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왜 디펜스+수집형 RPG를 선택했을까, '명일방주'로 보는 사례

칼럼 | 윤서호 기자 | 댓글: 83개 |

2017년 9월에 매력적인 PV로 국내 서브컬쳐 유저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명일방주가 2020년 1월 16일 국내에 출시됐다. 이미 몇몇 유저들이 중국 CBT와 OBT, 중국 서버를 미리 접한 터라 PV의 첫인상과 달리 디펜스 게임이라는 사실이 알려졌고, 이에 실망을 표한 유저들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접해서 플레이해본 유저들의 평가는 조금 달랐고, 중국 내에서는 앱스토어 매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미 수집형 디펜스 RPG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지만, "왜 디펜스를 채택했을까?"하는 유저들도 있을 것이다. 그간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디펜스 게임이 여럿 나오긴 했지만, 수집형 RPG에 접목한 사례는 국내에선 특히 드물었기 때문에 이러한 반응은 어찌보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디펜스와 수집형 RPG가 혼합된 게임은 그간 해외에서는 여럿 출시가 됐다. 일본 DMM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천년전쟁 아이기스'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출시되지 않았으며, 일부 국내에 출시된 수집형 디펜스 RPG는 게임 외적인 이슈 때문에 게임 내적인 부분만 온전히 평가하기 어려운 상태다.

2020년에는 디펜스류 게임과 수집형 디펜스 RPG들의 출시가 예고된 만큼, 왜 수집형 RPG에 디펜스를 가미했는지, 또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시너지와 단점이 무엇인지 '명일방주'를 통해서 고찰해보았다.


스토리&게임플레이의 연계로 몰입감 UP
누군가를 향한 '공격'이 아닌,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스토리와 게임플레이로 풀어내다.




모바일 게임, 특히 모바일 RPG에서 주인공은 성향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선한 포지션에 있는 인물들이다. 물론 모두가 다 처음부터 정의감에 불타서 세계를 구한다고 결의를 다지거나 하지는 않고, 때로는 위법행위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도 있다. 그렇지만 결국 세계를 멸망시키려고 드는 세력이나 무언가를 파괴하고자 하는 세력과는 대립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는 선역 쪽으로 기울어있다.

선역이라는 점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각자의 사정도, 설정도 다 다르기 때문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식도 달라진다. 또한 악에 맞설 무언가를 찾아서 모험을 떠나는 것뿐만 아니라 몰려오는 적의 공격을 막고 생존해야 한다거나, 적이 점령한 곳을 공격해서 수복하는 등등 여러 가지 일을 겪게 되고, 그 비중도 각각 다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모바일 RPG에 디펜스 장르를 대입하는 것은 낯선 것만은 아니다. 기본 장르로 적극 채택하지는 않았지만, 기존에 서비스하던 온라인 RPG에서도 스토리에 따라 수정탑이나 혹은 대규모 마법을 시전하는 마법사 일행을 지키는 등 디펜스의 룰을 대입했기 때문이다.


'명일방주'는 단순히 룰만 대입하는 것뿐만 아니라 디펜스 장르를 RPG에 결합시키고, 스토리로 이런 요소가 녹아들도록 했다. 명일방주 세계관에서 핵심 키워드는 '오리지늄'과 그로 인한 '광석병'이다. 오리지늄은 문명의 발전을 불러왔지만, 광석병이라는 재앙까지 동반했기 때문이다. 치료가 불가능한데다가 감염이 퍼질 우려가 있던 만큼 광석병 감염자들은 곳곳에서 차별받았고, 이에 반기를 든 감염자들은 탈룰라 등이 필두가 된 리유니온에 가입해 도시들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이와 달리 주인공이 속해있는 로도스 아일랜드는 광석병을 치료하고자 노력하면서, 비감염자와 감염자들의 갈등을 중재하고자 하는 세력이다. 이들의 주된 목적은 리유니온의 토벌이 아닌 공격을 막아내고, 갈등에 휘말린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런 입장을 명일방주는 스토리뿐만 아니라 디펜스 장르를 도입한 게임플레이를 통해서 보여줬고, "왜 디펜스를 골랐을까?"라는 질문에 답했다.



▲ 스토리를 통해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라는 점이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 게임 내에서는 디펜스를 대입하면서 이와 같은 요소를 부각시켰다


두 장르의 시너지는 상당했다
디펜스 특유의 전략성+수집형 RPG의 캐릭터가 플레이의 몰입도와 재미를 배가했다


디펜스 장르도 세분화가 되어있는 만큼 하위 카테고리마다 양상은 다르지만, 명일방주가 베이스로 하는 타워 디펜스는 어느 특정 강한 유닛에 편중될 정도로 의존하지는 않는다. 물론 위력이 강한 유닛, 혹은 스테이지에서 필수로 손꼽히는 유닛이 있긴 하지만 그것 하나만으로는 클리어가 아예 불가능하도록 설계가 되어있다. 가면 갈수록 유닛들의 물량뿐만 아니라 조합도 다양해지기 때문에 이에 맞춰서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타워 디펜스는 적에 맞춰서 유닛을 전략적으로 배치하고, 조합을 짜야 효율적으로 클리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타워 디펜스는 타워 하나하나를 각각의 특성 있는 개체보다는 전략 게임의 유닛처럼 전체 중 일부라는 관점에서 해석한다. 즉 어느 타워가 부서져도 포톤캐논, 벙커 하나 부서지는 정도로 느껴진다. 위기 상황이라면 그 하나가 부서졌을 때 극도로 몰입하게 되긴 하지만, 대체로는 해당 개체에 대한 몰입감이나 애착이 들기 어려운 구조다.

또한 타워 디펜스는 다양한 적들이 대규모로 등장하지만, 대체로 정해진 수순에 따라 출현하기 때문에 익숙해지면 플레이가 단순해지기 쉽다. 이를 더 효율적으로 혹은 자기만의 방법으로 클리어하기 위해 파고드는 유저가 있지만, 클리어 이후에 유저들의 시선을 붙잡아둘 요소가 부족하다.

수집형 RPG는 다양한 캐릭터를 육성하고 수집하는 재미뿐만 아니라, 각 캐릭터 혹은 메인 스토리를 알아가면서 유저들이 그 세계에 애착을 갖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등급에 따라서 캐릭터의 성능이 갈릴 뿐만 아니라, 그 정도가 심해져서 밸런스가 무너지기도 한다. 대체로 수집형 RPG는 보통은 4 VS 4에서 5 VS 5, 많아도 6 VS 6 즉 소수 대 소수의 싸움인 만큼 어느 한 강한 캐릭터가 전장에 미치는 영향도 비교적 크다.



▲ 좋은 캐릭터 하나만으로 모든 걸 다 할 수 없다는 디펜스 장르의 요소가 가미됐다

'명일방주'를 위시로 한 수집형 디펜스 RPG는 이 두 가지 요소가 섞이면서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모습을 보였다. 캐릭터의 성장 구조는 수집형 RPG를 기초로 했기 때문에 명일방주에서도 강캐는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엑은에(엑시아, 실버애쉬, 에이야퍄들라)로 손꼽히는 6성 캐릭터 3종이다. 그렇지만 디펜스를 채택했기 때문에 타 수집형 RPG와 달리 이 캐릭터들만으로는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데 한계가 있고, 그 한계가 생각보다 빨리 온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수집형 RPG에서는 기본적으로 적과 무조건 싸운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디펜스 장르의 룰은 약간 다르기 때문이다.

디펜스 게임의 핵심은 적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바꿔서 이야기하면 적은 어떤 방법으로든 목표 지점에 도달하면 그만이다. 즉 싸우지 않고 빠르게 지나가거나, 혹은 우회해서 갈 수도 있다. 또한 디펜스 게임은 맵의 구조나 기믹이라는 또 다른 전략 요소가 있어서 때로는 원하는 유닛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기도 하고, 일부 유닛을 잘 배치해서 놀랍도록 효율적으로 방어가 가능하다. 이런 요소들이 섞이면서 디펜스 RPG는 일반 턴제 RPG와는 다른 전략성을 만들어냈다.



▲ 적이 꼭 앞에서만 오리라는 법은 없고



▲ 싸워주지 않고 그냥 지나가버리는 적들도 있다



▲ 맵의 여러 가지 기믹을 활용하면 좀 더 쉽게 클리어도 가능하다

한편으로는 RPG의 육성과 성장이라는 요소를 도입해 난이도를 낮추면서 디펜스 장르에 대한 거리감을 줄인다는 이점도 있었다. 처음에는 뚫리던 것도 캐릭터들이 레벨이 올라가고 정예화를 거치면서 어찌저찌 막아내고, 점차 시간이 단축되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디펜스와 수집형 RPG는 언뜻 보기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였다. 디펜스는 하나의 특색있는 유닛을 내세우기보다는 전략을 위한 소모품처럼 플레이하는 경향이 강했고, 수집형 RPG는 그와 반대로 소수의 매력있는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유저에게 어필하는 장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명일방주를 통해서 디펜스의 전략성이 수집형 RPG 특유의 육성과 성장의 재미, 캐릭터에 대한 몰입감, 심도 있는 세계관이 섞이면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였다.



약점은 존재한다
직접 플레이하는 맛은 있지만 보는 맛이 떨어진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관건




최근의 게임 트렌드는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트리머 등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을 보고 같이 즐기는 것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즉 플레이뿐만 아니라 '보는' 것까지도 게임 경험에 꽤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디펜스는 상당히 불리한 장르다. 유저가 바라는 극적인 장면, 즉 전투만 이어지는 장르가 아니기 때문이다. 수집형 RPG는 바로 전투가 발생하고, 스킬과 스킬의 맞교환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 일부는 조건이 붙긴 하지만 곧바로 스킬들의 화려한 연출이 터지면서 스펙타클한 볼거리가 생기고, 눈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디펜스는 약간 다르다. 처음에는 기초 타워부터 시작해서 점차 고코스트 유닛이 배치되는 양상이다. 자연히 눈을 사로잡는 볼거리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린다. 실제로는 약간의 차이겠지만, 그 약간의 차이는 유저 입장에서 볼 때 결코 짧지가 않다. 2배속은 기본에 종종 3배속까지도 지원하는 요즘 게임들을 생각해보면, 그 짧은 시간조차도 유저에게는 길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히나 디펜스 중 유닛을 배치해서 적의 진입로를 차단하는 타워디펜스류는 더욱 더 정적이다. 유닛을 배치하고, 적이 그 사거리에 올 때까지 유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계산해서 둔 수가 맞아들어가는지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이를 기꺼이 기다릴 수 있지만, 당사자가 아닌 입장에서 이를 볼 때는 그 결과를 확인하기까지의 짧은 순간이 답답할 수도 있다. "왜 저기에 뒀을까?"라는 것도 있고, 자신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는데다가 전투라는 의미있는 행동이 이어지기까지 텀이 타 수집형 RPG에 비해서 길다. 즉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한 수를 두고 가만히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화려하면서도 속도감이 있는 연출과 그래픽이 뒷받침되는 수집형 RPG도 자동으로 돌릴 때는 전력 소모가 오히려 큰 이슈가 된다. 그래서 절전모드가 지원될 정도다. 그런데 여기에 배치를 한 번 하고 나서는 공백 시간이 주어질 수밖에 없는 타워디펜스의 요소가 더해졌으니 보는 맛은 덜할 수밖에 없다. 스킬을 적재적소에 켜서 효율적으로 막고, 캐릭터의 배치를 바꾸는 식으로 전략성을 가미했지만 이러한 범주는 그 게임의 '룰'을 알아야 의미가 생긴다. 게이머들 사이에서 흔히 말하는 밈인'서순'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낯선 것처럼 말이다.



▲ 플레이하는 입장에선 순서와 코스트 계산을 하고 있지만, 무언가 눈에 띄게 드러나진 않는다

이런 문제는 명일방주를 비롯한 수집형 디펜스 RPG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다. 그 중에서 명일방주는 빠져드는 유저와 그렇지 않은 유저 간의 온도 차이가 크다. 미려한 PV로 기대치가 높아졌지만 SD 캐릭터가 그에 비례하는 퀄리티가 아니라는 평도 있으며, 이펙트를 단순화해서 가시성은 높였지만 반면에 너무 단조롭고 조촐해보이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

명일방주는 유닛과 스킬의 가시성, UI 등은 최대한 심플하게 하는 한편, 디펜스 장르의 근간을 살리면서 자체적으로 여러 복잡한 시스템을 내재해 전략성과 게임플레이의 묘미는 살렸다. 하지만 이를 체감하는 단계까지 가는 동안 유저가 보는 게임 화면의 첫 인상은 단조롭게 보인다는 한계가 있다. 물론 명일방주가 수집형 디펜스 RPG의 교과서가 아닌 만큼, 타산지석의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초반은 심플하지만 무언가 눈길을 끌기엔 부족하다


'명일방주'부터 시작되는 2020년 수집형 디펜스 RPG
수집형 RPG 장르의 확장을 일구어낼 수 있을까


수집형 RPG는 2014년 이후부터 모바일 게임 시장의 주류를 이루었고, 모바일 MMORPG가 매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지금도 한 축을 담당할 정도로 국내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수집형 RPG의 큰 틀은 실시간 혹은 턴제 RPG의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상황이다.

게임사들은 이런 틀을 깨기 위해서 다른 장르를 차용하는 시도를 해왔다. 일례로 수집형 RPG에 전략 게임을 더한다던가, 100% 턴제 혹은 실시간이라는 양분화된 양상에서 벗어나 각각의 요소를 더한다던가 하는 식이다. 혹은 캐릭터 수집 요소를 살리되, 액션 RPG를 메인 베이스로 하는 등 수집형 RPG는 다양한 양상으로 발전해왔다.

명일방주는 그 중 디펜스 장르와 수집형 RPG가 결합하면서 시너지를 발휘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보는 재미가 부족하다는 디펜스 게임의 고질적인 약점은 극복하지 못했고, 여기에 다소 호불호가 갈리는 SD 캐릭터 및 단순한 연출 등 처음 접하는 유저의 눈길을 사로잡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다.



▲ SD는 첫 인상을 좌우하는데, 이 부분에서는 썩 좋은 평가를 듣진 못했다

그러나 게임플레이 면에서는 독자적인 룰을 가미하면서 한 층 더 높은 전략성을 가미했다. 기본적으로 타워디펜스류의 유닛은 배치된 곳을 기준으로 전방위로 공격을 가하지만, 명일방주는 여기에 공격 방향이라는 또 다른 개념을 불어넣으면서 차이점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외에도 가장 나중에 놓은 유닛을 적이 먼저 공격한다는 어그로 메카니즘이나 맵의 기믹과 캐릭터의 스킬을 활용한 공략 등이 어우러지면서 플레이의 재미를 살렸다. 여기에 매력적인 캐릭터와 세계관이 더해지면서 유저들이 무언가 애착을 가질 만한 요소들이 가미가 됐다.

그간 디펜스 장르는 유저들의 호응을 꾸준히 받아왔지만, 이러한 요소들이 게임 시장에서 전면적으로 드러낸 적은 드물었다. 그러나 2020년에는 명일방주를 비롯해 카운터사이드 등, 디펜스 요소가 결합된 게임들이 출시된다. 그간 수집형 RPG하면 턴제, 실시간 액션으로 양분화되었지만 이와 같은 작품들을 시작으로 장르의 폭이 한 층 더 넓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디펜스+수집형 RPG의 조합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명일방주는 전략성은 부각했지만 화려한 연출에 익숙한 수집형 RPG 게임들과 비교하면 보는 재미가 다소 부족한 게 사실이다. 카운터사이드는 CBT 단계에선 연출은 살렸으나 팔라독류의 특징인 유닛이 겹쳐서 가시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더 부각됐으며, 전략의 깊이도 아직 속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새로운 시도들이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결합 장르에 대한 도전이 꾸준히 이어지고 결국 시장에 자리잡게 된다면, 천편일률화됐다고 지적 받아온 수집형 RPG의 게임플레이 방식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일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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