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블리즈컨 2019, 그 함성을 앞으로도 기억하길

칼럼 | 정재훈 기자 | 댓글: 87개 |



폭풍같은 주말이 지나가고 애너하임 컨벤션 센터는 다시 한산해졌다. 지난 이틀간 블리즈컨 2019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본 그 수많은 인파는 어느새 종적도 없이 사라졌고, 지친 얼굴로 무대 장치를 옮기는 센터 직원들만이 남아 소음을 만들 뿐이었다. 수많은 게임쇼를 다녔지만 이번 블리즈컨은 나에게 꽤 큰 의미로 다가왔었다. 지금까지 내가 다녔던 게임쇼는 대부분 희망과 기대, 그밖의 여러 긍정적 감정들 위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블리즈컨은 달랐다.

최초로, '검증'을 위한 게임쇼였다. 작년 블리즈컨에서 큰 실망을 느낀 관객들이 다시 몰려들었고, 대부분 웃고 있었지만 웃음의 계층이 달랐다. 평소라면 공개될 차기작에 대한 기대와 행사장 자체가 내뿜는 즐거운 분위기에 취한 웃음을 흘릴 관객들이 이번엔 반쯤의 우려와 반쯤의 기대가 섞인 웃음을 내비치고 있었다. 블리즈컨 시작 전, 이틀간 행사장 주변을 돌며 느낀 관객들의 마음은 이러했다. '설마 이번에도?''어디 한번 두고 보자'

어쨌거나 행사는 시작되었고,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지금 애너하임 컨벤션 센터가 내려다보이는 호텔에서, 지난 2일간 이어진 블리즈컨 2019에 대한 후기를 적어보려 한다.





사과와 함께 시작된 블리즈컨

블리즈컨 시작 전부터 눈길을 끄는 사람들이 있었다. 보안검색대 앞에 크게 좌판을 벌려놓고 소리를 지르는 이들이었는데, 다들 마스크를 두르고 블리즈컨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팜플렛과 함께 홍콩을 응원하자는 문구를 적은 티셔츠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었다. 의외로 구성원들은 동양인들이 아닌 서양인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어떻게 모여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 건지 약간의 궁금증이 생겼다.

이들이 나눠준 스티커는 행사장 곳곳에서 볼 수 있었는데, 일부 관객의 경우 정말 제거가 힘든 곳들(시멘트 바닥, 페인트칠된 기둥 등)에 스티커를 붙여놓곤 했다. 스트리밍에서 이런 모습이 보였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블리즈컨에서 이번 홍콩 이슈와 관계된 무언가를 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별개로, 보통 돌아다니면 현지인들은 나를 중국인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방에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니 아무도 나를 중국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 간 김에 한 장 받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1일차 오프닝 세레모니도 알랜 브랙 대표의 사과와 함께 시작되었다. 적어도 커뮤니티와 게이머의 발언에 신경쓰는 모습은 보여주는 것 같았다. 다만 이 때 이후로 공식 석상이나 개발자들의 대화에서 관련 내용이 나오는 것은 듣기 힘들었는데, 누군가 이와 관련된 질문을 해도 완곡하게 돌려 대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편한 주제는 아니겠구나 싶었다.

작년 블리즈컨에서 게이머들의 폭격을 맞은 '디아블로 이모탈'의 경우 이번 블리즈컨에서는 완전히 찬밥 신세였다. 개발 과정에서 새로 업데이트된 부분도 많았고, 실제로 플레이 결과 게임 자체만 보면 꽤 괜찮은 게임이었지만 관련된 발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시연 공간도 다른 게임의 50분의 1 수준으로 매우 작게 꾸려져 있었는데, 그마저도 줄이 매우 짧아 마음만 먹으면 금방 시연 공간에 진입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인터뷰 중에도 이모탈과 관련된 질문이 나오면 두루뭉실한 대답만이 흘러나왔다. 그냥 내 시선으로 보자면, 어떻게든 질문을 넘기고 싶어하는 것 처럼 보였다. 물론 그 질문을 내가 한 것은 아니다.



▲ 매우 작았던 이모탈 시연 공간

반면, 배다른 형제인 '디아블로4'의 경우 이번 행사의 메인 타이틀로 밀어주는 것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행사장에 가장 많은 시연공간을 차지한 타이틀도 디아블로4였으며, 관련 세션의 수도 압도적이었다. 문제는, 발표 이후 기간을 크게 두지 않고 베타 테스트에 돌입했던 '오버워치' 발표 때와 다르게 디아블로4는 아무것도 기약되어 있지 않았다.

보통 개발이 어느 정도 이상 이뤄지면 대략적인 출시 목표일자가 정해지고, 정확하게는 아니라도 '내년 말'과 같이 추상적으로나마 출시 시기를 말하는데, 이런 언급도 없었다는 것은 아직 개발 기간을 바꿀 변수가 많이 남았다는 것을 뜻했다. 시연 버전을 플레이한 감상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버전 내에서 해볼 수 있는 건 매우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디아블로4의 출시는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언제쯤 나올지...


1년 만에 급히 차려 내놓은 잔칫상

여러모로, 급하게 이것저것 마련한 느낌이 났다. 개인적으로, 이번 블리즈컨에서 엄청나게 많은 신작 소식이 들려올 것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작년에 그리 죽을 쒔고, 지난 1년 간 여러 이유로 두들겨맞은 블리자드였으니 이미지 반등을 위해서라도 있는 모든 걸 바리바리 긁어 내놓아야 할 판이었다. 여기서 관건은 이 긁어모은 부스러기들이 실제로 많은 준비가 되었는지, 혹은 말 그대로 준비단계에 불과한지였는데, 행사 전체에서 받은 느낌은 후자에 가까웠다.



▲ 디아블로4 시네마틱 공개 때 현장은 방송 사고(...)가 났다.

위에서 말한 디아블로4도 그렇지만, 이번 행사의 양대 메인 타이틀 중 하나였던 '오버워치2'도 그리 가까운 날에 보긴 힘들어 보였다. 인터뷰 중 얻은 정보만 보면 아직 기획 단계에 머물 뿐, 실체화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는 것이 확 느껴질 정도였다. 시연 버전에서도 그리 인상깊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PVE가 주 콘텐츠인 협동 FPS는 지금도 엄청나게 많이 출시되어 있는데, 이 게임들과는 다른 오버워치만의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아마 올해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1년 정도는 더 묵혔을 타이틀이 아니었을까 싶다.



▲ 특별한 맛은 없었던 오버워치2

하나하나 열거하기는 힘들지만, 행사장 곳곳에서 이런 '급함'이 보였다. 올해부터 블리즈컨엔 새로운 보안 장치로 손목 밴드 형태의 전자 패스를 사용했는데, 미리 테스트를 해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온갖 말썽을 일으켰다. 푸는 순간 효력이 상실되어 행사 기간 내내 씻을 때도, 잘 때도 차고 있어야 했는데 정작 행사장에 가면 출입 불가 판정이 나왔다.

이런식으로 패스가 먹통인 관객들이 너무 많자 2일차에는 블리자드 측도 거의 포기해버리는 모습을 보였다. 아침 인터뷰를 하러 인터뷰장에 갔다가 빨간 불이 뜨자 해당 직원이 "음... 오늘은 빨간 불이 통과야"라면서 그냥 들여보내주는 상황에 이르렀다. 심지어 블리자드 직원용 패스도 빨간 불이 떴고, 통과하지 못하고 뭉쳐 있는 관객 사이로 눈을 피해 그냥 슬쩍 들어가버리는 이들도 볼 수 있었다.



▲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이게 문제가 될 거란 생각은 못했다.

다만, 그런 와중에도 큰 사고 없이 행사를 마무리한 건 다행이었다. 작품의 출시 시기나 게임성과는 관계 없이 신작을 볼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 만족하는 관객들도 많았으며, 스토어는 매년 그렇듯 인산인해를 이뤘다. 현장 관객들에게 감상을 묻자 대다수의 관객들이 "걱정한 것 치고 이 정도면 괜찮네요."정도의 평을 내놓았다. 뭐 다들 그런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걱정 많았던 관객들과 팬들을 안도하게 만들 정도의 행사는 되었던 것이 다행으로 느껴졌다.


그 함성을 앞으로도 기억하길

이번 블리즈컨으로 블리자드는 올 한 해의 마무리를 '무사히' 해냈다. "너희가 최선을 다 한 결과가 모바일 게임이냐?"라는 작년의 반응에 블리자드는 "우리도 하려면 이런 타이틀 다 보여줄 수 있다"라고 일갈했다. 다만, 있다는 것만 보여줬을 뿐, 얼마나 만들어졌는지, 언제 내놓을 건지에 대한 기약이 전혀 없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을 뿐이다.

그럼에도 행사가 끝난 지금은 마음이 홀가분하다, 블리자드가 진짜 게이머들이 원하는 게임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는 걸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어서였을까? 작년 블리즈컨은 게이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혼동한 모습을 보여 빈축을 샀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블리자드는 다시 게이머와 눈높이를 맞추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프닝 세레모니가 시작되고 첫 영상이 공개되었을 때. 그 넓은 컨벤션 센터의 모든 공간은 관객들의 함성으로 가득찼다. 작년의 함성과 대비되어 더 크게 느껴졌을 이번의 함성이 블리자드에게 그저 듣기 좋은 환호가 아닌, 앞으로도 게이머들 마음 속의 자신을 잊지 말라는 고언이 되어 들리길 바란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예전의 모습으로 다시끔 서길 기대한다.




11월 2일부터 11월 3일까지 미국 애너하임 컨벤션 센터에서 블리즈컨 2019이 진행됩니다. 현지 및 한국에서 작은 정보 하나까지 놓침없이 전해드리겠습니다. ▶ 인벤 블리즈컨 2019 뉴스센터: https://goo.gl/gkLq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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