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형이 왜 한국에..." 문득 돌아온 '고릴라' 강범현과의 근황 토크

인터뷰 | 석준규 기자 | 댓글: 46개 |





LEC 미스핏츠에서 활동 중, 갑자기 한국에 온 '고릴라' 강범현. 나진 시절부터 눈에 익어 왔던 선수이기에, 뜻밖의 소식을 듣자마자 걱정이 들었습니다. 계약에서 어그러진 것은 아닐까? 문제가 생겨 팀과 대판 싸운 것은 아닐까(그 고릴라가?)? 아마도 고릴라의 활약을 더 기대했던 많은 팬분들 역시 여러 어렴풋한 걱정을 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장마가 그칠 무렵, 문래동의 카페에서 고릴라를 만났습니다. 걱정이 컸지만, 반가움은 어쩔 수 없었죠. 근황 토크로 삼십 분이 넘게 수다를 떨고,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계약 종료였지만, 적어도 좋게 웃으며 나와 스스로의 관리와 다음 발걸음을 위해 힘쓰는 고릴라를 보니 또 속으로 안심이 되기도 합니다. '이래야 고릴라지' 하는 생각일까요.

카페와 곱창집, 맥주집을 넘나들며 나눈 다양한 대화. 정리된 인터뷰로나마 전해 드립니다. 부쩍 생각이 많아진 고릴라의 근황을 다음 인터뷰를 통해 다같이 살펴 보시죠.








진짜 반가워요. 언제 오셨죠? 잘 지내셨나요?

안녕하세요! 이제 한국 온 지 11일 정도 됐네요. 아직도 여러가지가 헷갈려요.


아직도 시차 적응이 안 된 건가요?

아뇨. 예를 들어, 프로게이머할 땐 일정한 생활 패턴이 있잖아요. 생활하는 내내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요. 처음으로 그런 것에서 풀려나다 보니 좀 슬퍼요. 게임을 새벽 다섯 시까지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보니 생활 패턴이 없어진 느낌이 들어요.


그렇겠네요. 요새는 다른 게임들도 좀 하고 있나요?

다른 게임을 하기보단 LoL 한국 서버에 있던 부캐를 다시 키우고 있죠. 그 동안 안 하다보니 휴면으로 인해 강등되기도 했고요. 전반적으로 게임을 좀 쉬었다보니 다시 감을 좀 잡으려 해요. '러쉬' 형과 듀오로 게임도 하고 그러죠. 한국은 인터넷 상태가 정말 좋으니까 참 좋네요. 클라이언트에서 종종 지인들도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다보니 드디어 고향에 온 느낌이 들어요.


갑자기 한국에 왔어요. 주변에서 걱정 많이 듣진 않았나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한 친구들은 제가 게임을 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어요. 제가 한국 왔다 하니 '벌써 왔어?' 하는 정도죠. 오히려 부모님께서 신경을 써 주시죠. 그리고 예전 ROX 멤버들의 부모님 분들과 다 친해요. 그분들께서 저희 어머니께 전화를 주시곤 해요. '범현이가 갑자기 한국에 왔는데 괜찮은 거냐고. 그런 연락은 오네요.


친구들이 그다지 걱정을 안 했다는게 재밌네요.

멘탈이 괜찮냐고 질문은 받았어요. 제가 멘탈이 '여리여리'하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비록 성적은 안 좋았지만 그 동안 많은 도움이 되고 성장했단 느낌이라, 아쉬워도 이 정도면 잘 다녀왔다고 생각해요.


그렇군요. 모처럼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하신 건 뭔가요?

에어컨을 샀어요(웃음). 집에선 부모님께서 항상 '선풍기로 충분하다'고 항상 말씀하세요. 송도에 있다보니 바닷바람도 분다며, 에어컨을 안 사시더라고요. 결국 제가 정말 더워서 못 살겠어서, 어머니께 말씀 드리고 드디어 에어컨을 샀어요. 두 대나.


사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해요. 왜 미스핏츠를 떠나게 된 걸까요?

많은 부분을 다 말씀드릴 수는 없어요. 결과적으론, 서로 웃으며 헤어졌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어요. 서로 감정 안 상하고 말이죠. 회사와 저 모두 서로 배울 게 있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도 제 의지로 미스핏츠에 남을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어요. 하지만 저 스스로의 미래와 발전을 위해, 제 의지로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할 수 있겠어요.


아무리 그래도 아쉬움이 클텐데요. 기분이 좀 어때요?

시원하면서도 섭섭하죠. 시즌 도중에 이렇게 길게 쉬어본 적도 없고요. 걱정이 앞서기도 했어요. 나이도 먹어가며 프로 생활도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내년에도 선수를 하고 싶은데 이제 어떻게 생활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앞으로 팀을 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도 있어요.


그 동안 LCK의 분위기도 참 많이 바뀌었죠. 뛰어난 효율을 보이는 신인들도 많이 발굴됐어요. 오랜 선수로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리그 분위기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들 잘 해졌고, 다들 어려졌죠. 나이 많은 선수들은 값이 비싸다는 인식도 크고요. 미스핏츠에서도 제가 나간다고 했을 때, 코칭스태프들도 제게 '내년이 제일 걱정이다'라고 해주시더라고요. 그나마 해외에선 쌓아 온 커리어를 많이 인정해주는 분위기에요. 그런데 미스핏츠에서의 성적 부진으로 인해, 커리어로 인한 메리트를 받지 못할 것에 대해 걱정도 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훗날 팀을 구하게 될 때, 만약 그 팀 사람들이 미스핏츠에서의 네 커리어에 대해 우려를 보인다면 자신들에게 연결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고릴라의 활약에 대해 다 설명해줄 수 있다고. 그런 식으로 제게 도움을 주겠다고 했죠.


좋은 도움이네요. 이미지가 정말 중요한 씬이니까요.

저도 그래서 한국 오면 밥 사겠다 그런 식으로 좋게 이야기했죠.


미스핏츠에서는 고릴라를 활용한 짧은 영상이나 콘텐츠도 만들어주는 모습을 많이 보였는데, 선수로서 그런 것들을 못하게 되는 것도 아쉬울 것 같아요. 이별의 아쉬움은 많이 나눴나요?


한국 팀들은 바쁘면 소소한 촬영 같은 걸 많이 안 하죠. 하지만 해외 팀들은 카메라맨도 항상 따라다니고, 사진 찍을 공간도 편리하게 갖춰져 있어요. 그러다보니 유쾌한 콘텐츠를 만드는 게 자유로운 분위기죠. 저 역시 콘텐츠팀의 부탁을 딱히 거절하지 않았어요. '이런 곳이니까 이런 것도 해보지' 하는 마음으로 적극 참여했죠. 그래서 콘텐츠팀과 사이가 참 좋았어요.

그리고 전 여러 상황을 대비해 항상 유로화를 좀 갖고 있었어요. 제가 한국으로 간다고 결정되었던 날, 간만에 제가 밥이라도 산다고 스태프들에게 말했죠. 계산을 하려 했는데, 코치들이 '왜 네가 밥을 사냐'며 저를 붙잡고 돈을 못 내게 하더라고요. 사려고 마음 먹었는데 말이죠. 출국 전날에 간 바에서도, 마지막으로 술 한 잔 사려고 열 명 정도를 모았는데, 또 못 사게 하더라고요. 그렇게만 봐도, 저는 스태프들과 다 사이가 좋았던 것 같아요. 편지도 받았어요. 아직도 갖고 있죠.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참 슬프더라고요.

인생은 길잖아요. 그 인생에서 좋은 경험 했다 싶어요. 프로게이머니까 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죠.




▲ Love...



아하하, 우셨어요?

네, 울긴 울었죠. 특이한 에피소드도 있었어요. 공항에서 한 한국인을 봤어요. 저를 아시더라고요. 저를 보고 '한국에 가시냐'고 묻는데, 제가 그 땐 자세히 밝힐 순 없으니까 '시즌 중 휴가를 받았다'며 둘러댔어요. 생각해보니 그 분은 신기하게도 제가 섬머 시즌을 시작하려 탄 유럽행 비행기에서 이미 만났던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섬머 시작할 때 만나고,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 공항에서 우연히 또 만난 거죠. 마주쳤던 두 가지 상황의 제 입장이 굉장히 다른 터라,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창피한 마음도 들었어요. 이제 그 분도 기사를 보면 알게 되시겠죠(웃음).


미스핏츠에선 누구랑 친했나요? 누가 제일 생각날까요?

선수 중에선 한스 사마가 제일 생각 많이 날 거에요. 같이 라인도 섰고, 운동도 다녔고, '형, 형' 하며 절 따라 오기도 했고요. 사실 다들 생각날 것 같아요. 모두와 사이가 좋았으니까요. 저의 생애 첫 해외 생활 하며 같이 지낸 선수들이고, 스태프들이고요. 앞으로도 생각 많이 날 거에요.


모두와 컨택을 잘 유지해야겠네요. 좋게 헤어졌으니, 나중에 여러 요청이 올 수도 있고요.

(웃음)그럴 수도 있죠. 어쩌면 코치로 요청이 올 수도 있고요.


코치로 요청이 오면 어떡할 거에요?

전 선수 욕심이 아직 더 강해요. 코치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제가 군대를 다녀와도 훗날 코치를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군대를 다녀와서 선수 복귀는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해요. 하고 싶지도 않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저는 할 수 있을때까진 선수를 계속 하려 해요.


유럽에서 제일 친한 선수는 누구였나요?

아무래도 '모글리'죠. 다른 선수들과는 아쉽게도 연이 잘 닿진 못했어요. '이그나', '트릭', '피레안', '드림'... 모글리는 한국에서부터 이미 친했고, 제가 유럽에 간다고 하니 같이 잘 놀자고 해줬었죠. 정말 휴가마다 모글리와 '지주케'와 만나 밥도 많이 먹었어요.


모글리가 많이 아쉬워 하겠네요.

그랬죠. '형, 먼저 가 있어. 나도 금방 갈게' 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스포일링 하면 안되는데요.

하하. 아무튼 지금도 가끔 연락 와요. 그래도 모글리는 나머지 선수들과도 친하니까 잘 지낼 거에요.




유럽에서 미처 하지 못해 아쉬웠던 것이 더 있나요?

제가 팀에서 나온다고 확정됐을 때, 다들 입을 모아 제게 '여행을 가라'고 조언해 줬어요. 제가 독일에 있기도 하고, 유럽 비자도 있으니 많은 곳에 쉽게 갈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성격이 좀 소심하고, 제 영어가 아직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코칭 스태프들은 제 영어가 괜찮은 수준이라고 해주는데, 뭐 제 성향이 좀 그래요. 낯도 많이 가리고요.


그러게요. 분명 나중에 아쉽긴 하겠어요.

군대가기 전엔 꼭 다시 여행을 가고 싶어요. 제가 돈을 벌 수 있을 땐 꼭 가고 싶네요. 여행으로 가든, 팀에 입단해서 가든.


게임이나 팀 생활 면에서 아쉬운 것도 많겠어요.

'욕심을 좀 더 부릴걸' 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서 여태껏 제가 있던 팀들은 제가 양보를 해도 괜찮았어요. 팀원들 개개인의 성격들도 셌고 하니, 그 사이에서 제가 완충재가 되면 팀이 잘 굴러갔죠.

이번 미스핏츠에서는 제가 외국인들의 성향을 잘 모르니까, 그냥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그래서 코칭 스태프들도 '너무 착하게만 살려 하진 마라'며 조언을 해주기도 했어요. 돌이켜보면, 좀 더 'Toxic' 했어야 하는 생각이 들어요. 좀 더 제 주장을 하고, '나를 따르라'도 해볼걸 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언어적인 면에서 이유가 있었죠. 예를 들어 한국어로 '너 왜 그랬어?'라는 말은 질책이나 따지는 게 아니고, 그냥 질문일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영어로 했을 때 어떤 뉘앙스로 받아들일지에 대해선 걱정이 앞섰어요. 의도치 않았지만, '내가 선택한 단어와 문장으로 기분이 상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죠. 그래서 만약 내년에 제가 외국에 있다면, 그 부분을 꼭 고칠 거에요.


그러게요. 더 많은 말을 했다면 팀과 스스로에게도 더 도움이 되었을텐데요.

그렇죠. 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가지 의견을 이야기하는 게 한국어로는 참 쉬운데 말이에요. 그리고 억울하거나 답답한 상황에 말에 감정이 들어갈 때 힘들더라고요. 말이 다 안 통하니 분해서 울먹거릴 것도 같고요. 그렇게 안 하려고 하다보니 저는 항상 한 발짝씩 물러났던 것 같아요. 정면돌파가 아니고, '이 정도면 얘기 된 거겠지' 하고 물러난 거죠. 그게 후회돼요. 팀에게 미안하기도 하고요.


팀에서도 안 그러길 바랐을텐데요.

네. 그래서 다음에 또 그런 기회가 온다면, 보완하고 싶은 부분이에요. 그래서 지금 쉬면서 트위치에서 영어 방송을 하는 러쉬 형과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같이 한국에서 듀오 방송을 하며 동시에 영어 공부도 하자고요. 서울에서 가까이 같이 살면서요. 혼자 살면 게을러지고 프로 의식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서로 도우면서 살자는거죠. 운동도 하고, 영어도 하고, 듀오도 하고. 제 입장에선 고맙죠. 제 미래가 어떻게 될 지는 모르지만, 영어를 배워두면 어떤 생활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고보니 러쉬가 고릴라의 한국행에 대해 방송에서 스포일링하지 않았나요?

앞서 말한 고민에 대해 한참 러쉬 형과 이야기를 하던 참이었어요. 하지만 제 한국행에 대해선 팀에서 확정을 짓지 않은 상황이었죠. 러쉬 형이 제 행방을 유출한 그 때, 멘탈 코치님이 베를린으로 오고 계셨어요. 저는 제 행방에 대해선 멘탈 코치와 이야기를 먼저 해야 했죠.

방송 이후 러쉬 형이 연락을 하더라고요. 자신이 실수를 했다면서 자신의 방송 링크를 보내주더라고요. 확인해보니까 이건 실수를 수습하려다가 더 난리가 난 거에요. 아이고, 큰일났다 싶었죠. 다음 날 팀에서 메시지가 와 있었어요. 제가 결국 나가기로 한 건지, 컨펌이 다 된 건지 묻기 위해서요. 어떻게 보면, 러쉬 형 덕분에 제 결정이 더 빠르게 진행된 거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 '아차!'



팀에서는 오해했을 수도 있겠어요.

그렇죠. 팀에선 기분 나빴을 수 있죠. 그나저나 러쉬 형이 뒷수습 하는 게 지금 생각해도 후...


최근 LCK는 봤나요? 순위도 그렇고 난리도 아닌데요. 어떤 것 같나요?

이게 참, 당사자가 아니면 훨씬 재밌어요. 당사자였으면 피가 마르겠지만요. 근데 참 많은 선수들도 그러는데, 경기를 라이브로 보면 이상하게 참 졸려요. LEC는 단판이라 챙겨보기도 편하고 재밌거든요. 저도 미래를 위해 LCK를 라이브로 보려고 하는데, 1세트 끝나고 대기 시간에 꼭 잠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새벽에 몰아 보는 편이에요.

최근 경기들을 보니까, 정말 다 잘 하는 것 같아요. 모두가 잘 하다 보니까, 싸움을 많이 거는 조합이 점점 좋아 보여요. 모든 팀들이 운영도 하고 머리도 잘 쓰는 상황에선, 결국 싸움을 잘 하는 쪽이 이기지 않겠나 싶어요. 싸움을 거는 '도구'가 많은 팀이 이기곤 하죠. 최근 한화생명e스포츠와 담원 게이밍전에서도 보여졌듯 말이에요. 저도 보면서 많이 재미를 느끼고, 배우기도 해요.


스타 신인들도 많이 등장했어요. 활약하는 후배들을 보다보면, 세대가 달라진 느낌도 드나요?

세대도 달라졌죠. 그 와중에 오래 활동한 선수들이 잘 하는 모습도 같이 봐요. '칸'도 그렇고, '조커'도 나이가 참 많고요. 저 역시 '나이가 많으면 피지컬이 떨어진다'는 말을 믿는 사람이에요. 나아가, 저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피지컬, 그리고 게임 스타일에 고정관념이 생기는 거죠. 운영 등에서 옛날식 플레이 관념에 묶이게 돼요. 서포터는 사실 피지컬보다는 그 고정관념을 타파하는게 더 중요하다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싸움 각이 딱히 안 나올 때 '굳이 우리가 왜 싸워야 하나'를 생각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유럽은 '빨리 싸우고 빨리 끝내버리는게 좋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그런 다양한 모습들을 보며 제가 갖고 있던 굳어진 생각들을 많이 깨버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국도 그런 점에서 많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해요.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기도 하고요. 아무튼 오래 된 선수들이 그런 굳어진 생각을 갖고 있다면 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LCK 선수들은 좀 만났나요? 다들 친하잖아요.


말만 본다고, 본다고 하지, 보려고 하면 제가 너무 멀리 살아서... 생활 패턴이 불규칙해지다보니 한국 선수들과 게임하는 시간이 달라져 버렸어요. 이래저래 게임을 잘 못할 핑계들이 생기는 거죠. 또한 집이 멀어 어딜 가도 이동 시간이 너무 길어, 한 번 외출이라도 하면 게임할 시간이 없어진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잘 만나지 못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그나마 인터뷰나 가까이 사는 사람만 가끔 보고요. 경기장은 그래도 한 번 갈 예정이에요. 이번 주 일요일에 갈 수도 있겠어요.


그나저나 전 동료였던 '프레이'도 최근 고전하고 있어요.


프레이 형은 제가 미스핏츠 있을 때도 같이 이야기를 많이 했었어요. 프레이 형은 힘들어도 티를 안 내요. 정말 티를 안 내는 스타일이죠. 지난 해에 저와 프레이 형이 욕을 같이 많이 먹었어요. 그 때 제가 안타까웠던 것은, 프레이 형이 경기에서 자신이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을 많이 느낀다는 것이었어요. 그래도 최근 경기에서 루시안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감을 찾은 건가 해서 기분 좋았어요. 앞으로도 계속 그런 모습 보여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아무래도 프레이 입단에 대한 주변의 기대가 많았을테니, 본인도 압박을 느꼈을 거에요.

그렇죠. 전통의 강호였는데요.


팬들의 질문들이 좀 있어요. 하나씩 읊어볼게요. LEC에서 제일 Trash Talker가 누군가요?

'업셋'이요. 깜짝 놀랐죠, 순진하게 생겼는데. 성격이 나쁜 게 아니라, 말장난을 많이 하더라고요. 게임에서 퍼즈가 걸리면 선수들끼리 가끔 채팅으로 떠들곤 하는데, 업셋의 채팅 수위가 상당해요. 재밌는 친구에요.





여전히 프릴라를 연결짓는 팬들이 많아요. 재결합이나 같이 활동하는 것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이야기해본 적이 있냐는 질문이네요.

은퇴하기 전에 가능할까요, 그게? 전 이미 프레이 형과 오래 한 상황이라, 모든 팀이 저희의 스타일을 알 거에요. 물론 이벤트로는 가능할 수 있죠. 아니면 훗날 같은 팀의 코칭 스태프로 같이 입단하거나요. 그 정도는 되겠지만... 프레이 형과 저는 서로 프로 생활이 길게 남지 않은 상황이에요. 팬 분들을 위해서 OK라고 하고 싶지만, 여러모로 쉽지는 않은 문제죠. 그렇다고 같이 하기 싫은 건 아니에요(웃음). 저흰 친하니까요.


어떤 분석가들은 미스핏츠가 패한 원인이 '고릴라는 오랫동안 프레이라는 원딜에 많이 맞춰왔기 때문에 미스핏츠에서 채 준비가 되지 않았었기 때문'이라고도 해요. 이런 분석에 대해 어떻게 보나요?

스프링부터 저는 다른 라이너들의 챔피언 희망에 따라 제 챔피언과 스타일을 바꾸기도 하며, 많은 노력을 했어요. 그리고 이기는 게임에선 좋은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하고요. 많은 것들을 맞추려고 노력했지만, 팀 자체의 시너지가 안 난 경우가 있었어요. 그래도 저는 제 스타일에 대해 한 가지로 정해놓고 고집부리지 않았고, 팀원들이 요구하는 것을 최대한 들어줬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게임 말고 관심 갖고 있는 것이 있다면요?


아무래도 운동이죠. 제가 운동을 열심히 한 건 기본적인 체력 문제와, 얼굴이 크고 어깨가 좁다는 콤플렉스가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그걸 관리하고 싶어서 운동을 했죠. 그리고 유럽에선 딱히 스트레스를 풀 수단이 없었어요. 연인을 사귀지도 않았고, 다른 게임을 하지도 않았고요. 휴가 때 잠을 자는 정도였어요. 게다가 독일에선 일요일에 모든 가게가 닫아요. 스트레스를 풀 곳이 안 그래도 없는데 더 없다보니, 살아남기 위해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게 된 거죠.

또한, 보통 숙소 생활을 할 때 저는 다른 선수들에게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안 그래도 되는데 말이죠. 괜히 손길이 가고, 괜히 도와주고 싶고요. 선수들을 케어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보니, 휴가 기간에는 아무한테도 신경쓰지 않고 혼자 있고 싶어질 때가 오더라고요. 혼자 영화를 보거나, 친한 가게에 방문하며 스트레스를 풀곤 해요.


그렇게 보니 살 정말 많이 빠졌네요. 유산소 운동을 많이 했어요?

독일에선 자연스레 빠졌어요. 야식도 안 먹었고, 쌀도 안 먹었고요. 술은 많이 안 마셨어요. 피부에 안 좋은 반응이 오거든요. 그나마 한국에서는 술 마실 일이 생길 때 피부 약을 받아 먹으면 괜찮았어요. 하지만 독일에선 그게 어려웠죠. 그래도 요즘은... 맥주가 정말 맛있더라고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요? 술 맛을 요즘 느끼고 있어요(웃음).


LEC의 수준은 어떻게 평가하고 싶나요?

제가 9등 팀이라 평가하긴 어렵겠지만, 개인적으로 봤을 땐... 만일 LEC와 LPL, LCS, LCK 각 지역의 상위 세 팀끼리 맞싸운다면 G2만큼은 그 대결에서 최상위권에 충분히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프나틱이나 스플라이스도 물론 잘 하죠. 하지만 G2보다는 아주 조금의 의구심은 더 드는 정도에요.





그래요, 이제 다시 제 질문이에요. 이제 계획은 뭔가요?

우선 단기 계획은... 만일 저를 팀 차원에서, 혹은 LCK 차원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불러 준다면 그것을 위해 더욱 열심히 LCK를 연구할 계획이에요. 조만간 러쉬 형과 서울에 살 테니까, 어디든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일단은 자기 관리를 하며,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미래를 위해 영어 공부를 지속하는 것 정도에요.


영어권으로의 해외 재진출 고려를 많이 하는 것 같은데요, 국내 팀 입단 고려도 혹시 하고 있나요?

물론이죠. 어디든 길이 있으면 가보지 않을까요? 미국이든 유럽이든 한국이든, 저는 열려 있어요.


앗, 중국은요?

중국은... 아... 제가 1년 안에 중국어가 가능할까요? 그나마 영어는 좀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만약 제가 올해 중국에 갔었다면 좀 배웠어서 내년에 갈 가능성도 있었을텐데... 물론 불러주신다면 참 좋죠.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제가 제 강점을 다 보여줄 수 있을까 의문은 드네요(웃음).


아까부터 나이 얘기가 많이 나왔죠. 고릴라도 참 오랜 시간 동안 여러 경험을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기분이 좀 어때요?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고 느껴요. 나진 시절 막내였던 시절에서 이 나이까지 왔다는 게 슬프기도 해요. 옛날 생각도 요즘 많이 나요. 추억 보정이라고 하죠. 그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진 해야겠다 싶죠. 저한테도 이런 시기가 오다니! 그래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 없어요. 부정하기보단 지금 이 상황에서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 해보자라는 생각이 커요.


무엇보다 이 좁은 판에서 트러블 없이 오래 활동했다는 게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제 좌우명이, '이 업계에서 이미지를 잘 유지하자'였어요. 박정석 감독님 및 여러 분께도 조언을 많이 들었죠. 판은 좁으니, 열심히 하라고요.

그리고 '끝물'이 되어가니, 미래에 대한 생각을 점점 하게 돼요. 제가 배운 건 게임 뿐이에요. 이 커리어를 마치고 완전히 다른 일을 한다는 게 말이 안되는 기분이죠. 군대를 다녀와서도 이 쪽에서 일을 찾고 싶어요.


아직 모를 미래를 생각하면 무섭진 않아요?

무섭진 않아요. 제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요. 프로게이머가 된 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고3 시절부터 게임에만 집중하느라 대학 생활도 제대로 못 했어요. 그런 결정을 내린 상황에서부터 지금 프로게이머까지 잘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프로게이머가 안 되었다면 제가 뭐가 되었을까 생각도 들어요.

여기까지 온 것도 행운인데, 미래가 무슨 걱정이겠어요. 지금 선수일 때와 미래의 저는 수입에 대해선 물론 차이가 있겠죠. 하지만 미래에도 제가 어떻게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감사할 일이고, 그런 식으로 계속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요.


선수 수명에 대해 스스로 많이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네, 제 선수 수명이 얼마 안 남은 건 모두가 알죠. 저도 알고, 누구나 알고, 팬분들도 알죠. 모든 선수가 그렇겠지만, 꼭 이루고 싶은 로망은 롤드컵 우승이에요. 저는 많은 것들을 해 왔지만, 아직 롤드컵 우승은 못 해봤으니까요. 그것에 대한 열망은 아직 남아 있어요.

게임 외적으론, 최근에 '꿍' 형을 만났어요. '세이브'와 '와치' 등 '나진 패밀리'가 함께 모여보자고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요. 제가 부산으로 직접 가서든 꼭 한 번 모여보고 싶어요.


그리운 이름들이에요. 마지막으로, 인터뷰 읽는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 주세요.

유럽 팬 분들께는, 저를 반겨줘서 고마워요. 아쉽게 이번 시즌은 마쳤지만, 저는 항상 열려 있기에 좋은 기회가 있다면 다시 만나고 싶어요. 올해 남은 4개월 동안 좋은 가능성을 잡을 수 있도록 저 스스로 많이 연마 할게요.

팬 분들도 제 나이에 대해 걱정이 많으실텐데,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끝나는 시기가 있듯 말이죠. 그렇다고 제가 그걸 의식해서 우울해하거나 충격 받지는 않아요. 저는 정말 잘 지내고 있어요. 전 다행이 아직 게임이 재미있고, 배울 것도 많다고 생각해요. 다시 찾아뵐 수 있도록 준비할게요. 걱정 말고 응원해 주세요.






▲ 친절한 서포터 고릴라의 건승을 바라며! (사진은 왼쪽부터 고릴라, 미스핏츠 통역 겸 매니저 Hajinsu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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