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위대한 정글러 '스코어' 고동빈, 8년 간의 여정을 마치다

인터뷰 | 신연재, 박태균, 남기백, 유희은 기자 | 댓글: 96개 |



지난 8년 간 단 한 번의 휴식 없이 늘 우리의 곁을 지켰던 '스코어' 고동빈이 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이제 위대한 정글러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인생의 2막을 준비한다.

2011년 10월, 한국에서는 LoL e스포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이었던 그때 '스코어'는 우리나라 최초의 LoL 프로게임단 스타테일 소속 원거리 딜러로 프로씬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이듬해 kt 롤스터에 새 둥지를 틀며 본격적인 프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스코어'는 kt 롤스터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성장해나갔다. 원거리 딜러에서 정글러로 포지션을 바꿀 때에도 kt 롤스터라는 이름표는 그대로였다. 7년의 시간 동안, 팀의 성적이 좋든 나쁘든, 로스터의 변화가 크든 작든, 언제나 그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그런 '스코어'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성인 남성이라면 대부분 겪어야 할 수밖에 없는 것. 바로 군 입대 문제였다. 결국 그는 2019년 여름 LCK 섬머 스플릿 마지막 경기를 마친 뒤, 방송 인터뷰에서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2020 시즌을 위한 스토브 리그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11월의 마지막 주, 인벤은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서 '스코어'를 만났다. 달라진 모습은 없었다. '스코어'는 늘 그랬듯 사람 좋은 웃음과 쾌활한 말투로 기자들을 반겼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었다.





Q. 정말 오랜만이에요, '스코어' 선수. 이번 비시즌은 다른 때완 많이 다를 것 같은데,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이번 비시즌은, 사실 저한테는 진짜 시즌이 완전히 끝난 거 잖아요. 그래서 백수의 삶을 살고 있어요. 다른 때에는 비시즌이라도 마음을 놓기가 어려웠는데, 이번에는 정말 마음 편히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Q. 다른 뭐 특별한 활동은 안 하셨나요? 장기 여행 같이 평소에는 할 수 없었던 것들이요.

어디 놀러가거나 그런 걸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라 그보다는 편안하게 지내려고 많이 했어요. 다른 게임도 해보고 하면서요. 전략적 팀 전투도 했고, 몬스터 헌터라는 게임도 했어요. 먹고, 놀고, 자고... 이렇게 편하게 쉬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특별한 일이기도 해요.


Q. 스토브 리그도 이제는 한발 물러서서 지켜보는 입장이 되셨네요.

이제는 저도 시청자의 입장으로 보다 보니까 마음도 편하고, 재미있어요. 커뮤티니를 보다 보면 막 누가 어디갔다더라 하는 루머들이 있잖아요. 그런 거 보면 흥미진진하고 그래요(웃음). 제가 최근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보니까 정보가 많을 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정보도 제가 직접 물어봐야 알 수 있는 거 거든요. 딱히 물어본 적이 없어서 팬분들이랑 별반 다르지 않아요.


Q. 개인 방송도 종종 켜시는 걸 봤어요.

방송은 트위치에서 심심할 때 틈틈히 키고 있어요. 꾸준히 하려고 계획 중이긴 한데, 아직은 언제 키겠다 이런 걸 정해 놓지는 않았어요. 언제든 봤을 때 방송이 켜져있다 하면 편하게 놀러오세요!





Q. 이제 본론으로 한 번 들어가볼게요. 사실 '스코어' 선수의 은퇴를 아쉬워하는 분들이 참 많아요. 아무래도 현실적인 문제가 은퇴를 결심하게 된 이유겠죠?

아무래도 그렇죠. 작년 스프링 스플릿이 시작할 때 미리 알아봤는데, 내년이 마지노선이겠구나 싶더라고요. 2020년부터는 해외 출국을 할 수 없었거든요. 프로게이머로서 해외에 못 나간다는 건 치명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동기 부여도 안 되고요.

실력이 떨어져서 은퇴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어요. 다만, 이번 시즌에 뭔가 더 욕심부리거나, 적극적으로 하지 못한 게 아쉬워요.


Q. 은퇴 소식을 전하고 나서 주변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많이들 하던가요?

제일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고생 많았다'에요. 수고했다, 고생했다 등등등. 사실 그 말밖에 할 게 없는 것기도 하고요(웃음).


Q. 8년의 프로 생활 중 7년을 kt 롤스터에서 보내셨어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을 수 있을까요?

가장 좋았던 시절은 아무래도 성적이 잘 나왔을 때죠. 프로게이머는 성적이 굉장히 중요한 직업이라 성적이 잘 나올 때는 팀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좋아지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말씀을 들으니 LCK에서 처음 우승컵을 들어올렸던 작년 여름이 생각나네요. 그때 우승 인터뷰에서 '스코어' 선수의 눈물의 소감이 정말 많은 감동을 주기도 했죠.

그때 질문을 받아서 대답을 하다가 그런 장면이 나왔던 걸로 기억해요. 당연히 준비한 멘트는 아니었고, 항상 마음에 담고 있던 말들이었어요. 팀원들은 비록 일로 만나긴 했지만, 어떻게 보면 학창 시절의 친구들보다 더 가깝게 지내는 사이잖아요. 항상 같이 먹고, 자고 하니까요. 그런데, 성적에 따라 서로 다른 길로 가게 되고, 나눠지게 되고 이런 것들을 많이 겪다 보니까 쌓이게 된거죠. 당시에 그런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까 마음이 더 격해져서 눈물도 나오고 했던 것 같아요.


Q. 반대로 힘들었던 시기는요?

비슷한 의미에서 이번 시즌이 제일 힘들었어요. 그런데, 또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시즌이기도 해요. 힘든 와중에 팀원들끼리 서로 한 마음으로 잘 지냈고, 함께 노력도 엄청 많이 했거든요. 가장 많이 나눈 이야기는 기죽지 말자는 말이었어요. 일단 자신감을 가지고 경기에 임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Q. 올해는 kt 롤스터에게 정말 힘든 한 해이긴 했어요. 경기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가 컸던 시즌이었던 것 같아요.

이번 시즌은 kt 롤스터 팀 자체로서 가장 부진했던 시즌으로 꼽을 수 있을만한 시기였어요. 근데, 그걸 일부가 뒤집어쓰고 비난을 받는 것 자체가 같은 팀이었던 사람으로서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결국 LoL은 팀 게임이잖아요. 모두가 잘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해요. 한쪽으로 비난이 쏠리는 건 당연히 속상했죠.





Q. 그렇게 롤러코스터 같은 7년을 보내면서 이적을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나요?

음, 없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냥 다른 팀에서 뛰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 정도? 오히려 kt 롤스터에 더 오래 있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매년 남는 걸 선택한 것 같아요. 은퇴를 하고 나서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충분한 경험을 했으니까 앞으로는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곳에서의 경험도 해보고 싶어요.


Q. '스코어' 선수는 kt 롤스터의 프랜차이즈 스타였기도 하죠. 사실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게 아무에게나 오는 기회는 아니잖아요.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건 팀에 되게 오래 있어야 주어지는 타이틀이잖아요. 제가 그렇게 오랫동안 kt 롤스터에 있을 수 있었던 건 정말 많은 팬분들이 kt 롤스터 '스코어'를 좋아해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감사해요. 어느 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동하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참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Q. 또, '스코어' 선수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경력만큼이나 많은 별명과 밈이에요.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이 있다면요?

프로게이머로서는 위대한 정글러라는 별명이 정말 영광스럽고, 너무 좋아요. 그 별명이 생겼을 때 많이 뿌듯했고, 기분도 굉장히 좋았어요. '클템' 이현우 해설님이 만들어주신 별명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 자리를 빌려 멋진 타이틀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항상 LCK 중계진으로 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음, 인간 고동빈으로서는 코돈빈이라는 별명이 제일 마음에 들어요. 그냥 재미있어서요. 그 별명이 생기고 나서 '데프트' (김) 혁규가 가끔씩 진짜로 코돈빈이라고 절 부르기도 했거든요(웃음).





Q.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여러 선수들과 함께 팀을 이뤄서 생활을 해보셨잖아요. '같은 프로게이머가 봐도 정말 대단한 선수'라는 느낌을 받았던 팀원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경력이 좀 있는 친구들에게서는 대부분 그런 느낌을 주었던 것 같아요. 작년 슈퍼팀 멤버들이나, 올해 '프레이' 김종인 선수나. 배울 점도 많고, 여러모로 대단한 선수들이에요.

근데, 경력이 짧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느낌을 준 선수로는 '비디디' 곽보성 선수가 있어요. '비디디' 선수는 항상 자기 플레이를 되돌려보면서 정말 열심히 해요. 이기고 싶어하는 승부욕도 많이 느껴지고요. 프로 정신이 투철해요. 보면서 좀 놀랐었던 것 같아요.


Q. 승부욕 하니까 떠오른 건데, '스코어' 선수가 봐왔던 선수 중 승부욕이 가장 센 사람은 누구였나요?

대체적으로 탑 라이너들이... 이게 저는 승부욕을 표출하느냐, 마느냐의 차이라고 봐요. 근데, 탑 라이너들이 승부욕을 많이 드러내는 편인 것 같아요. kt 롤스터에는 그나마 좀 덜 그런 친구들이 거쳐갔고요.

저도 탑 라이너도 한 시즌을 해봤는데, 진짜 답답한 거에요. 적 정글러가 오지만 않으면 내가 이기는데, 자꾸 적 정글러는 오고, 우리 팀은 안 오니까요. 제가 탑을 하던 시기는 또 탑 라이너의 발언권이 센 메타가 아니라서 속으로 많이 삭혔어요. 그러다가 솔로 랭크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표출이 되더라고요(웃음).


Q. 그러고 보면 '스코어' 선수는 총 네 번의 포지션 변화를 겪었어요. 프로게이머 중 최다가 아닐까 싶은데요. 포지션을 바꾸면 마인드이나 플레이 스타일도 많이 바뀌게 되나요?

포지션 별로 게임 내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다르잖아요. 아무래도 미드와 정글, 서포터는 게임을 전체적으로 봐야하고, 탑이나 원거리딜러는 넓게 본다 하더라도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제한적이에요. 그래서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하는 게 팀적으로도 더 좋아요.

저는 원거리딜러나 탑 라이너로 뛸 때도 게임을 전체적으로 보게 되는 편이었어요. 사실, 그 포지션은 이기적으로 하는 게 더 중요했는데 말이죠. 그래서 정글러로서의 포지션 변경이 저한테는 정말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게임을 전체적으로 보고, 흐름을 조율할 수 있다는 게 저랑 가장 잘 맞았어요.





Q. 다음은 '스코어' 선수에게 꼭 하고 싶었던 질문이에요. '스코어'에게 그라가스란?

그라가스는 의미가 깊은 챔피언이죠. 제가 정글러로 포지션을 바꾸고, 잘한다는 인식을 갖게 해준 첫 챔피언이에요. 제 정글러 경력의 시작점과도 같은 챔피언이라고 해야 하나. 개인적으로도 좋아하고요.

어떻게 하다보니 마지막 경기도 그라가스로 마무리하게 됐는데, 그때 다른 이유는 없었고, 마지막 경기니까 꼭 이기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챔피언을 골랐어요. 그게 그라가스였던 거죠. 다행히 이겨서 팬분들도 정말 좋아해주셨고, 저도 좋았어요. 여러모로 인연이 참 깊은 챔피언이네요.


Q. LCK에 그라가스를 잘 다루는 선수들이 여럿있어요. 본인이 생각하는 그라가스 후계자가 있다면요?

제가 임팩트가 커서 그렇지 그라가스 잘하는 친구가 생각보다 많아요. 어떻게 보면 저보다 잘하는 선수들도 많죠. 이번 시즌에는 '라이프' 김정민 선수가 확실히 그라가스 서포터로 인상 깊은 장면을 많이 보여줬던 것 같아요.

'라이프' 선수한테 한마디요? 어, 음, 촌뜨기 농부 써주길 바래(웃음). 촌뜨기 농부 스킨이 참 정감 가고 좋더라고요, 옛날 농민 봉기 느낌도 나고, 멋있어요.


Q. 지난해 아시안 게임에 국가 대표로 차출됐던 것도 '스코어' 선수에게 참 의미있는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국가대표로서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그런 큰 무대에 선다는 것도 엄청난 의미였고, 개인적으로는 다른 팀 선수들과 함께 팀 게임을 한다는 것도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어요. 게임 내적인 요소들 뿐만 아니라, 외적인 요소들. 예를 들면, 저는 마피아 게임 같은 걸 안 좋아하는데 어린 친구들은 좋아하더라고요. 핸드폰을 깔아서 같이 했어요. 아, 다른 게임단은 이렇게 노는구나 하고 배웠죠. 평소에 어떻게 지내는지도 물어볼 수 있었고, 되게 값진 경험이었어요.





Q. 이제 당분간은 모든 걸 내려놓고, 편하게 제3자의 입장에서 LCK를 보시게 될텐데요. 특별히 기대되는 팀이 있나요?

당연히 일단은 젠지 e스포츠요. 올해 가장 큰 이슈를 몰고 온 팀이지 않을까 싶어요. 멤버들도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 응원하고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드래곤X요. 혁규가 남아있기 때문에 믿고 응원해주고 싶은 팀이에요. SKT T1은 김정수 감독님이 가시는데, 김정수 매직을 한 번 더 보여줄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Q. 인터뷰를 마무리 해야할 시간이 다가오네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저는 지금 백수의 삶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어서 좀 쉬다가 내년 입대를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확정된 날짜는 없는데, 마음의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3월 후로 현역 입대를 하게 될 것 같아요. 그전에는 부르기 전까지 먼저 갈 생각은 없고요(웃음).

전역 후에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요. 어떤 직업을 가질지도 모르겠고요. 어쨌건 다시 LoL 판으로 돌아오고 싶어요. 여러가지 길에 다 생각이 조금씩 있고, 잘 걸쳐 가고 싶어요. 침착맨이라는 분이 한 말이 있어요. 일단 다 걸쳐보고 안될 것 같으면 빠져라(웃음).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저도 고생 많으셨다고 말씀드리고 싶고, 이제 팬분들께 프로게이머 '스코어'로서의 마지막 인사 부탁드릴게요.

프로게이머로서 은퇴를 하게 됐습니다. 아직 솔직히 실감은 안 나고, 내년 시즌이 시작 되어야 실감이 날 것 같아요.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아쉬운 나날들이 많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저를 아껴주시고, 또 사랑해주시고, 응원 많이 해주셔서 너무 행복하게 지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여러분과 소통하며 열심히 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너무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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