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토탈워는 재밌지만, 트로이는 심심했다

리뷰 | 윤홍만 기자 | 댓글: 21개 |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신화를 하나 꼽으라면 아마 열에 아홉은 그리스 신화를 꼽을 겁니다. 수많은 신화 가운데 그리스 신화의 인기는 어떻게 보면 독보적일 정도입니다. 단순히 서양에서만 인기 있는 게 아니니까요.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도 그리스 신화는 이른바 메이저급에 해당합니다. 신화에 딱히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해도 제우스를 비롯한 올림포스 신들이나 헤라클레스 정도는 알고 있죠.

비단 신화만 유명한 게 아닙니다. 서양 문학과 예술의 근간이 됐다고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 문학 역시 유명하죠. 그리스 최고(最古)의 서사시 '일리아스'는 이러한 고대 그리스 문학의 뿌리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트로이 전쟁을 통해 그리스 문학에서 빠지지 않는 피할 수 없는 운명과 인간의 비극을 다루고 있죠.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는 전작인 '토탈워: 삼국'을 통해 동양 문학의 정수랄 수 있는 삼국지를 완벽하게 게임으로 구현했습니다. 서양 개발사가 만들었다곤 도저히 생각지 못할 정도로 말이죠. 그랬던 그들이 차기작으로 선점한 게 바로 서양 문학의 근간인 트로이 전쟁이었습니다. 당연히 기대될 수밖에 없었죠. 역사와 신화를 아우르는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했으니, '토탈워: 삼국' 이전에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토탈워: 워해머 시리즈 같은 판탈워(판타지 기반의 토탈워)가 되리라 여겼습니다. 일당백의 용사들이 등장하고 신들이 전장을 지배하는 그런 걸 예상했죠.

하지만 이런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신화를 바탕으로 한 게 아니라 신화를 현실적으로 재해석했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헥토르나 아킬레우스는 그저 조금 더 잘 싸우는 인간일 뿐이며, 신들도 직접 등장하지 않고 번제를 올리면 약간의 버프를 주는 게 전부죠.

조금 실망한 것도 사실이지만, '토탈워: 삼국' 역시 역탈워(역사 기반의 토탈워)임에도 충분히 재미있었으니 오매불망 출시를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지난 13일, 마침내 '토탈워 사가: 트로이'가 출시됐습니다. 자, 이제 증명할 시간만 남았습니다. 과연 신화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토탈워 사가: 트로이'의 선택이 옳았는가 말이죠.


신화의 현대적 재해석을 선택한 '토탈워 사가: 트로이'
재해석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여신이여, 분노를 노래하소서(μῆνιν ἄειδε θεὰ)

'일리아스'의 도입부를 알리는, 서양 문학사에 있어서 가장 유명한 문구입니다. 신과 인간들이 서로 편을 가르고 다투는 트로이 전쟁의 참상을 단 한 문장으로 표현했죠. 이처럼 트로이 전쟁은 신을 떼어놓고 얘기하기 어렵습니다. 부외자가 아닌, 신들조차 트로이 전쟁의 한 축을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토탈워 사가: 트로이'는 모두의 예상과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신화를 인간의 이야기로 끌어내렸죠. 물론, 이러한 재해석이 무조건 단점으로 작용하는 건 아닙니다. 실제로 영화 트로이처럼 현대적 재해석을 했음에도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예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토탈워 사가: 트로이'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 신은 그저 숭배의 대상입니다. 숭배하고 버프를 얻는 요소죠 (클릭 시 확대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트로이 전쟁의 주역은 인간이지만 그 배경에는 신들이 자리합니다. 때로는 자신이 총애하는 영웅에게 축복을 내리는 등 전쟁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죠. 그리스 연합(아카이오이 연합)과 트로이라는 두 세력이 전쟁인 동시에 신들도 서로 편을 가른, 역사와 신화가 공존하는 전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신화를 배제하니 그저 흔한 전쟁으로 변해버린 겁니다.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실제로 시스템만 봐도 그렇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토탈워 사가: 트로이'는 딱히 모난 데 없는 모습입니다. 기존의 시리즈가 구축한 시스템을 착실히 가져왔습니다. 중요한 건 색다른 시스템을 들고 온 게 아닌, 이미 검증된 시스템을 가져왔다는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토탈워 사가: 트로이'는 다른 토탈워 시리즈와 비교하면 한껏 평이합니다. '토탈워 사가: 트로이'만의 요소가 거의 느껴지지 않죠.



▲ 신화와 역사의 공존이라는 트로이 전쟁의 매력 포인트를 스스로 제거한 셈이죠



▲ 메두사로 유명한 고르곤 역시 일종의 여사제로 재해석됐습니다 (석화 광선 보고 싶었는데...)

외교 시스템을 비롯해 동맹, 결투 등은 '토탈워: 삼국'을 떠올리게 하며, 그 외의 전투 시스템은 기존의 토탈워 시리즈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영웅과 지휘관 등의 장수가 존재하지만, 어디까지나 조금 더 센 정도입니다. 토탈워: 워해머 시리즈나 '토탈워: 삼국'에서 보여준 것처럼 전장의 흐름을 뒤집을 수 있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죠.



▲ 물론 성장시킴에 따라 일기당천은 불가능해도 일당백까지는 가능해집니다

이로 인한 아쉬움은 또 있습니다. 바로, 전투의 재미가 감소했다는 점입니다. 토탈워라고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토탈워 시리즈는 전투가 그 핵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투의 재미는 다양한 병종이 책임졌죠. 기병돌격으로 수적 우위를 단숨에 뒤집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 초중반 전투는 궁병을 활용한 치고 빠지기가 주를 이뤄서 단조로운 편입니다

하지만 '토탈워 사가: 트로이'에서는 아쉽게도 이런 임팩트 있는 전투는 거의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인 기원전 1200년대 즈음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장의 주인공은 전차도 기병도 아닌 보병이기에 다양한 병종을 활용하는 맛이 덜합니다. 미노타우로스나 퀴클롭스, 하피 같은 특수 병종이 있기는 하지만, 큰 임팩트를 주진 못하고 있죠. 신화를 배제한 게 자충수가 된 셈입니다.


토탈워 신작으로서의 '토탈워 사가: 트로이'는?
무조건 답습한 것만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토탈워 사가: 트로이'가 그저 스킨만 바꾼, 특색이 전무한 시리즈라는 건 아닙니다. 큰 변화는 없지만 '토탈워 사가: 트로이'만의 특색도 분명히 갖추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자원의 다변화를 들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토탈워 시리즈의 자원은 골드(돈) 하나로 끝이었습니다. 돈 하나로 건물도 짓고 병사를 고용하거나 할 수 있었죠. 그나마 '토탈워: 삼국'에서 식량이 추가돼 2개의 자원이 생긴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토탈워 사가: 트로이'는 여기서 더 나아갔습니다. 식량, 목재, 석재, 청동, 금으로 무려 5개나 될뿐더러, 쓰임새 역시 다양하죠. 식량은 병사를 생성하고 유지하는 데 쓰이고 건축에는 목재와 석재가 들고 신에게 바치는 번제에는 금이 쓰이는 식입니다. 전쟁 일변도에 가까웠던 지금까지의 토탈워 시리즈와 달리 자원을 다변화함으로써 내정에도 좀 더 힘이 실린 모습이죠.



▲ 자원이 다양해진 만큼, 균형 잡힌 성장이 중요해졌습니다

바뀐 건 비단 내정만이 아닙니다. 세력별 개성 역시 더욱 강해졌습니다. 사실, 토탈워: 워해머 시리즈를 제외한 지금까지의 토탈워는 세력별 개성이 그렇게 강한 편이 아니었습니다. 개성이라고 해봐야 문화권에 따른 고유 병종, 건물 정도가 다였죠. 그렇기에 어떤 세력을 선택하든 난이도에 차이가 있을 뿐 플레이 방식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토탈워 사가: 트로이'는 여기에 세력별로 각기 다른 특성을 부여함으로써 차별화를 꾀했습니다. 서로가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다른 특성을 부여해 플레이 방식에도 변화를 준 거죠. 이는 헥토르와 파리스만 놓고 봐도 알 수 있습니다.



▲ 헥토르와 파리스는 '프리아모스의 후계자'라는 특성을 공유하는 한편

헥토르와 파리스는 기본적으로 '프리아모스의 후계자'라는 특성을 공유합니다. 동료이자 형제지만 동시에 트로이의 왕좌를 사이에 두고 서로 경쟁하는 관계라는 걸 의미하죠. 그렇기에 캠페인 내내 다양한 목표를 해결함으로써 부왕인 프리아모스의 신뢰를 쌓아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합니다. 그리스 연합을 막기에도 급급한데 서로가 경쟁해야 하는 거죠.

물론, 프리아모스의 후계자 특성을 공유한다고 헥토르와 파리스의 플레이 방식이 무조건 같은 건 아닙니다. 두 번째 특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헥토르가 가진 두 번째 특성은 '앗수완 연맹'으로 트로이를 지키기 위해 동맹을 늘려야 합니다. 단순히 정복전쟁을 벌여선 안 된다는 거죠. 동맹이 늘어날수록 헥토르의 세력과 군단에 버프가 부여되는 만큼, 적은 무찌르되 아군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아낌없이 포섭해 트로이를 지키기 위한 동맹을 구축해야 합니다.





▲ 두 번째 특성은 전혀 달라서 플레이 방식에 차별화를 꾀했습니다

파리스는 좀 다릅니다. 트로이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헥토르와 달리 파리스에겐 헬레네가 전부입니다. 두 번째 특성인 '헬레네, 나의 사랑'은 이러한 파리스의 개성이 드러나는 특성으로, 정복을 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헬레네를 만나야 합니다. 헬레네가 행복할수록 파리스의 세력과 군단에는 버프가 부여되어 강력해지지만, 헬레네가 파리스와 오랫동안 떨어져 외로워한다거나 적에게 빼앗긴다면 세력에 큰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비단 헥토르와 파리스만 이런 게 아닙니다. 헥토르의 라이벌인 아킬레우스 역시 '살아있는 전설'과 '다혈질의 아킬레우스'라는 특성이 있어서 단순히 외형과 색만 바뀐 게 아닌 전혀 다른 플레이 경험을 안겨줍니다. 그간 역탈워에 부족했던 세력별 개성을 좀 더 강화한 모습입니다.





▲ 아킬레우스는 도전자를 물리침으로써 강해진다는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계속 떠오르는 '만약에'라는 생각
혹시 신화를 배경으로 한 DLC 낼 생각 없나요?




자, 지금까지 '토탈워 사가: 트로이'의 장단점과 변화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토탈워 사가: 트로이'는 분명 못 만든 게임은 아닙니다. 출시 당일 24시간 무료 배포했다는 걸 제쳐놓더라도 말이죠. 토탈워 시리즈의 입문작으로 선택하기엔 좀 아쉬움이 있지만, 시리즈 팬이라면 나쁘지 않게 즐길 수 있습니다. 전투 시스템은 기존 역탈워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기에 아쉬움이 있지만, 세분화된 자원과 내정 시스템, 그리고 세력별 개성을 강화한 특성은 높은 점수를 줄 만하죠.

다만,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은 여러모로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다지 크게 다가오지 않는 자원의 다변화를 제외하면 사실상 특성을 통해 세력별 개성을 부여했다는 게 '토탈워 사가: 트로이'의 거의 유일한 장점이기 때문입니다.



▲ 1:1 대결도 여러모로 '토탈워: 삼국'의 열화판으로 느껴집니다

차라리 아예 못 만든, 재미없는 게임이었다면 아쉬움도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토탈워 사가: 트로이'는 그렇지 않았죠. 그간 구축한 뼈대가 있는 만큼, 기본적인 재미는 보장해줍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이른바 대박이라고 외칠 정도의 재미는 보장하지 못했죠. 그렇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토탈워 사가: 트로이'를 하면서 계속 '만약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화와 역사가 공존하는 그런 트로이 전쟁을 그렸으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죠.

토탈워 워해머 시리즈부터 '토탈워: 삼국'까지, 너무 잘난 형들을 둔 탓에 더욱 비교되는 '토탈워 사가: 트로이'입니다. 그럼에도 토탈워의 맛 자체는 보장하는 만큼, 팬들이라면 꼭 한 번 직접 해보시길 바랍니다. 적어도 팬들의 기대를 배신하는 도저히 못할 그런 게임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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