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게임이 쉬워진다, 미래가 바뀐다

기획기사 | 원동현 기자 | 댓글: 33개 |



요즘 게임 참 어렵다. 참 복잡하다. 이제 겨우 서른 남짓인 나이인데도 가끔 게임이 낯설게 느껴진다. 왜 그리 '딜'하는 게 어려운지, 시스템은 왜 그리 꼬여있는지, 성장 요소는 무궁무진하다 못해 미로같이 느껴지는지, 참 그렇다.

비단 RPG만이 아니다. 모든 장르의 룰이 점점 난해해져 간다. 변화는 했지만 마냥 좋은 방향인지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새로움을 추구하고, 이에 다양한 작품이 나오는 건 자연스럽고도 올바른 흐름이지만 '과도한 뒤틀림'을 '세련됨'으로 착각하는 시대가 온 것은 아닌지 우려가 문득 들곤 한다.

과거로 돌아가보자. 클래식 게임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테트리스의 시절까지 말이다. 테트리스는 서사가 배제된 전형적인 규칙에 의한 게임으로 퍼즐에 의한, 퍼즐을 위한 게임이다. 각기 다른 모양의 퍼즐을 쌓아 일자로 배열해 없앤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 규칙은 수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랑받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단순하기 때문이다. 단순하기에 잊히지 않고, 단순하기에 사랑받았다.


틀어져버린 게임의 문법... 대체 왜?
새로움에 대한 지나친 욕심

최근 몇 년 간 게임 산업은 고도화 과정을 거치며 여러 차례의 탈피를 해왔다. 게임 산업이 발전하며 게임의 제작 방식 역시 고도화되기 시작했고, 여기에 많은 문법적인 변형이 이루어진 게 사실이다. 자연스레 장르가 구분 지어지고, 새로운 장르가 태어나기도 하며, 때로는 이색적인 시스템이 기존의 정석을 대체하기도 한다.

하지만 때때로 지나친 변형은 이질감을 낳는다. 여기에 수많은 개발사가 경쟁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며 더욱 ‘다르고’, 그리고 더욱 ‘독창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내며 게임의 문법은 점차 복잡하게 변해갔다.

특히 2000년대 중반부터 MMORPG의 문법이 기타 장르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현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완전히 독립되어있던 게임들마저 RPG 특유의 성장 요소 등이 도입되며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건 분명 고무적인 일이지만, 문제가 생겼다. RPG적인 요소가 장르를 불문하고 너무나 남용되어버린 것이다.



▲ 공평성이 침해된 게임에는 어떤 종류의 재미가 남을까?

기본적으로 게임의 가장 기본 요소는 공평성이다. 이는 침해되서는 안 될 성역에 가깝다. 간단한 퍼즐, 아케이드, 격투 등 실력으로 자웅을 겨루던 장르에서는 더욱이 민감하게 여겨질 문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다수 장르에 RPG적인 요소가 도입되며 문법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모바일이라는 거대한 트렌드가 불어닥치며 사업적 요소마저 끼어들었다. 성역이 무너진 것이다.

그렇다면 재미가 없어진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또 다른 재미는 분명히 생긴다. 불공평함에서 유발되는 우월함의 재미다. 이는 기본적인 놀이의 재미를 벗어나 인간의 말초적인 본능을 건드리는 장치다.

조금 더 레벨이 높으면 남들보다 유리하게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고, 약간의 현금을 투자하면 남들이 고생하는 스테이지를 손쉽게 넘어갈 수 있다. MMORPG 장르 고유의 성장 동력이었던 우월함에 대한 욕망이 타 장르에까지 전파된 것이다.


돌아가자, 태어난 곳으로
우리가 잊고 있던 본질

사실 피곤하다. 위와 같은 게임은 사람을 어느 순간 지치게 만든다. 우월함에 취해있던 순간이 지나가면 우울함이 찾아오고, 말초적인 재미에 익숙해진 뇌는 또 다른 자극만을 찾게 된다.

이러한 흐름에 대한 반동 탓일까? 최근 이를 거스르는 흐름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복잡하기만 한 오늘날 게임들 속에 쉽고 또 쉽게 만들어진 청량제 같은 존재들이 빛난다. 그렇다고 깊이가 얕은가? 그렇지도 않다. 놀이라는 본질에 가장 충실한, 우리가 잊고 있던 순수한 재미를 그대로 담아낸 작품들이 점차 떠오르고 있다.

가장 먼저 예를 들고 싶은 건, 모 회사에서 개발한 모바일 퀴즈쇼 게임이다. 해당 게임은 지난 1월경 진행된 짧은 테스트 동안 무려 14만 명이 참여하는 등 유저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끈 바 있다.

기업의 유명세와 쏠쏠한 상금 등 여러 가지 흥행 요인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강력하게 작용했던 건 '간단한 시스템'이었다. 삼척동자도 알만한 가위바위보라는 간단한 놀이를 빠른 템포로 진행해 최후의 1인을 가린다는 시스템은 매우 직관적이고 동시에 효율적이다. 소위 '하이퍼 캐주얼 게임'이라 부를만한 모습이었다.

해당 기업 대표는 SNS를 통해 "이것이 게임인가 싶을 정도로 가벼운 게임들을 확대할 예정"이라 밝힌 바 있다. 동시에 2019년 기업의 핵심 키워드를 '대중'으로 잡기도 했다. 하이퍼 캐주얼 게임이 올해 대중들에게 어필할 차세대 전략임을 시사한 것이다.

실제로 이 전략은 틀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19년 들어 게임업계에 완전히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스팀에 출시된 원버튼 리듬 게임, 고전 퍼즐 게임에 생존 요소를 접목 시킨 배틀로얄 게임, 그리고 간단한 조작으로 깊이 있는 전략성을 선보인 유명 MOBA 게임의 커스텀 맵 등 간단함의 미덕이 발휘된 작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시대가 또 다른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미래의 모두는 게이머일지 모른다
오늘은 대국적인 '게임화'의 첫날일까?




유행은 돌고 돈다 했던가. 비교적 역사가 짧은 게임 산업 역시 한 차례 전환기를 맞이할 시간이 다가온 것으로 보인다. 복잡해진 문법을 재정비하고, '정석'을 다시금 되새길 차례다. 놀이의 순수한 재미는 무엇인지, 정석은 어째서 정석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정석은 언제나 살아남는다. 어떤 분야에서든 정석이란 시대를 초월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정석에서 멀어진 너무나 멀어진 변수는 때 아닌 역풍을 맞기 십상이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물론, 변수는 변수만의 가치가 있고 이를 즐기는 사람들 역시 꾸준히 존재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지칠대로 지쳐버린 '대중'은 쉬운 놀이를 찾아가리란 것 역시 분명하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자면, 이러한 '쉬운 게임'으로의 회귀는 또 다른 사회적 현상을 야기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언급되어온 '게임화'의 연장선이 될 수 있다. 실제로 현재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디지털 콘텐츠에는 대다수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교통 상황을 알려주는 유명 어플은 운전자의 주행 스타일을 체크해 점수를 매겨 시각적으로 노출해준다. 개인의 운전 실력이 일종의 '스코어'가 된 것이다. 또한 이 '스코어'에 따라 보험금을 할인받기도 하는 등 분명한 '보상' 역시 존재한다.

또한, 유명 IT 기업의 전자 시계는 꾸준한 운동을 할 경우 시각적인 효과와 함께 가상의 메달을 부여한다.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게임화'를 적용한 것이다.

이처럼 하이퍼 캐주얼 게임의 미래는 대국적인 '게임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모든 것이 가볍게 즐기는 게임처럼 변하는 시대, 오늘은 그 시대의 첫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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