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잊혀지지 않는 선수가 되길 - 5년 차 된 '룰러' 박재혁의 목표

인터뷰 | 신연재, 석준규 기자 | 댓글: 26개 |
2016년 여름,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 원거리딜러. 뛰어난 피지컬과 캐리력에 신인답지 않은 안정감까지 더해진 플레이로 주목을 받은 '룰러' 박재혁은 데뷔 첫 해 롤드컵 준우승, 이듬해에는 롤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단숨에 '월드 클래스' 원거리딜러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2018년과 2019년은 '룰러'에게는 다소 힘겨운 시간이었다. 2018년 비원딜 메타와 기량 저하가 겹쳐 아시안게임과 롤드컵에서 연달아 무릎 꿇어야 했고, 2019년에는 폼을 완전히 회복했으나 팀 자체가 부진에 빠지면서 승강전의 위기까지 겪어야 했다.

2020년, 젠지 e스포츠와 3년의 미래를 약속한 '룰러'는 새로운 팀원들과 함께 재도약을 바라보고 있다. 새 시즌 개막을 3주 정도 남겨둔 시점에서 그를 직접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주장 완장을 찬 5년 차 프로게이머 '룰러'는 확실히 한결 성숙해진 느낌이었다.





Q. 안녕하세요, '룰러' 선수. 먼저 독자분들께 인사 부탁드려요.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것 같아 반갑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연습 열심히 하면서 지내고 있는데, 시즌 시작할 때까지 응원 보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Q. 벌써 올해로 5년 차에 접어들었어요. 알고 계셨나요?

인지하고 있지는 못했어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네요. 올해 제가 스물 셋인데, 확실히 나이를 먹었다는 걸 느낌을 받아요. 플레이적으로 많이 노련해졌다는 게 느껴지거든요. 성격도 많이 변했어요. 철없고, 형들에게 장난만 치고 그랬는데 지금은 좀 달라졌어요. 제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어른스러워졌어요(웃음).


Q. 지난 4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는데, '룰러' 선수의 실력만큼은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정상급을 지켜왔다고 생각해요. 특별히 비결이 있었나요?

저는 연습을 진짜 열심히 하는 편이에요. 제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요. 그래서 무엇보다도 연습량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Q. 쉬지 않고 계속 달리다보면 '번아웃'이 한 번쯤 찾아올 법도 한데, 그런 경험은 없으신가요?

2019년 섬머 후반부에 들어서 그걸 느꼈어요. 게임을 하는 것 자체가 되게 힘들어라고요. 엄청 피곤하고, 집중도 잘 안됐어요. 솔로 랭크부터 스크림, 대회까지 그게 쭉 이어졌죠. 이런 느낌은 처음이고,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극복하기 위해 특별히 뭔가를 한 건 없고, 시즌이 끝나고 대회가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결이 된 것 같아요.





Q. 팀이 부진한 시즌에는 단독 에이스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잖아요. 이런 타이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고, 부담감은 없었는지도 궁금한데요.

그런 소리를 듣는다는 건 일단 제 실력 자체는 인정을 받는 거 잖아요. 그런 면에서는 당연히 감사하죠. 근데, 우리팀 선수들이나, 스스로 못한다고 생각하는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상처를 받을 수 있어 걱정이 돼요. 좋으면서도 씁쓸한 그런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부담감은 느낄 새가 없었어요. 팀이 부진할 때는 진짜 무조건 잘해야겠다는 생각 밖에 안 들거든요. 한판 한판이 너무 소중해서 부담감을 느낄 겨를도 없었어요. 어떻게 해서든 이겨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Q. '룰러' 선수하면 원딜의 정석이라는 말이 떠올라요. 비원딜 챔피언이 주류 메타가 됐을 때에도 원딜 챔피언을 주력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어요. 사실 그때는 ''룰러'는 비원딜을 할 줄 모른다'는 혹평도 나왔잖아요.

비원딜 챔피언이 한창 나오기 시작할 때가 제가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다녀왔어야 했던 시기였어요. 갔다오니 패치 버전이 달라졌고, 비원딜을 연습할 시간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계속 평소처럼 게임을 하다가 비원딜이 시간이 지나도 강세를 보이다 보니까 필요성을 느낀거죠.

그때부터는 비원딜 챔피언을 연습도 많이 했고, 못하지도 않았어요. 근데, 결국 대회를 가면 원딜 챔피언을 해야 하는 상황이 나오더라고요. 또, 감독님과 코치님도 제 원딜 실력을 믿고 밀어주셨어요.

이제는 비원딜 중에 좋은 챔피언이 몇개 없다고 생각해서 비원딜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아요. 결국 다들 원딜 챔피언을 다시 쓰게 될 것 같아요.


Q. 그러고보니 최근에 원딜 챔피언이 새로 나왔어요. OP로 떠오른 아펠리오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펠리오스는, 저는 고평가 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평가받는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그치만, 무조건 좋은 챔피언은 맞아요. LCK에서도 밴을 당하지 않으면 반드시 등장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Q. 지금의 '룰러' 선수에게는 진부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라이벌로 생각하는 선수가 있다면요? 흔히들 '룰러' 선수와 '데프트' 김혁규, '테디' 박진성 선수를 가리켜 LCK 원딜 삼대장이라고들 하잖아요.

우선, 기회가 되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제가 '테디' 선수를 의식한다는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이게 약간 억울한 게 '앰비션' (강) 찬용이 형이 방송에서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던데, 저는 원래 그런 거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근데, 2017-18년도에 찬용이 형이 같은 팀에 있을 때 '테디' 언급을 되게 많이 했어요. 제 플레이랑 비교해서? 그래서 자연스럽게 걔를 만나면 이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다만, 일부러 의식을 하고 그러지는 않아요. 누구를 만나든 내 플레이를 해야지, 괜히 의식하고 그러면 플레이도 더 안 좋아져요.

그래도 진성이가 확실히 라이벌이라고 생각은 해요.


Q. 그럼, 이 자리를 빌려 '앰비션'님에게 한 마디 하실까요?

찬용이 형. 전에 같이 있던 선수들 팔아서 방송하면 큰일납니다. 조심하십시오.


Q. 본격적으로 올해의 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이번 이적 시장에서 젠지의 행보가 큰 주목을 받았어요. 우선, '룰러' 선수가 3년 재계약을 하면서 진정한 '젠지맨'으로 거듭났죠.

고민이 되게 많았어요. 제가 지금 23살이고, 3년이 지나면 26살이잖아요. 어린 나이가 아니에요. 만약에 3년 재계약이 끝나고, 팀을 구하지 못하면 그대로 프로게이머 생활을 마무리해야 될 수도 있어요. 그래도 3년 재계약을 결정하게 된 이유는 젠지에서 늘 좋은 대우를 해주신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말로 설명하기는 힘든데, 젠지에 있으면서 항상 대우 받는다는 느낌을 받아요. 세심하게 정말 잘 챙겨주시기도 하고요. 한번은 부모님과 함께 사옥에 있었던 적이 있는데 아놀드 허 지사장님이 오셔서 부모님께 직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시기도 했어요.


Q.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타이틀을 달고 난 후 생긴 변화가 있다면요?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것에 대해서는 원래 크게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아무래도 3년 재계약을 하다 보니까 이제는 확실히 와닿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당연히 기분이 좋아요. 누구에게나 오는 기회가 아니기도 하니까요. 또, 한편으로는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Q. 더불어 '라스칼' 김광희-'비디디' 곽보성-'클리드' 김태민 선수의 영입이 화제였어요. 그 선수들이 영입됐다는 걸 들었을 때는 어땠나요?

되게 좋았어요. 영입을 할 때 과정이 꽤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감독님, 코치님이 되게 바쁘게 움직이시고 힘들어하시던 걸 제가 지켜봤잖아요. 그래서 더 기뻤어요. 감독님과 코치님이 노력하신 걸 결국 이루셨다는 생각? 물론, 그 선수들과 함께 한다는 것도 좋았고요.


Q. 6번째 멤버 '켈린' 김형규 선수도 케스파컵에서 기대 이상의 경기력을 보여줬던 것 같아요. 파트너 입장에서 '라이프' 김정민 선수와 '켈린' 선수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라이프' 선수는 은근히 똑똑하기도 하고, 이니시에이팅 각을 잘 보고, 라인전에서 케어도 잘해줘요. 근데, 좀 바보 같이 죽는 경우가 있어요. '켈린' 선수는 사람은 바본데(웃음), 플레이는 그렇지 않아요. 주도적으로 열심히 하려고 하고, 피지컬도 좋아요.

둘 다 잘하는 선수에요. 솔직히 실력적인 차이점은 거의 없다고 생각해요. 다른 점은 챔피언 풀이 반대에요. 팀에 전술적으로 좋은 것 같아요. 어떤 조합을 쓰느냐에 따라 전략적으로 선수를 교체할 수 있으니까요.


Q. 팀의 막내로 시작해 이제는 주장까지 맡게 됐어요. 최고연장자는 아니지만, 젠지에 가장 오래 몸 담은 선수잖아요. 책임감이 막중할 것 같은데요.

확실히 그런 것에 있어서 부담감도 있어요. 제가 막내일 때는 그런 생각이 아예 없었는데, 점점 나이를 먹고 동생들도 생기다보니까 챙겨줘야할 게 은근히 많더라고요. 주장도 맡았고요.


Q. e스포츠 팀에서 주장은 보통 어떤 역할을 하나요?

주장이라고 해야할 일이 특별히 많아지거나 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느끼는 건 피드백 시간에 중심 역할을 잘 해줘야 한다는 거에요. 팀원들이 차별을 느끼지 않게 중심에서 조율을 해줘야 해요.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주장이라면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아직은 제가 모범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주장은 처음이기도 하고, 아직은 초반이니까 열심히 생활을 하다 보면 바뀌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믿어요.





Q. 케스파컵의 결과는 기대를 모았던 만큼, 아쉬움도 컸을 것 같아요. 내부적으로는 어떤 평가를 내렸나요?

우리가 실수가 되게 많다는 건 스크림 때부터 알고 있었는데, 대회에서 확실하게 더 느꼈어요. 시야를 잡는 것부터 시작해서 잘린다거나, 한타에 빨려들어가 죽는다거나 그런 것들이요.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고치려고 계속 노력 중이에요. 실수만 고치면 잘 할 거라고 생각해요.

팀합도 시간이 갈수록 늘어간다는 건 확실히 느껴져요. 100%로 따지면 케스파컵에서가 20~30% 정도였고, 이제는 50% 정도? 아직은 그 정도에요. LCK 개막 전에 70%까지는 끌어올려야 팬분들이 만족할만한 경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Q. 올해의 목표를 묻자면 당연히 우승이겠죠?

옛날부터 목표는 똑같았어요. LCK 스프링도 우승하고, MSI도 우승하고, 섬머 스플릿도 우승하고, 롤드컵까지 다 우승하는 게 목표죠. 아직 이루지 못한 게 많아요. 모든 프로게이머들이 가진 공통 목표가 아닐까요? 만약 진짜 그랜드 슬램을 이룬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Q. 성적을 제외하고, '룰러' 선수의 개인적인 목표도 듣고 싶어요.

저는 팬분들로부터 잊혀지지 않는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요. 작년에 섬머 스플릿이 끝나고 롤드컵을 못 가면서 공백기가 길었는데, 떠나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그런 것들에 있어서... 무언가를 좀 느꼈어요. 아무도 안 떠나실 수 있게끔 꾸준히 잘해서 항상 응원 받는 선수가 되는 게 제 목표예요.


Q. 이제 마지막으로 젠지 e스포츠의 2020 시즌을 손꼽아 기다리고 계신 팬들에게 한마디 해주실까요.

팬분들께서 되게 많은 기대를 하고 계시다고 알고 있어요.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게 열심히 연습해서 좋은 경기력 보여드릴게요. 인간적으로도 멋있고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게 항상 노력할테니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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