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DC2019] "태초에 천족과 마족이" 이 지긋지긋한 문장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게임뉴스 | 윤서호 기자 | 댓글: 21개 |


[▲ 오현석 게임빌 시나리오 라이터 ]

  • 주제: 이 세계 시나리오 라이터를 위한 스토리텔링 - 유저의 이탈을 막는 매력적인 첫 문장 작성하기
  • 강연자 : 오현석 - 게임빌 / GAMEVIL
  • 발표분야 : 게임기획
  • 권장 대상 : 시나리오 라이터
  • 난이도 : 사전지식 불필요 : 튜토리얼이나 개요 수준에서의 설명


  • [강연 주제] 저는 게임 업계에 들어오기 전부터 다년간 장르 소설을 써오며 독자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문체나 캐릭터 조형에 관해 연구해왔습니다. 순수문학의 작법과 달리 상업 소설, 장르 문학의 작법은 게임 시나리오의 작법과 상당 부분 유사점을 보이는데, 저는 이를 '라이트노벨'이라는 가벼운 주제를 통해 쉽게 풀어 소개할 예정입니다. 이번 발표에서는 소설의 많은 부분 중에서도 서장에 해당하는 '인트로'를 주로 다룰 예정인데, 게임 시나리오를 쓸 때 첫 씬,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연한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이걸 보게 만들까?"

    아마 이 화두는 포맷과 미디어를 초월하고 모든 시나리오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화두일 것이다. 게임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게임은 다른 매체와는 다르게, 유저가 참여를 하지만 시나리오를 안 읽는다는 케이스도 발생한다. 그렇다고 시나리오를 완전히 놓을 수도 없다. "스토리 노잼", "이게 스토리냐"라는 비판도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유저가 시나리오를 조금이라도 보고, 관심을 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현석 게임빌 시나리오 라이터는 사람이 첫 인상이 중요한 것처럼 게임 시나리오에서도 첫 문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NDC 2019에서 오현석 게임빌 시나리오 라이터는 자신이 장르 문학을 집필하고 게임 개발에 참여했던 경험을 토대로 시나리오의 첫 문장을 어떻게 써나가야 하는지 노하우를 풀어나갔다.



    ■ 첫 인상, 정말 중요하다 - 부분 무료화 게임은 특히 더 그렇다




    오현석 시나리오 라이터는 강연에 앞서 자신의 경력부터 설명했다. 그는 장르문학과 라이트노벨 작가로 커리어를 시작하다가 이후에 게임 업계로 들어온 케이스였다. 그가 사람들에게 예전에 라이트노벨 작가다, 혹은 최근에도 라이트노벨 작가였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종종 인터넷에서 소비되는 라이트노벨의 인식을 떠올린다.

    라이트노벨하면 보통 사람들은 어떤 작품이라고 생각할까? 이제는 '(이 세계는 이미 내가 구해서 부와 권력을 손에 넣었고, 여기사와 여마왕과 성에서 즐겁게 살고 있으니 나 말고 다른 용자는) 더 이상 이세계에 오지 마세요'처럼 책 표지의 절반을 제목에 할애해야 할 정도로 장문의 제목이 붙은 글들을 떠올릴 것이다.

    혹은 죽어서 다른 세계로 전생한다는 이른바 이세계 전생물이나, 예전에 '먼치킨'이라고 자주 불렸던 소설들처럼 주인공이 다른 캐릭터보다 넘사벽으로 강한 소설들이 있을 것이다. '즉사 치트가 너무 최강이라 이세계 녀석들이 전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만'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여기서는 그나마 스킬이라도 쓰던가, 혹은 손가락이라도 까딱해주는 것도 아니다. 인터넷으로 종종 밈으로 쓰이는 "반으로 갈라져서 죽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는데, 그냥 이렇게 말하면 지정한 상대가 반으로 갈라져서 죽는다는 다소 황당한 전개가 진행되고는 한다.



    ▲ 이와 같은 이미지 때문에 자신이 그 스타일로 쓰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았다고

    그가 이런 이미지를 굳이 설명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썼던 라이트노벨은 이런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라이트노벨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라이트노벨 작가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런 작품 쓰는 구나"라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작품을 바라보고는 했다.

    이는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오현석 시나리오 라이터는 설명했다. 가장 흔히 나오는 "태초에 천족과 마족이 있었다"라는 문장을 보자. 여기에 작가진들은 내심 '후반에 반전이 있으니까 그걸 보면 놀랄 거야' 기대를 한다. 하지만 유저의 반응은 이렇다. "아 또 태초에 천족과 마족 타령이야? 또 똑같은 게임이네." 이렇게 되면 후반의 반전도 무용지물이 된다. 첫 인상에서 벌써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기 때문이다.



    ▲ 천족과 마족 도입부도 이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간다

    특히나 모바일 게임은 두 가지 이유에서 첫 인상이 다른 게임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로 대다수의 모바일 게임이 부분 무료화 모델을 채택하고 있으며, 두 번째로는 시간이 재화처럼 취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매출 순위권에 올라와있는 모바일 게임을 기준으로 보면 부분 무료화 게임이 압도적으로 많다. 구글플레이 기준으로 전체 게임 매출 185위권까지 살펴봐도 유료 게임은 단 하나, 마인크래프트밖에 없다. 이런 게임들의 수익 모델은 간단하다. 다운로드를 받아서 플레이하고, 마음에 들면 과금을 하라는 것이다.




    기존의 유료 게임은 첫 인상이 나빠도 자신이 비용을 선 지불했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종종 환불하기도 하지만, 정말 누가 봐도 흔히 말하는 '똥겜'이 아니고서는 그래도 돈을 주고 샀으니 좀 더 해볼까? 라는 심리가 작용한다. 자신이 비용을 지불했으니 그에 따른 보상을 받겠다, 라는 보상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료 게임 모델을 주로 채택한 PC나 콘솔 게임은 처음부터 온전히 게임을 하는 데에 시간을 투자하고, 그 시간에 대해서 크게 아까워하지 않는다. 어차피 게임을 하려고 앉았으니 한 판 더 해보자는 식으로 접근하는 식이다. 따라서 첫 인상이 조금 나빠도 플레이를 좀 더 해서 만족감을 느낄 만한 파트나, 개발진들이 의도한 반전 등을 접하게 될 확률이 비교적 높다.

    그렇지만 부분 유료화 게임은 다르다. 무료로 쉽게 구했기 때문에 그만 둬도 잃을 것이 없다. 즉 보상 심리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모바일 게임을 살펴보면 시간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재화로 작동하고 있다.

    실제로 모바일 게임을 보면 핸드폰을 진득하게 붙잡기보다는 가끔씩 붙잡고 게임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에 맞춰서 최근 모바일 게임들은 플레이타임을 줄이거나, 번거롭고 지루한 작업들을 자동으로 진행해 유저가 좀 더 흥미 있어하는 콘텐츠를 빠르게 접근하게끔 설계한다. 이렇게 제한된 시간에 게임을 하는 만큼, 그 시간을 들여서 첫 인상이 좋지 않은 게임을 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 부분 유료화 게임에서는 첫 인상이 더욱 중요하다



    ■ "천족 마족 왜 이렇게 많이 나오나요?" - 자주 쓰는 문장에는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들 것이다. 왜 그놈의 천족 마족은 시도 때도 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제국력 몇 년이 매일 같이 게임의 첫 장면에 뜨는 걸까?

    오현석 시나리오 라이터는 소설 창작과 게임 개발 과정의 결정적인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나리오 라이터는 시나리오의 핵심이지만 게임 속 모든 것을 결정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시나리오 라이터는 그냥 스토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때론 각 부서의 요구사항에 맞춰서 시나리오를 집필해야 한다. 그래야 게임의 분위기나, 게임 속 요소들과 따로 놀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종종 문제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사업팀에서는 유명 성우가 더빙에 참여했으니, 그 성우가 연기한 캐릭터를 유저들에게 어필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연출팀에서는 화려한 연출을 선보이고 싶다고 요구한다. 한편으로는 기획팀에서는 자신들이 만든 스킬이 얼마나 강력한지 유저들에게 어필하는 기회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 소설이라면 작가가 혼자서 이를 주도적으로 처리할 수 있지만



    ▲ 시나리오 라이터 혼자서 게임을 만드는 게 아니다보니,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

    이런 식의 니즈를 시나리오 라이터가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결과물이 바로 처음에 만렙 캐릭터로 최종 보스와 대판 싸우다가 초기화가 된다는 유저들이 익히 아는 그런 시나리오 전개다.



    ▲ 결말은 다들 아는 그대로.jpg

    오현석 시나리오 라이터는 이를 피할 수 없다면, 적어도 첫 문장에서라도 유저들의 이목을 끌 것을 주문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처럼, 문장이 달라지면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좋은 첫 문장은 어떻게 써야 할까? 하는 문제가 남는다. 문장이라는 것은 주관이 강하게 개입되는 만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상업 작품에서는 소위 '잘 팔리는 문장'을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사람마다 취향도 경험도 다 다르기 때문에 해당 문장에 대한 느낌이 다 다르지만, 적어도 그 문장이 잘 팔리는 것에는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문장이 좀 더 사람들에게 어필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문학과 업계에서는 소위 '클리셰'라고 부르는 요소들이다.

    그렇다면 이것들이 처음부터 판에 박히고, 진부한 것들이었을까? 오현석 시나리오 라이터는 아니라고 답했다. 클리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누군가가 처음에 모티브를 제공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것이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자주 인용이 되면서 패러디, 오마주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게 계속 나오다보면 '이런 전개네'라는 답이 나올 정도로 익숙한 틀이 잡힌다. 이 단계가 클리셰고, 여기서 좀 더 나아가 남용되기 시작하면 진부한 표현으로 떨어지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클리셰들의 원형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고, 꽤 뛰어난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첫 문장을 쓸 때 이를 해체 분석해나가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러면서 몇 가지 흔히 나도는 진부한 문장의 예시들을 분석해나갔다.



    ▲ 자주 쓰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이 왜 자주 쓰였나 역추적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우선 그는 가장 먼저, 판타지 게임이면 으레 등장하는 '태초에 천족과 마족이 있었다'를 살펴보았다. 너무 자주 봐서 일부 유저들은 '태초'라는 말만 들어도 '아 또?'라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도 이게 왜 이렇게 자주 쓰이는 걸까?

    그는 '태초'라는 말에 주목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성경의 첫 구절인 터라 사람들이 일상에서 잘 안 쓰이는 말인데도 무언가 친숙하게 느끼는 단어다. 아울러 이 단어는 대부분 창세 신화에서 사용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와 더불어 '천족'과 '마족'은 선과 악의 근원에 대한 서술이다. 즉 이 문장에는 창세, 그리고 선과 악이라는 거대한 에픽 판타지 세계관을 제시하는 요소들이 담겨있는 것이다. 따라서 RPG 속의 거대한 판타지 세계관을 기대하는 유저에게 그 게임 속 세계관의 스케일을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문장인 셈이고, 그래서 자주 쓰이는 클리셰가 된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렇다면 제국력 1042년은 어떨까? 제국력이라는 말은 곧 그 세계관에는 황제라 칭하는 절대 권력자가 있고, 그 사람이 다스리는 방대한 영토의 제국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연호를 제시한 것은 연호와 달력이 있을 정도로 발전한 세계라는 의미도 있다. 또한 천 년 이상의 연도는, 그 제국이 천 년 이상이나 존속할 정도로 강력하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그런 정보들은 유저가 게임 속에 있는 제국과 그 세계관을 상상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 유추하는 과정에서 몰입감을 줄 수 있는 것들이다.




    '모르는 천장이다'라는 것은 이와 달리 어떤 특정 정보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 '모른다'라는 것이 여기서는 정보를 제공해준다. 자다가 일어났는데 전혀 모르는 광경을 보았다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제한해서 전달하기 때문에 유저는 어떤 상황인지 알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몰입감이 극대화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애니를 보다보면 종종 등장하는 '오니짱 하야쿠 오키나이또(오빠 빨리 일어나)'는 어떨까? 이 문장은 남성향 러브 코미디 장르에 익숙한 일부 계층만을 저격하는 문장이다. 사실 러브 코미디 속의 귀여운 여동생 캐릭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별 의미가 없다. 그냥 여동생이 깨우러 왔다 정도의 정보밖에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유저에게는 혐오감까지 불러일으키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러브 코미디 속 환상의 여동생을 그리는 사람에게는 판타지를 충족시켜줄 캐릭터가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그 캐릭터가 메인 히로인으로 등장한다는 의미를 전달해준다. 그렇게 해서 해당 장르에 관심이 있는 유저들의 눈길을 끌고, 관심을 유발시키는 것이 이 문장이 갖고 있는 의의인 셈이다.






    ■ 우선 읽을 사람에게 어필할 첫 문장을 쓰자 - 그 뒤는 동료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 말고 좋은 첫 문장은 무엇이 있을까? 그는 두 가지 문장을 예시로 들었다. 첫 번째는 이영도 작가의 '눈물을 마시는 새'의 첫 문장이다.

    '용'은 지금은 인기를 끄는 요소가 아니지만 D&D의 영향이 컸던 당시에는 관심을 끌 만한 소재고, '왕자'는 봉건군주제였었다는 정보를 전달하는 단어다. '생존이 천박한 농담이 된 시대'는 그만큼 세계관이 척박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앞에 있는 '잊혀지고', '묻혀버린' 신경 쓰지 않는'과 맞물려서 더욱 강조가 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독자는 주인공이 순탄치 않은 여정을 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한 남자가 사막을 걸었다'라는 문구로 반전을 제시했다. 그런 수식구와 상관없이 가고 있는 한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와 더불어 '사막'이라는 단어도, 일상적인 공간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한다고 보았다.



    ▲ 시대에서 한 개인으로, 그리고 비일상적인 소재를 제시하면서 흥미를 유발한다

    일부는 "소설, 그것도 이영도 작가의 글이니까 당연히 첫 문장이 좋다"고 반응할 수도 있다. 이에 그는 두 번째 예시로 페이트/그랜드 오더의 첫 문장을 사례로 들었다.

    -염기 서열, 인간 게놈으로 확인. -영기 속성, 선성·중립으로 확인.
    인류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자료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곳은 인리계속보장기관 칼데아

    '영기 속성', '선성·중립', '인리계속보장기관' 등은 처음 본 사람들로 하여금 "이건 뭐야"라는 반응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난해하고 불친절한 데다가 용법도 일반적이지 않다. 이런 식의 고유명사를 특별한 설명 없이 불쑥 제시하는 것은 페이트 시리즈의 원작자 나스 기노코의 특징이다. 사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좋은 문장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읽기도 어려운 단어를 자주 쓰고,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 흥미를 유발할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힌트도 나중에 가서야 주는 등, 일반론으로 보면 오히려 안 좋은 전형에 속한다.

    그러나 이 문장은 '페이트' 시리즈, 혹은 다른 타입문의 IP들을 좋아하는 유저에게는 반가운 문장이다. 원래 타입문, 그리고 나스 기노코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어뿐만이 아니다. 앞에 들어가있는 '-' 부호도 흔히 말하는 '-아아' 같은, 타입문 작품에서 흔히 등장하는 문장 구조를 연상시키는 요소다. 즉 이 문장은 완벽하게 페이트/그랜드 오더를 플레이할 대상 유저층을 저격하는 문장이고, 그들이 알고 싶어하는 정보를 제일 먼저 전개한 셈이다.




    앞서 보았듯이 첫 문장들의 유형은 다양하다. 자주 접해서 익숙한 문장도 있고, 정보가 여러 가지 많이 담긴 문장도 있다. 혹은 정보를 의도적으로 차단해서 호기심을 유발하려고 하는 시도도 있고, 특정 장르 혹은 작품 스타일을 이해시키거나 인지시키려는 문장도 있다. 제각각 다르지만, 이런 문장들을 그가 꼽은 이유는 간단했다. 유저의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 첫 문장으로 시선을 끈다는 것은, 다음으로 넘어가는 단계라는 뜻이기도 하다

    첫 문장을 읽기 시작하고, 유저가 호기심을 느끼기 시작하면 그 다음으로 넘어가기가 쉬워진다. 그 다음 단계에서 또 다시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면 유저는 계속 그 콘텐츠를 즐기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소설과 달리 게임에서는 텍스트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요소가 그 다음 단계를 견인한다. 예를 들어서 그래픽이 좋다거나, 캐릭터 일러스트가 마음에 든다거나, 게임플레이가 마음에 든다던가 하는 식이다. 그러면서 긍정적인 피드백이 오가게 되고, 이것이 흔히 업계에서 말하는 리텐션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첫 문장이 끝나고 난 다음에 두 번째 문장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현석 시나리오 라이터는 첫 번째 문장처럼 부담감을 갖지 말라고 조언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첫 문장이 끝나고 나면, 그 다음 단계에서 유저들은 게임의 여러 요소들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첫 문장 다음부터는 다른 팀원들이 만들어둔 것에 맞춰서, 혹은 그들과 협의를 진행하면서 같이 설계해나간다는 점을 한 번 더 강조하면서 그는 강연을 마쳤다.



    ▲ 일단 첫 문장이 성공하고 나면



    ▲ 그 다음은 동료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 Q & A

    Q. 소설 스토리텔링과 게임 스토리텔링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 여러 가지 차이가 있겠지만 게임은 묘사나 서술을 문장으로 하는 게 제한이 되어있고, 또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기도 하다. 예를 들어 소설에서는 어떤 캐릭터가 처음 등장했다고 치자, 그럼 그 캐릭터에 대한 정보를 서술과 묘사로 다 해줘야 한다. 그 캐릭터가 예쁜가, 혹은 강한가, 강하다면 얼마나 강한가? 예쁘다면 어떤 것 때문에 예쁜가, 또 신체 특성은 어떤가?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다 텍스트로, 문장으로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독자들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게임은 다르다. 예쁜 캐릭터가 있다고 하면 예쁘게 그린 일러스트를 보여주거나, 혹은 그렇게 모델링한 캐릭터를 보여주면 된다. 강한 캐릭터라고 한다면 머리 위에 뜨는 레벨 수치를 굉장히 높게 책정하거나, 혹은 그 강함을 뽐낼 수 있는 영상을 집어넣으면 된다. 거대한 건물 같은 것을 주먹이나 검으로 쉽게 박살내버린다던가, 그런 식이면 '강하다'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낀다.

    장르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게임 전체적으로 보면 다수의 장르가 텍스트 외에도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굳이 서술이나 묘사하는 문장이 없어도 상황 설명이나 묘사, 정보 전달이 된다. 이것이 가장 큰 차이라고 하겠다.


    Q. 기존에 없는 독특한 세계관을 게임에 도입하려고 한다. 그런데 첫 문장을 어떤 식으로 써야 좋을지 모르겠다.

    = 기존에 없던 세계, 클리셰도 없는 세계관이라고 가정해보자. 이걸 어필하고 싶다고 해서 설정집처럼 쓰면 유저는 혼란스럽다. 갑자기 처음부터 복잡하고 낯설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전혀 낯선 세계를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요소가 있기 마련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서 그 세계관에서도 출퇴근을 하는 존재가 있다거나 하지 않겠나. 주인공이 그럴 수도 있고, 혹은 다른 사람이 그럴 수도 있을 거고. 그 외에 일상에서 흔히 보면서 공감할 만한 부분이 세계관을 설정하는 동안 은연 중에 반영이 되어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부분을 찾아서 우선 제시해서 유저의 공감을 먼저 산 뒤에, 그 독특한 세계관을 차츰차츰 어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Q. 시나리오를 읽지 않는 유저가 많은데, 조금이라도 더 많은 유저가 읽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이게 시나리오 라이터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사람들이 다 스킵하니까(웃음). 팀원에게도 심지어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너 너무 글 많이 쓴다. 어차피 다 스킵하는데 뭐 그렇게 쓰냐"라고.

    게임은 글과 다르게, 굳이 문장을 읽거나 듣지 않아도 플레이를 못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래서 스토리는 빨리 제쳐두고 플레이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더 빨리 하고 싶은 유저들이 많다. 그런 유저들을 조금이라도 더 스토리를 읽게 하려고 노력하겠지만, 그 전에 자신이 만드는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 확실하게 해두는 것이 좋다.

    만약에 스토리보다는 게임플레이에 중심을 두는 게임이라고 치자. 그러면 유저에게 억지로 스토리를 읽게 만드는 것은 유저의 니즈에 부합하지 않는다. "아 플레이해야 하는 데 왜 뜨는 거야?"라는 반응이 주로 나올 것이다. 그보다는 스토리를 읽으면서 플레이하려는 사람에게 좀 더 어필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스토리 안 읽으려는 사람에게 억지로 "한 번 읽어봐 츄라이 츄라이"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그것보다는 읽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더욱 좋은 조건, 그리고 몰입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제공하는 것이 시나리오 라이터의 덕목이라고 본다.


    Q. 자신이 쓴 첫 문장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는 기준이 궁금하다

    = 예전에 소설을 썼을 때의 이야기인데, 서문을 쓴 뒤에 정말 그 문장을 다 까먹을 정도로 오랜 시간 내버려뒀다가 다시 읽었다. 기간으로 치자면 두세 달쯤 뒤였을까? 그렇게 했을 때 괜찮다 싶으면 괜찮은 것이고, 어색하다 싶으면 좀 안 좋은 것이다. 쓰고 난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렇게 내버려두고 나면 다른 시각에서 보기 때문에 그런 게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게임 개발 과정에서 이 방법을 쓰라는 것은 아니다. 문장 수정하는데 두세 달 걸리면 팀원들이 곤란하니까.

    한 번에 좋은 문장을 촥, 써내려가는 것은 사실 어렵다. 그때 당시에는 좋던 것도, 그 주관이 희미해지고 난 뒤에 보면 달라진다. 그런 상황에서도 만족시킬 만한 문장이 좋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걸 쓰기 어려우니 계속 수정하고, 퇴고를 하게 된다고 본다. 요는 어떻게 보아도 괜찮다 싶으면, 적어도 나쁜 문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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