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온라인, 기억하세요?

인터뷰 | 박태학 기자 | 댓글: 20개 |
박병용.

돈키호테 온라인 개발자.


내게는 그렇게 기억된 사람이다. 지난 2007년, 그는 아트와 사운드, 서버, 클라이언트까지 모두 혼자 만든 '돈키호테 온라인'을 선보였다. 다른 사람 의견 한 번이라도 들었다면 절대 그렇게 나올 수 없는, 그 특유의 테이스트로 가득한 작품이었다. 아래 영상을 보자.


'돈키호테 온라인' 오프닝 영상


요즘 기준으로도 특이하다.

혼자서 다 만들었다고 박병용이 천재, 역대급, 괴물 개발자라는 건 아니다. 돈키호테는 1인 개발 온라인 게임이었기에 한계점도 명확했다. 콘텐츠가 부족한 게 치명적이었다. 유저들의 관심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 이후 한동안 박병용이란 이름을 들어볼 기회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천재라기보단 괴짜나 '기인(奇人)'에 가까운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한물 간 개발자인 줄 알았던 그가, 약 3주 전 '네코포차'라는 게임을 들고 뜬금없이 복귀 소식을 전했다. SNS로 출시 소식 듣자마자 든 생각. '뭐? 박병용? 이 사람 아직도 혼자 게임 만들고 있었어?'

다음날 바로 인터뷰했다. 인터뷰 도중 자꾸 이야기가 산으로 갔고, 그날 내가 적은 건 오프 더 레코드 분량만 90% 정도 되는 인간 박병용 '보고서'에 가까웠다. 당장 내일 모레 GDC 출장가는 날이라, 2주 후 또 만나기로 약속했고, 그렇게 다시 한 번 더 인터뷰를 진행했다.

스스로는 '사람 만나는 것 좋아하고, 밝은 게임 좋아한다'지만, 실제로 만난 그는 어딘지 모르게 일반인과는 다른 분위기를 풀풀 풍겼다. 기자로 일하며 여러 인디 게임 개발자를 만나봤지만, 이런 유형은 없었다.

뭐, 비 내리는 골목 구석에서 풍기는 생선 비린내 전달하려고 게임 만드는 개발자가 어디 흔한가.

그러니까 지금부터 하는 박병용 이야기는 많은 유저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기대작 관련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요, 현직 게임 개발자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가 담긴 건 더더욱 아니다. 이번 인터뷰는 그가 만든 게임들만큼이나 불친절하다. 정리되지 않은 느낌도 있다. 이 점 미리 밝힌다.

아, 이날 인터뷰하다가 공유 받은 '돈키호테 모바일(가제)' 영상도 공개한다.
2D인데도 엄청 잔인한다. 보는 사람에 따라 불쾌감까지 느낄 수 있으니 청취 전 주의 바란다.


돈키호테 모바일(가제) 게임플레이 영상






1. 비효율적인 사람

"호루스 캐논이 내 첫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더라. 사실 98년쯤에 만든 발프로기스 나이트가 처음 만든 게임이다. 고등학생 때 만들었는데 성균관 대학교에서 열린 경시대회 출품해서 1등도 했다(웃음)."

"98년? 그 때면 막 벤처 1세대 게임사 나오던 시점인데, 오퍼같은 거 안 왔나."

"오퍼야 왔지. 몇 군데서 온 것 같다. 근데 고등학생이라 별로 욕심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어디 들어가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내가 게임 산업이니 게임 회사니 이런 걸 잘 모른다. 난 넥슨이 그렇게 큰 회사인지도 2008년 쯤에 처음 알았다."

1998년. Y2K네,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이네, 이 세상 커피가 아니네 하던 그 혼돈의 세기말. 고등학생 박병용은 조용히 1인 게임 개발을 시작했다.

더 흥미로운 건 그의 작업 방식이었다. 게임을 구성하는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만드는 게 1인 게임 개발이라지만, 그는 언리얼이나 유니티 같은 상용 엔진을 안 쓴단다. 당연히 에셋도 안 받았다. 아트부터 효과음까지 하나하나 손으로 그리고 직접 녹음하는, 그 귀찮은 작업을 혼자 다 한단다. 기가 차서 '아니 왜 그렇게까지?' 라고 물으려던 찰나, 더 기막힌 얘기를 한다. "돈키호테 온라인 때는 서버도 혼자 만들었어요"

"왜?"

"그냥... 만들다보니 그렇게 됐다."

"마! 이게 인디다! 진짜 1인 개발자라면 다 할 줄 알아야지! 뭐 이런 자존심인가."

"어떤 면에선 그렇기도 한데, 사실 이게 자랑은 아니지. 다른 사람들이 왜 안 하겠나. 그만큼 비효율적이라는 거지(웃음). 예전에 한 번 찾아본 적이 있었다. 나같이 게임 만드는 사람 있나. 근데 내가 정보력이 부족해서인지 몰라도 한 명도 못 찾았다. 지금은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많지는 않을 거다."

"상용 엔진 안 쓰면, 그럼 자체적인 개발 툴을 만든 건가?"

"그런 셈인데, 사실 상용 엔진들에 비해 특별히 뭐가 더 좋아서 쓰는 건 아니다. 그냥 워낙 옛날부터 써오던거라 익숙해져서 쓸 뿐이다. 기능 면에선 오히려 안 좋다."

"그럼 이후에도 계속 그 개발 툴 쓸 생각인가."

"그러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좀 아닌 것 같다. 애플이 API 바꿨다 하면, 그때마다 개발 툴도 갈아 엎어야 해서 좀 불편하다. 돈키호테 차기작 만드는 데까지만 쓰고 상용 엔진으로 넘어가려고."

"서버는 테스트도 엄청 해야 하는데... 그 옛날에 혼자서 그게 가능한가?"

허허 웃는 저 미소. 저건 어느정도 해석이 된다. '웃프다'라고 부르는 그것.

"처음에는 진짜 죽는 줄 알았다. 돈키호테 온라인 만들 때였나, 퀘스트가 제대로 되는지 테스트가 필요했다. 집에서 나 혼자 어떻게 방법이 없지 않나. 그래서 집 컴퓨터에 서버 다 켜놓고, 집에서 최대한 가까운 PC방 가서 컴퓨터 5개 켜놓고 테스트 해보고 그랬다. 완전 생 노가다지. 요즘 누가 그렇게 테스트하나(웃음)."



▲ 발프루기스 나이트 플레이 영상
박병용 개발자가 고등학생 때 만든 작품이다.


2. 생선 비린내

그래, 이걸 묻고 싶었다. 내가 대학생 때 돈키호테 온라인 하면서 항상 들었던 생각.

이거 만든 사람은 머리속에 뭐가 들었을까?

해본 사람들은 같은 생각이지 않을까. 한 번이라도 돈키호테 온라인을 해본 사람들은 절대 그 게임을 잊을 수 없다고 확신한다. 아트, 사운드, 가리지 않고 뿜어져나오는 그 축축함. 시작 버튼 누르자마자 불쾌함이 모니터를 뚫고 나오는 게임은 흔치 않다. 그 감성이 개발자가 철저히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란 점에서 그의 뇌구조가 궁금한 건 당연한 이치다.

다시,

왜 만들었을까?

"이거... 사실대로 말해도 되나? 사람들이 무슨 개똥철학이냐며 비웃을까봐."

"일단 들어보고."

"일반적으로 게임 할 때 시각, 청각 기관으로 즐기지 않나. 패드 진동까지 생각하면 촉각도 쓰는 거고."

"그렇지."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다른 기관은 다 쓰는데 후각을 자극하는 게임이 없으니까 한 번 만들어보고 싶더라. 디지털 플랫폼에서 후각 전달은 사실상 포기되던 분야 아닌가. 그렇다고 내가 게임에 무슨 냄새나는 걸 발라서 만든다는 건 아니고... 그래픽과 사운드로 전달하고 싶은 냄새를 만들어보자, 그리고 그걸 유저가 느끼게 해보자, 이게 목적이었다."

만든 의도까진 좋다. 인디 게임다운 신선한 발상이다.
그래, 이제 그 돈키호테로, 대체 무슨 냄새를 전달하고 싶었는지 물어볼 때다.

"비오는 날에, 그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 봉투 안에서 나는 생선 비린내."



▲ 돈키호테 온라인 스크린샷

"...본인 스스로 특이한 사람이란 건 알고 있나?"

"좀 특이한가? 라는 생각은 해봤다."

"왜 하필 생선 비린내인가."

"다른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강렬한 냄새니까 그나마 게임으로 전달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냄새 찾다 보니 그게 생각난 거다. 누군가 돈키호테 온라인 보고 '썩은내 나는 게임'이라고 하면 그게 나한텐 최고의 칭찬인거지(웃음)."

그의 미소를 보니 확신이 든다. 내 눈 앞의 이 사람은 돈키호테 온라인 만들던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평범한 게임은 절대 만들 수 없다고. 아니, 애당초 대중성이라는 걸 알고는 있을까?

결국 돈키호테 온라인은 실패했다. 혼자서 개발한 온라인 게임이기에 개발 속도 면에서 태생적인 한계도 있었으나, 이 게임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워낙 비주류였기에 아는 사람만 아는 게임이 됐다. 이 사람이라면 게임의 실패를 떠나,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 냄새를 못 맡게 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아쉽다기보단... 내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여러 명이서 하는 온라인 게임이면 그에 맞는 콘텐츠가 있어야 하는데, 당시엔 그런 개념이 없었다. 절대적인 양도 부족했고. 혼자 온라인 게임 이끌어나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 사실, 그냥 퀄리티를 놔버리면 되는데, 그게 어디 마음처럼 되나. 처음 생각했던 퀄리티 그대로 유지하면서 서비스 이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3. 혼자

개발자 박병용은 혼자다. 자신있게 친하다 말할 수 있는 인디 게임 개발자도 없다. 그간 몇몇 게임사에 다닌 적은 있으나,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만들고 싶은 욕심에 끝까지 가진 못했다. 혼자 다 할 수 있기에 혼자 걸었다지만, 그렇게 히트작 하나 없이 '특이한 게임 만드는 특이한 사람'으로 각인되지 않을까 걱정도 들었다.

"팀원을 구해볼 생각은 없었나."

"왜 없겠나. 나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고 대화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냥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처음부터 '혼자 게임 만들어야지'하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왜 계속 혼자 만드나."

"고등학생 시절이야 뭐 주변에 게임 만들줄 아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혼자 만든 거지만, 지금은 같이 만들고 싶은 사람을 못 찾았다. 예전에 내 게임 좋아해주신 분들이 '게임 같이 만들자'고 제안도 해주시는데, 막상 같이 만들려고 하면, 여러가지 생각해볼 게 많더라. 지금도 고민 중이다."

"그냥 성향 비슷한 사람을 만나야 할 것 같다."

"그게 어렵다(웃음). 팀원 구하는 게 꼭 결혼이랑 비슷한 것 같다. 척 하면 통하고 이러면 좋겠다. 인연이라는 게 회사에서 그냥 동료로 만난다고 인연이 아니더라. 한쪽이 너무 좋아서 짝사랑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요즘은 인디 게임 개발자 소모임도 많은데, 한 번 나가보지 그랬나."

"몇 년 전에 지인이 그런 모임이 있다고 해서 알고는 있었는데, 딱히... 내가 나가서 할 말도 없고, 거기서 내가 무슨 말을 하겠나. 각자 경력도 있고 게임 좀 만드는 분들인데, 거기 가서 '나 인디 게임 혼자서 다 만드는 개발자요!' 이러는 것도 웃기지 않나(웃음)."

"그래도 나갔으면 많이 알아봤을 것 같은데."

"몇몇 분들은 알아봐주시겠지. 근데 그냥 밥 먹고 헤어지고 그게 끝일 것 같다."

이쯤에서 그가 국내 인디 게임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겠다.

"큰 게임사 들어가 일하는 개발자나 인디 게임 개발자나 별 차이 없는 것 같다. 인디라고 해서 뭐 인디만의 느낌? 이런 걸 못 봤다. 오히려 큰 게임사 있는 분들이 더 인디스럽다고 본다."

"어떤 면에서?"

"뭐랄까. 일할 때 받는 스트레스 수치가 더 높아보인다고 할까? 게임사 계신 분들이 자기만의 색 찾는 데 오히려 더 노력하는 것 같다. 아는 것도 많고 똑똑한 사람들 많더라. 게임 개발에 쓰는 에너지가 더 커 보인다고 하는 게 맞겠다."

"개인적으로 '아, 이 사람은 진짜 게임 잘 만든다' 싶은 사람 있었나."

"예전엔 진짜로 없었다. 어떤 게임 해보고 감동받아서 '이런 게임 만들어야지' 하고 개발 시작한 게 아니라서 그런가."

"지금은?"

"지금은 되게 많다. 왠만하면 다 잘 만드시는 것 같다. 한국에도 많고 외국에도 많고. 기술적으로 보면 존 카멕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나 오우거 배틀 시리즈 만든 마츠노 야스미란 사람, 그 사람도 훌륭한 개발자라고 본다. 세계관을 참 잘 짜더라."

"시각이 바뀐 이유가 뭔가."

"게임 만들면서 고생해보니까 알겠더라(웃음). 혼자 다 만들 줄 안다고 대단한 게 아니라, 어느 분야든 거기서 정말 고생한 게 보이는 사람이라면 존경받아야 하는 거고 배울 게 많은 사람인 거다. 개인적으로 던전앤파이터 만든 김윤종 님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2009년 공개된 '옵서버 온라인' 게임플레이 영상


4. 네코포차

조금 늦었다. 오늘 인터뷰의 촉매가 된 '네코포차' 이야기를 할 때다. 개발자 박병용이 아직 현역이라는 걸 증명한 게임. 돈키호테에서 풍겼던 그 축축한 감성은 여전하다는 걸 증명한 게임. 아울러 도트찍는 솜씨는 여전히 최상급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 게임.

여전히 독특하다. 미소녀 하나 없이 진득한 일본 색채, 고양이들만 있는 세상, 전체적인 게임플레이 사이 사이 깃든 왠지 모를 고독함까지. 뭐랄까, 하나도 대중적이지 않은 사람이 '이 정도면 꽤 대중적인데? 나도 참 많이 변했군!'이라고 말하며 만든 게임 같다. 질문을 시작해보자. 많이 밝아지긴 했는데, 여전히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고.

"개인적으로 상복은 많았던 것 같다. 어디 인디게임 대회 나가면 1등 자주 했다. 근데 요즘은 안 나간다. 안 나간지 꽤 됐다."

"상복 많다면서 왜 안 나갔나."

"대회 나가면 본의 아니게 다른 개발자의 작품도 보게 된다. 그냥 보고 끝나는 거면 괜찮은데, 나도 모르게 다른 작품의 영향을 받게 되더라. 그게 싫었다. 서로 영향 받고 참고하는 그런 게 내 취향에 안 맞았다."

"다른 게임에서 좋은 면을 봤다면, 거기서 배울 거 배우고 더 좋은 게임 만드는 게 일반적인 생각 아닌가."

"난 그게 다 돈 때문인 것 같다. 게임 만들려면 돈 필요하지 않나. 그래야 다음 거 만드니까. 보통 게임 만들 때 가장 처음 참고하는 게 마켓 매출 순위라고 들었다. 거기서 순위 높은 게임들 보면 대략적인 시장 트렌드가 보이니까 '이런 게임 만들면 나도 돈 벌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시작한다고 그러더라. 그게 아니라면, 개발자가 어렸을 때 재미있게 했던 게임 혹은 장르에서 영향을 받아 만든다. 결국 내가 보기엔 옛날 거 베끼거나 요즘 거 베꺼거나 둘 중 하나다. 난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도망다닌 거다."

"지금도 본인 스타일 연구를 계속 하고 있나."

"계속 하지."

"그렇다면 박병용만이 만들 수 있는 게임은 뭘까."

"나만 만들 수 있는 게임...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이전에 없던 걸 만드는 유니크한 개발자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럼 일종의 자존심인가."

"나 자존심 별로 없다. 그냥 다른 사람 거 베끼고 싶지 않고, 영향받고 싶지 않을 뿐이다. 성장하는 느낌이 안 든다고 할까. 뭐, 따라하면 희박한 확률로 돈은 좀 벌겠지만(웃음)."



▲ '네코포차' 스크린샷


"네코포차 출시 후 반응은 어떤가."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 출시된지도 잘 모른다. 그나마 인디 게임 개발자 몇몇 분만 알아봐주는 정도다. 한국보다는 오히려 일본에서 매출이 잘 나온다. 거기 특이하더라. 한국이야 커뮤니티 사이트에 게임 출시했다고 글 적고 홍보하는 게 전부지만, 일본 쪽은 뭐 방법이 없으니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 그런데 게임 좋아하는 몇몇 일본 게이머들이 네코포차를 검색해서 해보고 자기네 커뮤니티에 공유하고 그랬다. 리트윗 막 몇백 개씩 찍히면서 다운로드 수도 확 오르더라."

"게임 배경이 딱 봐도 일본인데... 애초에 그쪽 노린 것 아닌가?"

"일본 시장 진출해보자 뭐 이런 생각으로 만든 게 아니다. 그냥 돈키호테가 한국 배경의 게임이었으니까 차기작은 다른 나라 배경으로 해보자 이 생각이었다. 마침 얼마전에 처음 해외 여행을 갔는데, 그게 일본이었다. 이왕 다른 나라 배경으로 할 거면 한 번이라도 가본 나라 소재로 하자는 생각에 일본 선택한 것 뿐이다. 물론, 일본 문화에 딱히 반감이 있는 건 아니다."

네코포차는 불친절하다. 박병용 개발자가 아무리 어깨에 힘을 빼고 개발한 작품이라 해도, 돈키호테 때부터 이어져온 그 특징은 그대로다. 튜토리얼이 있기는 하나 게임의 핵심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냥 뭐 클릭해라 그 다음 이거 눌러라 정도. 네코포차의 진짜 핵심은 온전히 유저 스스로 생각해 파악해야 한다. 말 그대로 진입장벽. 그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한국은 다운 수가 적다보니 이렇다할 피드백도 안 오더라. 다만, 일본 쪽에서 그런 의견이 오기는 한다. 초반이 너무 불친절하다고. 일단 업데이트로 조금씩 튜토리얼을 개선해나가고 있기는 한데, 진입장벽을 100% 없애진 못할 것 같다. 혼자 만들다보니 초반부 신경쓸 시간이 거의 안 나온다."

"다른 콘텐츠 만드느라 바쁜건가."

"일단 여행 가능한 도시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최종적으론 전세계 주요 도시를 무대로 항해하는 그런 게임이 목표다. 콘텐츠도 계속 만들어야 하고, 지금 이게 iOS만 출시된 게임이다보니, 안드로이드 쪽 출시하려면 또 준비할 게 많다."

"그리고 나도 해보면서 느낀 건데 BM 설계가 너무 단순한 거 아닌가 싶더라. 돈을 쓰고 싶어도 딱히 사고 싶은 게 없었다."

"어... 나름대로 고민 많이 한 거다. 보통 인디 게임은 광고로 돈 버는데, 난 애초에 네코포차 만들 때 '광고 말고 다른 걸로 돈버는 게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근데 솔직히 네코포차가 뭐 콘텐츠 무지막지한 게임도 아니고 유명한 게임도 아니지 않나. 사람들이 과연 인디 게임에 돈을 쓸까 싶더라. 그런 부분 고려하고 나름대로 착한 과금 모델로 설계했다."

"착한 건 좋다. 근데 정말 살 게 없는데..."

"코어 유저들이 많이 결제 해주고 있다. 지금도 뭐 큰 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하루 몇 십만 원씩은 매출 나오고 있다."

"알겠다. 더는 걱정하지 않겠다. 호루스 캐논, 돈키호테, 그리고 지금 네코포차까지 2D 그래픽이란 공통점이 있는데, 계속 도트 그래픽 지향하는 이유가 있나."

"사실 10대 시절에 3D 그래픽을 잠깐 만져보긴 했었다. 근데 그 당시엔 혼자서 리얼타임 3D 그래픽으로 제대로 된 게임 만드는 데 물리적인 한계가 있었다. 모델링은 어떻게든 하겠는데 텍스처 작업까지 같이 하려니 전체적인 작업 비율이 그래픽 쪽에 너무 쏠리는 거다. 아, 이거 어떻게 하지, 난 프로그래밍이랑 기획, 음악 다 작업해야 되니까 미치겠는 거다. 그래서 그냥 2D로 작업하기 시작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지금은 그때보다 좀 사정이 낫지 않나."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걸 100% 만들고 싶다는 걸 기준으로 잡는다면 지금도 힘들다. 상용 엔진 쓰고, 다른 개발자들이 만든 쉐이더나 에셋 가져다 쓴다면 옛날보다야 편하겠지. 아까도 말하지 않았나. 난 그렇게 게임 만드는 성격 못 된다고."

"알겠다. 그럼 다시 돈키호테 이야길 해보..."

"아, 네코포차도 만들게 된 배경 이야기해도 되나."

"물론."

"이거 나한테 되게 중요한 건데. 네코포차가 고양이들만 사는 세상 아닌가. 개인적으로 고양이를 엄청 좋아한다. 호루스 캐논도 고양이 얘기였고. 나도 고양이 키우는데, 작년에 그중 한 마리가 세상을 떠났다. 복막염으로."

"어디서 들은 적 있다. 오래 키운 반려동물 죽으면, 가족 잃은 감정이라고."

"정말 그렇더라. 근 10년 간 못 느꼈던 어마어마한 상실감을 느꼈다. 아, 진짜 기분 안 좋더라.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고양이가 내 곁을 떠났지만, 다른 어딘가에서 계속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이랄까. 예전에 무지개 다리 건넌 고양이들끼리 모여 사는 세상이 있다는 얘길 들은 적도 있고. 그래서 그 세상을 한 번 게임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만들면서 약간이나마 위안도 얻고."

네코포차 하면서 느꼈던 그 먹먹한 분위기가 이 때문이었구나.

"키우던 고양이를 위한 추모곡 같은 건가.

"그렇지. 누가 들으면 나이먹고 청승맞게 뭐하는 거냐 이럴수도 있을 것 같은데... 바꿔 말하면, 이 나이 먹고 이런 감정 느끼는 게 흔치 않은 일 아닌가. 난 되게 진지하게 만든 게임이다."

▲ '네코포차' 플레이 영상


5. 돈키호테

다시 돈키호테 온라인 이야기다. 시대를 앞서간 게임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돈키호테 같은 게임이 대중적이었던 시절 따위 없었으니까. 그래도 예전보다는 지금이 좀 나아 보인다. 다크소울, 다키스트 던전 같은 게임이 떴으니까. 요즘 게이머라면 그 축축한 분위기에 대한 거부감이 그나마 좀 덜하지 않을까. 물론, 돈키호테는 훨씬 어둡고 우울하다. 서문에 첨부한 영상 보고 '극혐...'이라고 생각한 독자도 분명 있을 거다. 사실 기자도 저 영상 기사에 넣어도 되나 고민 많이 했으니까.

그래도 묻는다. 몇주 전 박병용 개발자를 처음 만났을 때, '돈키호테'를 다시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은 마당에,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예전에 말했던 것처럼 PC는 아니고 모바일 버전이다. 그리고 다른 유저와 상호작용하는 온라인 요소는 빠졌고... 전투 부분만 뽑아 만드는 거다. 횡스크롤 PvE 액션 게임이다."

"컨트롤이 강조된 게임인가."

"맞다. 사실 나는 모바일에선 오토 들어간 게임이 정답이라고 본다. 한데, 오토에선 나올 수 없는 그 손맛이라는 게 있지 않나. 액션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지금 찾고 있는 단계다. 이것만 해결된다면 개발은 금방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론 PvP가 더 어울릴 것 같은데."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PvP로 간다면 실시간 대전도 고려해야 하는데, 거기서 액션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는 고전 게임을 좋아한다. 지금도 과거 아케이드 게임을 가끔씩 즐기곤 한다. 다른 사람이랑 하는 것도 아니다. 혼자서 스트리트 파이터 최종 보스도 몇 번이나 깼다고 한다. 상대가 컴퓨터라도 AI 수준에 따라 나름 충실한 재미를 구현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돈키호테 모바일(가제)은 여기에 포인트를 줬다.

돈키호테 모바일은 스테이지 수가 20~30개 정도다. 현세대 싱글플레이 액션 게임 기준이라면 그리 많은 분량은 아니다. 집중해서 한다면 2~3일 안에 충분히 깨고도 남는다.

"내가 만든 게임들 대부분 플레이 타임은 짧다. 발프루기스 나이트도 약 30분 분량이었고, 호루스 캐논은 테스트 버전만 만들었다. 돈키호테 온라인도 콘텐츠가 많은 게임은 아니었고. 다만, 이번에 만드는 돈키호테는 단순히 한 번 다 깨고 접는 그런 게임이 아닌, 그냥 생각날 때마다 가끔 꺼내서 즐길 수 있는 그런 게임을 목표로 잡았다. 스트리트 파이터2도 최종보스 잡았다고 다시 안 하진 않으니까. 플레이어를 상대하는 컴퓨터 난이도를 잘 조절한다면, 장기간 플레이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가격은 얼마로 할 생각인가?"

"아직 생각은 안 해봤는데... 이렇게 하면 어떨까. 유저 1:1 맞춤형으로 콘텐츠 만드는 거다. 유저가 뭘 원한다 말하면, 그거 만들어 개인적으로 전달해줄까 생각도 해봤다."

"...개발 코스트 엄청나게 들어갈 거 같은데."

"그렇긴 한데, 돈키호테 온라인도 그랬다. 로비에서 어떤 유저가 '이런 아바타 갖고 싶어요' 하면 그 사람 하나만 보고 만들어서 주고 그랬다. 그 사람한테도 좋은 기억이고 나한테도 좋은 기억이었다. 코스트 많이 들어가는 건 맞지만, 내겐 그 기억이 엄청 소중하다."

"출시일은 언제인가."

"올해 연말을 목표로 만들고 있다."





다시, 박병용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당초 계획에 없었던 질문을 했다. 돈과 시간이 무제한이라면, 이 사람은 무슨 게임을 만들까. 하늘이 놀라고 땅이 놀랄 괴상한 게임이 나올 거라 기대했는데, 뜻밖의 답변이었다.

"게임은 계속 만들고 싶다. 어떤 대단한 게임을 만들겠다 그런 건 아니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호루스 캐논이나 돈키호테 같은 게임, 내가 잘 하는 자그마한 게임을 꾸준하게 선보이고 싶다. 사실 돈이 많다면 개발보다 더 욕심나는 게 있는데."

"어떤 거?"

"어디 건물이나 공간 구해서 내가 지금까지 만든 게임을 전시하고 싶다. 일종의 박물관이다. 방문객들한테 내 게임 보여주고, 같이 해보면서 생각도 들어보고, 그러고 살고 싶다."



▲ 키튼 박병용 개발자 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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