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멋이 없어' 보기 힘든, 한국사 게임이 가진 가능성들

게임뉴스 | 김규만 기자 | 댓글: 71개 |



한국게임학회 기능성게임분과는 금일(20일)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CKL 기업지원센터에서 4월 오픈 세미나를 개최했다.

게임과 한국사를 주제로 진행된 이번 오픈 세미나에서는 게임인재단의 정석원 사무국장이 발표자로 참석했으며, 수많은 게임이 시장에 등장하고, 조명받지 못한 채 사라지는 가운데 모두가 알고 있는 IP로서 '한국사'의 가능성을 재조명하자는 의미의 발표를 진행했다.

발표를 마친 이후에는 참석자들이 함께 4.3 사건을 모티브로 개발된 보드게임 '꽃을 피워라'를 플레이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해당 보드게임을 개발한 포푸리의 윤창환 대표 또한 참석해 실제 사건을 보드게임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겪은 일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게임X한국사, IP와 마케팅의 시대의 새로운 가능성 될까?



▲ 게임인재단 정석원 사무국장

이날 정석원 사무국장은 게임시장에서 날로 주목받고 있는 IP(지적재산권)와 관련한 이야기로 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2012년 경 '스타워즈' IP를 40억 달러(당시 한화 약 4조 5천억 원)에 인수한 디즈니의 사례를 들며, "하나의 IP를 4조 원 가까이 지불하며 인수한 것도 대단하지만, 이후 불과 몇 년 만에 해당 자금을 모두 회수한 것도 드라마틱한 일이다. 그것이 IP가 가진 힘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전했다.

또한 그는 흥행산업이라는 관점에서 영화와 게임 산업은 비슷하며, 그 말은 곧 게임업계가 영화업계로부터 보고 배울 것이 많다는 이야기도 된다고 설명했다. IP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던 것은 상당히 오래 된 일이다. 다음 주 개봉을 앞두고 있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신작도 첫 번째 작품이 나온 것이 11년 전이다. 또, 그 전에도 영화업계는 리부트, 혹은 리메이크를 통해 과거 흥행했던 작품을 현대에 맞춰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여 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석원 사무국장은 약 13년 전 출간된 '나이키의 상대는 닌텐도다(정재윤 저)'라는 제목의 책을 사례로 기업들이 계속 IP에 주목하는 이유를 설명해 나갔다. 책의 제목 그대로, 이제 기업들은 운동이면 운동, 게임이면 게임 산업 내에서만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간을 가지고 경쟁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즐길 거리가 많아졌다. 그에 비해 하루라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게임을 할지, 아니면 넷플릭스를 볼지 고민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즐길 거리를 취사선택하게 됐으며, 그렇게 기업들은 대중의 시간을 뺏는 싸움을 시작하게 됐다.

즐길 거리가 너무 많아졌다는 것은 기업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많은 경쟁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임업계는 이제 자전거 타기와 같은 취미와도 경쟁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기업은 자신의 상품을 더 많이 알리기 위해 마케팅에 힘을 쏟게 되는데, 그와 동시에 갈수록 커지는 마케팅 비용을 안정적으로 수익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찾은 해답이 IP라는 게 정석원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그는 "누구나 알고 있고,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IP가진 가치라고 전했다. 많은 기업들이 인간의 이러한 욕구를 끌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모두가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는 속성 때문에 기업들은 해당 IP를 설명하기 위해 추가적인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다. 캐릭터로 예시를 들면 해당 캐릭터가 누구이며, 어떤 역사를,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는 그만큼의 마케팅 비용 또한 절약할 수 있는 셈이다.



▲ 기업에게 IP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든 이러한 IP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모두가 열광하고 있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또한 수많은 경쟁상대들이 비슷한 IP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어 정석원 사무국장은 "누구나 알고 있고,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속성에 대해, 게임인재단은 '한국사'라는 키워드에 주목했다"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는 "이러한 IP가 가진 특성들을 하나라도 취해볼 수 있다면, 역사는 기본적으로 누구나 알고 있는 요소에 속한다. 때문에 어쩌면 한국사가 마케팅의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있듯 한국사를 소재로 한 게임은 지금까지 잘 없었다. 정석원 사무국장은 게임인재단이 약 1년 반동안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느낀 점이 '한국사는 기본적으로 멋지지 않다'는 인식이 있다고 전했다. 일단 한국사라는 이야기만 들으면 게임보다는 공부같고,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한국사가 멋지지 않아 보이는 바탕에는 아직 한국사 소재 게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영상 산업의 사례를 들어 비교했다. 우리나라의 드라마, 영화 산업은 지금까지 한국사 소재를 잘 성장시켜온 분야로, 사극은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시도와 발전을 이뤄왔다는 것이다.



▲ 상대적으로 한국사 소재를 잘 발전시켜 온 영상 산업

실제로 1996년 방영한 용의 눈물 당시, 사람들의 사극에 대한 관점은 철저한 고증에 있었다. 사람들은 등장인물이 어떤 복식을 갖추고 있었는지, 또 실제로 어떤 행동을 했었는지에 대해 굉장한 관심을 보였고, 당시 영상업계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그대로 영상 매체로 재현하는 데 급급했다.

시간이 지나며 이러한 양상에는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정석원 사무국장은 개인적으로 영화 '명량'에 와서 생긴 새로운 맥락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전했다. 명량은 우리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친숙한 인물인 이순신 장군을 토대로, 현대적인 감각이 가미된 고증을 잘 재현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데, 해당 영화를 기점으로 이후에 나오는 사극들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정석원 사무국장은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암살', 2018년에 방영한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2019년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한 '킹덤'을 사례를 차례로 들었다. 한국의 사극이 철저한 고증을 통해 만들어진 세계관 속에서, 허구의 인물이나 실존인물의 모티브만 딴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방향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역사적인, 학술적인 논쟁거리가 되지 않고 영화나 드라마를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 지난해 게임인 한국사 콘서트에 참석한 조이시티 김태곤 CTO

다시 한국사 소재 게임의 현실로 돌아가보면, 2,000년대 초반 김태곤 PD가 개발했던 임진록이나 충무공전, 거상 이후 그 명맥이 끊긴 것을 알 수 있다. 정석원 사무국장은 그가 작년 게임인 한국사 콘서트 자리에서 김태곤 PD가 한 이야기를 덧붙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당시 게임인 한국사 콘서트에서 김태곤PD는 '한국사가 보기에 멋있어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과거에는 언제나 일본군은 사악하고 표독한, 매력적이지 않은 캐릭터로 그리는 한 편, 한국형 캐릭터는 고증에 너무 몰두하다보니 심심한 캐릭터가 탄생하고는 했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 김태곤 PD는 자신이 개발중인 역사 소재 게임의 일러스트를 일부 공개하며, 이러한 부분들을 탈피해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디자인하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어 정석원 사무국장은 한국사 게임이 '멋지지 않게'느껴지는 것은 우리나라 개발자들의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동안 깊은 고민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다시한번 강조했다. 충분한 고민과 노력이 들어간다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호기심을 가질수 있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흑요석' 우나영 작가가 그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의 이미지를 사례로 들며 한국적인 매력은 발전할 가능성이 많다고 덧붙였다.


다음으로 정석원 사무국장은 게임과 한국사의 만남이 비단 비디오게임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며, '작전명: 소원'이라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작전명 소원'은 임시정부 설립 100주년, 3.1운동 100주년이 된 올해를 기념하는 의미로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로, AR을 비롯한 기술을 통해 서울 곳곳을 누비며 독립군 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게이미피케이션 활동이다.

정석원 사무국장은 "사람들은 보통 게임이라고 하면 비디오게임을 생각하지만, 그것만을 생각하기에는 기술적인 진보가 많이 이뤄졌다"며, "한국사라는 소재가 물론 단 하나의 정답일 수는 없지만,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고, 다른 접근방식을 생각하는 맥락에서 하나의 좋은 고민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보드게임 사례, '꽃을 피워라'




정석원 사무국장의 발표 이후, 오픈 세미나 참석자를 대상으로 보드게임을 진행하는 시간이 이뤄졌다. 이날 진행한 보드게임은 포푸리에서 개발한 '꽃을 피워라'로, 해당 게임은 제주도에서 일어난 4.3 사건을 모티브로 개발되었다.

보드게임 시간은 4인 1조로 진행됐으며, 교육컨텐츠 크리에이터 그룹 플레이위드의 허은혜 대표의 설명에 따라 약 30분간 진행됐다. '꽃을 피워라'는 최대 4인의 플레이어가 힘을 합쳐야 하는 보드게임으로,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정원을 지키는 '할락궁이'의 가족이 되어 제주도 곳곳에 동백꽃을 피우는 것이 게임의 목표다. 그러나 게임 속에 등장하는 '검은 그림자'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태풍을 일으키게 되는데, 그보다 빠르게 주요 마을에 동백꽃을 피우는 것이 게임에서 승리하는 열쇠가 된다.



▲ 포푸리 윤창환 공동대표

'꽃을 피워라'를 개발한 포푸리의 윤창환 대표는 제주도 출신으로, 4.3사건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얼핏 들어서 알고 있기는 했지만 제대로 알고 있지 않다는 부채감을 늘 가지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 와중에 지난해 4.3 70주년 기념 지원사업 공모를 보고 지원하게 됐으며, 해당 사업에 선정되어 '꽃을 피워라'를 제작하게 됐다.

그는 '꽃을 피워라'의 개발을 시작하며, 게임을 통해 무엇을 어디까지 다룰 수 있는지, 또 게임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며, "결국은 '게임'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재밌게 플레이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안에 어떤 의미를 전달할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만드는 게임인 만큼 민감한 문제도 있었다. 바로 실존했던 단체를 지칭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게임 속에 나오는 '검은 그림자'는 무조건 관덕정에서 시작하는데, 해당 지역인 4.3사건의 발단이 된 곳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윤창환 대표는 "특정 단체를 지칭하게 되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서 최대한 벗어나고, 역사적 사실을 다루기보다는 희생자를 추모하고, 제주도를 회복시키는 데 목표를 담은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고 전했다.

현재 윤창환 대표의 포푸리는 후속작으로 남영동 사건을 다룬 보드게임을 개발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개인과 사회의 이야기를 담은 보드게임을 만들어 나갈 전망이다.



▲ 보드게임 시간을 진행한 플레이위드 허은혜 대표



▲ '꽃을 피워라' 부속물의 모습, 동백꽃을 최대한 많이 피워야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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