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특별한 봄을 만들어 준 APK 프린스에게

칼럼 | 박태균, 남기백 기자 | 댓글: 43개 |



여기, 가장 특별한 LCK 시즌을 만들어 준 한 팀이 있다. 2020 LCK 스프링 스플릿 정규 시즌 1라운드 성적 2승 7패(-8) 9위, 최종 성적 6승 12패(-9) 7위. 결과만 놓고 봤을 땐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중하위권 팀이다. 지금까지 LCK 중하위권에서 맴돌다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져간 팀도 한둘이 아닐진데, 무엇이 그들을 더없이 매력적인 팀으로 만든 것일까. APK 프린스의 이야기다.

일단 APK 프린스 주전 선수들의 커리어부터 살펴보자. 주장 '익수' 전익수와 '플로리스' 성연준, '시크릿' 박기선 모두 LCK 경험은 있지만 승리보다 패배가 더 익숙한 선수들이다. '익수'의 경우 유일하게 LCK 포스트시즌에 두 차례 진출했으나 5위가 커리어 하이다. '시크릿' 박기선은 포스트시즌은커녕 LCK 승강전만 7번을 치렀다. '플로리스'가 그나마 중국에서 어느 정도의 커리어를 쌓은 정도다.

'커버' 김주언과 '하이브리드' 이우진은 올해 전까지 LCK 경기 자체를 경험한 적이 없다. '커버'는 APK 프린스가 첫 팀이고, 롱주 게이밍의 서브 봇 라이너였던 '하이브리드'는 챌린저스 3개 팀을 거쳐 APK 프린스에 합류했다.




이렇듯 APK 프린스에는 프린스, 스타 플레이어가 없다. LCK에 처음 발을 디딘 신인이 두 명에 사파 탑 라이너, 전형적인 하위권 서포터, 중국에서 돌아와 갓 합류한 정글러가 모인 팀이다. APK 프린스가 승격에 성공했을 때 LCK 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저 로스터로는 하위권을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승강전만 피하면 잘한 거라고. 극단적으로 다른 팀에게 승리를 퍼주는 '승점 자판기' 팀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이윽고 개막한 2020 LCK 스프링 스플릿에서 팬들의 예측은 현실이 되는 듯했다. '케이니' 김준철이 미드 주전으로, 봇 듀오가 교체 출전한 초반 8경기에서 1승 7패를 거둔 것이다. 경기 내용도 좋지 않았다. 그 어디도 이기지 못하는 약한 라인전과 던지는 건가 싶을 정도로 무모하고 무리한 움직임만 돋보였다. 한동안 LCK에 돌풍을 일으켰던 다른 승격 팀들과 달리 APK 프린스는 곧바로 두 번째 승강전을 치러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APK 프린스의 승부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커버'가 LCK 데뷔전을 치른 1라운드 마지막 경기부터 반전이 시작됐다. 한화생명e스포츠를 상대로 거둔 2:0 승리를 포함해 총 10경기에서 5승 5패, 승률 5할을 달성했다. 승강전에 가는 9, 10위가 아닌 7위에 안착하며 당당히 LCK 잔류에 성공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팬들이 APK 프린스에 열광하는 이유를 알아보자. 특정 집단에서 상대적 약자를 뜻하는 언더독, 그리고 그들이 성공하길 바라는 언더독 효과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LCK에선 유난히 언더독 효과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봐온 LCK 팀들은 언더독이 아닌 희생자였기 때문이다.

언더독과 희생자의 차이는 바로 열정에 있다. APK 프린스는 지금까지 약팀으로 불렸던, 탑독들의 희생자였던 LCK 팀들과 달리 결코 무기력하게 패배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들이 강점보다 약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LCK의 강팀들에게 패배할 확률이 매우 높았으며, 젠지-T1-DRX에겐 1, 2라운드 모두 패배했다.

그러나 APK 프린스는 더 세게 맞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주먹을 휘둘렀다. 승리에 대한 열정과 본인들의 색깔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누구보다도 간절했던 LCK 무대에 임하는 각오가 매 경기 뚝뚝 묻어났다. 피하려다가 스스로 넘어지느니 부딪히고 깨지는 쪽을 택했다.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이 같은 방식으로 모든 것을 쏟아내는 경기를 선보였다.




APK 프린스의 또 다른 매력은 플레이 스타일이다. 일라오이, 질리언, 뽀삐, 사이온 등 틈만 나면 괴짜 픽을 꺼내 상대에겐 혼란을, 시청자에겐 즐거움을 주는 '익수'로 인해 밴픽부터 흥미롭다. 게임으로 들어가면 줄곧 싸울 생각만 보는데, 없는 각도 만들어내며 노림수를 던진다. 상대가 드래곤을 건드리는 행위는 한타 신청으로 받아들이고 바론은 일단 두드리고 본다.

2020 LCK 스프링 스플릿 정규 시즌에서 APK 프린스의 평균 경기 시간은 34분 27초로 아프리카 프릭스의 35분에 이어 전체 2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APK 프린스의 스타일은 경기가 길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게 한다. 어떻게든 교전을 하고자 하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체감 경기 시간은 훨씬 짧게 느껴진다.

마지막은 APK 프린스의 첫 번째 키워드인 믿음이다. 방송 인터뷰든, 승자 인터뷰든, 인게임 보이스든 어느 곳에서나 다섯 선수들은 늘 서로 간의 믿음을 외친다. 그들에게 오더의 옳고 그름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틀린 오더라도 모두가 따르면 맞는 오더가 된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팀원 간의 끈끈한 결속력이 만들어내는 한 몸 같은 플레이를 보고 있자면 응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이브리드'의 캐리력에 대한 믿음도 확실하다. '시크릿'은 '하이브리드' 곁을 떠나지 않으며 다른 선수들은 불리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시간을 벌기 위해 눈물겨운 사투를 벌인다. '하이브리드' 역시 이러한 팀원들의 믿음에 보답하듯 몸을 사리지 않고 딜을 꽂아 넣었다. 그 결과 '하이브리드'는 한 시즌 3번의 펜타 킬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과 함께 분당 대미지 1위(616), 평균 킬 2위(4.9), 팀 내 대미지 비중 3위(32.5%) 등의 기록을 남기며 LCK 데뷔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러한 APK 프린스의 매력들은 많은 팬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른 건 APK 프린스만의 스토리텔링이었다. 이렇다 할 커리어가 없는 다섯 선수의 '초라한 시작', LCK 승격으로 얻은 '희망과 꿈', 어떤 팀을 상대로든 최선을 다하는 '도전 정신', 이 완벽한 언더독의 삼박자가 만들어낸 조화는 게임을 떠나 현실에 놓인 우리네의 삶을 돌아보게 하지 않았나.

세상이 내 것만 같은 10대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인 20대, 반복되는 일상에 매너리즘에 빠진 30대까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실패를 경험해 봤을 터다. 그리고 그 실패가 두려워져 이젠 도전조차 포기한 경우도 있겠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목표를 꿈꾸며 작은 것에도 눈을 빛낼 수 있었던, 그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지닌 모든 이에게 APK 프린스의 경기는 많은 의미를 전달했을 것이다.

어느 영화에서 들었던 명대사가 막연히 떠오른다. '내가 실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수가 나를 만드는 것'이라고. APK 프린스야말로 이 말에 가장 어울리는 팀이 아닐까. 그 누구도 APK 프린스가 완벽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실제로 그들은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수투성이의 모습과 수많은 패배에도 불구하고 APK 프린스는 완성되어가고 있다. 마치 인생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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