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아내가 대신 찾아준 '동물의 숲'의 재미

기획기사 | 정재훈 기자 | 댓글: 45개 |



난 닌텐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좋아하려고 몇 년째 노력하고 있다. 온전히 취향의 문제다. 게임은 게임대로, 콘솔인 스위치는 스위치대로 나랑은 잘 안 맞는다. 그나마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 때문에 스위치를 빌려서 게임을 해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처음 만난 젤다는 조이콘 오류때문에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혼자 멋대로 벽을 향해 돌진했다. 기기가 고장난 것 같다고 말하자 "원래 그래, 뭐 좀 발라주면 금방 나아"라는 답변을 들었다. 누누히 말하지만, 스위치나 닌텐도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냥 나랑 안 맞는다는 뜻이다. 그런고로, 까는거 아니다. 개인 취향이다.

'동물의 숲'도 나랑은 전혀 인연이 없는 게임이다. 애초에 휴대용 기기로 게임하는걸 좋아하지 않아 모바일 게임도 잘 하지 않고, 일생을 PC와 거치형 콘솔만으로 살아온 나다. 단 한 번 썼던 휴대용 콘솔은 'PS VITA'였고, 그마저도 대학 시절 도둑맞은 이후 쓸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이번 미션이 떨어졌다. '동물의 숲을 안 해본 자가 게임을 해보면서 재미를 찾아보기'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스위치고 동물의 숲이고 전혀 관심없는 기자가 나뿐이다.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닌텐도를 좋아하진 않지만, 게임 기자로서의 사명감 때문에 늘 마음속 한구석에 숙제처럼 남아있던 기기가 스위치였으니까. 누구나 재밌게 한다는 동물의 숲이라면 나도 즐겁게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6시간이 넘는 업데이트, 그만큼의 다운로드, 액티브X를 방불케하는 닌텐도 홈페이지의 철의 장벽까지. 이걸 다 뚫고 나니 금요일 늦은 밤이다.



▲ 으윽 제발 게임하게 해줘...

그렇게, 나는 '모여봐요 동물의 숲'을 시작했다.

찾아보자! '동숲'의 재미!
찢고 부수고 박살만 내던 게이머의 표류기



▲ 처음이니 아무것도 모르겠고 일단 캐릭터부터 만들자




▲ 중요한 결정인 줄 알고 5분을 고민했는데 그냥 물어본 거였다.




▲ 묘하게 훈련소 입소 첫 날 같은 기분




▲ 어찌어찌 텐트를 치고 나서




▲ 지 살 곳도 못 정하는 이 녀석들 집자리까지 봐줘야 했다




▲ 이때만 해도 저들을 잠재적 경쟁자로 취급했기에 아무것도 없는 구석탱이 해변에 몰아두었다.




▲ 귀찮은 녀석들 조개나 캐먹으렴




▲ 섬 이름은 민주적 절차로 정했다. 나가려면 너굴을 쏘고 가야 한다.




▲ 이제야 권력에 한 발을 디뎠다.




▲ 뭔가 유명한 캐릭터 같은데 뭘 모르니 그냥 배철수 닮은 강아지라는 생각만 들었다.




▲ 게임이니 그냥 주는 도구인 줄 알았는데




▲ 이왕이면 총도 한 자루 주지 그랬니?

그래. 이 게임은 빚을 지운다. 빚 말고도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왜 하필 빚일까. 3년 전만 해도 아무 생각 없었을 거다. 빚지고 시작하는 플롯의 게임은 꽤 많은 편이니까. 하지만 그 3년 사이에 결혼이란 중대사를 겪으며 빚을 질 수밖에 없었다. 현실의 무게가 게임까지 넘어오자, 플레이에 탄력이 붙는다. 여기서만은 빚쟁이로 살지 않겠다는 마음 때문에 노동의 속도가 붙는다.



▲ 빚이 있는 한 자유는 없단다 꼬맹아




▲ 뭐라도 해야 하니 잡초부터 다 조지자




▲ 솔직히 풀뜯어서 파는거 치곤 후하게 주네 뭐




▲ 그리고 그 돈으로 쓰잘데기 없는 반합을 샀다...
이때만 해도 요리하려면 반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49,800벨이면 도구 몇 개 정돈 서비스로 좀 넣어주지




▲ 살려줘




▲ 일단 뭐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니 낚싯대부터 만들자




▲ 매운탕을 생각했는데 어항이 나와서 당황했다.


찾아줘요! '동숲'의 재미!
생각해보니 꼭 내가 찾지 않아도 됐잖아?

그렇게 몇 시간을 '노동해요: 동물의 섬'으로 플레이하던 와중, 아내가 옆에 앉았다. "이게 그 동물숲 뭐시깽인가 그거냐?"라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자, 본인이 잠깐 해보겠다고 나섰다. 안그래도 3일은 천천히 해봐야 할 것 같으니 순순히 스위치를 건네주었다.

그렇게, 아내가 '모여봐요. 동물의 숲'을 시작했다.



▲ 캐릭터 컨셉은 디즈니 장편에 출연하는 '모아나'. 이 때부터 섬 이름은 모투누이로 하겠다고 밝혔다.




▲ 하지만 아내가 잘 모르는 것이 있었으니




▲ 계정을 바꿔도 같은 기기면 무조건 같은 섬 당첨이다.




▲ 시공을 넘어 실미도로 끌려온 모아나. 나도 모르게 아내 눈치를 봤다.




▲ 게다가 부부가 쌍으로 빚더미에 앉은 막장 상황




▲ 저 바다 너머엔 모투누이가 있을까...




▲ 나중에 섬을 옮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해줬더니 일단 게임을 더 플레이한다.




▲ 붕어도 잡고(얼굴에 흰 부분은 나름의 데코다. 붕대 감은거 아니다)




▲ 남편닮은거도 잡고




▲ 게시판에서 주민대표의 메시지를 발견




▲ 총은 없더라. 내가 다 찾아봤어.




▲ 끝내 주민대표보다 먼저 내집마련에 성공했다.


이쯤에서, 상태를 점검했다. 이미 내 캐릭터는 콘솔 소유권에서 밀려 텐트 이상으로 발전할 수 없는 상황. 문제는 중요한 마일스톤을 전부 다 주민대표인 내가 와서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진행도를 늘리려면 주민대표로 직접 플레이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 아내는 내 캐릭터까지 만져가며 이중생활을 시작했다. 도구 제작 노예가 되어 배달을 뛰는 주민대표




▲ 그리고 끝내, 실미도를 테라포밍하기로 결정했다.




▲ 그렇게 새로운 권력자가 된 모아나




▲ 유권자 모집에도 힘쓰는 모습이다.


찾았다! '동숲'의 재미!
10년 걸려 갚을 빚을 이틀이면 갚는 평행세계!


솔직하게, 나는 재미를 찾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맞는 게임은 없듯이, 동물의 숲도 나와는 조금 멀리 있는 게임인가 싶다. 동물의 숲 시리즈가 대대로 출시 1주일 후 중고매물이 쏟아지는 이유도 아마 비슷할 것이다.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으로 보이지만, 생각보다 골치아픈 일들이 많은 게임이다.

하지만 기사를 포기할 수는 없지. 이가 아니면 잇몸이듯, 내가 아니면 아내다. 그리고 아내의 플레이를 계속 지켜보다 보니, 내가 직접 할 때는 미처 찾지 못한 재미들이 보인다. 가끔은 내가 콘솔을 쥐고 놔주지 않을 지경. 감정을 담아 플레이한 아내는 아마 나보다 더 많은 걸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짧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나는 실패했지만, 성공한 이가 있으니까. 아내가 찾은 '동물의 숲'의 재미. 무엇일까?





Q. 콘솔 게임을 이렇게 길게 한 건 처음일 텐데, 어떤가 재미있나?

모르겠다. 처음에 몇 시간은 이게 왜 재미있는지도 모르고 했다. 현실이 잘 반영되어 있는 것 같아서 그게 맘에 든다. 밤되면 달 뜨고 아침되면 해 뜨고. 새들도 울고 바람불면 나무도 흔들리고. 택배도 다음날 오는 건 안 똑같아도 됐을 텐데 기다리기 힘들다. 심지어 빚지는거까지 똑같다. 지금도 집값 갚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여기서도 뼈가 빠진다. 근데 물어본게 뭐였지? 아 맞다. 지금은 재미있다.


Q. 게임 하다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내가 왜 이 게임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또 계속 하고 싶다. 목적성 없이 이렇게 게임하는게 원래 맞는 건가?


Q. 원래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그냥 한다. 게임 중에 어렵거나 힘든 부분은 없었나?

게임을 처음 하다 보니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할 때가 많았다. 새로 섬 만들기 전엔 박물관 만드는 법도 몰랐고. 철광석 캐는 법도 몰라서 도끼로 돌맹이 다 부숴먹고. 이따가 나 대신 철광석좀 캐놔라 다른 섬 갈 마일리지 다 모아놨다.

내가 성격이 급하다 보니 뒤쳐지는걸 싫어하는데 게임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지 않다 보니 인터넷을 뒤져가면서 게임을 배웠다. 힘들었다기보다 이상하게 보인 부분도 있는데, 너굴이 돈 얘기를 할 때마다 무척 환하게 웃고 있더라. 뭔가 더 얄미워 보였다.



▲ 혹시 철광석을 보셨습니까


Q. 앞으로도 계속 게임을 할 생각이 있는가?

솔직히 바이러스 문제만 아니었다면 전철에서도 했을 거다. 봐서 알지 않나. 나 자기전에도 쥐고 잔다. 근데 이거 게임기 회사에서 빌린거 아닌가? 언제 갖다줘야 돼?


Q. 나도 모른다. 그럼 이게 진짜 질문인데, '동물의 숲'의 진짜 재미는 무엇인 것 같은가?

아무래도 현실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현실의 일상에서 잠깐 벗어나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 가장 좋은 것 같다.



▲ 2-3일이면 내집마련이 뚝딱


Q. 게임에서 아쉬운 점은 없었나?

게임 내에서는 아쉬운 점이 없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좀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굉장히 천천히 플레이해야 하는 게임인데 다른 사람들 플레이를 보면 자꾸 경쟁 의식이 생긴다는 거다. 내 섬은 그만큼 안되니까 자꾸 조바심이 생긴다.


Q. 나는 그만큼의 재미를 못 찾은 것 같다. 왜 그런 것 같은가?

그건 니가 맨날 뭐 때려부수고 터뜨리고 이런 게임만 해서 그렇다. 감성이 그 모양이니 이게 재미있을리가 없지.



▲ 이미 새 섬에 박물관도 다 들어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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