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신뢰가 무너졌다" 위기의 게임 크라우드 펀딩

기획기사 | 윤홍만 기자 | 댓글: 24개 |



최근 게임 크라우드 펀딩에 대한 시선이 싸늘해지고 있습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하나는 게임의 퀄리티가 눈에 차지 않기 때문이죠. 아무래도 펀딩을 할 때는 원화라던가 기획 등 전반적으로 좋은 면만 보여주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실제 개발되는 게임은 그렇지 않죠. 크라우드 펀딩 특성상 소규모 개발인 경우가 많기에 실제로는 퀄리티가 좋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비단, 중소 개발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게임 크라우드 펀딩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마이티 넘버9’의 경우 록맨의 아버지, 이나후네 케이지가 개발했음에도 불만족스런 퀄리티를 보여줬으니까요.

다만 최근에 게임 크라우드 펀딩의 신뢰를 떨어뜨린 건 퀄리티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근본적인 요인이 따로 있죠. 바로, 후원금을 사용하는 방법부터 개발 완료 시기까지 전적으로 개발자에게 일임한다는 부분입니다. 기본적으로는 개발 과정을 후원자들에게 알려주도록 권고하고 있으나 강제가 아니기에 잘 지켜지지 않을뿐더러 최악의 경우에는 그대로 잠적하는 사례도 더러 발생하고 있죠.

자금에 어려움을 겪는 인디 및 중소 개발사의 마중물이랄 수 있는 크라우드 펀딩입니다. 팬들과 함께 만들어간다고 할 수 있기에 그 어떤 것보다도 신뢰가 중요하죠. 하지만 이러한 신뢰를 저버린 행위에 게임 크라우드 펀딩도 점점 보기 힘들어진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프로젝트들이 후원자들의 신뢰를 저버렸을까요. 대표적인 사례들을 몇 건 가져와봤습니다.


알케미스트
2013년 9월 1일 펀딩 시작 / 8,025,560원 모금





가장 오래도록, 그리고 아직까지도 소식이 없는 대표적인 프로젝트라고 하면 레이윈(LAYween)의 ‘알케미스트’를 들 수 있습니다. 연금술사를 꿈꾸는 소녀 유니가 할머니께 물려받은 상점을 운영하고, 여러 지역을 모험하며 왕궁 연금술사가 되기 위해 성장하는 이야기의 게임이죠. 2013년 9월 1일 텀블벅을 통해 펀딩을 시작했으며, 141명의 후원자가 참가해 목표액 500만 원을 돌파, 최종적으로 800만 원 이상이 모였을 정도입니다. 당시에는 생소했던 크라우드 펀딩이었음에도 성공적으로 모금된 사례였죠.

프로젝트 역시 초창기에는 꾸준히 후원자들에게 개발 현황을 공개하는 등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개발 중간에 방향성을 선회하면서 삐끗하기 시작했죠. 발매일을 연기했을 뿐 아니라 어느덧 개발 현황을 공개하는 것 역시 뜸해졌습니다. 그리고는 시간이 더 지나가 개발 현황을 공개하는 일 역시 사라져버렸죠.



▲ 해당 소식을 끝으로 개발현황은 끊긴 상황이다

현재 ‘알케미스트’ 프로젝트 개발자가 올린 가장 최신 소식은 2년 전에 올린 글입니다. 지금까지 프로젝트가 미뤄진 이유에 대한 설명을 한 글로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개발 중이며,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내용으로 끝을 맺고 있죠. 다만, 문제는 후원자들의 신뢰를 되돌리기엔 턱없이 부족한 내용이란 점입니다.

해당 글 말미에 적힌 게임 퀄리티에 대한 자존심이 있기에 프로젝트가 보여줄 정도가 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공개하지 않을 예정이란 부분도 그렇죠. 지금에라도 꾸준히 소식을 공개해도 모자랄 정도인데 개발자 본인이 내키면 소식을 알린다는 부분은 후원자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후원을 시작하고 이제 6년 차에 들어선 ‘알케미스트’입니다. 분명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장인 정신으로 개발하고 있는데 알아주지 못한다고 말이죠. 하지만 분명한 건 의도가 어땠든 간에 그 괴로움은 후원자의 몫이 됐다는 부분입니다. ‘알케미스트’측이 개발사와 후원자 모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길 바랍니다.


더 스톰핑 랜드
2013년 5월 7일 펀딩 시작 / 11만 달러(한화 약 1억 2천만 원) 모금


공룡, 생존, 그리고 멀티플레이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더 스톰핑 랜드’는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하자마자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단순히 게이머가 좋아할 요소가 맞아떨어졌을 뿐 아니라 나름의 고증을 살린 공룡의 디테일도 큰 관심을 받아서 4천 명이 넘는 후원자가 모였을 정도입니다. 개발 역시 초기에는 순조롭게 진행됐죠. 업데이트도 꾸준했고 펀딩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는 스팀 얼리엑세스로 출시되기도 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는 프로젝트였습니다.

하지만 2014년 8월 무렵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언리얼 엔진3로 개발하고 있던 걸 돌연 언리얼 엔진4로 재개발하겠다고 밝힌 거였죠. 그래도 당시에는 기대하는 반응이 더 컸습니다. 시간이 걸릴지언정 더 좋은 엔진으로 재개발하겠다는 문제랄 것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때를 기점으로 업데이트에 대한 얘기가 뚝 끊기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먹튀 의혹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9월 2일부로 아예 스팀에서 내려가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죠. 후원자들은 당황했고 환불해달라는 단체 항의가 이어졌습니다.




여기서부터 ‘더 스톰핑 랜드’는 묘한 행보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스팀에서 게임이 내려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상품 페이지가 부활하더니 이내 판매가 재개된 거였죠. 새로운 공룡의 모델링을 공개하고 기존 공룡을 리모델링하는 등의 변화도 있었습니다. 뭔가 석연찮은 부분이 있었지만 이러한 모습에 후원자들과 게이머들 역시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새로운 패치 노트도 함께 올렸기에 한 순간의 해프닝으로만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얼리엑세스를 했음에도 한달 이상 업데이트를 방치하더니 종국에는 개발자중 한 명이 “킥스타터를 담당한 메인 개발자인 알렉스 펀도라(Alex Fundora)와 연락이 끊겼다”고 밝힌 거였습니다. 실제로 이후 수많은 개발자들이 월급도 못 받았다고 밝히며, ‘더 스톰핑 랜드’는 사실상 끝났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더 스톰핑 랜드’는 이후 공식 홈페이지의 서비스가 중단된 걸 시작으로 스팀 상점 페이지에서도 내려가며 먹튀 역사의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후원자들에게는 상처만을 남기고 말이죠.


언성 스토리(Unsung Story)
2014년 1월 14일 펀딩 시작 / 66만 달러(한화 약 7억 5천만 원) 모금




해외에서 후원자들의 신뢰를 배반한 게임 크라우드 펀딩의 대표 사례로는 역시 이 ‘언성 스토리’를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스퀘어 에닉스에서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 베이그란트 스토리, 파이널 판타지12 등을 개발해 명성을 얻은 마츠노 야스미가 개발에 참여하며 게이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프로젝트죠.

하나의 게임을 성공해도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데 수많은 게임을 성공했으니 당연히 게이머들이 기대한 바 역시 컸을 겁니다. ‘언성 스토리’가 킥스타터를 통해 펀딩을 하자 수많은 후원자가 몰려들었고 66만 달러(한화 약 7억 5천만 원)라는 거금이 성공리에 모였을 정도입니다. 마츠노 야스미의 명성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출시 예정 일자를 훌쩍 넘기고서도 게임은 나올 생각이 없었죠.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7년 8월에는 모든 작업물을 리틀 오빗이라는 회사에 넘긴다고 발표합니다. 그러면서 메인 개발자였던 마츠노 야스미는 진작에 개발에서 손을 뗀 상태라는 것도 함께 알려집니다. 후원자들의 신뢰를 배신한 행위였죠.



▲ 후원을 한 이유에는 분명 마츠노 야스미라는 이름을 믿고 후원한 게이머도 있었을 겁니다



▲ 기획과 설정은 그럴듯했습니다만... 문제는 그것만 그럴듯했다는 거죠

현재 ‘언성 스토리’는 리틀 오빗의 손을 통해 개발 중에 있습니다. 다만, 개발과는 별개로 이 사태를 후원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다른 문제겠죠. 이런 행동은 얼핏 사기와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분명 후원자들이 후원을 할 때는 다른 무엇보다도 마츠노 야스미의 이름을 보고 한 걸 텐데 그 마츠노 야스미가 더는 개발에 참여하지 않으니까요.

결국, ‘언성 스토리’는 이나후네 케이지를 비롯해 유명 개발자의 크라우드 펀딩이 무조건 잘 되는 것만은 아니란 걸 몸소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 리틀 오빗에서 개발 중이지만, 이미 떠난 신뢰는 복구하기 요원해 보입니다


프로젝트 피닉스
2013년 8월 9일 펀딩 시작 / 100만 달러(약 11억 원) 모금




이번에 소개하는 ‘프로젝트 피닉스’는 여러모로 ‘언성 스토리’와 비슷하게 흘러간 프로젝트입니다. 디아블로3를 비롯해 발키리 프로파일, L.A. 느와르,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등 굵직한 게임들을 개발해온 실력자들이 모여서 시작한 크라우드 펀딩이었죠. 당연히 펀딩이 잘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입소문을 타고 수많은 후원자가 모였고 목표액 10만 달러(약 1억 1천만 원)을 아득히 뛰어넘어 100만 달러(약 11억 원)라는 금액이 모였을 정도였죠.

물론, 단순히 개발자의 명성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매력적인 설정과 원화 등도 펀딩 성공에 힘을 보탰으니까요. 하지만 그뿐이었습니다. 윈도우, 리눅스, 맥, PS4, PS Vita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개발한다고 호언장담한 것과 달리 이렇다 할 개발현황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보여준 건 어디까지나 설정과 원화가 전부였던 거죠.



▲ 이때까지만 해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새로운 명작이 탄생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메인 개발자인 히로아키 유라가 ‘프로젝트 피닉스’를 개발 중 다른 개발사를 설립하더니 ‘타이니 메탈’이라는 게임을 출시한 거였죠. 후원자들의 불만이 폭발했음은 불 보듯 뻔했습니다. 당장 ‘프로젝트 피닉스’ 개발현황을 공개해도 모자랄 판이었으니까요. 여기에 ‘타이니 메탈’이 ‘프로젝트 피닉스’를 통해 모은 돈으로 개발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그러나 히로아키 유라는 오히려 강경하게 대응하기 시작합니다.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후원자들에게 되려 “제발, 개발현황에 대해서 좀 그만 물어봐. 이제 한계점에 다다랐어(please, don't beat me up this update. I'm almost at my breaking point)”라고 말하며,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때까지도 ‘프로젝트 피닉스’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내놓지 않았는데 말이죠.



▲ ‘프로젝트 피닉스’ 개발 도중 출시한 ‘타이니 메탈’

‘프로젝트 피닉스’는 여전히 지금도 개발 중이라고만 알려져 있습니다. 후원자들의 환불 요청도 거절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드문드문 공개되는 거라곤 여전히 원화와 음악 정도뿐입니다. 정작 중요한 실제 게임에 대한 건 여전히 베일에 감싸여 있습니다.

햇수로만 이제 6년차에 돌입한 ‘프로젝트 피닉스’입니다. 과연 제대로 나올 수나 있을까요? 아니, 정말 개발 중인 건 맞을까요? 100만 달러, 대형 게임을 개발하기엔 적은 금액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코 적기만 한 금액은 아니죠. 그리고 거기에는 후원자들의 신뢰까지 담겨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프로젝트 피닉스’의 속내를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 개발 중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여전히 그 실체는 베일에 싸여있습니다


신뢰를 잃기는 쉽지만
회복하긴 어렵다

현재 게임 크라우드 펀딩 상황을 보면 신뢰를 잃기는 쉽지만 회복하긴 어렵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물론,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약속마저도 지키지 않았으니까요. 단순히 인디 개발자라서, 중소 개발사라서 개발하느라 바쁘다고 하기엔 석연찮은 변명일 뿐입니다.

아마 그렇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게임 크라우드 펀딩 사례를 점점 보기 힘들어졌죠. ‘웨이스트랜드2’,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 등을 탄생케 했던 그때와 비교하면 초라할 정도입니다. 이렇다 할 게임 크라우드 펀딩 소식이 들려오지 않을뿐더러, 게이머들의 시선 역시 곱지 않습니다. 기약 없는 기다림, 실망스런 퀄리티가 불러온 나비효과입니다.

다만, 전부 그렇지는 않다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 같습니다. 악마성 시리즈를 만든 이가라시 코지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개발 중인 ‘블러드스테인드’ 처럼 준수한 퀄리티의 게임도 있으니까요.


현실에선 봄이 왔건만 먹튀와 잠적, 빈약한 퀄리티의 프로젝트로 인해 겨울을 맞이한 게임 크라우드 펀딩입니다. 게이머들 사이에선 이제 크라우드 펀딩을 하는 건 돈을 시궁창에 버리는 셈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정도로 그 인식이 안 좋아졌죠. 여러모로 개선의 순간이 다가온 셈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최근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스스로 자성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부분입니다. 와디즈의 경우 게임 크라우드 펀딩은 아니지만, 진물 안경 사건을 통해 후원금을 전달하는 방식의 변화를 예고한 바 있습니다. 개발 완료 후 제품을 발송하더라도 30일 혹은 60일까지 제품의 품질과 상태를 점검한 후에야 후원금을 전달하는 방침을 도입하기로 한 겁니다. 프로젝트에서 소개한 상품의 퀄리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조잡한 퀄리티의 상품을 받았을지라도 눈 뜬 채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후원자 입장에서는 좋은 변화라고 볼 수 있죠.

다만, 이 방법도 완벽한 건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크라우드 펀딩을 하는 개발사의 경우 당장 자금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개발하는 데 돈이 필요해서 크라우드 펀딩을 했건만 개발을 완료해야 후원금을 전달한다는 건 어찌 보면 모순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 와디즈는 후원금 전달 방식의 변화를 예고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가 후원자들을 위한 대응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행보로 보입니다. 이제 남은 건 프로젝트 당사자들의 변화입니다. 지금까지처럼 계속 소통이 아닌 통보 방식의 일방적인 행보가 계속되면 점점 후원금을 받는 방식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크라우드 펀딩을 받기 점점 어려워진다는 얘기죠.

프로젝트 당사자와 후원자가 상생하기 위해 탄생한 크라우드 펀딩. 이제는 잃었던 신뢰를 되찾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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