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덕 겸임교수 "한국 게임에는 테마가 없다"

게임뉴스 | 박광석 기자 | 댓글: 143개 |


▲ 남기덕 가천대학교 게임대학원 겸임교수

해외에서 만들어진 AAA급 명작 게임들을 재밌게 즐기다 보면, 가끔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게임을 만들지 못하는 걸까?'라는 의문을 갖게 될 때가 있습니다. 국내의 게임 개발자들도 유저들과 똑같이 명작이라고 불리는 해외의 게임들을 플레이하고, 똑같은 생각을 하며 고민할 텐데 말입니다.

지난 8일, 광주글로벌게임센터에서 개최된 서바이벌 오픈 세미나에 참석한 가천대학교 게임대학원의 남기덕 겸임교수는 그 이유가 '테마의 부재'에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게임을 만들기 전에 먼저 자신만의 테마를 확고히 하지 않으면, 그 결과물은 유저들에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한다는 것이죠.

테마는 모든 게임 디자인 과정의 가장 기본적인 축이자 중심입니다. 테마가 정해지지 않으면 캐릭터는 물론, 스토리부터 세계관, 게임플레이도 쉽게 정해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테마가 확실하면 캐릭터부터 스토리, 세계관과 게임 플레이의 방향성까지 모두 자연스럽게 정할 수 있게 됩니다.



▲ 게임 디자인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잊고 있지는 않은가?



■ '테마'란 무엇인가?

문학과 소설 등 게임 이외의 연구에서 테마는 '작품에서 최초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정의되고 있습니다. 영국의 작가이자 비평가인 Percy Lubbock은 '테마를 발견하는 능력은 작가가 갖춰야 하는 가장 기초적인 재능'이라고도 말했죠.

한편 게임 연구에서 테마는 일정한 이미지와 방향성을 이끌어내는 열쇠가 되는 말과 문장'으로 해석됩니다. '게임 디자인 원리'의 저자 웬리 디스페인은 "게임의 테마는 게임 디자인 중에 특히 중요한 프로세스이고, 강력한 테마는 좋은 게임 디자인의 중추가 된다"며 테마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정리하자면, 테마는 게임을 통해서 개발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된 생각 또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테마와 소재의 차이를 확실히 구분해서 이해해야 하는데요. 예를 들어 '공중전'이나 '전투'라는 구분은 소재이고, 이 소재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거나 단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혹은 '전장에서도 사랑이 꽃필 수 있다'를 이야기한다면 이것은 테마가 됩니다.

남기덕 겸임교수는 이처럼 확실한 테마가 있다면 모든 사람, 개발사가 각각 다른 매력을 가진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결국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똑같은 게임만 양산된다며, 자신이 한국 게임을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동일한 소재를 가지고도 다양한 테마를 만들 수 있다



■ 미디어에 수준 차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



▲ 책이나 영화의 메시지는 고상하고, 게임이 주는 메시지는 천박하고 하찮은 것일까?

살아오면서 인생을 바꿀 정도로 깊게 감명을 받은 책이나 영화가 있느냐는 질문은 회사의 면접 같은 곳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질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에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대답하죠. 하지만 책과 영화 대신 감명 깊게 즐긴 게임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남기덕 겸임교수는 이러한 차이가 바로 '테마'에서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인생에 영향을 줄 정도로 큰 감동을 주는 어떤 것이 있다면, 이는 미디어의 수준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작품 자체에서 주는 메시지에서 기인하게 됩니다. 그는 게임이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게임에서 사용되는 메시지가 책이나 영화보다 역사가 짧은 만큼 아직 깊이가 부족할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때 그 간극을 메꿀 수 있는 것이 바로 '테마'입니다.

남기덕 겸임교수는 개발자도 항상 게임을 만들 때 "그냥 돈 벌고 성공하고 싶어서"가 아닌, 유명한 영화감독과 디렉터들처럼 자신의 작품에 자부심을 품고 특정한 메시지를 담고자 노력해야 한다며, 게임 디자인은 '테마'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 자신의 작품에 '투머치토커'가 될 수 있어야 한다



■ 테마는 시리즈와 프랜차이즈로 계승된다

모든 미디어는 시리즈, 그리고 프랜차이즈 형태로 발전하면서 테마를 계승하고, 강화해나갑니다. 여기서 '시리즈'는 같은 종류의 연속된 기획물로, 동일한 제목에 넘버링 또는 부제를 붙이는 작품들의 묶음을 뜻합니다. 반면 '프랜차이즈'는 시리즈보다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며, 한 미디어 내의 시리즈물을 포함하여 하나의 줄기를 통해 다양한 미디어로 확장된 모든 작품을 통칭합니다. 해리포터와 원피스, 포켓몬과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영화와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 상품 등으로 확장되는 프랜차이즈

남기덕 겸임교수는 미국과 일본의 게임 시장은 서로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시리즈와 프랜차이즈 게임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점은 동일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06년부터 2018년까지 최다 GOTY로 선정된 작품들을 보면 모두 시리즈, 또는 프랜차이즈 게임들입니다.

또한 프랜차이즈 작품들을 만든 세계적인 PD와 디자이너들을 보면 모두 자신만의 테마를 뚜렷하게 가지고 있으며, 개발하는 작품마다 이를 일관되게 부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예로 심시티와 심즈 시리즈를 만든 게임 디자이너 윌 라이트는 '소통'이라는 테마를 자신의 게임에 계속 담아왔는데요. 심시티에서는 세상과의 소통을, 심즈에서는 인간과의 소통, 그리고 스포어에서는 생명과의 소통을 담았습니다. 만약 그가 새로운 게임을 만든다면, 이번에도 무언가와의 소통을 이야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세계적인 개발자들은 자신만의 테마를 뚜렷하게 가지고, 자신만의 색을 만들었다



■ 게임 테마의 '11가지 특성' 이해하기




남기덕 겸임교수는 게임에서 테마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게임 테마의 11가지 특성을 이해하고 적절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11가지의 특성은 각각 '감동, 공감, 구체, 단일, 독창, 명확, 방향, 일관, 집약, 철학 ,통합을 뜻합니다.

이어서 그는 한국과 미국, 일본에서 개발된 세 개의 타이틀로 진행된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소개했습니다. 실제 유저들에게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한 후, 게임이 가지는 공감성과 통합성, 방향성, 일관성을 채점하도록 한 것이죠. 실험에 사용된 타이틀은 각각 '엘더스크롤5: 스카이림', '파이널판타지10', 그리고 한국의 모바일 게임 '레이븐'입니다.

비교분석 결과, '파이널판타지10'은 방향성에 대한 표현 정도가 특히 높은 평가를 받았고, '엘더스크롤5'는 공감성에 대한 표현 정도가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는 선형적인 스토리를 주로 추구하는 일본 게임, 그리고 세계관을 먼저 만든 후 오픈월드를 구성하는 미국게임이 추구하는 점과 그대로 일치하는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레이븐은 해당 실험에서 다른 두 게임보다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는데요. 그 이유는 테마의 특성들을 효과적으로 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남기덕 겸임교수는 "게임의 테마가 효과적으로 표현되지 않으면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한 시리즈나 프랜차이즈 게임으로 발전하기 힘들고, 한국 게임들이 이러한 부분에서 약세를 보이고 있다"며, 앞으로 시급하게 개선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자신만의 테마를 찾아보자

위대한 테마는 절대 타인이 알려주지 않습니다. 게임 개발자들은 게임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남기덕 겸임교수는 1년, 길게는 5년이 걸리더라도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게임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지 결정하려면 우선 개발자 스스로가 인간, 그리고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결국 테마는 인간과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궁금증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죠.

처음부터 무거운 메시지나 사회적 비판을 담으려 하지 말고 유치하거나 가벼운 발상부터 시작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은 아케이드 게임 '무시킹'이 아이들이 밖에서 곤충을 채집하며 컸으면 좋겠다는 아버지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된 것처럼, 조금만 고민해보면 비록 거창하지는 않을지라도 자신만의 훌륭한 테마를 찾을 수 있다고 조언하며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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