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쿠로'의 아직 못다한 이야기

인터뷰 | 김병호 기자 | 댓글: 34개 |



‘쿠로’ 이서행은 리그제가 도입된 이후부터 항상 자신의 소속팀을 플레이오프까지 올려놓았다. 우승권 팀이던 락스 타이거즈 시절은 언급할 필요도 없이, 리그 중위권을 맴돌던 아프리카 프릭스를 결승에 진출시켰고, 그의 커리어 상 처음으로 해외 리그를 경험했던 비리비리 게이밍도 서머 시즌은 리그 4위로 마감했다. 지금의 소속팀 KT 롤스터도 그렇다. ‘쿠로’가 속한 KT는 5연패를 기록하며 리그 최하위까지 떨어졌지만, 결국 8연승 끝에 4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재능있는 많은 선수가 팀을 옮길 때마다 부침을 겪는다. 자기 라인을 호령했던 선수들도 환경이 바뀌거나 소속 팀원과의 궁합이 맞지 않을 때는 자신을 향한 세간의 평가와는 괴리가 있는 성적을 내곤 한다. 하지만 쿠로는 어느 팀을 가든, 누구와 호흡을 맞추든 팀을 일정 수준까지 올려놓았다. 8년이라는 프로게이머 경력 동안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준 쿠로, 가끔은 그에 대한 평가가 그가 쌓아온 업적에 비해 박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쿠로는 사람들이 자신을 나쁘지 않은 미드라이너로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언제나 만족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다 아쉽고, 생각도 많아지죠. 조금만 더 했더라면.. 조금만이라도 어떻게 잘 되었다면 지금보다 성적도 잘 나오고, 커리어도 잘 쌓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반면에, 지금까지 돌이켜 보면 나름 프로게이머 중에는 성공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암울하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돌이켜 보면 나쁘지 않았다고 할까요?”

쿠로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외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는 편이 아니었다. 저녁을 어떻게 먹든 밥을 먹으면 되고, 무엇을 타고 가든 도착만 하면 되는 스타일이랄까? ‘나쁘지 않다’라는 표현도 그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말처럼 들렸다.




“그럼 쿠로 선수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뭐예요?”

쿠로가 대답했다.

“시간이죠. 시간. 제가 처음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했을 때와는 너무 달라요. 그때는 그저 재미있을 뿐이었는데, 연차가 들면서 그때가 가장 좋았다는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조금은 깨달은 거 같아요. 이 좋은 시절이 금방 지나가고 해가 매번 바뀌어요. 이제 제가 프로게이머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이런 말들이 굉장히 꼰대 같잖아요?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꼰대가 되는 거 같아요. 어린 친구들에게는 시간이 부족하지 않아요. 사실 시간이 부족한지 모르죠. 하지만 제 또래 친구들, 울프나 프레이, 듀크, 고릴라, 스멥 같은 친구들, 이제 경력도 차고 나이도 많은 선수들끼리는 미래에 대한 고민 이야기를 많이 해요.”

쿠로는 8년이라는 시간을 프로게이머로 살았다. 18살 고등학생은 프로게이머가 그저 즐거워서 하게 되었고, 그렇게 8년 동안 소속팀을 위해 개인 생활을 포기하고 팀을 위해 살았다. 물론, 그 대가로 평범한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직업을 경험했고, 또래들이 누릴 수 없는 부와 많은 팬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우리는 20대를 전부 프로게이머에 바쳤잖아요. 그리고 이제 군대를 다녀오면 30대가 돼요. 30대가 되면, 20대에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찾으면서 즐겁게 살고 싶어요. 여유롭게 놀러도 다녀보고, 벌어둔 돈으로 사업도 해보고 싶네요.

사람들이 저를 나쁘지 않은 선수라고 기억한다고 하더라도,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아요. 프로게이머로서 목표는 각자 다르지만, 다들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다가 잊혀지는 거를 힘들고 아쉬워하더라고요. 경력 있는 친구들은 대부분 사람들 기억에 남는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고들 해요. 저 역시도 그래요. 은퇴하고도 잊혀지지 않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아직 끝난 게 아니잖아요?”




쿠로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동료 후배 선수들에게 경기 때마다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고 했다.

“올해 연패를 할 때나 연승을 할 때 팀원들에게 자주 농담을 했어요. ‘이번에 나 플옵 못 가면 은퇴야’, ‘형 은퇴야’, ‘형 플옵 안 보내주고 은퇴시킬 거야?’ 이런 이야기를 막 하는 거예요. 그럼 ‘에이, 형 무슨 이야기에요’라면서 받아주죠.

사실 플레이오프를 가거나 우승을 한다고 은퇴 시기가 늦어지진 않아요. 제 나이가 있어서 성적에 상관없이 1~2년 안에는 군대에 가야 해요. 한국 남자라면 군대 가야죠.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후회 없을 성적을 얻으면 정말 좋을 거예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언제나 후회하고 아쉬워했더라고요. 그게 제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앞으로 남은 시간을 의미 있고, 재미있게 보냈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다시 할 수 있다면 안 할 건데요(웃음). 그래도 이번 생에 한 걸 후회하지 않아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도 0.01 퍼센트만이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할 수 있는 사람은 적은 직업이니까요.”

쿠로는 프로게이머가 되어서 좋았던 여러 가지들을 이야기했다. 팀원과 얽힌 에피소드들, 프로게이머를 하면서 좋았던 순간들, 아쉬웠던 순간들, 그리고 자신을 응원해준 팬분들에 대해 감사함을 말했다. 프로게이머들은 그저 경기장에서 게임을 할 뿐인데, 이를 좋아해 주시는 팬분들이 있어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했다.

“KT에서 지금까지 보낸 시간이 헛되진 않았다고 생각해요. 연패할 때는 ‘이제 정말 끝인가?’라는 생각도 했고, 연승할 때는 락스 타이거즈 때보다도 더 감사하게 다가왔어요. 아직도 이렇게 좋은 거 보면 아직 끝난 건 아닌가 봐요. 그리고 서머 시즌도 남아 있잖아요. 서머 시즌을 보내고 나면 제가 보낸 시간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요. 아직 끝난 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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