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백스테이지 #3 - LCK를 조각하는 라이엇게임즈 함영승 PD

인터뷰 | 박범, 석준규 기자 | 댓글: 23개 |



예로부터 조각은 예술로 인정받았습니다. 조각사의 고뇌는 물론, 과감한 듯 보이지만 실로 세밀한 정질, 한 마디로 조각사의 장인정신이 깃들었기 때문이죠. 조각을 만드는데 드는 노력과 인내가 대단하다는 걸 만인이 알고 있기에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같은 조각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 LCK라는 조각을 만들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든 조각이 그러하듯 LCK도 처음엔 한낱 돌덩이 혹은 나무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가 여기에 달라붙어 저마다의 장인정신을 발휘해 세심한 정질을 했고 LCK는 점차 그 모습을 갖춰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LCK라는 조각은 어느 누가 바라봐도 조각사가 어떤 조각을 구상하고 만들어나가는지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모양새를 갖췄죠.

'백스테이지: 리그를 만드는 사람들'에서는 LCK를 비롯한 다양한 게임 리그의 무대 뒤에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내는 사람들을 조명하는 기획입니다. 1화 진예원 라이엇코리아 글로벌 PD와 2화 김다연 메이크업 팀장을 만나 다양한 뒷이야기를 들려드렸는데요.

이번에 소개할 LCK의 숨은 일꾼은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방송팀 리드를 맡고 있는 함영승 PD입니다. 그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던 인터뷰 내내 들었던 생각은 인터뷰 서문에 언급했던 것처럼 '조각과 조각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LCK라는 조각을 완성해나가고 있는지 조명할 수 있어 보람찼습니다.



인터뷰를 읽을 독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라이엇게임즈에서 방송팀 리드를 맡고 있는 함영승 PD라고 합니다. 사실 라이엇게임즈는 방송국이 아니기 때문에 방송 제작 인력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어요. 한 마디로 인원이 적죠. 처음 왔을 땐 사실 롤 파크를 만드는 업무를 주로 했어요. 당시엔 기술 감독님이 없었기에 기술 회의를 많이 했고 방송 전반 어느 하나도 관여하지 않은 부분이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상당히 정신 없었어요. 방송실과 경기장, 스튜디오, 출연자 구성, 프로그램, 더 안에 들어가서 지금 보실 수 있는 데이터 시스템이나 자막 등. 전반적으로 모든 회의에 다 들어가서 제 나름대로의 의견을 냈죠. 거의 방송국 개국과 비슷한 느낌이었다고 하겠네요.


처음과 비교하면 시스템의 체계가 많이 잡힌 거 같은데요.

맞습니다. 최근 생긴 방송국들, 좀 더 자세한 예로 종편 채널들도 개국 원년에는 엄청난 사건사고들을 만들었는데요. 저희의 1년 차를 돌아보면 비슷했어요. 선수 이름을 잘못 내보낸 적도 있고 데이터 실수도 잦았죠. 지금은 모두가 1년이라는 경험치를 먹고 실수 없이 꽤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퍼즈 같은 경우에 작년까진 별 이슈들이 다 터졌죠. 사실 롤 파크 안정화 기간이 필요했어요. 실제로 올해에는 선수들의 개인 장비 이슈나 소위 '토일렛 이슈(경기 중 선수가 퍼즈를 요청하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 해당 팀엔 패널티가 주어진다)' 말고는 퍼즈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어요.

방송적으로는 많은 분들이 싫어하셨던 보라색 맛을 쏙 빼는 등 그래픽적으로 안정화를 거쳤어요. 데이터 같은 경우는 1년을 거치면서 어떤 걸 추가하면 시청자들이 더 좋아할 지를 끊임없이 고민했고 또 고민하고 있고요. 사실 저희가 생각을 한다고 즉시 만들 수 있는 건 아녜요. 원하는 데이터를 추출하고 그걸 코딩한 뒤에 방송에 내보낼 자료로 디자인화하는데 항상 시간이 필요하죠. 그래도 올해 스프링 스플릿부터 그런 과정이 어느 정도 안정화됐다고 보시면 됩니다.

2년 차가 되면서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어서 시청자들이 원하는 부가 콘텐츠들을 생산할 여력이 생겼다고 할 수 있겠네요. 지금은 PD가 더 많지만, 처음엔 저 포함 이민호 PD님까지 딱 두 명이었거든요. 그땐 흔한 표현으로 '국밥 끓이기에도 바쁜' 시기였다고 하겠네요. 김치나 깍두기 같은 사이드 메뉴들을 구성할 여력조차 없었어요.


라이엇게임즈엔 언제부터 합류했나요?

롤 파크가 2018년 9월에 플레이-인 스테이지를 하면서 처음 공개됐어요. 그게 9월이었으니 롤 파크 공개 4개월 전에 합류했네요. 당시만 해도 여기가 아예 형태만 있는 상태였죠. 저는 입사를 5월에 했지만, 4월부터 기술 회의 등에 참여하고 있었어요. 처음에는 그게 재밌어서 오긴 했어요. 이런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에 매력을 느꼈거든요. 입사 전에는 MBC에 있었고 14년 정도 있다가 라이엇게임즈에 합류했습니다.


PD님이 방송 제작을 하시면서 중점으로 두고 계신 부분은 뭔가요?

전 예전부터 자체 IP를 가지고 있는 곳에서 프로덕션을 하는 걸 꿈꿔왔어요. 그리고 자체 IP를 활용하면 그들만의 독자적인 아이덴티티가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F1을 많이 봤어요. F1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중계를 하고 있어요. 전세계를 다니면서 자기들 특유의 중계를 만들고 있고 이미 기술적으로 너무 앞서가기 때문에 다른 방송국에서 따라잡을 수 없어요.

저희는 게임사고 저희 IP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게임 데이터에 접근하기 상대적으로 용이하잖아요. 처음에는 그런 걸 많이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데이터에 상당히 많은 투자를 했죠. '라이엇게임즈가 직접 맡으니 이런 데이터도 보여줄 수 있구나'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죠.

가장 최근에 했던 건 조이-리신이나 애쉬-판테온 등 듀오로 같이 나오는 챔피언들의 승률 공개예요. 과거엔 따로 이런 데이터가 없었어요. 엑셀로 정리되어있긴 했는데 그걸 실시간 경기 중에 뽑아서 작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죠. 지금은 온라인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고 필터 몇 개만 적용하면 바로 뽑을 수 있게 만들었어요. 그런 작업을 하는 데 약 1년 가까운 시간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젠 그런 듀오 승률이라던지 특정 선수의 통산 KDA나 챔피언 별 KDA도 쉽게 방송에 노출할 수 있어요.

과거 다른 방송국에서 중계를 할 때를 생각해보면, 처음엔 그런 데이터가 없다시피했고, 나중에 스포티비게임즈에서 참여했을 때부터 데이터가 씌워지면서 OGN도 발을 맞췄어요. 그런데 저희는 좀 더 안에 있는 깊숙한 데이터까지 꺼내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지금까진 그런 세밀하고 기술적인 요소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LCK 제작의 우선순위를 데이터로 잡으신 이유가 있을까요?

e스포츠도 스포츠라는 생각 때문이었죠. 스포츠가 진화하는 과정에 있어 어느 시점부터는 정말 다양한 데이터가 공개돼요. 야구를 예로 들면, 타구 각도나 속도, 타구의 발사각이 나오고 그럼 그때 홈런이 나올 확률이 얼마인지 이런 것들 말이죠. 사실 데이터라는 게 스포츠를 즐기는 본질적 재미와 큰 관련이 없을 수도 있는데 스포츠를 점점 많은 이가 즐기게 되면 그런 쪽에서 재미를 찾는 시청자들도 늘어나죠.

그런 걸 제공할 수 있는지 여부는 이게 필요한 지 여부와 크게 상관 없는 것 같아요. 필요하지 않아도 제공할 수 있으면 거기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도 생겨요. 그런데 필요한데도 제공할 능력이 없는 건 좀 다른 문제라고 보거든요. 그런 걸 제공하려면 저희 같은 게임사 말고는 쉽지 않은 부분이고요. 저희가 끄집어내지 않으면 그건 없는 데이터가 돼버려요.

그리고 이유가 하나 더 있어요. 제가 처음에 왔을 때, 유명 BJ나 스트리머들이 하는 강의 프로그램까지 해야되는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또, 리그 오브 레전드 자체의 세계관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보니 그걸 토대로 한 예능이나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도 있겠다 싶었고요. 막상 들어와보니 이미 그런 쪽은 많은 분들이 너무나도 훌륭하게 만들어놓으셨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LCK를 제대로 잘 만드는 것, 가장 본질적인 걸 신경쓰는 게 저희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본질적 고민으로 넘어왔어요. 그래서 데이터 쪽에 더 집중한 것도 있죠.


인게임 데이터 중에 아직 담지 못했지만 담고 싶은 것이 있나요?

사실 이번 스플릿에 해보려고 했던 게 정글 캠프 도는 순서와 동선 등을 한 번에 보여줄 수 있는 일종의 히트맵이었어요. 정글 캠프 도는 순서를 숫자로 보여주고 어느 지역에서 만나서 교전을 했는지를 알기 쉽게 표현해보고 싶었죠. 근데 그건 정말 힘든 작업이더라고요. 사실 지금의 기술로는 누가 미니맵을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표현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보기에 직관적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차안으로 생각했던 건 특정 정글 캠프에 10초 이상 머무르면 거기에 숫자가 표시되는 거였죠. 정글러끼리 비교도 가능하도록 하고 싶어요. 얼마 전에 카서스와 올라프가 똑같이 풀캠프 동선을 짜고 그걸 수행한 뒤에 마주친 경기가 있었어요. 그게 방송 화면에 고스란히 담겼고요. 그런 경우를 좀 더 직관적으로 송출하고 싶고 중계 중에 놓치더라도 그걸 분석 데스크에 넘겨서 짚어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최근 추가한 것들은 정말 많아요. SNL을 통해 공개됐던 것처럼 최다 궁극기 사용 선수나 점멸을 가장 안 쓴 바텀 라이너 같은 것들 말이죠. 오른이나 케일을 위한 특정 레벨 표시도 이젠 시청자들에게 익숙해졌어요. 스태프들에게 오른이나 케일이 해당 레벨이 되기 직전이면 저에게 알려달라고 요청드렸어요.

그리고 예전에는 실시간 경험치나 골드 수급량 표시에 직관성이 떨어졌는데 이젠 색을 넣어서 알아보기 쉽게 만들었죠. 한타에서 가장 많은 대미지를 기록한 챔피언도 실시간으로 표시하고 있어요. 챔피언 초상화가 불타는 효과는 전략적 팀 전투를 하다가 영감을 얻었어요. 이웃집 FPS 게임에서 따온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던데 전략적 팀 전투의 효과입니다(웃음).

이런 것들이 시청자의 편의 뿐만 아니라 중계진의 중계를 돕는 역할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방송 중에 일일히 콜을 드리면 중계진이 멘트를 하다가 순간 헷갈릴 수 있거든요. 그래서 시각적으로 도움을 드리고자 만든 의도도 있어요. 실시간 레벨에서 각 팀 정글러에 색을 넣으면 저희가 중계진에게 '지금 정글러 간 레벨 격차가 이렇습니다'라고 콜을 드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줄 수 있으니까요.


그동안 받았던 피드백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뭔가요?

모든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모든 반응을 다 본다고 표현해도 될 것 같아요. 사실 그게 상당히 무서워요. 왜 연예인들이나 스포츠 스타들이 댓글에 힘들어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제가 몸담고 있던 전통적인 방송 환경에서는 실시간 피드백을 받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잖아요. 그래서 처음엔 '여기 살벌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물론, 그만큼 저희가 부족했던거죠.

댓글과 피드백의 의미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 처음 LoL을 배울 때부터 꺼놨던 채팅 기능을 켜놓기도 했어요. 유저들의 채팅이나 실시간 상황에 따른 반응을 보니 팬들이 뭘 원하는지, 원하는 걸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지 정확히 알게 됐죠.

여러 댓글들 중에 가장 좋았던 건 '얘네 PD 바뀌었냐'였어요. 제 기억에 아마 그때가 보라색 맛을 막 없앴을 때였어요. 처음 댓글을 보곤 이게 칭찬인지 욕인지 헷갈렸는데 곱씹어 보니 좋은 의미더라고요. 그만큼 저희가 나아졌다는 걸 그 분의 방식으로 표현해주신 거였어요.


참신한 답변이네요. 본격적으로 LCK 내 코너나 프로그램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게요. 위클리 매드무비가 첫 번째 주제입니다. 위클리 매드무비의 탄생 비화가 있을까요?

사실 위클리 매드무비는 아까 말했던 '국밥을 끓인다'에서 필수적 요소 중 하나예요. 작년부터 주 단위로 하이라이트 영상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 중에 하나가 오프더레코드를 잇는 전지적 프로시점이었고 또 하나는 멋진 영상을 모으는 거였죠. 사실 위클리 매드무비 같은 경우는 기본적인 요소였는데 저희가 솔직히 너무 늦게 공개한 감이 있죠. 시청자들에게 죄송한 부분도 있어요.

라이엇게임즈에서 제작하는 더 펜타라는 영상을 처음 보자마자 비슷한 포맷의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죠. 거기서도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스킬 아이콘이 덧씌워지고 화면도 멋지게 구성되거든요.


위클리 매드무비에 들어가는 명장면을 선별하는 과정이 궁금한데요?

저희 팀에 작가가 다섯 분 있고 피디도 네 명 있습니다. 경기 진행 중에 실시간으로 스프레드 시트에 각자가 생각하는 명장면을 죄다 적어요. 어떤 경기 몇 분 몇 초에 어떤 장면이 나왔다는 간략한 메모를 해두는 거죠. 그냥 다 적어요. 실시간으로 서로의 의견에 대한 피드백도 적고요.

예를 들어 '쵸비' 정지훈 선수의 갈리오 4인 도발 장면 같은 경우는 만장일치였죠. 그때 누군가 스프레드 시트에 '쵸오오오오비이이이이'라고 썼던 기억도 있네요(웃음). 그런 식으로 후보군을 정해요. 옵저버들 중에 가장 유명하고 메인 게임연출을 해주시는 '조나스트롱' 말고 두 분이 더 있는데 그 중에 한 분이 주로 도와주시거든요. 이 분이야말로 이런 인터뷰에 참여하셔야 하는데... 아무튼 그 분과 함께 많은 후보군들 중에 선별 작업을 거치고 이를 영상으로 어떻게 꾸밀 것인지 회의해요.


위클리 매드무비엔 정말 다양한 장면들이 포함되죠. 각기 다른 상황과 장면을 화면으로 구성하실 땐 저마다 어떤 기획 의도가 담겨있나요?

탑 라이너 간 1:1 구도에선 격투 게임의 화면 구성을 적용시키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각 캐릭터의 체력 바가 상단에 위치하고 타격 시 화면이 흔들리는 효과 같은 것들이요. 이 의견도 아까 말했던 옵저버 중 한 분이 아이디어를 내셨어요. 제작 쪽에서도 바로 동의했죠.



▲ 격투 게임을 보는 것 같았던 구도(출처 : LCK 공식 유튜브)

결국은 상황에 따른 구성을 생각해요. 예를 들어 T1과 젠지 e스포츠의 1라운드 경기 중에 오랜 시간 동안 킬이 나오지 않았던 때,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갔다는 걸 빠른 재생으로 표현했죠. '룰러' 박재혁 선수가 애쉬로 극한의 카이팅을 보였을 땐 물 속에 확 잠긴 것 같은 느낌을 넣었어요. 흔히들 말하는 '무호흡 딜링'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죠. 워낙 많은 분들이 같이 이야기를 주고 받고 그 과정에서 상당히 좋은 아이디어들이 적용되고 있는 것 같아요.


가장 마음에 드는 위클리 매드무비 속 장면과 연출은 무엇이었나요?

'커즈' 문우찬 선수의 볼리베어가 정글 지역에서 한화생명e스포츠를 궁극기로 덮쳤던 장면 연출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그때 보면 볼리베어가 벽 뒤에 숨어서 한화생명e스포츠 선수들의 챔피언 쪽을 옆으로 흘겨보는 장면이 있어요. 연출된 게 아니고 정말 우연의 일치로 그런 장면이 나왔어요. 볼리베어 챔피언 자체가 이동할 때 가끔 옆을 보는 모션이 있는데 그게 운 좋게 맞아 떨어졌던거죠. 궁극기로 볼리베어가 벽을 넘어 점프를 하는 걸 한화생명e스포츠 선수들의 시선에서 잡았던 연출도 마음에 들었어요.

▲ 볼리베어의 흘겨보기는 우연이었다(출처 : LCK 공식 유튜브)


'데프트' 김혁규 선수의 아펠리오스가 쫓기고 있을 때 '표식' 홍창현 선수의 니달리가 급하게 뛰어와서 이를 살려내는 장면 연출도 마음에 들어요. 그건 영화로 따지면 추적자가 있고 쫓기는 자가 있는데 구원자가 등장한다는, 시나리오적으로도 완벽한 구성이었거든요. 단순히 멋있었던 게 아니라 나름대로의 스토리가 포함돼서 좋았어요.

▲ 추적자와 쫓기는 자, 구원자 등 완벽한 시나리오(출처 : LCK 공식 유튜브)


이젠 전지적 프로시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죠. 오프더레코드를 잇는 코너인데요. 어떤 매력을 느껴서 이어가게 되셨나요?

선수들의 경기 중 멘트는 팬들이 알 수 없는 뒷이야기잖아요. 작년부터 저희가 따로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실시간 경기 중에 들려드리려고 정말 노력했어요. 그걸 듣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팬들의 아쉬움이 컸어요. 그때 가장 많이 받았던 피드백이 '오프더레코드 좀 해달라'는 거였어요. 그에 대한 필요성은 저희도 느끼고 있었고 마침내 실행에 옮겨 지금은 팬들이 좋아해주시는 콘텐츠 중 하나가 됐죠.


전지적 프로시점 뿐만 아니라 경기 중 실시간으로 선수들의 음성을 개인 화면과 함께 공개하시는 경우도 많죠. 최근엔 선수들이 멘트를 하지 않는데도 리플레이 영상 대신 일부러 개인 화면과 함께 음성을 공개하시던데 이유가 있나요?

그런 경우엔 사실 그 선수의 슈퍼 플레이를 강조하고 싶어서 공개해요. 또 하나는 정말 누가 봐도 멋진 플레이라 밖에서는 탄성을 내지르는데 정작 선수는 덤덤한 걸 보여주고 싶은 경우도 있죠. 그런 건 어느 정도의 반전미라고 이해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정말 멋진 플레이였는데 하필 말이 없었다는 느낌이죠. 실제로 '데프트' 선수와 '쵸비' 선수는 플레이 중에 말이 거의 없어요. '쵸비' 선수의 갈리오 4인 도발과 '봐줄래?' 딱 한 마디. 일종의 반전 아니었나요?(웃음)


선수들의 실시간 음성을 듣다 보면 잊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을 거 같은데요

사실 그걸 듣고 있으면 정신이 없어요. 앞에서 연출을 하고 있는 저 같은 경우엔 들을 여력이 없죠. 워낙 실시간으로 따로 챙길 게 많거든요. 그래서 제 뒤에 스태프 한 분이 앉아계세요. 심지어 그 분은 두 팀의 음성을 혼자 다 들으시죠. 정말 정신이 없으실거예요. 그러다 보니 작년에는 '룰러' 선수 관련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죠. 새로운 별명을 만들어냈던 그 사건(웃음). 생각보다 다 듣고 판단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에요. 그럼에도 최대한 듣고 거를 표현은 거른 뒤에 내고는 있는데 그럼에도 약간의 비속어가 섞이는 경우도 있었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룰러' 선수의 그 에피소드였어요.





SNL 이야기도 해보죠. 시작부터 매끄럽진 않았어요. 코로나19로 멈추기도 했고요.

올해 봄부터 시작했는데 첫 회 예정 손님이 '루키' 송의진 선수와 '더샤이' 강승록 선수였어요. 그런데 기사에도 나갔던 것처럼 스폰서 이슈로 당일 새벽에 갑자기 어그러졌죠. 그래서 첫 방송이 결방됐어요. 당시 저와 이민호 PD님 둘이서 '이건 정말 전설의 방송이다, 지금까지 첫 방송이 결방이었던 적은 어디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거다'라면서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 후에 SNL을 시작했는데 두 번째 방송 이후 코로나19가 심해지면서 또 못하게 됐어요. 일종의 종방을 한 셈이었죠. 그러다 보니 첫 방송에 결방, 두 번 만에 결방, 저희는 SNL이 비운의 프로그램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죠. 이번에 부활시킬 때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코로나19가 아직 현재진행형이고 언제 또 온라인으로 전환될 지도 미지수인데 이걸 해도 될까 싶었죠. 그래서 섬머 스플릿 개막과 동시에 '짜잔' 하면서 같이 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고 2라운드 시작에 맞춰서 하자고 의견이 모였어요.


지금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보시나요?

일종의 토크쇼라서 방송이 잘 풀리려면 게스트의 역량이 꽤 커요. 지금까지 SNL을 보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회차는 '쿠로' 이서행 선수와 '스맵' 송경호 선수가 나왔을 때였어요. 할 얘기가 너무 많았던 거죠. 예전 이야기도 있고 현재 이야기도 있고 앞으로의 이야기도 있고요. 이야기가 풍성하다는 건 결국 게스트가 만들어주는 거라서 그 두 선수가 나왔을 때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나중에는 구 락스 선수들을 모두 모아서 특집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성승헌 캐스터가 워낙 돋보여서 '성캐쇼'라는 별명도 있어요.

사실 SNL이라는 제목을 처음 정할 때 제가 성승헌 캐스터에게 농담처럼 '선데이 나이트 LCK'가 아니라 '성데이 나이트 LCK'가 될 것 같다고 했던 적이 있어요. 그 분의 매력에 상당히 의존하는 면이 없지 않기 때문에 그런 별명도 괜찮은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본인만의 캐릭터와 매력을 가진 분들이 방송에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성승헌 캐스터는 그걸 가지고 계신 분이죠. '성캐쇼'라는 별명을 뒤집을 만큼 SNL 특유의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초기 단계라 힘든 것 같기도 해요. 핑계이면서도 사실이죠. 나중에는 정말 성승헌 캐스터의 이름을 걸고 프로그램을 하나 구성해도 좋을 것 같아요. 해외 유명한 토크쇼들은 다들 진행자의 이름을 그대로 따오잖아요.


SNL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뭔가요?

실시간 소통하는 방송, 팬들이 궁금해하는 점을 대신 물어봐주는 방송, 소통 방송인데 개인 방송보다 어느 정도 정제된 방송을 추구해요. '놀면뭐하니'에서 했던 싹쓰리의 라이브 팬미팅 같은 느낌이죠. 다양한 이야기거리를 끄집어내고 다양한 데이터를 다루면서 색다른 랭킹도 진행하는데 시청자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 최종 지향점입니다. 어떻게 보면 현대 방송의 지향점과도 같다고 할 수 있네요.

프로그램 구성에 있어서는 항상 고민해요. 좀 더 경기적인 내용에 집중해야 되는지, 아니면 예능에 집중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요. 이번 같은 경우엔 T1 선수들이 나왔을 때 노래를 시키기도 했는데 팬들이 원하는 것이 이런 걸까 싶기도 하고요.

모든 걸 종합했을 때 저희 방송의 지향점은 피드백인 거 같아요. 피드백을 빠르게 적용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어요. 보라색을 버리라는 건 사실 스플릿 도중에는 할 수 없는 거였거든요. 그런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런 피드백을 모아서 다음 기회에라도 빠르게 반영하려고 노력을 했어요. 바로 해드릴 수 있는 건 바로 하고 있고요.


서구권 리그에서는 더 펜타나 This or That 같은 사이드 콘텐츠들이 많은데요. 그 중에 참고하고 계신 부분이 있나요?

참고했다고 볼 수 있죠. 더 펜타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위클리 매드무비의 좋은 참고 자료가 됐어요. LEC의 위클리 MVP를 조명해주는 영상도 참고했다고 할 수 있고요. LEC에서는 개막 전에 색다른 광고 영상을 공개했어요. 마치 과거 미국의 세제 광고 같은 느낌으로요. 그런 걸 보면서 자극을 받았어요. 저 쪽은 항상 유쾌하게 영상을 풀어내는 게 부럽기도 했고요. 저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가도 팀과 선수들의 협조를 구하기 힘들어서 어려울 것 같기도 하네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콘텐츠는 제가 '아재'라 다큐멘터리예요. 예전에 더 듀오라고 해서 '크라운' 이민호 선수와 '코어장전' 조용인 선수를 조명했던 영상이 있었죠. 그냥 정말 한정된 공간에 앉아서 진솔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간단한 포맷이었는데 재미있게 봤어요. 그런 걸 보면서 LCK에선 어떻게 저런 걸 연출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한 적도 있었어요.

'와디드' 김배인 선수도 저희 분석 데스크에 합류하기 전, 롤드컵 중에 어머니와 함께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적이 있죠. 그런 게 좀 더 많아지면 저희가 선수들의 깊은 매력을 시청자들에게 더 잘 전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속 희망사항으로 남아있어요.

작년에는 MSI 때 T1을 주제로 다큐멘터리 특집으로 갔고, 롤드컵 땐 '스코어' 고동빈 전 선수와 함께 예능 쪽으로 방향을 잡았어요. e스포츠 시청층이 젊어서 그런지 후자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는 내부 평가가 있었어요. 방향성을 어떻게 잡아야 좋을지에 대해 항상 고민 중입니다.


해외 리그에는 중계진들이 활약하는 영상 콘텐츠들도 많아요. 국내에도 LoL분 토론이 화제를 모았고요.

LoL분 토론이 올해 기획했던 것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콘텐츠예요. 해설위원들이 평소엔 개인의 의견을 밝히는데 상당히 조심스러워해요. 아무래도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받는 입장이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요즘 유행하는 '부캐' 느낌을 살짝 부여해드렸더니 그래도 본인의 의견을 많이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예를 들어 '강팀준'이나 '에욱당' 뭐 이런 것들 말이죠. 어떻게 보면 주어지는 부캐를 활용한 꽁트 느낌으로 간 거죠. 그랬더니 예능의 느낌과 진지한 분석의 느낌을 동시에 잡을 수 있더라고요. 시청자들이 보기에 부담없이 깊은 내용을 다뤄준 게 아닌가 생각해요.


섬머 스플릿을 앞두고 아나운서 3인 체제, 후에는 2인 체제가 됐죠. 아나운서 두 분을 새로 선발하신 이유가 있나요?

저희가 방송국은 아니지만 사실상 방송국의 역할을 하고 있어요. 다른 곳에 비해 규모가 훨씬 적은데 방송은 매일 하죠. 그런데 예전 김민아 아나운서가 코로나19 의심 증상 이슈로 잠시 쉬게 됐을 때를 돌이켜보면 갑자기 인원 공백이 생겨서 혼란스러웠어요. 그런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됐어요. 다른 방송국에는 아나운서가 워낙 많아서 한 분이 못 나오면 다른 분이 곧장 그 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데 여긴 그러지 못했잖아요. 그래서 최소 두 분을 모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윤수빈 아나운서(좌), 이정현 아나운서(우)


이정현 아나운서와 윤수빈 아나운서의 각기 다른 매력이 팬들에게 화제입니다. PD 입장에서 두 분의 차이는 어떤가요?

아이돌 그룹에는 서로 다른 포인트에 장점을 가진 분들이 있죠. 그럼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포인트를 강점으로 가지신 분에게 소위 '입덕'을 하게 돼요. 저희는 두 분의 매력이 다르다는 게 시너지를 낸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팬들이 두 분의 다른 매력을 좋아해주고 있고요.


PD 입장에서 LCK를 제작하면서 가장 보람찼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였나요?

아직 성취나 보람을 말하기엔 이른 단계라고 생각해요. 작년에는 사실 많은 피드백을 해주셔서 성장에 집중했어요. 그 결과가 조금이나마 드러나고 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LoL로 예를 들면 예전에는 30레벨이 끝이었는데 요즘에는 무한정 레벨업을 할 수 있잖아요. 저희도 지금이 끝이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 레벨업을 해내갈 예정입니다.


만약 아무런 제약이 없다면, LCK 내에서 어떤 콘텐츠를 만들고 싶으신가요? 회사에서 자본도 무한정 지급해주고 팀과 선수들 모두 지극히 협조적이며 코로나19도 없는 상황을 가정해보죠.

너무 진부한 생각인데, 해외, 그 중에서도 덜 주목받는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도 있잖아요.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 지 궁금하거든요. 제작하는 제 입장에서도 궁금한데 팬들은 더 궁금해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 어린 나이에 그 먼 곳까지 가서 도전하고 있는 선수들에게 들을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요. 그들을 직접 따라다니면서 조명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 안에 예능적 요소가 담길 순 있겠지만 기본적인 틀은 다큐멘터리가 되겠죠.

개인적으로는 예능도 좋고 다큐멘터리도 좋아해요. 그런데 꼭 제가 아니더라도 주변에 예능을 잘 만드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최근만 해도 '울프' 이재완 전 선수의 '식.만.추'를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그보다 좀 더 웃고 싶고 강한 재미를 느끼고 싶으신 분들은 여러 개인 방송을 찾아보시는 경우도 많고요. 저도 가끔 몇 분의 개인 방송을 즐기면서 보거든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PD를 꿈꾸는 많은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트렌드라는 건 계속 바뀌고 있고 그 트렌드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제가 보기엔 크리에이터인 것 같아요. 방송국 PD들도 그 분들에게 배울 점이 많죠. 그러다가 가끔 트렌드를 한 번 뒤틀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녹이는 분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이번 김태호 PD님의 싹쓰리처럼요. 음악이나 레트로로의 방향 전환이 어찌 보면 그 분의 정형화된 제작 스타일이 된 것 같아요. 여행을 테마로 끊임없이 다양한 방향을 다루시는 나영석 PD님도 그 분만의 스타일이 있고요.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 뭔가를 하라는 건 이제 알맞지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요즘엔 역설적으로 다들 창의적이신 것 같거든요. 이미 다양한 걸 보고 계시기 때문에 다양한 걸 보라는 조언도 맞지 않는 것 같고요. 참 어렵네요.

지금 보고 계신 다양한 것들 안에서 어떤 아이디어를 뽑아내고 자신의 생각이나 시각을 버무려서 하나의 파생 상품을 만드는 정도? 그게 지금의 트렌드인 것 같아요. 실제 방송 프로그램들을 봐도 그렇고요.

제가 예전에 자동차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었는데 자동차를 모르면 창의력이 절대 나올 수 없어요. 기획도 당연히 할 수 없고요. 그래서 전 당시에 자동차 잡지 몇 년치를 사서 다 읽어보고 기사도 다 찾아보고 자동차도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웬만한 것들은 다 타봤어요. 그랬더니 자동차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디어가 막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결국, 해드릴 수 있는 조언은 창의력을 갖되 너무 창의력에 올인하지 말자? 어떤 걸 기획하고 제작하려고 한다면 관련해서 어떤 전문가와 이야기를 해도 대화가 통할 만큼 깊이를 갖추는 게 창의력의 시작인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건 깊이를 갖추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러기 위해 항상 노력 중이고요.

■ 백스테이지: 리그를 만드는 사람들 인터뷰 모음

글로벌 PD 진예원이 말하는 LCK의 세계화
LCK를 더욱 아름답게! 메이크업 김다연 팀장
③ LCK를 조각하는 라이엇게임즈 함영승 PD
팬들의 눈이 되어주는 '조나스트롱' 이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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