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고릴라의 드럼 솔로 휴먼 콘서트 'APE OUT'

리뷰 | 정필권 기자 | 댓글: 5개 |


▲ 영화 위플래쉬(WHIPLASH) 공식 예고편 중

절정에서 보여줬던 신들린 드럼 솔로가 인상 깊었던 영화, '위플래쉬(WHIPLASH)'를 기억하시나요? 절정에 이르러 주인공 앤드류 네이먼이 보여준 파괴적인 드럼은 당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내면에서의 분노, 자기파괴 등 복잡한 감정이 녹아있는. 그런 음악이었으니까요.

영화에서 주인공 앤드류가 몸담은 밴드는 재즈 곡을 연주하는 빅밴드였습니다. 영화 자체가 재즈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에 개봉 당시 재즈 관계자와 팬들에게 주목을 받았죠. 약동하는 리듬과 즉흥적 연주에 초점을 맞추는 장르, 재즈 말입니다.

아. 왜 게임 이야기부터 하지 않고 영화, 재즈 이야기를 했느냐고요? 그건 에이프 아웃이 재즈를, 특히 드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파괴와 자유. 그리고 즉흥연주라는 측면 모두 재즈가 가지고 있는 특징과 닮아있습니다. 정의야 내리는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재즈가 재즈일 수 있는 대표적인 특징을 말이죠.

그렇기에 이 게임의 주안점은 아트 디자인도 아니고 폭력도 아닙니다. 파괴에서 탄생하는 즉흥적이고 새로운 울림. 단지 그것뿐입니다.



▲ 고릴라가 탈출하는 게임이기도 하고, 재즈 드럼 게임이기도 합니다. 아. 악기는 인간입니다.

재즈가 기존의 법칙을 파괴하는 것에서 시작했듯, 게임은 사운드 측면에서 익히 사용하던 고정관념을 파괴하며 등장합니다. 사운드에서의 고정 관념은 효과음을 지목합니다. 에이프 아웃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효과음을 전부 다 드럼 사운드로 교체했습니다. 아주 작은 아이디어였을지 모르나, 게임 전반적으로는 매우 큰 변화입니다.

흔히 연상되는 타격음이 드럼 소리로 대체되면서, 게임은 활기를 갖습니다. 동시에 게임은 변화합니다. 게임 전체가 하나의 곡 연주라고 친다면, 적을 파괴하고 두드리는 소리는 드럼 라인이 되어, 플레이에 긴장감을 더합니다. 그렇기에 이 시도를 '그저 사운드만 바꾼 것'이라고 평가절하할 수 없습니다.

특히, 재즈에서 드럼이 차지하는 중요도를 생각할수록 그렇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어려운 것이 드럼이지만, 그렇다고 드럼이 없다면 밴드의 음악은 완성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나는 연주, 템포를 만드는 데에는 드럼의 존재가 반드시 요구됩니다. 튀지는 않더라도 매우 중요한 것 그것이 드럼 소리입니다.

이렇듯 에이프 아웃은 기존의 틀을 깬다는 재즈의 정체성을 드럼 사운드로 변용해 받아들입니다. 게임을 하나의 연주로 판단하고, 각 챕터를 한 앨범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여기서 리듬감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로 효과음을 드럼으로 교체했습니다. 플레이어인 고릴라가 인간을 잡아 던질 때, 무언가를 집을 때 등 게임 내에서의 상호작용은 모두 드럼 사운드가 자리합니다. 이는 곧, 플레이어가 빠르게 무언가를 파괴할수록 드럼의 비트가 빨라진다는 이야기입니다.



▲ 적의 빠른 사망 = 빠른 비트

그렇다면 음악에서 드럼 사운드가 속도를 올린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다른 악기의 템포 또한 함께 빨라지기 마련입니다. 하나의 곡에서 리듬을 정의하는 것은 드럼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에이프 아웃도 마찬가지입니다. 파괴의 효과음, 그리고 드럼의 템포가 빨라질수록 다른 소리의 템포도 함께 가빠집니다. 정확하게는 드럼 솔로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기어를 조금씩 올려간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개발사 스스로 '반응형 음악 시스템(Reactive Music System)'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 개념은 '플레이어의 행동에 맞춰서 음악 템포가 변하는' 것에 중점을 둡니다. 사람을 집어 던지는 사이가 줄어든다는 것은 드럼의 템포가 빨라지는 것으로 이어지고, 이에 맞춰 게임의 BGM도 박차를 가합니다. 음악이 숨 가쁘게 흘러갈수록 게임을 플레이하는 우리의 긴장감도 증가하고요. 그리고 스테이지의 끝에서 음악은 숨을 고르고, 긴장은 완화됩니다. 이렇게 한 스테이지. 한 곡에 이르는 드럼 솔로가 끝납니다.


게임은 한 곡조를 한 스테이지로. 그리고 한 챕터를 하나의 앨범으로 구성해뒀습니다. 동시에 하나의 앨범을 사드A와 사이드B로 구분합니다. 반응형 음악과 맞물리면서 각 스테이지는 새로운 비트, 새로운 곡조, 새로운 드럼 사운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천 개가 넘는 드럼 사운드를 녹음할 정도로 개발사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게임이 아니라 하나의 연주라고 한다면,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알찬 구성이죠. 효과음을 드럼으로 바꾼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이 게임은 플레이어의 행동 속도에 따라 템포가 시시각각 변화하는 재즈, 드럼 솔로 콘서트로 마감됩니다.

과대해석이 아니냐고요? 그건 아닐 겁니다. 심지어 드럼이 출발 신호를 울리지 않으면. 그러니까, 스테이지를 시작하고 무언가를 파괴하지 않으면 BGM이 나오지도 않거든요. 무언가를 깨고 부수는 것부터 재즈가 시작되는 셈입니다. 게임은 반드시 무언가를 파괴해야만, 드럼 사운드를 플레이어가 먼저 내야만 연주가 이어집니다.



▲ 무언가를 부수고 나가는 것에서 보통 게임이 시작됩니다.

어찌보면 간단한 아이디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를 실제로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게임 내의 효과음 대부분을 드럼 사운드로 교체한다는 선택지. 그리고 BGM 전체를 드럼으로만 구성한 에이프 아웃은 한편으로는 매우 변태적인 디자인이라고 평할 수 있습니다.

퍼블리셔인 디지털 리볼버가 재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는 설명했지만, 엔딩까지 넉넉잡아 이르는 세 시간 동안 드럼 솔로만 이어지는 게임이기도 하거든요. 재즈에서 사용되는 색소폰, 피아노 없이 오직 드럼. 타악기의 소리만 세 시간을 솔로로 연주하는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게임은 긴장감을 한없이 끌어 올립니다.

긴장감만을 부여하고 플레이어를 채찍질하는 타악기의 사운드는 긴장에 박차를 가합니다. 스테이지가 끝날 때. 그리고 하나의 앨범이 끝날 때. 딱 두 부분에서만 긴장이 잠시 완화될 뿐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앨범. 마지막 스테이지에 이르러서 세 시간을 이어온 드럼 솔로는 끝을 맺습니다.

갖혀있던 우리를 파괴하고 밖으로 나가는 고릴라의 모습과 동시에 파로아 샌더스(Pharoah Sanders)의 'You've Got To Have Freedom' 인트로가 울려 퍼집니다. 게임의 엔딩에 이르러서야 진정한 재즈라고 부를 수 있는 사운드가 이어지는 셈입니다. 게임 전체를 통틀어서 드럼 외의 음악이 나오는 지점은 엔딩이 유일합니다.

이어서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 같았던 긴장이 사라지고 해소의 시간이 10분간 이어집니다. 그리고 동시에 매우 커다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됩니다. '아, 이건 세 시간짜리 재즈 드럼 솔로였다'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죠.



▲ 세 시간에 걸친 긴장이 탁! 하고 풀리는 순간. 그리고 카타르시스가 미쳐 날뛰는 순간.

게임 자체가 적절한 난이도(저도 엔딩까지 두 시간 반 정도밖에 안 걸렸습니다)로 구성되어 있지만, 플레이 도중 계속해서 긴장하게 되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드럼 사운드에서 오는 특유의 긴장감을 두 시간이 넘게 듣고 있게 되니까요. 심지어 게임의 모든 아트가 단색, 단순화되었다는 점도 의도적입니다. 강렬한 색과 사운드는 필연적으로 플레이어의 긴장감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렇기에 엔딩에서의 카타르시스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개발자인 게이브 쿠질로(Gabe Cuzillo)와 맷 보치(Matt boch)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고요. 이 양반들은 엔딩 크레딧 시간도 원곡 길이. 그러니까 10분 6초 정도가 걸리도록 맞춰놨습니다. 보통 크레딧롤이 끝나면 중간에 곡을 끊거나 페이드 아웃하는 방법을 선택할 법도 한데, 그냥 곡 전체를 딱 넣어놨습니다. 드럼 솔로 끝났고, 이제 곡 하나 들어보라는 것처럼요.

저는 여기서 확신을 했습니다. 이 정도면 얻어걸린 것이 아니라 설계라고요. 그리고 개발자들은 천재든 변태든 둘 중 하나는 확실하다고 말이죠. 집착에 가까운 이런 모습은 매우 변태적이면서도 뛰어난 디자인입니다. 동시에, 작은 아이디어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주고 싶습니다. 분명 변태같지만, 저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 엔딩을 장식한 파로아 샌더스의 'You've Got To Have Freedom'

물론, 인디 게임이기에 많은 볼륨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볼륨을 제외하면 완성도나 구성 면에서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단순하지만 가시성은 있는 아트, 파괴를 앞세운 게임 플레이는 최소한 만족스러운 즐거움을 줍니다. 딱 가격만큼 적절한 수준의 타격감과 쾌감이라고 정리하겠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게임의 컨셉이 일관되고 매력적이라는 점입니다. 재즈라는 컨셉을 두고 개발자가 설계한 흐름은 엔딩에 이르러 감탄사를 내뱉게 될 정도니까요. 사람을 죽인다는 폭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재즈'가 가진 틀의 파괴, 흐름, 긴장감에 무게를 둘수록 긍정적인 평가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 폭력? 타격감? 이런건 메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스팀 기준으로 만 육천 원이라는 가격. 딱 어디 재즈바의 입장료 가격입니다. (음료는 별도) 이 티켓 값으로 개발자인 게이브 쿠질로와 맷 보치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연주를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변태적인 디자인으로 마감된 에이프 아웃은 다른 게임에서는 볼 수 없는 방식으로, 기존의 게임 사운드가 보여줬던 틀을 몇 겹은 벗어버린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인디 게임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컨셉이 없었다면 에이프 아웃은 그저그런 아류작 게임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개발자의 생각이 녹아들었는가를 기준으로 제시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규모가 작은 게임이 인디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발자의 컨셉과 방향성, 메시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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