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지스타에서 본 다음 게임 세대 청사진

칼럼 | 이두현 기자 | 댓글: 14개 |
'지스타 2019'가 역대 최다 관람객 24만여 명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이번 지스타는 개근하던 넥슨이 불참을 선언하며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선방했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정도다. 업계 관계자들은 앞으로 지스타와 한국 게임산업에 대해 숙제를 떠안은 분위기다. 위메이드 장현국 대표는 지스타 기간 기자간담회에서 "게임사 신작 발표 위주에서 유저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며 변화를 짚었다.

그래도 이번 지스타는 다음 게임 세대 청사진을 엿볼 수 있는 행사였다. 최근까지 모바일 게임, 인플루언서, e스포츠, 모델 정도만 드러났다는 것과 비교하면 고무적인 결과다.





펄어비스가 크로스 플랫폼 시대로의 문을 두드렸다. 이번 지스타에서 가장 주목받고 호평받은 게임사는 단연 펄어비스를 꼽을 수 있다. 펄어비스는 신작 섀도우 아레나, 플랜8, 도깨비, 붉은사막을 모두 PC 게임으로 선보였다. 그중 섀도우 아레나를 제외한 3개 작품은 콘솔까지 크로스 플랫폼을 함께 준비 중이다. 펄어비스가 '검은사막' IP를 콘솔로까지 확장하면서 시장의 잠재력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모바일 게임 시대에서 펄어비스는 PC와 콘솔의 연결을 선택했다. 현재 크로스 플랫폼은 대형 게임사 위주로 변화가 감지된다. 대표적으론 엔씨소프트 '프로젝트TL'이 있다. '프로젝트TL'은 개발 초기만 해도 PC 플랫폼의 차세대 리니지 IP였다. 이후 엔씨는 '프로젝트TL'을 콘솔로까지 확장했다. 넥슨은 차세대 레이싱 게임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를 PC-콘솔 크로스 플랫폼으로 선보였다. 이번 지스타에 참여한 미호요 역시 '원신'을 크로스 플랫폼으로 출시한다.

PC-콘솔 크로스 플랫폼은 동양권과 서양권 모두를 공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관련 IT 기술 발전도 크로스 플랫폼 시장에 시너지를 발휘한다. 5G 통신 기술과 클라우드 게이밍 기술은 크로스 플랫폼 시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주요 사용 콘솔이 될 'PS4'는 이미 전 세계 1억 대 이상 팔렸다. 거기에 차세대 콘솔 기기인 'PS5'는 2020년 말 출시 예정이다. 준비 중인 크로스 플랫폼 게임 예상 출시일과 시기적으로 맞물린다.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차세대 콘솔 기기는 크로스 플랫폼 시장에 불을 지필 것이다.





영게이머(young gamer)가 왔다. 기존 게이머에게 차세대 게임으로 크로스 플랫폼이 주목받는 중이라면, 모바일 게임, 모바일 e스포츠에 영게이머는 이미 주요 고객으로 자리 잡았다. 사실, 이번 지스타 메인 스폰서로 슈퍼셀이 나선다고 할 때 다소 의아했다. 이전까지 영게이머에게 '브롤스타즈' 인기는 조카를 통해 간접적으로 느낀 정도였다. 초등학교 3학년인 조카가 또래 사이에서 '브롤스타즈'를 잘하는 친구가 인기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는 '아, 그래'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 이유는 기자가 기성 게이머여서라 생각한다.

막상 지스타가 시작되고 부모와 손을 잡고 온 영게이머가 부쩍 늘어났단 사실을 보며 슈퍼셀이 옳았다는 걸 실감했다. 영게이머를 끌어드린 데에는 슈퍼셀 '브롤스타즈'가 중심에 있었다. 지스타에서 조카만한 영게이머들이 지스타에 직접 와 '브롤스타즈'를 즐기는 걸 봤다. 영게이머는 '브롤스타즈' 관련 굿즈를 얻기 위해 관련 행사를 다 체험하기도 했다. 기자에게 동경 대상은 임요환과 같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였고, 이후 세대는 페이커와 같은 롤 프로게이머였다면, 지금 떠오르는 영게이머에게 동경 대상은 브롤스타즈 게이머란 걸 실감한 지스타였다.

영게이머가 중심이 되어 가족단위 관람객이 늘어난 건 지스타에 좋은 소식이다. 다만, 주최 측의 미숙한 행동으로 영게이머를 실망시킨 일은 다시 되짚어봐야 한다. '브롤스타즈'를 보러 온 영게이머에게 메인 이벤트였을 월드파이널 대회 참관 연령이 갑자기 12세 이하 관람 불가로 바뀐 일이 있었다. 주최 측은 "내부 커뮤니케이션 혼선으로 최초 공지가 잘못 나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브롤스타즈 게이머를 직접 보는 걸 기대했을 영게이머는 실망했을 터였다. 영게이머를 실망시키는 일은 업계가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게임 굿즈 시장이 커지고 있다. 굿즈샵마다 많은 대기 줄이 생겼다. 블리자드 IP와 '리그 오브 레전드' 관련 굿즈는 게이머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금세 매진된 제품 종류도 많았다. 캐릭터 상품이 특히 인기였다.

게임사마다 지스타에서 굿즈를 제공하는 방식도 다양했다. 영게이머에게 '인싸' 게임인 브롤스타즈는 공식 행사를 통해서만 굿즈를 판매하거나 제공한다. 이번에도 슈퍼셀은 '브롤스타즈' 굿즈를 별도로 팔지 않고 행사에 참여한 게이머에게 줬다. 넷마블은 시연 후 스탬프를 모은 게이머에게 추첨에 따라 굿즈를 증정했다. 펄어비스는 다양한 흑정령 피규어를 직업별로 선보여 판매했다. 나이언틱은 지스타 현장에서만 잡히는 네오비트 이벤트를 통해 키체인, 스티커를 선사했다.

게임은 만질 수 없는 소프트웨어다. 게이머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직접 만질 수 있게 하는 굿즈는 게임과 게이머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과거 지스타에서 굿즈는 게임사가 참여한 게이머에게 주는 기념품 정도 의미였다. 이제는 굿즈 상징이 달라졌다. 게이머가 굿즈를 산다는 건 곧 그 게임 자체에 애정이 있다는 증표다. 게임사는 게이머가 자사의 IP 굿즈를 갖고 싶도록 고민하는 게 좋은 방향이 될 것이다.




▲ 지스타 2019 인디쇼케이스

인디에 '배려'가 필요하다. 이번 지스타는 역대 최다 관람객 수를 기록하며 주최 측이 자축하고 있다. 하지만 인디쇼케이스는 이런 성과에 해당하지 않는다. 일반 게이머들이 찾는 B2C 관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마련된 인디쇼케이스는 행사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한산했다. 인디쇼케이스 행사를 어떻게 알고 가려고해도 벡스코 제2전시장 구석에 마련된 장소는 찾기 어려웠다.

인디쇼케이스 참가사 입장에선 유저와 만나는 기회가 소중하다. 지스타라는 국내 최대 게임쇼에 참가할 수 있게 된 인디게임사는 기회를 살리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을 것이다. 그러나 방치된 듯한 인디쇼케이스 행사장은 유저 발길이 뜸했다. 지스타 기간 내내 한산한 분위기는 이어졌다. 직접 만나본 참여 개발자의 얼굴에도 실망감이 가득했다.



▲ 인디쇼케이스에 참여한 개발사의 소감

반면 야외에 마련된 BIC 부스는 추운 날씨에도 많은 게이머가 참여해 즐겼다. 인디쇼케이스와 BIC 부스는 같은 주제였지만, 흥행 면에선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행사에선 사람의 발길이 중요하다. 주최 측이 조금만 더 고민했으면 인디쇼케이스를 알릴 방법은 많았다. 큰돈이 들어갔을 지스타 행사에서 주최 측이 무료로 인디쇼케이스 부스를 마련한 건 배려였다. 하지만 고민 없는 배려는 오히려 상처를 준다. 다음 지스타 인디쇼케이스에는 고민한 배려가 나타나길 바란다.





벡스코가 좁다. 오래 전부터 지스타 행사에서 나온 아쉬움이다. 역대 최다 관람객 수를 기록할수록 1인당 지스타에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든다. 문제는 해결 방안이 나오기 힘들다는 점이다. 행사장이 좁아진다는 건 곧 흥행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게임쇼를 더는 온전히 즐기기 어려울 정도로 좁아졌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다른 장소를 알아봐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벡스코만 한 행사장을 찾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탐나는 전시관은 차이나조이가 열리는 중국 상하이 신국제엑스포센터다. 차이나조이 행사장은 단적으로 지스타만한 공간이 12개로 구성됐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차이나조이만한 행사장을 만들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벡스코가 좁다는 아쉬움을 제기하지만,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도 어렵다.

잉어는 어항 크기만큼 큰다고 한다. 벡스코 크기가 우리나라 게임쇼의 성장의 한계를 보여준다. 더 성장하기 위해선 다른 방법도 생각해봐야 한다. 다만, 전시장이라는 물리적인 한계는 단기간 내에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 차원에서 게임산업 성장을 위해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로 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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