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DC2019] 패스 오브 엑자일, "4주 만에 확장팩 1개씩 만드는 방법은..."

박태학 기자 | 댓글: 55개 |


[▲ 그라인딩 기어 게임즈 조나단 로저스 CTO]

  • 주제: Designing 'Path of Exile' to be Played Forever
  • 강연자 : 조나단 로저스(Jonathan Rogers) - 그라인딩 기어 게임즈 / Grinding gear games
  • 발표분야 : 게임기획
  • 권장 대상 : 게임 디자이너, 프로듀서
  • 난이도 : 사전지식 불필요 : 튜토리얼이나 개요 수준에서의 설명


  • [강연 주제] 뉴질랜드의 작은 게임사 그라인딩 기어 게임즈에서 개발한 '패스 오브 엑자일'은 2013년 출시 이후 수십만 명에서 수백만 명이 즐기는 게임으로 성장했다. 지속 가능한 장기 개발 비전을 세우고 개발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이번 세션에서는 이러한 성장 동력이 된 기획 디자인에 대해 설명한다.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디아블로2를 미치도록 사랑한 뉴질랜드 청년 조나단 로저스를 만족시킬 다음 작품이 없었던 게 계기였다. 그는 '우리 취향에 맞는 게임을 만들어보자'며 친구들과 의기투합했다. 지금은 회사 대표가 된 동료 크리스 윌슨의 자택 차고가 첫 사무실이 됐다. 컴퓨터 몇 대 가져다놓고, 밤낮으로 게임 개발에 몰두했다. 그렇게 나온 게임이 '패스 오브 엑자일'이다.

    '디아블로3'를 해본 국내 유저들이라면 알겠지만, '패스 오브 엑자일'은 블리자드의 생각에 정면으로 반하는 작품이다. 다소 묵직한 전투 템포, 어두운 분위기, 복잡한 스킬 시스템에서 볼 수 있듯, 대중성보다는 디아블로 식 핵앤슬래시 액션 RPG를 극한까지 즐긴 게이머들을 목표로 했다.

    일종의 모험이라 여겨졌던 그들의 화살은 정확히 과녁의 한 가운데 꽂혔다. 2013년 정식 출시된 '패스 오브 엑자일'은 출시 직후 많은 핵앤슬래시 게이머들의 눈도장을 받았고, 꾸준한 업데이트로 탄탄한 팬 층을 확보했다. 6년만에 공개된 디아블로 차기작이 모바일 게임으로 알려지고, 이에 실망한 유저들이 '패스 오브 엑자일'을 찾은 사실은 두말할 것도 없다.

    현 시점에서 가장 '디아블로'에 가까운 이 작품이 올해 6월 국내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이번 NDC 2019 핵심 강연자 중 한 명으로 강단에 선 조나단 로저스 CTO의 말에 수많은 참관객이 귀를 기울인 이유다. 창업자가 생각하는 '패스 오브 엑자일'의 성공 비결과 철학을 지금부터 확인해보자.

    * 본 강연은 1인칭 시점으로 작성했습니다.



    ■ 주제1 - 디아블로에서 배웠다, '패스 오브 엑자일'의 5가지 핵심

    패스 오브 엑자일은 속도감 넘치는 전투와 액션, 코옵 게임플레이가 특징이다. 여기에 어두운 고딕 스타일의 아트, 엄청난 규모의 스킬 시스템을 더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영원이 할 수 있는 게임'을 목표로 했다.




    탄생 배경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디아블로 시리즈다. 특히, '디아블로2'는 정말 수천 시간 했던 것 같다. 우리뿐 만 아니라 수많은 게임사에서 디아블로 시리즈의 성공을 재현하고자 도전했다. 보다시피 모두 훌륭한 게임들이다. 그런데 '디아블로2' 같은 게임은 없었다. 난 '타이탄 퀘스트'도 열심히 즐겼지만, 2회차 할 땐 특별히 재미를 못 느꼈다. 반면, '디아블로2'는 계속 해도 재밌다. 이건 정말 엄청난 장점이다. 우리는 수 년간 그 비결을 찾고자 노력했고, 그 결과물을 '패스 오브 엑자일'에 적용했다. 크게 보면 총 5가지다.




    첫 번째는 액션성이다. 핵앤슬래쉬 액션 RPG는 다른 무엇보다 액션성이 중요하다. 스킬들의 쿨타임을 줄여 즉각적인 액션성을 강조했다. 지금은 이런 방식으로 액션성을 강조한 게임이 많지만, 패스 오브 엑자일을 개발할 당시에는 흔치 않았다.

    두 번째는 랜덤 레벨 디자인(맵)이다. 핵앤슬래쉬 액션 RPG에서 무작위로 생성되는 전장이 없다면, 유저는 계속 같은 전투를 할 수 밖에 없다. 수백 시간이 넘는 플레이타임을 확보하기 위해선 랜덤 레벨 디자인이 필수다. 안 그러면 유저들이 금방 싫증내니까.

    세 번째, 무작위 아이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부분만 놓고 강연해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웃음). 진지하게 접근해야 할 주제다. 방금 죽인 저 몬스터가 내게 꼭 맞는 아이템을 줄 거라는 믿음을 유저들에게 계속 심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보상을 제공해야 하는데, 이건 우리가 가장 자신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리고 네 번째는 안전한 온라인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수많은 게임사들이 도전하고, 게임 안팎으로 수많은 문제가 나오는 부분이다. 오래 서비스되는 게임의 첫 번째 조건은 '게임 내 경제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되는가'에 달렸다. '패스 오브 엑자일'은 게임 내 아이템의 가치가 변하지 않도록, 독자적인 거래 시스템을 구축했다.

    마지막으로 깊이 있는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을 들 수 있다. 그냥 외형을 말하는 게 아니다. 캐릭터를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키울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클래스만 다른 6~7개 캐릭터로는 수천 시간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 수 없다. 말 그대로 수백 개의 플레이스타일이 있어야 한다.



    ■ 주제2 - 콘텐츠 업데이트, "이건 우리가 다른 데보다 잘 할 수 있잖아!"

    물론, 지금까지 말한 것들은 디아블로 시리즈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선 무언가 더 필요했다. 정말 오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려면, 우리가 다른 어떤 게임사보다도 더 잘 할 수 있는 걸 찾아야 했다. 그 결과물이 주 단위 업데이트다. 매주 신규 콘텐츠를 내놓는다면, '디아블로2'보다 오래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첫 오픈 테스트 그래프를 보면서 설명하겠다. 뿌듯한 결과였다. 첫날 동시접속자만 7만 명이 나왔다. 처음 게임 만들 때 동접 1만 명만 나와도 충분히 수익 날 거라 예상했는데, 무려 7만 명이나 접속하니 '우린 이제 부자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이후 유저수가 꾸준히 줄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지속적인 패치 덕에 최소 1만 명 이상의 동시접속자 수는 유지했지만, 이대로 만족할 순 없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경제 리셋 시스템인 '리그'를 도입했다.(디아블로3의 '시즌'과 유사) 다행히 유저들도 경제 리셋 시스템을 환영했다. '내가 최고가 될 기회가 생겼다'라고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 주 단위로 진행해왔던 콘텐츠 업데이트도 3주 단위로 바꿨다. 지속성에서 한계를 느꼈고, 무엇보다 개발자들이 너무 힘들어했다.




    이렇게 시스템을 바꾸니 다시 유저들이 유입됐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그래프가 곤두박질쳤다. 심지어 1만 명 이하로 동시접속자 수가 떨어지자, 회사 입장에선 위기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OBT부터 적용할 장기적인 비전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무려 9개월 간 대규모 업데이트를 준비했다. 새로운 리그, 신규 지역은 물론, 스팀 출시도 목표에 넣었다. OBT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초창기 수준의 동시접속자 수가 나왔지만, 또다시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했다. 그 시기에 확장팩 아이디어가 나왔다.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다양한 업데이트 내역을 담은 확장팩 단위로 콘텐츠를 선보이면 유저들이 다시 늘어나는 걸 확인했다. 초기 그래프만큼 극적인 상승폭은 아니었지만, 이후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약간이나마 힌트를 얻은 셈이다.




    이후 콘텐츠 업데이트가 아닌, 독립적인 리그를 적용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블러드라인이라는 이름의 리그를 만들어 적용했지만, 생각보다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 그냥 리그일 뿐이니까 어찌 보면 당연했다. 리그를 한 달 단위로 리셋해보기도 했으나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시기를 너무 짧게 잡은 게 이유였다.

    다시 11개월을 투자해 대규모 확장팩을 만들었고, '패스 오브 엑자일' 역사에 남을 만한 상승세를 기록했다. 큰 콘텐츠일수록 상승폭도 컸지만, 이를 지속하는 게 문제였다. 결국 동시접속자 수는 다시 내려가더라.

    수많은 시도를 해보았음에도 큰 성과를 내지 못했으니, 이는 개발 방향의 문제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일단 신규 콘텐츠를 유저들이 알아봐준다는 걸 확인했다는 데 있었다. 게임플레이 경험을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 확장팩 출시에 맞춰 자연스럽게 마케팅 효과를 본다는 것도 이 때 알았다. 하지만, 마케팅만을 목적으로 콘텐츠를 잘게 쪼개어 출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봤다. 콘텐츠가 작으면 유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돌지 않는다. 이왕 확장팩 내려면 크게 만들어 내야 효과가 있다고 판단했다.




    확장팩 주기에 대한 힌트는 한 스트리머와의 대화에서 얻었다. 그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방송 안 하면 시청자들 다 떠난다. 몇 주간 노력해 겨우 다시 돌아오게 만들었다'고 하더라.

    이는 게임 콘텐츠 업데이트에도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비정기적인 업데이트는, 유저들로 하여금 패치 시기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든다. 그들이 예측 가능한 스케줄이 필요했다. 내부 논의를 거친 결과, 13주마다 새로운 리그를 선보이기로 결정했다. 1년에 4번 릴리즈되니, 유저들에게 '게임 안 망했어요, 새로운 콘텐츠가 개발되고 있어요'라는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었던 셈이다.




    유저들이 게임을 안 하더라도 그냥 할 콘텐츠가 없으니 잠시 쉬고 있을 뿐, 완전히 접은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언제든 다시 돌아올 준비가 돼 있다. 게임을 디자인할 때, 이걸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우린 한 사이클에 한 달 정도 플레이할 수 있는 분량을 만든다. 코어 유저들은 2~3달 정도 즐긴다. 그 이후 접속 안 하더라도 그들이 '패스 오브 엑자일'을 지운 건 아니다. '다음 리그 때 다시 해야지'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 생각을 계속 하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

    다시 그래프를 보면서 얘기하겠다. 초창기 리그만 업데이트하던 시절과 대조적으로, 후반부에는 확장팩을 정기적으로 내니 유저 숫자가 꾸준히 늘어나는 걸 볼 수 있다. 크게 두 단계로 나뉘는 셈인데, 후반에는 어느 정도 유저들의 상승세를 예측할 수 있을 만한 패턴이 나왔다. 개발 철학을 바꿈으로써 귀중한 자료를 얻은 셈이다.






    ■ 주제3 - 그럼 어떤 걸 만들어야 할까?

    이제 우리가 어떻게 콘텐츠를 만드는지 말해보려고 한다. 콘텐츠의 퀄리티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앞서 이야기한 내용은 어떤 의미도 없으니까.

    일단, 새로운 시나리오가 반드시 필요하다. 서사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유저들도 있지만, 확장팩에 무게감을 주는 건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 게임플레이나 아이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저들을 위해 새로운 전투 콘텐츠를 개발한다. 아이템이고 게임플레이고 다 관심 없고, 새로운 도전 과제나 퀘스트만을 원하는 유저도 있다. 그들을 위해 출시하는 리그마다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게임 안에 새로운 게임을 작게나마 매번 만들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또, 우리는 유저들이 열망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걸 좋아한다. 모든 유저 중 상위 1% 정도만 깰 수 있는 보스를 선보였을 당시,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질문했다. 왜 굳이 1%만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었냐고, 굳이 많은 개발 시간 들여가며 만들 가치가 있는 콘텐츠냐고.

    하지만, 우린 이렇게 생각한다. 그 상위 1% 유저 중 대다수는 게임 방송을 진행하는 스트리머다. 그들이 보스를 잡고 전리품을 챙기는 걸 수많은 유저들이 관전한다. 구경하는 유저 중 상당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도 언젠가 저거 꼭 잡아야지'. 그렇게 훗날 그 레벨 달성하는 걸 바라며 게임하는 거다. 누구나 할 수 없는 콘텐츠라도, 게이머로서의 열망을 채워줄 '최종보스'는 꼭 필요하다고 본다.




    꾸준한 밸런스 수정이 중요하다는 건 게임 개발자라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패스 오브 엑자일'에서도 다르지 않다. 3개월 단위로 리밸런싱을 안 해주면 유저는 계속 똑같은 플레이를 할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성장 옵션을 제안해야 한다. 이를 통해 유저들이 지치는 걸 방지하고,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다'는 생각을 안 하도록 만들 수 있다. 확장팩 업데이트 때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들어간 아이템도 선보여야 한다. 콘텐츠든 시스템이든 마찬가지다. 그러기 위해 13주에 한 번씩 모든 요소를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 주제4 - 실제 개발기간 4주! 그 안에 확장팩 하나씩 만드는 비결은?

    그렇다면, 우리가 이런 일을 대체 어떻게 하는지 궁금할 것 같다.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를 그 시간 안에 다 만들 수 있을까? 개발 도중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이런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지금부터 우리의 작업 과정을 설명해보려고 한다.

    사실 말이 13주지, 실제 개발 기간은 그보다 훨씬 짧다. 이전까지 발견된 문제점을 취합하는 데 1주, 새로운 확장팩의 콘셉트를 짜는 데 3주가 걸린다. 그럼 9주가 남는다. 또 확장팩 출시 3주 전에는 사전 발표를 해야 한다. 그럼 6주가 남는데, 여기에 언론 홍보 1주, 언론 홍보 자료를 준비하는 데 또 1주가 빠진다. 그럼 온전히 개발에 집중할 시간은 4주밖에 안 된다.

    결국, 빠른 프로토타이핑이 없다면 불가능한 작업이다. 어려운 문제다. 우리도 약 20회의 크고 작은 업데이트를 진행해왔지만, 완벽한 개발 알고리즘을 찾았다고 말하긴 어렵다. 지금도 계속 개선중이나, 그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찾기도 했다.

    우선 절차적 레벨 생성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확장팩 출시할 때마다 새로운 탐험 지역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걸 얼마나 빨리 만드는지가 중요하다. 이 시스템을 쓰면, 단 몇 분 내로 새로운 탐험 지역을 뚝딱 만들어낼 수 있다.




    가운데 도로를 그리고 녹색 주변 환경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단 2분이다. 곧바로 우리의 자체 엔진에 적용한다. 도로와 강이 교차되는 지점엔 다리가 자동으로 생성된다. 이후 나무를 비롯한 여러 오브젝트를 배치하면 하나의 레벨 디자인이 완성되는데, 여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약 20분 정도다. 타일셋, 도로 방향 등만 바꿔줘도 반나절 만에 10개 이상의 탐험 지역을 만들 수 있다. 이정도면 플레이타임 100시간 정도 분량이다.




    단순히 맵만 많다고 콘텐츠가 풍부한 게임이 되는 건 아니다. 말 그대로 유저들이 할 일이 많아야 한다. '패스 오브 엑자일'에는 랜덤 발생 이벤트가 있다. 10개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30개라도 모자란다. 단순히 랜덤 이벤트 숫자가 많다고 되는 게 아니다. 예외성의 축을 여러 개 놓아야 한다. 인카운터가 10개라면, 변종 몬스터도 10개 정도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작업해두면 1,000여 개의 배리에이션을 만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패스 오브 엑자일'에는 '브리치(균열)'이라는 랜덤 인카운터가 있다. 모험을 진행하다 발견한 브리치를 가동하면 원이 점점 크게 생성되는데, 그 안에서 몰려들어오는 몬스터들을 쉼 없이 격퇴하는 구조다. 모든 브리치 구조를 똑같게 한다면, 금방 질릴 것이 뻔하다. 그래서 몬스터 타입도 다르게, 번개나 불 같은 자연 환경 효과도 매번 다르게 발동하도록 했다. 어떤 보스가 스폰될지도 직접 플레이하기 전에는 모른다. 이렇게 의외성이 많다 보니, 할 때마다 새로운 브리치를 경험할 수 있다.




    풍부한 의외성은 그만큼 풍부한 리소스가 갖춰져야만 만들 수 있다. 개발 비용을 줄이되, 리소스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해선, 기존의 자원을 재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그냥 쓴다는 게 아니라 같은 오브젝트라도 완전히 다르게 보일 수 있도록 만들어야 되는데, 이건 우리가 가장 자신있어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같은 암석 오브젝트라도 어떤 방향으로 배치했는지, 어떤 타일셋에 어떤 라이팅을 썼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배경뿐 아니라 몬스터도 마찬가지다. 기본 뼈대는 같되, 또 다른 텍스쳐를 입히고 새로운 스킬셋을 적용한다면 완전히 다른 몬스터로 재탄생한다.






    리소스 재사용과는 별개로 시스템 재사용도 필요하다. 이전 리그에 있던 시스템, 혹은 보상 체계를 재활용한다고 보면 된다. 이전에 공개했던 리그의 브리치 시스템을 최근 업데이트에서 다른 배리에이션으로 선보인 것이 좋은 예다. 이를 두고 유저들이 '콘텐츠 재사용'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자체적인 재미가 보장된 콘텐츠이기에, 그만한 보상을 준다면 오히려 반기는 유저들이 많다.




    신규 콘텐츠 개발 기간을 너무 오래 잡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약 9개월 간 신규 콘텐츠를 준비하며 느낀 게 있는데, 너무 일찍부터 계획을 잡게 되면 중간에 유저들의 피드백을 받아도 이를 수렴하기가 쉽지 않더라. 사이클을 짧게 가져가면, 유저들의 불만에 대한 대응도 빠르게 할 수 있다.

    콘텐츠 출시는 뒤로 미루면 안 된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면, 최대한 빨리 만들어 넣어야 한다. 몇몇 트리플 A급 개발자들은 '아이디어 그때 그때 다 쓰면, 나중에 문제 생긴다'라고 말하는데, 우리 생각은 다르다. 게임에 관심과 열정이 있다면, 새로운 아이디어는 언제나 떠오르는 법이다.

    '매직 더 게더링'을 예로 들고 싶다. 이미 출시된 지 한참 지난 게임이지만, 지금까지도 개발사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우리 역시 지금 이 아이디어를 만들어 넣더라도, 이후 새로운 아이디어가 또 생각날거라고 믿는다. 결과적으로, 그게 우리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한테도 더 좋은 거라고 보고.

    이런 아이디어가 굳이 콘텐츠나 시스템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하다 못해 갑옷이나 무기 같은 아이템이라도, 뭔가 떠오르면 바로 만드는 게 좋다. 지금 당장 넣을 게 아니더라도, 일단 만들어두면 그걸 쓸 때가 반드시 온다. 이러면 다음 확장팩을 만드는 시간도 크게 단축된다. 특별한 목적이나 계획이 없더라도 일단 만드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게임 모드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쉽다.




    지금까지 꾸준히 성장하는 PvE 게임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한 가지만 기억하길 바란다. 유저들이 지금 당장 안 하더라도, 게임에 관심이 떠난 게 아니라고 믿어야 한다. 언제든지 돌아올 준비가 돼 있고, 게임 개발자는 그 생각을 읽어야 한다.

    그 예로 '패스 오브 엑자일' 커뮤니티 활동 그래프를 보여주려 한다. 게임 접속자 수와 비교하면 하락율이 절반에 불과하다. 유저들이 게임은 안 해도 커뮤니티는 계속 본다는 의미다. 게임 당장 안 해도, 세일하면 구매해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언젠가 할 거니까 저렴할 때 미리 사는 거다. 어떤 게임을 만들든, 어떤 콘텐츠를 만들든, 유저를 잊어선 안 된다.








    Q. 이전에 '패스 오브 엑자일'을 해본 적이 없기에 진입 장벽이 걱정된다. 지금 해도 재밌게 즐길 수 있을까.

    스킬트리가 좀 복잡해 보일 수는 있겠지만, 유저들이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가이드가 마련되어 있다. 외우기가 너무 어렵다면, 이 가이드를 보길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저런 방향으로 많은 캐릭터를 육성해보길 추천하지만, 어느 정도 육성 빌드가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관련 커뮤니티에서 참고하면 된다. 시스템 간소화를 요구하는 피드백도 있지만, 우리는 RPG 장르는 어느 정도 깊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깊이가 없는 게임은 유저들이 금방 접는다.

    Q. 콘텐츠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무엇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일단 '패스 오브 엑자일' 유저들이 원하는 걸 정리한 리스트를 토대로, 각 요소들이 다 포함되어 있는지 점검한다. 그리고 각기 다른 성향의 유저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지 확인한다. 게임플레이만 놓고 본다면, 일단 신선함이 느껴지는지를 중점적으로 체크한다.


    Q. F2P 게임이 꾸준히 유저수를 유지하기 위해선 새로운 콘텐츠 제공이 필수다. 그 작업 과정을 들어보고 싶다.

    일단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다. 99%는 별로지만, 다 취합해 펼쳐놓고 결합하는 과정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 이를 다시 정리해 새로운 콘텐츠 개발에 활용한다.

    Q. 게임에 경매장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유저간 거래가 너무 쉽게 된다면, 게임 내 인플레이션이 심해질거라 생각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게임 안에 더 많은 걸 넣을 수는 있겠지만, 그 때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게임 내 경제를 너무 흔드는 건 좋지 않다.

    Q. 그라인딩 기어 게임즈는 신규 유저, 복귀 유저 중 어느 쪽에 관심이 많나.

    물론, 신규 유저를 위한 콘텐츠도 만들긴 하지만, 우리가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기존 유저다. 우린 개발 사이클이 있다. 새로운 사이클 때마다 기존 유저들이 돌아오는 게 매우 중요하다.

    Q. 경제 리셋을 자주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디아블로2처럼 리셋을 안 하는 게임도 있는데, 그 경우 유저들이 다시 그 캐릭터를 플레이하게 만들 방법이 없다. 우리는 완전히 리셋된 환경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경우, 새로운 서버가 열리면 많은 유저들이 새로운 마음으로 플레이한다. 따로 리셋을 하는 건 아니지만, 이 역시 일종의 리셋 장치인 셈이다. 리셋이 없었다면 '패스 오브 엑자일'은 진작에 사라졌을 거다.

    Q. 곧 한국에서도 '패스 오브 엑자일'이 서비스되는데, 어떤 부분에 집중하고 있나.

    한국은 우리에게 있어 서양 시장만큼 중요한 곳이다. 그렇기에 이후 모든 콘텐츠를 로컬라이징 작업을 거쳐 똑같은 시기에 출시할 예정이다. 우리가 카카오 플랫폼을 사용하는데, 한국 유저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게 할 것이다. 또, 몇몇 지역은 따로 구분되어 다른 나라 유저들과 같이 즐길 수 없었는데, 한국은 완전히 개방된 환경에서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