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휴먼카인드', 확실한 차세대 악마의 게임

리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19개 |



앰플리튜드 스튜디오(Amplitude Studios)는 2012년, '엔들리스 스페이스'를 통해 데뷔한 후, 국내에서 제법 이름을 알린 중견 개발사다. 대표작은 역시 4X(eXplore, eXpand, eXploit and eXterminate = '문명'과 같은 장르)게임 '엔들리스 레전드'. 유저 제작 한글패치가 개발사의 공인을 받은 이슈를 통해 국내에서 이름을 알린 이 작품은, 앰플리튜드 특유의 광대한 세계관, 그리고 개성 넘치는 종족과 굉장히 깊은 게임성으로 호평받았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허들이 되기도 했다. 4X라는 복잡한 장르적 특이성에, 낯선 세계관의 결합은 초심자들에게 퍽 낯설게 다가왔다. 익숙해지기만 하면 매우 깊은 수준의 게임 플레이를 보여주었지만, 익숙해지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매니아층에게는 계속해서 사랑받는 게임이지만, 대중성의 측면에서 '문명'의 벽을 넘기는 힘들었다.



▲ 나름 신선했던 '엔들리스 레전드'

그랬던 앰플리튜드 스튜디오가 '엔들리스'란 이름을 벗고 새로운 작품을 가져왔다. 게임 이름은 '휴먼카인드(Humankind)' 기존의 SF 세계관을 벗어나, 인류의 역사를 기반으로 앰플리튜드만의 감성과 시스템을 더한 4X 게임이다.

한국 시간으로 6월 3일 새벽 2시. 앰플리튜드 스튜디오의 온라인 프레젠테이션과 함께 2시간 동안 제한적으로나마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아직 게임이 개발중이기에 플레이할 수 있는 부분은 일부분, 게다가 영어의 깊은 장벽을 뚫어야 했지만, 2시간을 꽉 채우며 플레이한 결과, 게임의 기본 흐름은 파악할 수 있었다.

실제 인류사를 바탕으로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긴 시대적 배경을 다루고 오랜 시간 공들여 플레이해야 하는 4X 게임. 아마 '휴먼카인드'에게 가장 열렬히 쏟아질 관심은, 해당 장르의 거탑인 '문명' 시리즈와의 비교일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이 이 게임을 설명하기도 가장 쉬울 것이다. '문명' 그 이상의 깊이를 지닌 역사 기반 4X 게임. '휴먼카인드'를 체험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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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이름이 '휴먼카인드'인 이유

게임을 시작하면, 플레이어는 두 개의 유닛이 뭉친 하나의 '부족'으로 시작하게 된다. 최초의 시대는 신석기(Neolithic) 시대. 문명과 같이 시작과 동시에 적당한 자리를 잡아 도시를 지을 수는 없다. 신석기 시대 중에서도 농업이 시작되고 정착해 생활하는 시대 이전으로 설정되어 있는지, 대륙을 거닐며 영감을 얻고, 정착할 수 있게 되기까지 몇 턴은 방랑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필요한 영감과 조건이 맞아 떨어지면 문명을 선택하면서 수도를 건설할 수 있다. 여기서, '문명' 시리즈와의 가장 큰 차이가 나온다. '문명' 시리즈의 경우 게임 시작 이전, 자신이 원하는 문명을 선택한 후 게임에 돌입하지만, 휴먼카인드는 시대가 변하는 시기에 자신이 문명을 선택하게 된다.



▲ 게임 내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기반 문명

물론 각 문명은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세력의 성장 방향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이런 '발전 과정의 선택'은 최초의 시대 발전에만 국한되지 않고 발전할 때마다 반복된다. 예를 들어 신석기 -> 고대로 넘어갈 땐 '바빌론', '이집트', '하라파(인더스)', '미케네' 중 하나((시연 빌드 기준)를 선택할 수 있으며 이후 고대 -> 고전 시대로 넘어가는 시점엔 '고딕', '훈', '카르타고', '악숨', '켈트' 등 더욱 다양한 선택지가 생긴다.

결과적으로, 몇 번의 시대가 지나가고 나면, 완전한 자신만의 문명이 생겨난다. 이집트 문명이 그러했듯 높은 공학적 소양을 가졌으면서도, 훈족처럼 유목과 기마를 중시하는 민족이 될 수도 있고, 농업에 특화된 하라파 문명의 기질과 항해와 무역을 중시하는 카르타고의 민족성을 동시에 지닐 수도 있다. 또한, 문명의 개성은 게임 플레이 내내 다양한 선택지를 마주하면서 더욱 세분화된다.



▲ '민족성'을 게이머 스스로 만들어간다

휴먼카인드는 실존했던 문명과 문명의 대립을 그리지 않는다. 개발진은 시연 전 진행된 프레젠테이션에서, 인류의 문명을 신석기 시대로 되돌린 후, 다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게임이 바로 '휴먼카인드'라고 말했다. 게이머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게임은 확실히 '문명'에 비해 몰입도가 높은 편이다. 이는 캐릭터가 이미 정해져 있는 게임과, 스스로 캐릭터를 만드는 게임의 차이 정도에서 설명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후자의 경우가 몰입이 더 강하다는 걸 게이머라면 잘 알 것이다.

이 게임의 이름이 '휴먼카인드'인 이유가 게임을 조금만 해 보면 이해된다. '문명' 시리즈의 게임 한 판은 여러 문명들이 등장해 경쟁과 협력을 통해 지정된 가상 대륙의 패권을 잡아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휴먼카인드'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부분에서 시작한다. 문명이 아닌 '인류'다.

게임은 플레이 내내 게이머에게 질문한다. '당신의 인류를 어떻게 발전시켜갈 것인가?'





디테일, 이 심각하게 재미있는 디테일

'휴먼카인드'를 플레이하며 감탄한 부분이 또 있다. 일반적으로 문명을 비롯한 4X게임은 굉장히 다양한 부분을 게이머가 직접 결정할 수 있지만, 워낙 다루는 부분이 크다 보니 작은 디테일은 쉽사리 무시된다. 십만의 병사를 거느린 장군이 병사 개개인의 컨디션을 신경쓸 수 없듯, 게임 진행은 대부분 거시적 부분만을 다루기 마련이다.

'휴먼카인드'도 예외라 할 수는 없다. 병사 하나하나를 다루는 정도의 미시적 접근은 이 게임에서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앰플리튜드 스튜디오는 어떻게든 디테일한 무언가를 집어넣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개발사다. '엔들리스 레전드'를 플레이해본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문명'을 생각하고 게임을 시작하면 큰 코 다친다. 전투는 부대를 배치해야 하고, 영웅이 존재해 이를 육성해야 하며, 종족별 메인 퀘스트와 팩션 간 상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 자동을 지원하는 디테일한 전투. 게이머의 선택에 달렸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기존의 앰플리튜드 스튜디오 게임들이 보여줬던 것처럼 디테일이 깊이와 피곤함을 불러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시연 버전에서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 꽤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미처 다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휴먼카인드에서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들은 피곤함보다는 참신함에 가까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게임 내에서 겪을 수 있었던 선택들을 몇 가지 예로 들면 이런 것들이 있다.

'종교 지도자는 특정 성별(여성 혹은 남성)이 담당하는가? 아니면 성별을 따지지 않는가?'

'상이 군인은 명예롭게 여겨 존중해야 하는가? 아니면 약자의 증거로 보아 도태시켜야 하는가?'

'종교의 기반은 샤머니즘에 두는가? 혹은 이성에 두는가?

'우리 민족은 낮과 밤 중, 어떤 시간을 더 경배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가?'

여기서, 선택에 따라 게이머 문명의 민족성이 달라지고, 문명이 추구하는 방향이 결정되며, 기반이 될 선택 문명과 어우러져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 징집병 혹은 직업 군인. 전투는 누가 수행하는가?

플레이하는 입장에서, 이런 하나하나의 선택 과정은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시연 전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과한 디테일과 이에 따른 피로도의 누적이었는데, 2시간 동안 플레이하면서 느낀 피로감은 거의 없었다. 전투 시스템은 엔들리스 레전드의 그것보다 더욱 깊이있게 변했지만, 귀찮은 플레이어라면 자동 전투로 맡겨도 그만. 오히려 전투 애니메이션이 꽤 잘 만들어진 편이라 감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확실한 '차세대 악마의 게임' 유망주

두 시간에 걸쳐, 두 번 시연 버전을 클리어한 후 남는 감상은 하나였다. "너무 짧은데?" 시대 변화는 두 번 뿐인데다, 최장 60턴 밖에 플레이하지 못하는 빌드의 한계가 야속할 정도였다. 플레이 직후 급격히 몰려온 영어에 대한 피로와 켜져있는 번역기는 별개. 2016년 앰플리튜드 스튜디오가 세가에 합병되었으니 한국어화도 예상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확정된 부분은 아니다.

확실한 건, '문명'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게임에 빠져든다는 것. '휴먼카인드'의 또다른 특징 중 하나라면, 이 게임의 모든 부분이 모여 거대한 몰입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문명'에서 게이머는 각 세력의 특정 위인으로 분하게 된다. '문명6'를 기준으로 하면, 한국을 선택한 게이머는 선덕 여왕이 되고, 미국을 선택한 게이머는 루즈벨트가 된다.



▲ 선택에 따른 명성은 게이머의 아바타가 얻게 된다.

하지만, 휴먼카인드에서는 플레이어 개인의 아바타로 게임에 임한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이룩하는 업적에 따라 '명성' 점수를 얻게 되고, 이 명성 점수는 승패를 가르는 요소 중 하나다. 플레이어가 도시를 발전시킬 때마다. 전투에서 영웅적 승리를 얻을 때마다.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퀘스트를 완수할 때마다 이 명성 점수는 올라가며, 플레이어의 아바타는 점점 위인이 되어 간다.

이 과정에서, 게이머는 아바타에 본인을 투영하게 되고, 몰입을 형성한다. 세계의 유명한 위인 중 하나가 잠시 되는 것이 아닌, 자신이 만든 아바타가 곧 새로운 인류의 선지자가 되는 것이다. 어렵게 설명했지만, 결론은 쉽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게 된다.



▲ 화사한 색감 덕에 눈도 즐거운 편

불안한 점은 두 가지. 한국어화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과 정확한 출시 일자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는 것(현지 직원에게 문의한 결과 그는 2021년을 예상하고 있었다.)이다. 두 시간이면 게임의 시스템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어렵지 않고, 기가 질릴 정도로 복잡하거나 피곤하지도 않다. 그러면서도 획일화되지 않은, 나만의 문명을 만들어가는 보람을 느낄 수 있고, 이 모든 것을 보여주는 비주얼 및 OST도 매우 훌륭하다.

단언컨대, '휴먼카인드'는 또다른 악마의 게임이 될 것이다. 본인이 게임을 충분히 즐길 정도의 여유를 갖추고 있으며, 4X게임을 좋아한다면 미리 통장 잔고를 확보해두는 것이 좋다. 하지만 수험생이라면, 이 기사는 그냥 안읽은 셈 치는 걸 추천한다. 나중에라도 이 기사를 본 게 생각나 게임을 시작했다가 뭔가 크게 잘못되어도 나는 책임을 질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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