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롤파크 벽화 그린 사람이 누구야? '라이브 드로잉'의 대가 김정기 작가

인터뷰 | 김홍제, 석준규 기자 | 댓글: 38개 |




2018년 겨울, 새롭게 개관된 롤파크를 처음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건 거대한 벽에 그려진 그림이었다. 리그오브레전드에 등장하는 수많은 챔피언과 이를 플레이하는 게이머들, 그리고 가장 시선이 가는 LCK 로고. 그림에 대해선 정말 문외한이지만, 디자인을 전공한 사진 기자에게 이 그림에 대해 물어보니 이걸 밑그림 없이 그냥 그렸다며 정말 대단한 능력이라고 경의를 표할 정도였다.

미술을 전공한 친구에게 물어봐도 '라이브 드로잉'은 노력 뿐만이 아닌 재능의 산물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다 보니 이 그림을 그린 장본인이 궁금했다. 이 그림의 주인공 김정기 작가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훨씬 유명하고, '라이브 드로잉'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작가였다.

김정기 작가는 청와대 사랑채에서 기획 전시를 하기도 하고, 드렁큰 타이거의 마지막 앨범 재킷을 그리고, 프랑스에서 열린 첫 전시회에서는 동양인 무명작가가 첫 전시회에서 판매 수익 3억을 달성한 인물이었다. 다양한 분야와 손을 잡고, 이제는 게임 업계에서도 조금씩 자신의 그림을 알리고 있는 김정기 작가. 도대체 '라이브 드로잉'이 무엇이고, 어떻게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Q. 게임 팬들에게 생소할 수 있는데, 간단히 소개 부탁한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김정기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만화로 등단했다. 출판만화도 해봤고, 웹툰도 1.5세대라고 볼 수 있다. 그림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은 정말 많이 해봤다. 그림, 만화 분야는 물론이고, 영화 콘티 등. 그리고 2007년 우연히 올린 라이브 드로잉 영상 하나로 해외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줬고, 이후 전시나 강의 일도 해왔다.

사실 요즘은 한국보다 외국에 있는 시간이 많다. 대표적으로 미국, 중국, 프랑스. 일본, 캐나다를 많이 방문한다. 국가별로 매니저가 따로 있어 다양한 작업 의뢰가 들어오는 편이다.


Q. 롤파크에 있는 벽화를 처음 봤을 때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미국 라이엇 본사에도 김정기 작가의 그림이 있더라. 라이엇과 인연은 언제부터였나?

소개할 때 말했다시피 나라마다 매니저가 있는데, 미국 매니저가 나에 대한 홍보와 2년마다 나오는 책들을 판매하는 일을 하는 중 라이엇과 인연이 닿았다. 라이엇 외에도 대중분들이 알만한 픽사, 디즈니 등 다양한 곳에서 의뢰가 들어온다.



▲ 라이엇 본사에 있는 김정기 작가의 작품






Q. 그림을 보면 챔피언 하나하나 이야기가 있는 것 같고, 생동감이 넘친다. 먼저 '라이브 드로잉'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달라.

먼저 라이브 드로잉을 하게 된 계기를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 꽤 오래전인데, 부천국제만화전에서 부스 벽 3면을 채워야 했다. 보통 다른 작가분들은 액자를 걸거나 프린트를 붙인다. 그런데 김현진 선생님께서 따로 액자가 없이 3면에 종이를 붙여놓고 무작정 그림을 그려보자고 하셨다.

그 과정들을 그냥 캠코더로 찍고 재미 삼아 유튜브에 올렸는데, 반응이 정말 폭발적이었다. 보통 그림은 완성품만 보지 않나. 결과보다 과정이 더 재밌는 게 '라이브 드로잉'이고, 어떻게 완성되어가는지 직접 보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나의 그림 스타일이 그렇게 어려운 편은 아니다.


Q. 리그오브레전드처럼 게임과 관련된 작업을 할 때는 그 게임에 대한 배경지식도 필요하고, 공부할 게 많을 것 같다.

그렇다. 게임사에서 들어오는 작업들이 어려운 편이다. 사실 나는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다(웃음). 대학생 때 유행했던 게임이 스타크래프트 1이었는데, 주변 지인들이 한번쯤은 다 해볼 때도 나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힘든 작업이지만, 게임 팬들이 봤을 때 이질감이 들지 않도록 작업 전 많은 준비 과정이 있다. 최대한 캐릭터들의 의상이나 무기, 표정 등 디테일함을 살리려 한다.

롤파크 벽화 작업을 처음 의뢰받았을 때, 가로 9미터의 벽이 떡하니 있는데 이를 어떻게 채울지 막막했다. 이에 대해 라이엇 게임즈와 소통하며 콘티를 짜기 시작했는데, 라이엇에서 캐릭터들에 대한 배경 설명, 인물 관계도 등 설명을 해주기도, 내가 물어보기도 하며 지식을 쌓았다.

콘티 작업이 끝나면 먼저 머릿속에 어떻게 그릴 것인지 완성작을 상상한다. 그리고 바로 작업에 들어가는데, 롤파크에 있는 두 개의 벽화는 5일씩 총 2주 정도 걸린 것 같다. 온전히 그림을 위한 재질은 아니다 보니 작업할 때 마카가 잘 마르지 않아 힘들었던 기억도 있고, 머릿속에 이미지를 저장하고 작업을 하는데, '오늘은 이정도까지 해야지'라고 정하고 오지만 마음처럼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웃음).

Q. 리그오브레전드에는 수많은 챔피언이 등장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챔피언이 있는지?

애니와 징크스다. 캐릭터 자체가 흥미롭다. 라이엇 게임즈 본사에 갔을 때도 로비 쪽에 커다란 곰인형이 있었는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징크스는 딱 보자마자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 롤파크 벽화의 첫 콘티







Q. 작업할 때 어떤 것들이 힘든가?

실수할 때도 많고, 전체적인 틀은 벗어난 적은 없긴 해도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그대로 100% 구현한 적은 한번도 없다. 라이브다 보니 실수도 나오기 마련인데, 그 실수를 무마시키는 작업에서 머리를 잘 써야 한다. 물론 보는 분들은 이게 실수인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해낸다. '있어 보이게' 무마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작업을 반복하면서 위기대처 능력도 많이 상승했다.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지만, 바둑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된다. 계속 앞의 수를 내다보고 맞춰나가야 한다. 그리고 보통 소재 하나를 선정해 즉흥적으로 그려나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재봉틀이라는 소재가 있으면 재봉틀을 먼저 그리고, 그거와 연관된 다른 무언가를 계속 하나씩 그려나가며 그림 안에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식이다. 바둑과도 비슷하고, 프리스타일 래퍼들과도 비슷한 맥락이지 않나 싶다. 래퍼들도 스타일이 정말 다양한데, 라이브 드로잉은 프리스타일 래퍼다. 즉흥적으로 하는 작업이 많다 보니 평소에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배워서 머릿속에 저장해놓는 게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 시각적인 저장 능력이 좀 뛰어났다. 유치원 때부터 그림을 입체로 그리기도 했고, 관찰을 정말 많이 했다. 가지고 싶은 신발이 있으면 계속 그려보고 매장에 가서 구경하고. 그래서 그 운동화를 잘 그리게 되면 비슷한 운동화류 그림은 마스터하는 셈이다. 만일 고양이 스케치를 마스터하면 고양잇과 동물들을 그리는 것도 자연스레 다 쉬워지고. 이런 식으로 그림을 그려왔다.

문자적인 기억은 정말 못하는데, 시각적인 기억, 저장은 자신 있다. 문자들도 잘 기억했다면 그림 말고 다른 일을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웃음)


Q. 그러면 어떤 걸 그릴 때 가장 어려운가?

무언가 대상은 아니고, 그냥 내가 모르는 것은 다 어렵다. 앞서 말했지만 내가 그리는 방식이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구현하는 방식인데, 내가 모르면 정말 난감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공부를 하고, 특징을 잘 집어내려 한다. 사람들은 그림 전체를 보고 판단하기보다 그 대상의 특징만 봐도 그게 뭔지 인지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BMW나 벤츠 같은 차를 떠올릴 때 차의 디자인도 중요하겠지만, 그릴의 모양이나 상징적인 엠블럼을 모두 가장 중요하게 떠올리지 않나. 그런 식이다.






Q. 라이브 드로잉 작가로서 김정기의 퍼포먼스도 좋지만, 만화가로서의 김정기도 생각이 난다. 최근 라이엇은 마블을 통해 코믹스를 내기도 하는데, 혹시 라이엇과 협업이 라이브 드로잉을 넘어, 코믹스 혹은 다른 방향으로도 발전될 가능성이 있을까?

언제든 제일 자신 있는 분야다. 실제로 DC나 마블과 함께 일을 많이 하기도 했다. 다만, 실제로 히어로 물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미국이나 유럽을 다니면서 그리긴 하지만(웃음). 작업을 하기 전까지 내가 알고 있는 히어로는 슈퍼맨, 헐크, 스파이더맨, 배트맨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처음 작업 의뢰가 들어왔을 때 데드풀을 그려달라 해서 되게 생소했던 기억이 난다. 만화 쪽은 히어로물보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걸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만 해도 브래드 피트와 모건 프리먼 주연의 스릴러 '세븐'이다.


Q. 이미 이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작가가 있나?

일본 만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세대다. '아키라'라는 만화를 정말 좋아했다. 1988년? 그정도 시기인데, 일본 버블 경제 당시 태어난 '사이버 펑크' 장르를 알린 만화다. '테라다 카츠야'도 정말 좋아한다. 페인터 프로그램으로 큰 영향력을 끼친 작가다. 시로 마사무네의 '공각기동대'나 '애플시드'도 정말 좋아했다. 당시 일본 문화가 한국에 들어오기 쉽지 않은 시대였고, 넘어와도 모든 이름이 한국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아키라도 한국 제목은 '폭풍 소년'이었다.

어릴 때 포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방학 때는 꾸준히 서울에 있는 친척 집에서 생활했다. 명동에 한 번 갔는데, 외국 서적을 파는 곳이었다. 일본 만화 원서가 정말 많았는데, 당시에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날 이후로 용돈은 모두 그곳으로 쏠렸다. 방학이 끝난 뒤에는 포항에서 그나마 가까운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 보수동에 책방골목이 있는데, 지금도 있는 곳이다.



▲ 김정기 작가의 웹툰 'TLT' 작업 당시 원화


Q. 이번 기회로 게임계에서도 이름을 더 알리게 되었다. 앞으로 게임 업계에서 본인이 해보고 싶은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캐릭터 디자인이나 컨셉아트 등에 대한 제안이 들어온 적도 있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많이 해보지도 않고, 즐기지 못해서 쉽게 수락하기 힘들더라. 그래도 게임 업계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있긴 할 것 같다. 그런 오퍼가 온다면 언제든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Q. 지금까지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작업을 했다. 가장 기억에 남거나 어려웠던 작업이 있다면?

물론 있다. 프랑스 앙굴렘에서 전시됐던 위안부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었는데, 정말 어려웠다. 이 작업을 하기 전까지 위안부에 대해 그냥 대중적으로 일반인 정도의 상식만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조금만 잘못돼도 위험 부담이 큰 소재고, 선뜻 수락하기 쉽지 않더라.

그럼에도 주변 지인들은 무조건해야 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어렵사리 수락하고 작업에 들어갔는데, 작업 시기에 일본 NHK에서 이걸 취재 오기도 하고 정말 부담스러웠다. 게임도 마찬가지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내가 모르는 분야를 그릴 때 정말 힘들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게다가 역사적으로 예민한 거였으니. 그리고 조금 있으면 3.1절인데, 100주년 일도 곧 해야 한다. 작업 의뢰는 스케쥴만 맞으면 거의 수락하는 편이라 정말 바쁘다.





Q. 혹시 본인의 발전을 위해 채찍질하는 부분이 있는지?

그림에서 가장 우선시 되는 부분은 나의 재미다. 타인의 평가나 그림에 대한 값을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나의 재미가 제일 중요하다. 내가 재밌어야 좋은 작품이 나오기도 하고, 어릴 때 그냥 안방에 누워서 편안히 낙서하거나 그림을 그린 적이 누구나 있지 않나? 그런 느낌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 나는 아직 그림을 그리는 게 재밌고, 죽을 때까지 이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Q. 마지막으로 게임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하고 인터뷰를 마치겠다.

독자 여러분들, 제가 게임을 좋아해야 하는데(웃음). 게임을 잘 모르지만 관련 정보들은 언제나 보고 있다. 게임을 통해 여러모로 얻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게임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가족은 나만 빼고 다 게임을 좋아해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 얼마 전에도 레지던트 이블2도 샀다. 나는 플레이 하지 않지만, 가족들이 하는 걸 항상 본다. 다만, 일적인 부분에 접목시켜 게임에서 나오는 질감 표현, 투시, 캐릭터들의 느낌, 등 이런 것들을 보며 영감을 얻는다.

게임을 직접 플레이 하진 않아도 언제나 눈여겨 보고 있는 문화고, 앞으로도 게임 업계에서 다른 작품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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