특성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시청자가 참여할 수 있는 구간은 오직 선택 구간으로 한정되어 있다. 다양한 QTE나 주변 환경을 확인하는 등의 능동적 참여를 불러오는 요소는 없다. 길게는 1시간 30분, 짧게는 40~50분 만에 엔딩을 볼 수 있는 짧은 분량도 게임다운 인터랙티브 영화라고 부르기엔 영 찜찜한 요소다.



▲ 넷플릭스의 '마인크래프트: 스토리'는 선택지는 물론 챕터 구분까지 더해 게임다운 느낌을 더욱 살렸다.

재밌게도 '밴더스내치'의 이러한 특성은 게임이라기보다는 '블랙미러'의 주제 의식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위한 가장 위대한 '속임수'라고 평가했을 때 더 가치를 가진다.

넷플릭스는 '밴더스내치'의 엔딩을 보는 이의 선택이 결정한다고 말한다. 10초의 시간을 주고 참여를 독려하며 이른바 '게임다움'을 강조했다. 하지만 영화 내내 우리는 답답함을 먼저 느낀다. 선택지는 단 2개, 때때로는 1개. 그마저도 불행한 결말이 뻔히 보이는 것만 꺼내놓기도 한다.

이야기의 결론은 다양하지만, 석연찮은 결과가 나왔을 때는 별다른 엔딩 없이 과거의 선택지로 돌아가게 한다. 이 역시 1개나 2개. 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혹은 분기가 크게 갈리는 구간으로 한정된다. 큰 갈래에서 한 번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면 그 루트의 배드엔딩은 모조리 봐야 다시 도전할 수 있다.

시청자의 선택을 마치 잘못된 결정으로 몰아붙이며 다시 시도하게 하는 것.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있다는 착각에서 언제 깨어나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시청자는 자유로워 보이는 이 이야기에 '정답이 있음'을 깨닫는다. 선택의 자유도와는 별개로 정해진 플롯을 짜 맞추기 위해 실패하고, 바른 선택을 강요받게 된 셈이다.




흔히 인간은 모두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에 있어 자유를 가진들 그 결과까지 통제할 수 있을까?

'밴더스내치'는 마치 실험과도 같다. 미로에 갇힌 쥐가 탈출구에 놓인 치즈를 향해 나가는 실험. 우리는 선택의 과정에서 스테판을 마음껏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미로의 막다른 길과 같다. 그곳에서 결국 쥐는 되돌아가고 우리 역시 바른 엔딩을 향해 이전 분기부터 다시 시작한다. 무수한 선택지를 거쳐도 결국은 정해진 엔딩을 향해 나아간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이 영화는 인간의 착각에 관한 조롱이다.

하지만 영화는 시청자의 무지몽매함을 마냥 비웃지 않는다. 영화는 이 모든 분기와 계획된 결말의 존재 힌트를 끊임없이 내던진다. 때로는 스테판이 시청자의 선택에 반항하기도 하고 직장 동료 콜린의 입을 통해 '결정과 선택이 가져올 시간의 구조성'에 대해 직접 이야기하기도 한다.

주인공을 조종한다는 쾌감에 따라 인식하는 순간은 다르지만, 결국은 시청자 본인 역시 스테판과 다를 바 없음을 인지하게 된다. 심지어 스테판은 시청자의 선택을 거부하고 자신의 엔딩을 그리기도 한다. 그리고 우월감 가득한 미소를 던지는 그의 시선은 카메라 너머 시청자이자 플레이어를 바라보고 있다. 스스로를 절대자라고 생각했던 것을 시청자 자신이 마음껏 주무른다고 판단했던 영상 속 인물이 자신보다 먼저 해내 버린 거다.




인터랙티브 게임은 어떤가. '밴더스내치'와 다를 바 없이 분기는 제작진이 만든 선택의 허상이며 과정만 다를 뿐 정해진 여러 개의 결말도 이미 정해진 것들이다. 하지만 모든 주도권은 결국 게이머가 가진다. 내 선택에 반응하고 상황은 시시각각 바뀌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플롯에 따라 움직임에도 내 행동에 자괴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밴더스내치'가 주는 이 자괴감이 '블랙미러'의 공통된 주제를 오롯이 전달한다.

'블랙미러'는 하나의 주제로 4시즌을 달려왔다. 그것은 급속도로 발전한 기술과 이를 남용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뇌를 직접 자극해 현실을 착각하게 만드는 비디오게임을 만들고 인간의 시각을 저장해 범죄를 밝히는 데 사용한다. 그리고 이런 초 하이테크놀로지 사회에서 인간은 고통받고 좌절한다. 시리즈는 이를 마치 진짜 있을 법한, 비릿한 뒷맛을 남기는 '공상 현실'로 그려내왔다.

'블랙미러: 밴더스내치'도 같다. 어느 하나 희망적이라 말할 수 없는 결과. 그 씁쓸한 결과를 끌어낸 시청자. 그리고 좋은 결말을 위한 반복. 그동안 보는 미디어에 그쳤던 '블랙미러' 시리즈는 인터랙티브 게임을 통한 참여라는 속임수를 통해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를 체감하게 했다. 우리의 기술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도덕적 물음으로 말이다.





첫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고층 건물 난간에 선 스테판과 그의 직장 동료 콜린. 콜린은 난간 아래로 한 명이 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말한다.

"결정을 네가 내리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아. 우리 세계와 연결된 저 외부의 영혼이 우리 행동을 결정하면 우린 그저 즐길 뿐이지."

그들과 연결된 외부의 영혼은 '밴더스내치'를 보며 조작하는 우리를 말하는 걸까? 아니면 '밴더스내치'를 보는 우리를 예측대로 행동하게 만드는 제작자일까.

의문을 더한 채 콜린은 난간 아래로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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