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몰입'에 대한 연구는 공정하게 이뤄졌는가?

기획기사 | 정재훈 기자 | 댓글: 57개 |



지난 2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18 게임 과몰입 종합 실태조사'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윤태진 책임교수를 필두로 연세대학교 산합협력단이 주축이 되어 이뤄진 이 연구는, 게임 과몰입에 대한 다른 연구 보고서와는 조금 다른 주제의 연구를 수행했다.

수많은 게임과몰입 대상 연구보고서가 게임과몰입에 대해 연구했다면, 이 보고서는 '그 연구에 대해 연구'했다. '게임과몰입에 대한 연구가 어떤 성향을 띄고, 어떤 방향성을 갖고 연구되어가고 있는가?' 그것이 이 보고서의 연구 내용이었다.

총 196페이지, 요약문만 37페이지에 이르는 이 보고서는 각계각층의 시선에서 수행된 게임과몰입에 대한 연구들을 분석했다. 미국의 정신의학 통계 매뉴얼의 5차 개정판인 DSM-5가 발효된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발표된 연구들을 키워드 추출법으로 걸러냈고, 그 과정에서 발견된 다양한 오류를 지적했다.

대한민국은 익히 알다시피 '게임과몰입'에 대해 가장 많은 논문을 발표한 나라이다. 해외 인용색인 데이터베이스인 SCUPUS 기준으로 전 세계 논문의 13.4%인 91편의 논문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이뤄졌고, 한국연구재단과 한국 학술지 인용 색인에 등재된 논문을 합치면 수백 편이 넘어간다.




인벤에서는 해당 보고서의 내용을 참고해, 현재까지 이뤄진 게임과몰입에 대한 연구가 어떤 오류를 띄고 있는지 정리해 보았다. 보고서에 대한 직접 열람은 한국콘텐츠진흥원 연구보고서를 통해 가능하다.



1. 연구자들의 잘못된 전제와 연구의 전형성

보고서에 따르면 게임과몰입에 대한 연구 중 많은 보고서는 연구자의 개인 견해가 담긴 전제가 바탕되어 있다. 예를 들어 국내 의약학 부문에서 수행된 연구들은 '학교 폭력'에 대한 연구가 굉장히 부각되어 있다. 보고서는 의약학 측면에서 게임과몰입을 연구한 많은 연구자들이 게임과몰입이 학교 폭력에 영향을 줄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또한, 심리학 측면에서의 연구들도 몇 가지 전제와 전형성을 띄는데, 국내 게임중독 관련 심리학 논문에서는 연구 대상이 청소년, 학생, 아동에 집중되어 있다. 보고서는 이를 '게임과몰입이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문제의식이 깔려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하며, 외로움, 스트레스, 또래관계 등 다양한 심리적 요인과 청소년 게임과몰입의 상관관계를 밝히려는 연구의 전형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청소년과 아동에 연구 대상이 밀집되어 있다는 점은 교육학, 사회복지학 측면의 연구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2. 관련 개념에 대해 이뤄지지 않은 학술적 합의

보고서는 총 523편의 논문을 살펴보는 동안 '게임중독(본문 상 중독으로 표기)'에 대한 정의가 총 16가지나 된다는 것을 지적했다. 나아가 이는 같은 현상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 학술적 합의가 없기 때문이며,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만, 공식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언급했다.




이런 용어, 개념에 대한 무분별한 선택은 여러 보고서에서 드러나는데, '게임'을 표현함에도 '게임', '비디오 게임', '온라인 게임', '인터넷 게임'의 네 가지 용어가 여러 보고서에서 혼용되고 있으며, 게임 플레이를 문제시하는 용어 또한 ’문제적(Problematic)’, ‘병리적(Pathological)’, ‘중독(Addiction)’, ‘장애(Disorder)’등 통일되지 않았다.

보고서는 '게임중독'이라는 용어가 'DSM-5'에서 '장애'로 수정되고, 중독, 남용, 의존 등의 단어가 사라지면서 학계에서 사용되지 않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 계속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또한 '게임과몰입'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의 부재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더불어 각 연구에 쓰인 진단 도구 및 척도도 굉장히 다양한데, 게임과몰입에 쓰인 관련 척도만 30개 이상이 발견되었다. 가장 많이 쓰인 'Young'의 'IAT'척도는 본래 '게임과몰입'이 아닌 '인터넷과몰입'을 진단하는 척도로서, 현재 게임과몰입을 진단하는데 적절한 척도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3. 주요 연구 행위자의 편향성

보고서의 분석에 따르면 게임과몰입 관련 논문이 가장 많이 등재된 상위 5개의 학술지 모두 심리학 및 정신의학과 행위 중독을 주요 연구 분야로 다루는 학술지이며, 게임과 게이머 문화, 미디어 등을 주요 연구 분야로 삼는 학술지에 게임과몰입 관련 연구 논문이 실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또한, 여러 논문에 많이 인용된 논문의 저자들은 대부분 정신의학과 게임과몰입의 병리적 측면을 강조하는 등, 게임플레이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연구자들이 많았으며, 실제 게임과몰입 관련 논문을 가장 많이 발표한 연구자들 또한 중독센터 센터장, 정신의학과 교수, 중독 디톡스 사업의 총괄책임자 등이었다.


4. 연구비 지원 주체의 편향성




게임과몰입 연구 논문 총 523편 중 절반 이상인 55.1%는 외부 펀딩을 통해 이뤄졌다. 지원 주체를 살펴보면, 중국 정부와 연계된 'NSFC'가 50편의 논문을, 지원했고, 한국연구재단이 35편, 보건복지부가 23편, 미래창조과학부가 17편을 지원했다. 보고서가 완료된 시점인 2018년 11월까지 문화체육관광부는 단 한 편의 연구에도 지원하지 않았다.

보고서는 이에 대해 동아시아 국가의 정부가 게임과몰입, 중독 등에 대한 학술적 담론의 생산을 주도하고 있다고 추론했으며, 이중 83%가 정신의학과 심리학 분야에 연계되어 있다고 언급했다. 정신의학, 심리학, 뇌과학을 제외한 다른 학문 분야(미디어, 인문학 등)에서 연구된 논문은 전체 비율의 8%에 불과하다.


5. 연구 대상 게임 선정에 대한 모호성

그간 진행된 게임과몰입 관련 연구는 게임의 플랫폼, 유형별 플레이 개념에 대해 크게 고려치 않았다. 게임은 장르에 따라 매우 상이한 플레이 경험을 주지만, 특정 장르나 특정 게임을 지목하는 연구는 두드러지지 않았고, 게임 종류를 명시한 경우에도 구체적인 특성의 구분은 전혀 통일되어있지 않았다.




특정 장르, 게임을 지목하는 경우에는 해당 게임이나 장르에서 과몰입의 영향이나 인과관계를 찾기보다는 연구 진행 당시 가장 인기가 많은 장르나 게임을 무분별하게 채택하는 경향이 강했으며, 동시대의 보편적 게임장르를 선택해 연구를 진행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현재 게임 시장은 모바일 시장이 타 플랫폼 대비 우세함을 보이지만, 모바일 게임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

게임의 역기능적 요인과 병인으로서의 게임을 다루는 연구의 경우 연구 대상인 '게임'에 대한 분석이 제한적이고, 매체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반면, 게임의 순기능적 요인에 대한 연구의 경우 상대적으로 정교한 게임 분류와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보고서는 이런 경향에 대해 게임과몰입에 대한 연구가 병리적 현상을 유발하는 '무언가'로서 게임을 지칭하면서도 연구 설계나 병인의 명명 과정에서 게임의 속성이나 분류에 대해 무지한 태도를 보이고 게임과몰입에 대해 무비판적 수용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학술적 합의가 부재한 상황에서 정식 질병으로의 등재가 이뤄진 현 상황에 혼란만 더욱 야기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