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8년 여정 마친 '임프' 구승빈 - 한국 팬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

인터뷰 | 신연재, 유희은 기자 | 댓글: 74개 |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창인 12월의 어느 날, 강남의 한 카페에서 '임프' 구승빈 선수를 만났습니다. 올해를 끝으로 프로게이머 생활을 마무리하는 그와 은퇴를 주제로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죠. 오랜 중국 생활로, 한국 매체와의 인터뷰는 굉장히 오랜만인터라 인터뷰어로서 긴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몸만한 캐리어를 끌고 나타난 '임프' 선수는 인터뷰를 내일로 착각해 큰일날 뻔 했다며 연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자신이 요새 이렇게 자주 깜빡깜빡 한다는 너스레과 함께요. 덕분에 인터뷰에 으레 찾아오는 긴장과 어색함은 싹 사라졌습니다.

처음 한국을 떠났던 5년 전에 비해 훨씬 성숙해진 겉모습만큼, 그의 생각도 많이 변화해 있었습니다. 물론, 가끔씩 나오는 거침없는 언변에서는 그 시절 '임프' 선수를 느낄 수 있기도 했죠. 이제는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한 '임프' 선수가 전하는 마지막 인사를 지금 전해드리겠습니다.




Q. 안녕하세요, '임프' 선수! 한국에서의 인터뷰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요.

이렇게 한국에서 인터뷰로 인사를 드리는 건 너무 오랜만이라 좀 무섭기도 하네요(웃음). 안녕하세요, '임프' 구승빈입니다.


Q. 12월 중순쯤에 한국에 들어오셨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지내셨나요?

13일에 한국에 들어와서는 고향에서 쭉 지내다가, 볼일도 있고 해서 오늘 서울에 올라왔어요. 사실 인터뷰가 내일인 줄 알고 여유롭게 있다가 다시 확인해보니까 오늘이라서 깜짝 놀랐어요. 숙소에 짐 두고올 새도 없이 바로 달려왔어요.


Q. 정말 반가운 얼굴인데, 이렇게 은퇴 인터뷰로 마주한다는 게 아쉽기도 해요. 은퇴에 대해서는 쭉 생각을 해오셨던 건가요?

제 스스로 자기 관리를 잘 못 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체력도 실력도 떨어지는 걸 느꼈고, 그때 처음으로 은퇴에 대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게 아마 17~18년도 즈음이었을 거예요. 거기에 2018 시즌에 이런저런 일이 겹치면서 그런 생각이 더 커졌어요.

시즌이 끝나고 팀을 구하지 못하면 은퇴를 하려고 했는데, 징동 게이밍에서 저를 찾아줘서 1년 더 프로 생활을 할 수 있었죠.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은 계속 하고 있었어요. 롤드컵에 진출하지 못해 많이 아쉬워요. 선발전에서 IG에게 졌거든요. 꼭 가고 싶었는데...





Q. 마지막이라는 걸 안 채로 시작한 시즌이라 좀 더 뜻깊고, 그만큼 더 아쉬우셨을 것 같아요.

앞에도 말했듯 저는 자기 관리를 잘하는 선수는 아니었어요. 한때는 놀기도 많이 놀았고, 체력이나 부상에 대한 부분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어요. 근데, 올해는 제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는 시즌이었어요. 정말 열심히 했고, 최선을 다했어요. 누군가는 저에게 소위 말하는 퇴물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겠지만, 저는 오히려 프로게이머 생활을 계속하면 더 잘해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어요.


Q. 사실 올해 징동 게이밍에서 주전으로 뛰기 전까지 공백기가 좀 있었잖아요. 당시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을까요?

팀과 관련된 이야기라서 조금 조심스럽긴 해요. 제 실력이 부족했던 것도 있었고, 상황적인 부분도 있었죠.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 와서 생각을 해보면 당시에 제가 너무 유연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너무 독불장군 같았다?

그래서 그때 팀원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제 욕심만 채우려고 하기 보다는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이제는 성격이 조금 바뀌었어요. 게임을 할 때나 피드백을 할 때 화를 내기보다는 한 번 더 생각하려고 하기도 하고.


Q. 이야기를 들어보면 올해 게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한결 성장한 느낌이에요. 그래서 은퇴라는 선택이 좀 더 아쉽게 다가올 것 같아요.

더 잘해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지만, 반대로 두려움도 컸어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더 못하는 모습으로 남겨지게 된다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들이요. 또, 건강 문제도 무시할 수는 없었고요. 8년 동안 프로게이머 생활을 해오다보니 손목에 무리가 많이 갈 수 밖에 없잖아요. 엊그제도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왔어요. 꾸준히 치료를 해야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여러가지 생각과 상황이 겹쳤고, 그래서 은퇴에 대한 결심을 바꾸지 않았어요.





Q. 여러 일을 겪으면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나요?

저는 어디든 다 똑같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에 돌아간다고 더 편해지고 그럴 거라는 생각은 없었어요. 오히려 시간이 지나고, 적응을 하니까 중국이 더 편한 느낌? 언어의 장벽도 저는 원래 한국말도 잘 못하기 때문에(웃음)... 큰 문제는 없었어요. 음식도 같은 것도, 한국의 훠궈보다 중국 본토에서 먹는 훠궈가 더 좋을 정도로 적응이 잘 됐어요. 이제 한국에서 먹는 건 향이 너무 약하게 느껴지더라고요.


Q. 그럼 반대로, 함께 LPL에서 뛰다가 한국으로 넘어온 선수들이 여럿 있잖아요.

같이 놀 사람이 없어져서 서운하기도 했고, 가서도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죠. 성적이 잘 안 나오거나, 안 좋은 평가를 듣는 걸 볼 때는 안타깝기도 했고요. 그래도 다들 잘 해냈고, 또 잘 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Q. 은퇴를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어떤 반응이었나요? 저였다면 아쉬움에 말렸을 것 같기도 해요.

다들 더 하라고 했죠. 아니면 코치라도 하라고. '옴므' (윤)성영 형한테 참 고마워요. 올해 징동 게이밍에서 함께 있었는데, 정말 잘 해주셨어요. 그동안 제가 잘못한 것도 많았는데...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네요.


Q. 코칭스태프 쪽으로 나아갈 생각은 없으신 건가요? '마타' 조세형 선수 같은 경우도 특이한 케이스긴 하지만, 은퇴를 하자마자 RNG 감독으로 입단하면서 이슈가 됐잖아요.

글쎄요. 좋은 기회가 온다면 당연히 적극적으로 생각해보겠지만, 방금도 말했듯 지금은 조금 쉬고 싶어요. '마타' 형이야 원래 그런 걸 잘하는 형이라 어디든 바로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워낙 게임 보는 눈도 좋으니까요. 근데, 세형이 형은 선수를 더 했어도 여전히 잘했을텐데.





Q. '임프' 선수는 2012년에 데뷔를 해서 무려 8년 간 프로게이머로 생활을 하셨어요. 8년이라는 긴 시간 중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자면 언제인가요?

저는 초창기 시절이 많이 생각이 나요. 그때 정말 잘했거든요. 2012년은 데뷔 첫 해였는데, 진짜 열심히 했던 기억이 생생해요. 미친듯이 게임만 했어요.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잘하는 프로게이머가 되어있더라고요.

2014년은 롤드컵 우승을 했던 시즌이기도 하지만, 참 힘들기도 했던 때였어요. 대회에서 형제팀인 삼성 갤럭시 블루 팀만 만나면 이상하리만치 맥없이 지곤 했거든요. 그때 압박감이 너무 심했고, 블루 원딜이 '데프트' (김) 혁규였잖아요. 막 그런 생각까지 드는 거에요. 원딜이 바뀌었다면 화이트가 이겼을까? 다른 팀원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런 안 좋은 생각을 하면서 저 자신을 괴롭혔던 것 같아요.

그리고, LPL에서 보낸 첫 시즌인 2015년은 가장 자신감에 차있었고, 실제로도 실력이 가장 좋았던 해여서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정말 말그대로 질 자신이 없었어요. 그때가 실력으로만 본다면 저의 전성기였던 것 같아요. 롤드컵에서 안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드려서 그렇게 생각을 안 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은데, 멘탈적인 문제가 좀 있었어요. 쉽게 멘탈이 무너졌기 때문에 경기에서도 그런 게 많이 드러났죠. 어쨌든 그것도 제가 이겨냈어야하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해요.


Q. 또, '임프' 선수하면 후반 캐리력이 강한 평타 기반 원딜 챔피언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저는 특히 스킨도 가지고 계시는 트위치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챔피언은 뭔가요?

저는 코그모를 제일 좋아해요. 그리고, 말씀하신 트위치도 좋아하고요. 코그모는 귀엽고, 트위치도 귀여웠는데, 일러스트가 바뀌면서 그게 좀 사라져서 아쉽네요. 제가 스킬을 잘 못 맞춰요. 모바일 게임이나 FPS 게임에도 재능이 없거든요. 그래서 평타형 원딜을 선호했어요. 근데, 최근 메타로 갈수록 그런 챔피언을 쓰지 못하게 됐죠.





Q. 민감한 주제이긴 한데, 꼭 여쭤보고 싶었던 것도 있어요. 최근 이슈가 됐던 '카나비' 서진혁 선수의 사건과 관련해서 '임프' 선수가 도움을 많이 줬다는 인터뷰가 화제가 됐잖아요. 이런 문제들은 같은 팀에 있다보니 자연스레 알게 됐던 건가요?

처음 딱 보자마자 변호사를 선임해서 계약 검토하라고 말했어요. 제가 선수 생활을 오래해서 그런지 얼굴을 보니깐 어떻게 왔는지 느낌이 오더라고요. 그런 선수들은 얼굴에 써있어요. '저는 아무 것도 모른 채로 여기 왔어요' 라고요.

그때 '카나비' 선수 나이가 제가 중국에 처음 왔을 때의 나이랑 같았을 거에요. 그래서 신경이 더 쓰였나봐요. 또, 봤을 때 실력있고, 정말 잘하는 선수인데, 이런 일에 휩싸여서 안 좋게 흘러가면 누가 책임을 져주겠어요. 그런 게 컸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가 그 일과 관련해서 특별히 뭘 도와줬다거나 나서서 함께 무언갈 해줬다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중국에서 함께 있으면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고. 그 정도였어요. 지켜보고만 있기에는 답답하고, 안타까우니까요. 잘 풀려서 다행이에요.


Q.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오네요. 앞으로 어떻게 지낼 계획인가요?

개인 방송을 해볼 생각이에요. 아마 중국 플랫폼에서 할 것 같아서 한국 팬분들께서 찾기 어려우실까 걱정도 좀 되네요. 그리고, 군대도 가야죠(웃음). 아직 정확한 미래 계획을 그리고 있는 단계는 아니에요. 좀 쉬면서 찬찬히 생각해보려고요.


Q. 이제 그동안 '임프' 선수를 응원해준 많은 팬들과 동료들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면서 인터뷰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음, 무슨 말을 해야할지 정리가 잘 안 되네요. 제가 프로 생활을 정말 오래 했어요. 한국에는 저보다 오래한 선수는 거의 없을 것 같은데, 8년 동안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 진짜 다 고마운 것 같아요. 프로게이머의 시작을 함께 했던 MVP 시절 동료들에게도 고맙고, 마지막을 함께한 징동 게이밍에게도, 중간에 LGD 때까지 모두 고마운 사람들 뿐이에요. 마무리를 하려니까 제가 잘 못했던 것들이 더 많이 생각나네요. 어느 위치에서나 다 잘 됐으면 좋겠어요. 행복한 게 최고니까요. 프로게이머로서의 저는 여기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좋은 기회가 온다면 더 좋은 모습으로 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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