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보드게임 디자이너 조합'이 걸어온 길

게임뉴스 | 정필권 기자 | 댓글: 2개 |



제3회 부산 보드게임 라운드 테이블의 첫날에서 소규모 개발사가 살아남기 위한 방향을 알아봤다면, 둘째 날인 17일은 해외 보드게임 개발사들의 현황이 어떤지를 알아볼 수 있는데 초점을 맞췄다.

보드게임 시장의 규모가 큰 독일의 개발자와 회사들은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다수가 뭉쳐 살아남기 위한 협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실험적인 게임을 다수 출시하는 한편, 해외 게임에도 관심을 둔다. 동시에 보드게임 디자이너들이 한데 뭉쳐, 개인 또는 회사 단독으로 해내기 어려운 일들을 시도하는 모습이다.

게임을 소개하는 페스티벌과 같은 행사는 물론이고, 권위 있는 시상식을 준비하고 이를 소비자에게 알리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좋은 게임을 만드는 것으로 출발하여, 소비 시장의 변화와 인식을 개선하고 정치적인 영역에까지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하고자 했다. 어쩌면 독일에서 한국까지 먼 길을 날아와 자신의 경험을 전하는 것도 더 좋은 게임을 만들고 서로 협력하여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향성의 연장일지도 모른다.



■ 하이코 엘러 - "수상을 노렸던 하이델베어가 느낀 것"



▲ 하이델베어 게임즈 하이코 엘러(Heiko Eller)

하이코 엘러(Heiko Eller)는 독일의 하이델베어 게임즈의 대표를 역임하고 있는 인물이다. 1989년에 설립된 하이델베어 게임즈는 2017년 아스모디에 인수 합병되었으나, 올해 2월 다시 권리를 찾아와 운영 중인 보드게임 퍼블리셔다. 현재 약 10명으로 구성된 팀을 꾸리고 있으며, 200개 이상의 게임을 로컬라이징하여 독일 시장에 내놓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1년에 1~4개의 게임을 개발하여 출시하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부산 보드게임 라운드 테이블에 자리한 그는, 독일의 퍼블리셔로서 어떤 방향성을 가졌는지. 그리고 어떠한 시도를 해왔는지를 청중에게 전했다.

이들이 최초에 목표로 삼은 것은 보드게임을 대상으로 수여하는 ‘올해의 게임상’이다. 1979년 처음으로 시작된 이 상은 보드게임 시장 규모가 가장 큰 독일에서도 가장 규모 있는 시상식이다. 출시된 새 게임들의 주목도를 올리기 위해서 설립되었으며, 올해의 게임상 협회는 독립된 기구로 운영된다. 게임을 스스로 퍼블리싱하는 그룹이자, 독일 보드게임 관련 미디어에서 활동하는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이델베어가 이 상을 노린 가장 큰 이유는 상의 인지도다. 권위를 가지고 있는 만큼, 독일 사람들 대부분이 이 상의 존재를 알고 있다. 상을 받는다면 크리스마스 판매량 증대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이코의 말에 따르면, 수상하는 것만으로도 같은 시기 판매량 뒷자리에 0이 두 개 더 붙을 정도다.




수상여부는 독일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캐주얼 게이머들의 선택에 장기간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일 년에 게임 소수만을 구매하는 이들에게 있어, 수상했다는 것은 게임을 인정받았다는 보증이 된다.

그렇기에 독일 올해의 게임상은 해외 퍼블리셔와 디자이너의 관심을 끄는 존재다. 게임의 퀄리티를 인정받았다는 보증이자, 그만큼의 보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영화계로 치자면 오스카나 아카데미상과 같은 무게를 가지는 상인 셈이다.




그간의 수상작을 살펴보면, 이 상의 무게감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2011년 수상한 스테디셀러이자 베스트셀러 ‘카르카손’은 지금까지 꾸준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수많은 외전과 라이센스 작품이 나오기도 했다. 2009년의 도미니언, 2012년의 킹덤 빌더 등도 올해의 게임에 선정됐다. 물론, 모든 게임이 카르카손과 같은 인기를 구가한 것은 아니다. 몇몇 작품은 판매량은 늘었으나 카르카손과 같이 역사적인 히트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과거 수상작들 전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기에 심사에서 어떤 기준이 있는지 경향을 분석하기도 어렵다. 다른 특징을 가진 보드게임들이 수상하는 것은 위원회의 구성원들이 계속해서 변경되기 때문이다.

위원회 구성원의 변경은 곧 어떤 기준으로 게임을 보는지가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준이 조금씩 달라지므로 시기에 따라 유행과 수상 부문도 달라진다. 그렇기에 판단 기준은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주로 온 가족을 대상으로 선정되는 경향은 확실히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어떠한 경향을 보이는지 알 수 없기에 수상은 의외의 곳에서 나오기도 한다. 하이델베어에서 체코의 회사와 협력하여 2016년 출시한 ‘코드네임’이 대표적이다. 몇 번의 실패로 이미 상을 포기했던 하이델베어였기에, 출시 당시 딱 2,000카피만 시장에 내놓았다. 하지만 그 해, 코드네임은 올해의 게임으로 선정된다. 발표자 또한 영문을 모르는 상황이었다.



▲ 수상까지 27년이 걸렸다.

발표자는 자신이 ‘상을 노렸던 행위’를 되돌아보며,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강조했다. 상을 노리는 것은 괜찮으나, 게임의 성공은 거기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교훈이다. 성공적일 수 있는 게임은 수상을 하지 않더라도 많이 판매될 가능성이 존재해야 한다. 그렇기에 상을 일부러 노리지 않고 좋은 게임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좋은 게임을 꾸준히 만들 수 있다면 언제인지는 몰라도 상은 따라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개발자는 자신이 디자인한 게임을 ‘좋은 퍼블리셔에게 보여주고’ ‘게임을 즐기는’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하트무트 코머렐 - "독일 보드게임 디자이너 조합이 걸어온 길"



▲ SAZ 하트무트 코머렐(Hartmutt Kommerell)

독일 보드 게임 디자이너 조합, 슈피랜 오토랜 죠프트(Spiele-Autoren-Zunft, 이하 SAZ)의 대표인 ‘하트무트 코머렐(Hartmutt Kommerell)’은 자신이 몸담은 길드가 걸어온 역사와 함께, 현재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를 공유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부작 협동조합과 같은 국내 조합의 생성과 운영에 영감을 주고자 했다.

과거 독일의 고전 보드게임들은 개발에 참여한 작가의 이름이 표기되지 않은 채 출시됐다. 하지만 19세기 말부터 게임 개발자와 작가의 이름이 박스에 기재되기 시작했으며, 주로 인쇄매체인 책을 출판하는 회사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문화적 물건이라는 연장선에서 출발한 셈이다.

그러나 60년대와 70년대 즈음 보드게임은 문화적 존재에서 상품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3M과 같은 회사들이 저자를 상기하지 않은 형태로 게임을 시장에 내놓았다. 이와 같은 추세는 곧 다른 회사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부터 저자가 없는 게임들이 다시금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임을 탄생시킨 아이디어. 저자의 이름이 없는 상황에서 독일 보드게임 협동조합이 설립됐다. ‘자신들의 이름을 새기지 않는 게임은 출시를 거부하겠다’는 성명이 1991년 10월 17일 독일 에센에서 발표됐다.

여기에는 당시의 유명 작가들인 ‘알렉스 랜돌프’, ‘볼프강 크라이머’, ‘막스 코버트’, 등 당대 유명 제작자들이 이름을 올렸다. 저자의 이름을 박스에 명기하는 동시에 보드게임을 문화적 가치를 지닌 물건으로 만드는 것이 당시 성명의 주안점이었다.




일반적인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출발한 SAZ는 현재 보드게임 업계에 몸담았던 이들을 집행 위원으로 삼고 있다. 게임 디자이너, 작가들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치적인 활동도 전개한다. 대표적인 것이 게임의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로비 작업이다.

이들은 국립 도서관에 보드게임을 비치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독일의 국립 도서관은 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공인된 물건을 수집하기 때문이다. 도서는 물론, 음악 CD와 같은 것들이 실제로 독일 국립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 그렇기에 단체 차원에서 보드게임을 비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도서관에 보드게임이 비치된다면 관련된 인세를 작가들이 받을 길도 열린다. 독일은 책이 대여될 때 작가에게 대여료가 지급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서다. 이를 보드게임에도 적용하여 작가들이 게임 대여를 통해 인세를 얻는 방법도 찾고 있다. 2018년 에센에서 국회의원들과 회의도 진행하며, 정치적 업무를 가진 사람들도 조합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상태다.

또한, 계약서와 관련된 업무도 지원한다. 명문화된 표준계약서와 같은 형태로 제공되며, 작가들이 계약 과정에서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전속 변호사를 통한 법률 자문도 지원한다. 실제 재판에 들어가면 변호사가 나서 법적 문제에 직접적인 도움도 준다. 법과 관련된 상담 및 자문도 진행하기에, 독일의 신생 회사들은 계약서 작성과 관련한 도움을 조합에 요청하기도 한다.




내부적으로는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여 실패를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 컨벤션에서 부스를 내고 있으며, 게임 디자이너 모임을 주최하기도 했다. 모임에는 180명이 넘는 디자이너들이 자리하고, 새 게임을 찾는 수많은 퍼블리셔가 방문하는 자리가 된다.

이외에도 아직 초기 단계지만, 디자이너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과정도 준비하고 있다. SAZ포인트라는 일종의 가이드북을 만들어, 게임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지식을 집약해 배포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프로토타입을 만들 때의 주의점이나 퍼블리셔와의 협력 관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지식이 담겨있다. 외부에서 게임 디자이너를 찾을 경우, 중간에서 이를 전달하는 컨텍 포인트로서의 역할도 SAZ의 업무 중 하나다.




이렇듯 독일에서의 활발한 활동은 EU에 속한 다른 나라로도 전파되어, 국제적 업무로 이어졌다. 이탈리아에서는 SAZ 모임을 개최하여 20명이 넘는 회원이 새로이 참여했다. 이탈리아 지부의 성격을 가지며, 현재는 구성원 수 50명 정도로 성장했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구성원을 모두 합한다면 전체 500명이 넘는 조합원이 속해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지부 형태가 아닌 독립적인 조합을 창설하여 운영 중이다.

그렇다면 국내에도 SAZ가 설립되어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강연자는 EU를 벗어나 같이 다른 나라에도 지부를 세울 수는 있겠으나, 현실적인 부분에서 제한이 있다고 알렸다. 언어와 법 체계가 달라 자치적인 조직을 세우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언어적인 문제가 있어서 이를 먼저 해결해야 하며, 법적인 조언을 요청하기에는 법 체계가 다르기에 현실적으로 도움을 주기 어렵다는 것이다.




강연자는 나라마다 법 체계가 다르다는 점은 국제적인 공조를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한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에서 진행됐던 Twixt 관련 문제다. 당시 원작자인 알렉스 랜돌프는 오스트리아에 있었으나, 미국의 회사가 이를 재출판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미국의 경우 상표권을 회사 측이 가지고 있어 법적인 문제가 없었다. 저작권자인 작가의 룰이나 디자인을 조금 개정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게임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반면, 유럽의 회사들은 게임의 명칭을 이용하여 판매할 수는 있더라도, 그것이 온전한 소유권으로는 이어지지 못한다. 지적재산권마저 오스트리아에 묶여 있는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회사는 법적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킥스타터 펀딩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SAZ는 법률적 도움을 줄 수 없었으나,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부정적인 반응이 펀딩을 중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달러만 의도적으로 펀딩하여 결국에는 펀딩 자체를 무산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후 SAZ는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추가금에 대한 계약을 진행하도록 조합원에게 추천하고 있다. 게임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재판되었을 때, 계약금의 몇 퍼센트를 받는 구조다. 그리고 로열티와 계약서가 제대로 작성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국제적인 퍼블리셔는 물론, 해외에서의 로열티 지급까지 도움을 주는 것으로 영향력을 넓혀 나가고 있다.



▲ 누구에게 권리가 있는가? 라는 질문은 당시 많은 논란이 됐다.



■ 제3회 부산 보드게임 라운드 테이블 현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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