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길을 잃은 Xbox, 필 스펜서는 실패한 '타노스'가 되는가

칼럼 | 강승진 기자 | 댓글: 9개 |



MS 게이밍의 필 스펜서 대표는 마치 영화 어벤져스 속 타노스와도 같았다.

타노스가 우주에 뻗친 지배력을 바탕으로 인피니티 스톤을 모았듯, MS의 사티아 나델라 대표를 설득해 막대한 자금을 업고 게임사들을 인수했다. Xbox 게임 스튜디오 산하로 수많은 개발사를 스튜디오로 편입했고, 모장에 베데스다와 액티비전 블리자드 등 초거대 게임 그룹까지 품었다.

오늘날의 스펜서에게서도 타노스가 엿보인다. 타노스가 자신의 신념 아래 손가락을 튕겨 생명체를 반으로 줄였듯, 스펜서와 산하 스튜디오들이 보여주는 행보가 팬들의 신뢰를 반토막 내고 있다. 문제라면 그게 타노스와는 달리 필 스펜서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이라는 점, 그리고 여기서 꽤 오래 좋은 평가를 받아왔던 그의 리더십에 너무나도 큰 의문점이 생겨버렸다는 점이다.


폐쇄, 정리, 해명, 앞장서던 필 스펜서는 어디로 사라졌나
필 스펜서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터진 건 단연 '하이-파이 러시'를 선보인 '탱고 게임웍스'의 폐쇄 발표 이후다. 지난 7일 갑작스러운 스튜디오 폐쇄에 유저들은 물론 스튜디오 개발자들까지 아쉬움을 드러냈다. 폐쇄 발표 이후 '하이-파이 러시'의 스팀 평점은 이례적인 긍정적 리뷰 폭탄을 맞았다. 더 적극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팬들은 폴아웃76의 필 스팬서 캠프에 핵폭탄을 날리며 분노를 표출했다.




하지만 시간을 조금 되돌리면 회사의 전체적인 비용 절감 목적 움직임은 일찌감치 진행됐다. 지난 1월 MS는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중심으로 1,900명의 직원을 정리해고한 게 그것이다. 물론 근래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평가가 좋지 않았고, 또 전 세계적인 일자리 감축은 큰 흐름처럼 보인다.

그리고 시간을 다시 딱 1년 전으로 돌려보자. 2023년 1월 MS는 1만 명의 일자리를 없앴고 여기에는 343 인더스트리, 베데스다, 더 코얼리션 등 Xbox 게임 스튜디오 전반에 걸쳐 정리해고가 진행됐다.

두 번의 정리 해고에서 필 스펜서는 남은 직원들에게 서신을 보냈다. 2023년에는 Xbox 게임 사업의 어려운 순간이 왔다며 고통스러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고 전했다. 올해 1월에는 지속 가능한 회사 구조, 그리고 성장을 기회 집중이라는 기업 차원에서의 감원 이유를 전했다. 이때도 Xbox 스튜디오의 일부 직원은 메일 내용을 '의무적으로 보내는 것 같다'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리고 아케인 오스틴, 알파독 스튜디오, 라운드하우스 게임즈, 그리고 탱고 게임웍스가 폐쇄되는 날.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낸 건 필 스펜서가 아니라 Xbox 게임 스튜디오 사장 맷 부티였다. 3일 뒤 블룸버그 테크놀로지 서밋에서 폐쇄에 관해 질문을 받은 건 사라 본드 Xbox 사장이었다. 항상 가장 먼저 나섰던 필 스펜서는 없었다.

사실 미카미 신지가 탱고 게임웍스를 떠날 당시 스튜디오로서 정체성이 옅었다고 밝혔던바 있다. 이번 스튜디오 폐쇄를 통한 통폐합으로 개발 라인 정리를 하는 만큼 스튜디오 재정비라는 목적 아래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걸 알리는 방법도, 이어지는 위기를 타개하는 법을 설명할 때에도, 위기를 헤쳐나갈 때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이유와 비전을 설명해야 할 필 스펜서의 리더십은 보이지 않았다.



▲ 지난 2월 독점 게임 4종의 멀티 플랫폼 출시를 알리기 위해 영상에 출연했던 필 스펜서


유저를 위해, 혹은 회사의 이익을 위해, 말과 다른 행동
필 스펜서의 배가 목표한 바와 다른 길로 가는 모양새를 보인 건 제니맥스 미디어, 그리고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인수라는 게임 업계 전례를 찾기 힘든 거대 게임 회사 합병 과정에서였다.

MS는 2020년 9월 제니맥스 미디어의 인수를 발표했다. 엘더스크롤, 폴아웃, 둠, 울펜슈타인, 디스아너드 등 쟁쟁한 프랜차이즈가 MS 품에 들어왔다. 당시만 해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였던 대형 기대작 스타필드도 포함됐다. 당연히 플레이스테이션 유저들에겐 대형 게임의 Xbox 독점 출시 우려가 나왔다.

필 스펜서는 당시 이런 우려에 관해 제니맥스 인수 합병은 게임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플레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2023년 아케인의 스튜디오 디렉터 하비 스미스는 '레드폴'의 PS5 포팅이 작업 중이었지만, MS 인수 후 PS5 포팅이 취소됐다고 밝혔다. 스타필드 역시 PC, Xbox에서만 출시됐다.



▲ PC와 Xbox로만 출시된 스타필드

그리고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를 두고 연방거래위원회와 반독점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 속내가 드러났다. MS가 제니맥스 인수가 소니의 기간 독점 움직임에 대항할 목적으로 진행했다고 밝힌 것이다. MS의 제니맥스 인수 전 소니는 고스트와이어: 도쿄, 데스루프를 PS5 기간 독점으로 계약했다. 그래서 두 게임은 제니맥스 인수 발표 이후인 2022년, 2021년 각각 출시됐다.

Xbox 입장에서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지만, 경쟁 콘솔 유저들에 대한 반발을 누르려 좋은 말을 늘어놓은 셈이 됐다.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 당시에도 필 스펜서의 말과 다른 행동이 수면에 떠올랐다. 2021년 액티비전과 블리자드 양사에 걸친 성추행, 성희롱 논란이 불거졌을 때다. 당시 미 언론의 추가 보도를 통해 바비 코틱 액티비전 블리자드 대표는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게 밝혀졌다.

이때 필 스펜서는 이러한 유형의 행동은 사라져야 한다며 액티비전 블리자드와의 관계 조정을 예고하며 비판했다. 하지만 관계 조정은 거리를 두는 내신 오히려 품는 방향으로 향했다. 논란이 한창이던 시기,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이때를 기회로 삼은 필 스펜서와 사티아 나델라는 먼저 액티비전 블리자드에 접근해 인수를 논의했다. 외부에는 관계를 조정하겠다던 그때 말이다.



▲ 외부적으로는 필 스펜서에게 비판받았던 바비코틱이지만, MS의 제안보다 높은 가격으로 ABK를 매각했다


게임패스의 부진, 잃어버린 콘솔의 힘
MS의 스튜디오 폐쇄 발표 이후 문제의 원인은 게임패스로 쏠렸다. 많은 투자가 단행된 게임패스의 부진, 그리고 게임 구독제의 성장 불투명성이 MS의 비용 절감과 구조조정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게임패스의 부진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필 스펜서가 구독 경제의 성장을 강조하면서 주장한 건 '돈이 되는' 구독 경제다. 실제로 Xbox 하드웨어의 판매량 감소는 지속됐고 MS 게이밍 부문의 수익도 디지털, 그리고 서비스 사업에서의 성과가 두드러졌다. 구독 외에 부수적인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통념과 달리 DLC, 추가 콘텐츠 구매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플랫폼 단에서의 수익도 높아졌다.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던 게임패스의 구독자 성장세가 꺾이며 문제가 생겼다. 구독제에 집중하며 콘솔만의 강점을 해체해버린 탓에 하드웨어 판매는 계속 줄었다. 콘솔이 게임패스의 부진을 반대 축으로서 막아줄 힘이 없었다는 뜻이다.



▲ 분명 게임패스가 MS의 게이밍 부문의 혁신과 실적을 크게 향상시킨 시절도 있었다

게임은 길어야 2시간이면 끝나는 영화와 다르다. 그저 8편 남짓의 시리즈를 쳐다만 본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플레이어가 직접 플레이하는 것, 그리고 그런 수고를 길게는 수십 시간 이어간다. 넷플릭스와 달리 게임패스의 성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결국 충분히 시간과 돈을 들일 만한 가치 있는 게임이 지속해서 제공되는 데 있다. 그러면서도 플랫폼으로서의 친숙함까지 경쟁 선상에 놓인다. 똑같이 게임패스에 입점했지만, 스팀에서도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한 팰월드의 예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레드폴, 스타필드 등 구독 서비스를 유지시켜야 할 타이틀이 연달아 실패했고 팬들은 게임패스를 구독해야 할 이유가 사라져버렸다. 여기서 MS 게이밍의 전체적인 타이틀 품질 관리에 대한 부실함이 떠오른다.


소규모 지향 리더십, 그리고 갈피 잃은 전략
MS가 자금력을 앞세워 수많은 스튜디오를 인수, 설립하며 Xbox 게임 스튜디오의 덩치를 키울 때 필 스펜서의 자율적인 스튜디오 분위기 유지는 긍정적인 면이 부각됐다. 모장과 옵시디언, 더블 파인과 인엑자일 등 산하 스튜디오들은 한 회사의 분위기 아래 게임이 만들어지는 게 상상되지 않는 개성 뚜렷한 곳들이다.

필 스펜서는 상위 그룹으로서 이러한 스튜디오의 작품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이는 곧 자율적인 분위기와 특징을 살린 게임 출시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었다. 이건 많은 판매량이 필요하지 않은, 개발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은 중소 규모의 게임 개발에서 빛을 내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제니맥스,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인수는 다른 시스템을 요구했다.

스타필드는 2억 달러가 들어간 대형 게임이다. 레드폴 역시 제니맥스가 엘더스크롤 온라인과 함께 장기적인 수익 구현을 목표로 설정되며 큰 투자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게임은 기대 이하의 성과를 거뒀다. 더 큰 문제는 게임이 베데스다, 아케인이라는 회사의 명성에 흠집을 내고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을 지웠다는 데 있다.



▲ 출시가 강행됐고, 실망이 이어진 레드폴

두 작품 모두 개발 이후 내부에서 문제점이 여럿 있다는 게 드러났다. 스타필드는 팬데믹 시기 이어진 개발자들의 엔진 적응 문제가 계속된 연기에도 이어졌다. 레드폴은 모회사 제니맥스가 이머시브 심이라는 싱글 게임에 적합한 타이틀을 만들던 아케인에 루터 슈터의 DNA를 섞으며 문제가 불거졌다. 많은 개발자가 떠났고 새로운 직원들은 비공개 프로젝트라는 이유로 아케인의 기존 게임을 생각하고 입사를 지원했다 레드폴 개발에 투입됐다.

결국 게임은 문제가 제대로 고쳐지지 않은 채 출시됐다. 게임의 내부 퀄리티에 대한 보증 없이, 출시 일정만을 밀어붙여 출시된 셈이다. 특히 레드폴은 개발이 많이 진척돼 어려웠지만, 스타필드는 다를 것이라던 필 스펜서의 주장도 스타필드 출시 후 지켜지지 못한 약속이 됐다.

개발사들을 믿는 리더십이 통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더욱 거대한 프로젝트들이 줄이어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그에 어울리는 프로세스가 필요했고, 필 스펜서 아래의 Xbox는 그걸 지키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액티비전 블리자드와 독점 콘텐츠를 활용할 전략도 흔들리고 있다.

당초 게임패스의 가장 큰 장점은 퍼스트 파티 게임을 출시 당일 즐길 수 있다는 데 있었다. 하지만 액티비전 블리자드, 나아가 전체 게임 시장을 흔드는 콜 오브 듀티의 존재는 MS가 다른 그림을 그리게 했다. MS는 지난 회계연도 하드웨어 판매 감소, 더딘 게임패스 구독자 증가 속도에도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를 통한 수익에서 이득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콜 오브 듀티는 MS가 Xbox 독점 서비스를 쉽게 점치기 어려울 정도로 플레이스테이션 진영에서도 최고의 판매량과 플레이 타임을 가지는 타이틀이다. 판매량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결국 MS 게이밍은 놓칠 수 없는 타 플랫폼 및 판매 수익에 출시 첫날 게임패스 입점 규칙에 예외를 뒀다.



▲ 플레이타임, 판매량, 부가 수익 모두 게임패스에 넣고 독점 출시하기엔 부담이 된 콜 오브 듀티

그리고 게임패스의 성장이 더뎌지자 하이-파이 러시, 씨 오브 시브즈 등을 멀티 플랫폼으로 풀었다. 게임패스만으로의 수익성에 만족하지 못함을 공공연하게 드러낸 셈이다. 실적 발표에서도 플레이스테이션 플랫폼에서 많이 판매 된 게임 중 자사 타이틀이 가장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언론과 플레이어 모두 다양한 시선으로 분석했지만, 결국 지속가능하다던 그 게임패스의 가능성은 MS 게이밍 스스로 저버리고 있는 모양새다.


Xbox를 살렸던 예전의 필은 돌아올 것인가
필 스펜서는 종합 기업이 되기 이전의 QA를 시작으로 MS 시절부터 회사에 몸담았고 신뢰를 잃었던 Xbox를 수장으로서 재건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특히 게임 시장에서의 역할을 정리하고자 했던 사티아 나델라 대표를 설득해 게이밍 분야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얻어냈다. Xbox One 시절 팬들의 불만을 샀던 부분을 대대적으로 정비했고, 뒤처진 시장 점유율 속에서 게임의 구독 경제라는 화두를 시장에 던졌다. 공들여 지원하는 하위호환은 그간 세대가 넘어가면 생명을 잃는 게임에 역사를 더했다.

하지만 더욱 비대해진 오늘의 Xbox에서 필 스펜서의 비전은 방향을 잃은 듯하다.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던 게임패스가 주춤거리자 MS 게이밍은 극복보다는 멀티 플랫폼 전략으로 게임패스에 힘을 뺀 수익화에 힘쓴다. 하이-파이 러시 같은 게임의 필요성과 성공을 주장하며 탱고 게임웍스를 폐쇄하고서는 다시 그런 소규모 게임이 필요하다는 갈팡질팡한 모습을 보였다.

과연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필 스펜서 호는 다시 원래의 길로 돌아올 수 있을까? 6월 Xbox의 다음을 보여줄 쇼케이스, 그리고 그것들이 평가 받을 향후 1, 2년이 필 스펜서가 자신의 리더십이 건재한지 보여줄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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