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게임에 녹아들지 못한 실사, 단간론파 개발진 신작 '데스 컴 트루'

리뷰 | 강승진 기자 | 댓글: 2개 |
게임 미디어 분석의 접근법은 크게 두 가지 입장을 두고 융합되며 발전해왔다. 하나는 게임이 가진 재미로 구분하는 루돌로지, 다른 하나는 서사적인 측면에서 게임의 가치를 입증하려는 내러톨로지다. 그런데 게임이란 게 아무런 목표나 구조 없이 쌓이지 않고,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정해진 스토리만 줄곧 따라가는 일도 없다.

그래서 게임을 정의하는 핵심 키워드는 놀이와 서사를 잇는 고리인 비선형적 경험이다. 플레이어는 게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를 통해 하나, 혹은 여러 개로 준비된 결말을 향해 나아가며 서사를 완성해나간다. 인간과 이야기의 상호작용. 결국, 게임은 완성된 창작품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자신만의 창작 경험을 요리하는 일종의 재료쯤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따지면 데스 컴 트루는 플레이어 대신 직접 요리하려 불판 위에 몸을 던져버렸고, 자신을 스스로 살짝 태워버린 듯하다.


⊙개발사: 투쿄 게임즈 ⊙장르: 인터랙티브 무비
⊙플랫폼:
닌텐도 스위치, iOS, 안드로이드 ⊙출시: 2020년 6월 25일 (추후 PC, PS4 출시)


데스 컴 트루는 단간론파 시리즈의 시나리오 라이터 코다카 카즈타카가 설립한 투쿄 게임즈의 첫 게임이다. 투쿄 게임즈에는 코다카 외에도 작곡가 타카다 마사후미, 특유의 초점 흐린 연출을 자랑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코마츠자키 루이 등 단간론파 시리즈의 핵심 개발자들이 합류해있다. 이들의 조합에서 대충 예상할 수 있듯 투쿄 게임즈는 절망을 주제로 단간론파의 색이 강렬하게 남아있는 다수의 작품을 동시 개발 중이다.

그런데 데스 컴 트루는 개발 중인 게임들과는 좀 다르다. 독특한 발상을 발판삼아 상상력을 펼치는 일본식 판타지 서스펜스는 여전하지만, 코다카의 시나리오 자체에 집중했다.

그 결과물이 영화와 게임, 그 중간쯤에 발을 걸쳐 이야기를 전달하는 인터랙티브 무비 데스 컴 트루다. 이게 장르에 대한 기존 평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영화, 게임 사이에서 중심을 아래 단단히 두고 있는 작품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게임의 큰 틀은 어디까지나 영화에 더 가까우니 말이다.




인터랙티브 무비는 영화와 같이 컷신들로 이루어진 게임 플레이 중간중간 게이머의 참여가 이루어진다. 이 참여 결과가 때로는 찰나의 순간에 끝나버리기도 하고 때론 큰 이야기 줄기를 뒤흔들어놓는 식이다. 이쪽 장르로 가장 훌륭한 만듦새를 가진 게임은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다. 주요 인물을 총으로 쏠지, 아니면 살려줄지 결정하기도 하고 대화로 이야기 진행을 바꾼다.

게임은 대개 플레이어에게 보상을 제공한다. 보스를 무찌르면 졸개 따위 비교도 안 되는 돈이나 경험치를 준다. 끊어진 다리를 두고 주인공을 적절한 타이밍에 점프하도록 조작하면 먼 공간을 뛰어넘은 주인공을 만나는 것 역시 게임이 플레이에 보답하는 보상이다. 인물의 행동을 지시하기만 하는 인터랙티브 무비에서 보상은 이런 진행의 변화와 뒤바뀌는 결말이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이런 장르 공식에 충실히 따랐다.

그런데 데스 컴 트루는 그런 보상이 없다시피 하다. 플레이어가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구간은 대개 한두 구간을 제외하면 그저 선택지 A와 B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전부다. 그렇다고 이게 이야기의 다이내믹한 변화를 가져오진 않는다. 하나의 선택지는 바른 선택이고, 다른 건 죽음을 맞이하는 구간이다. 일종의 함정 피하기에 가깝다. 주인공이 죽을 때마다 게임의 주요 무대인 호텔 501호에서 시간을 되돌려 깨어난다는 설정조차 없었다면 정말 플레이어의 선택이 아무런 가치조차 가지지 못할 뻔 했다.




게임 미디어의 주요 특징인 상호작용과 그에 따른 비선형성이 힘을 잃으니 데스 컴 트루에는 서사만이 남았다. 다만, 이것도 긴 시간 찬찬히 이야기를 얹어 단단함을 더한 단간론파와 비교하면 영 밋밋하다. 게임 시작부터 주인공 역을 맡은 혼고 카나타가 영상 공유와 스포일러를 자제해달라며 호소해 직접적인 스토리를 언급하지는 않겠다.

대신 간단하게 설명하면 기억 상실증에 걸린 주인공 카라키 마코토가 자신이 연쇄살인범임을 깨닫고 죽을 때마다 살아나는 미스터리한 내용이 게임 이야기의 중심이다. 중간중간 반전은 있지만, 엔딩까지 1시간 30분가량. 이게 일본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식에 구성에 그저 결말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데 그친 점은 개발진 이름값을 생각하면 분명 아쉽다.

그럼 게임이 아니라 넷플릭스 영화 블랙미러: 밴더스내치와 비교해보자. 영화는 마치 게임처럼 선택지와 이에 따른 스토리 변화를 강조했다. 하지만 데스 컴 트루가 그렇듯 선택지 A or B 수준의 참여만 가능했다. 정해진 몇 개의 메인 결말이 아니면 어이없는 사망 엔딩을 보고 마는 시나리오 중심의 작품이기도 하다.



▲ 잘못 고르면 죽는다. 이야기가 이어지긴 하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블랙미러: 밴더스내치는 다 계획이 있었다. 영화는 플레이어의 선택이 핵심 결말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 자체를 논하는 메타 무비에 가깝다. 플레이어가 게임 속 주인공의 선택을 결정한다고 착각하게 만듦으로써 플레이어가 게임에 조작된다는 걸 역설하는 셈이다. 이를 위해 게임 밖 플레이어에게 말을 건네는 오브젝트가 등장하기도 하고 플레이어에 의해 선택을 결정 받는 주인공 스테판이 이 결정을 정신력으로 무시하려 들기도 한다.

데스 컴 트루 역시 이런 게임 속 세상이 모두 주인공의 상상일 수 있다는 의혹을 일으키도록 유도하는 분기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는 게임의 핵심 주제와는 별개로 떨어져 있으며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에서 끝난다.

그나마 국내 팬들에게는 영화 '킬 빌'의 고고 유바리로 잘 알려진 쿠리야마 치아키를 비롯해 모리사키 윈 등의 연기 자체가 훌륭해 작품을 이끌어간다는 점은 장점이다. 그 장점마저도 일본 영화 특유의 과한 리액션에 거부감이 있다면 제대로 느끼기 어렵겠지만 말이다.







인터랙티브 무비의 단점은 비교적 명확하다. 조작이니 개입이니 할 요소가 적으니 액션, 어드벤처처럼 몸으로 느끼는 감동이 적다. 대신 주장하는 이야기를, 기기 사양의 제한 없이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대로 따지면 내러톨로지의 관점에서 해석하기 좋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서사의 만듦새마저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면 대체 어떤 점을 내세워야 할까? 그게 개발진의 이름값, 혹은 유명 배우만이어서는 안될 거다.

투쿄 게임즈 입장에서야 회사 창립 이후 거대 게임들의 프로젝트를 연이어 준비하는 과정에서 소규모 게임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기도 했을 테다. 혹평 위주의 글이 됐지만, 데스 컴 트루는 그런 의도를 생각한다면 나름 적합한 수준의 게임이다. 소재 자체도 참신했다. 영화식 연출은 보는 맛이 있었고.

어느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한 게 아쉽다. 더 게임답게, 혹은 오히려 내용을 좀 더 가다듬어 영화나 드라마 쯤으로 나왔으면 어땠을까?




실험은 이번으로 충분하다. 투쿄 게임즈의 다른 프로젝트들은 게임적 재미와 스토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채워 단간론파가 보여줬던 충격을 제대로 선사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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