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게임, 게이머... 그라비티 김진환 이사에게 묻다

인터뷰 | 박태학 기자 | 댓글: 10개 |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대만의 국민 게임 중 하나였고, 지금까지도 꾸준한 인기를 보여주고 있는 '라그나로크'. 그 유명세는 출장 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그라비티가 올해 대만게임쇼에 B2C 부스를 내지 않은 점은 솔직히 의외였다. 대만 그라비티 커뮤니케이션즈(이하 GVC)는 올해 B2B에만 부스를 냈다.

행사장 근처 호텔 카페에서 김진환 그라비티 사업총괄이사 겸 GVC 사장을 만나 이유를 물었다. 그는 '게임쇼에 부스를 내기보다는, 라그나로크 팬들이 모여 서로 진솔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무대에 주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GVC는 대만 현지 게임 퍼블리싱에 최적화된 조직이다. 운영팀 위주의 인력 채용은 물론, 한국 그라비티 본사와 법인도 분리되어 있다. 정식 계약을 통해 퍼블리싱 작품을 선정한 뒤, 서로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나눈다.

2017년 8월부터 GVC에서 근무하며 직접 대만 게임 문화를 피부로 느낀 김진환 사장. 그가 바라본 대만 게임 시장, 그리고 대만 게이머는 어떤 모습일까.



▲ 김진환 그라비티 커뮤니케이션즈 사장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대만인에게 적은 비용으로 오랜 시간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게임은 최적의 문화 콘텐츠다. '퇴근하고 소주 한 잔?'이 아닌, '같이 게임 한 판 할래?'가 친숙한 사회가 됐다. 나이대, 계층은 물론 5:5에 가까운 게이머 성비를 보여주는 곳. 그렇기에 대만은 어떤 나라보다도 양질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김진환 사장의 분석이다. 유저들의 의견을 수렴해 완성도를 높이는 게 필수인 온라인, 모바일 게임이라면 더없이 좋은 환경이라고 덧붙였다.

게임에 관대한 사회인 만큼, 게임에 지출하는 금액도 많다. 과금 결제에 익숙한 일본, 중국 시장 진출에 앞서 게임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에 최적이라는 의미도 된다. "막 대학교를 졸업한 대만 사회 초년생들의 평균 연봉은 1,500만 원대입니다. 한국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죠. 그런데 1인당 게임에 쓰는 평균 지출액은 한국 게이머들의 70~80% 수준이에요. 대만인들의 평균 소득에 비교하면 엄청 높은 셈이죠."

대만 게임시장은 지난 2015년부터 급속도로 팽창했다. 중국의 거대 자본이 밀려들어온 시기와 일치한다. 하지만, 지금은 대만에 현 정부가 들어서고 중국 자본의 유입이 예전같지 않기에, 한국 및 일본산 게임이 반사적 이익을 얻고 있다는 게 김진환 사장의 생각이다. "우리 게임을 비롯해 리니지M, 검은사막 모바일, 메이플스토리M 등 한국 IP 게임들이 들어오면서, 대만 모바일 게임 시장이 더 넓어지는 계기가 됐다고 봅니다. 저 스스로도 '더 커질 수 있는 시장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깜짝 놀랐습니다."



▲ 대만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라그나로크M'


대만은 일본 문화권이다. 거리에 붙은 간판을 봐도, 지나가는 자동차 브랜드를 봐도 친(親) 일본 국가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콘텐츠 소비 문화도 비슷하다. 일본 애니메이션, 게임에 대한 호응도 높다. 이렇듯 일본 문화에 친숙한 대만 게이머들에게 한국 게임은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중장년층이라면 모를까, 대만의 젊은이들은 한국 문화나 게임에 거부감이 없습니다. 오히려 좋아하는 편에 가깝죠." 한국 드라마나 K팝이 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인데다, 한국 게임도 이미 시장에서 높은 매출 순위를 기록할 정도로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게 김진환 사장의 설명이다. 대만 게이머들을 단순히 '일본만 좋아한다'는 시각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대만 게이머들에게 '라그나로크'는 어떤 게임일까. "개인적으로, 대만 게임 시장을 상징하는 두 개의 IP 중 하나라고 봅니다. 나머지는 엔씨소프트의 리니지고요." 특히, '라그나로크M'은, 과거 PC로 라그나로크 온라인을 즐겼던 유저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고 강조했다. 평균 플레이타임이 2시간 이상일 만큼 충성도가 높은데다, 다른 나라 유저들에 비해 소비욕 및 과시욕도 높다고 설명했다.

현재 대만 게임 시장은 한국과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 모바일이 주력이며, 온라인, PC, 콘솔이 나머지를 가져간다. 모바일 게임은 개발 비용 대비 높은 이익을 내기 쉽고, 대만 게이머들 역시 이러한 시장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5년, 10년이 지난 후에도 모바일 게임 시장이 주력이라는 보장은 없기에, GVC도 PC 온라인, 콘솔 플랫폼 게임 시장 분석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었다. 또한, 단순히 게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영화나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 다른 문화 산업과 협업해나가려는 의욕도 보였다.



▲ 대만게임쇼 2019 B2B 존에 열린 그라비티 부스


현재 대만 최대 게임 매체는 '바하무트'다. 게임 커뮤니티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했다. 사실상 독점에 가까운 셈으로, GVC 역시 바하무트를 통해 유저 피드백을 받는다. 바하무트에 대한 유저들의 신뢰도가 워낙 높을 뿐더러, 대만 게이머들은 게임사가 유저 커뮤니티에 개입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오프라인 유저 행사를 정기적으로 열고, 직접 유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임사가 많다. GVC도 마찬가지.

"몇몇 중국 게임사들이 대만 게임시장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달성하면, 조기 철수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저희도 그렇게 보일까봐 정말 신경 많이 썼습니다.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소박하게나마 유저들을 만나는 오프라인 모임을 열고 있어요. 또한, 대만 게이머들이 준 사랑을 대만 사회에 환원하는 행사도 꾸준히 열고 있고요. 얼마 전에 대만 취약계층 학생들을 위해 도시락을 싸들고 간 적이 있는데, 그때 학교 선생님이 '도시락도 고맙지만, 학생들이 스스로 게임사에서 돈을 벌 수 있도록 기술을 가르쳐주면 더 좋을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이야기 듣고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고, 이후 프로그래밍이나 아트, 기획 같은 재능 기부 쪽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물론, 오프라인으로만 소통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SNS 문화가 발달한 대만 현지 특성에 맞춰 공식 페이스북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인다. 여기서 김진환 사장은 피드백의 퀄리티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페이스북에 달리는 유저 피드백들을 보면 놀랄 때가 많아요. 저희가 생각지도 못한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짚어냅니다." GVC의 페이스북 댓글 담당 팀은 유저들이 남긴 모든 댓글을 남기지 않고 모니터링한다. 유저들 또한 이를 잘 알고 있기에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남긴다. 중간 과정을 거치지 않고 게이머와 게임사가 끊임없이 소통하는 셈이다.

대만 게임 시장은 중국, 일본, 한국 바로 다음가는 규모로, 결코 작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그에 반해 직접 게임을 만드는 개발사는 매우 드물다. 그나마 한국에 알려진 개발사는 엑스레전드, 레이아크 정도. 이유가 무엇일까.

"대만이 국가 소득에 비해, 국민 소득이 높은 나라는 아니에요. 그래서 젊은 게임 개발자들이 그나마 언어가 비슷한 중국 게임사로 취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진환 사장도 현지 개발사를 만나고자 직접 발로 뛰어봤지만, 정말 실력있는 게임사는 손에 꼽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마지막으로 한국 게임사가 대만 진출시 유의할 점에 대해 물었다. 김진환 사장의 대답은 정석에 가까웠다. 동시에 가장 중요한 말이기도 했다.

"아까 대만 게이머들의 소비 수준이 높다고 했잖아요. 그만큼 소비자를 보호하는 법령도 강해요. 따라서 대만에 진출하려면, 대만 게이머를 존중하는 마인드가 필수예요. 소통도 훨씬 많이 해야 하고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유저들의 제안을 반드시 반영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줘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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