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퇴마사가 무찌른 건 '중국 게임을 향한 불신'이었나

리뷰 | 강승진 기자 | 댓글: 15개 |

공격 한 번에 뭉텅 깎여 나가는 체력과 구르기 하나, 공격 하나 했다고 움직일 기력조차 빨려 나가는 스태미나. 이는 데몬즈 소울에서 다크 소울, 블러드 본까지 소울본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소울라이크(혹은 개발사 스스로 그렇게 부르는) 게임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물론 그 감정을 얼마나 제대로 살렸는지는 별개의 문제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비슷한 느낌을 낸 게임이 여럿 나왔다. 소울본의 3D 액션은 물론 벨트스크롤, 플랫포머, 동서양의 게임 디자인을 막론하고 말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게임은 프롬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타 개발자들에 의해 고착화된 문법을 따른 소울라이크 중 하나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게임이 여느 대형 개발사, 혹은 그곳에서 일하던 유명 개발진의 새로운 도전쯤이 아니라 중국의 한 인디 개발사에서 만들었다고 한다면 말이 좀 다르다. 이스턴 엑소시스트(Eastern Exorcist)는 그렇게 수없이 리스트에 올라왔다 사라지는 게임 중 자신의 이름을 드러냈다.




소울라이크를 표방하는 게임들이 난립하니 마치 소울라이크라는 태그 자체가 소울 시리즈의 유사 게임, 혹은 그 위세를 얻어 이름을 알리려는 꼼수쯤으로 여겨지는 부분도 없지 않다. 하지만 오히려 이를 자신들의 색으로 녹여내 색다른 해석으로 성공한 게임은 얼마든 있다.

횡스크롤 게임으로 한정해도 데드셀이나 할로우 나이트, 블래스피모우스, 솔트 앤 생츄어리 등 이름만 대도 알만한 게임들이다. 이스턴 엑소시스트도 이런 게임들처럼 자랑할만한 무기를 갖췄는데 그건 미려한 그래픽이다.

독자적인 스타일에서 이제는 여러 개발사가 선택할 화풍 중 하나로까지 확장된 바닐라웨어풍 그래픽과도 일견 비슷해 보이는 아트가 이스턴 엑소시스트에도 적용됐다. 다만, 스크린샷으로 보는 것과 달리 실제 게임플레이에서는 그보다는 조금은 뻣뻣하다 싶을 정도로 묵직하게 구현됐다. 이는 수묵화의 느낌을 최대한 살렸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이른바 동양적인 색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데도 한몫한다.

동양적인 분위기는 사실 '동양의 퇴마사'라는 게임 제목처럼 디자인과 설정, 이야기를 그려내는 기반 중 하나다. 얍실한 턱수염에 위로 잔뜩 뻗힌 머리는 어느 일본의 방랑 검객처럼 보이지만, 공격 주변으로 뻗어나오는 검기와 도술은 영화 천녀유혼의 연적하를 보는 것만 같다.



▲ 동양적인 게임 디자인과



▲ 화려하게 뒤덮이는 효과들

다만, 이것도 보이는 게 그렇다는 거지 실제 게임은 소울 라이크의 특징을 착실하게 따른다.

서두에 언급했듯 주인공 루연촨은 맵에 널린 잡요괴 공격 몇 번에 바로 황천행 열차를 타버린다. 그렇다고 생각 없이 마음껏 공격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스태미나 관리가 꽤 버겁게 다가온다. 스태미나의 최대치는 그대로인데 공격 몇 번 하면 금세 바닥나버린다. 여기에 회복 속도도 느리니 공격 좀 하다 구석에 숨어 적의 공격을 피해 다녀야 한다.

문제는 보스를 만날 때다. 게임의 맵은 기본적으로 스테이지처럼 구분되어있는 횡스크롤 형태라 공격을 마땅히 피할 공간이 없다. 자연스럽게 맵 전체에 피해를 주는 보스들의 공격은 회피 능력으로 피해야하는데 여기도 스태미나를 소비한다. 결국 피하느라 공격에 쓸 스태미나를 모두 소모하게 되는 식이다. 여기에 세키로에서 선보인 체간 개념도 일부 적에 적용되어 보스 처리 시간은 더 오래 걸린다.



▲ 범위가 넓은 보스를 피해 다니느라 스태미나를 제때 쓰기 어렵다

여기까지만 보면 정말 답답하다 싶을 텐데 여러 시스템과 함께 보면 게임을 즐길 대상이 누구인지 나름 정확하게 파악한 듯 보인다. 공격을 튕겨내는 패리나 공격 타이밍에 맞춰 완벽하게 회피하면 그에 맞춰 반격 기회를 가진다. 여기에 공격 3번을 연속으로 진행한 후, 혹은 차지 공격 후 몸이 반짝이는 타이밍에 딱 맞춰 공격 키를 누르면 강력한 공격을 재빠르게 더한다.

이런 추가 공격들은 보이는 화려함에 더해 스태미나까지 소모하지 않으니 전투의 템포를 몇 단계는 끌어올린다. 게임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는데 게임에 익숙해지면 자연스레 더 쉽고,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하는 게 가능해지는 셈이다.

그래서 스팀 평가란에도 비슷한 장르를 접해보지 않은 유저들로부터 매력적인 그래픽과 달리 전투 부분에서 혹평을 받는다. 다만, 기본적으로 컨트롤이 중심이되는 게임 대게가 이른바 하는 사람들이 더 즐겨하는 부류인 만큼 능숙한 플레이어에게 확실하게 보상을 주는 방식으로 전투를 꾸렸다는 건 게임의 주요 수요층을 영리하게 파악했다 봐도 무방하다.

이스턴 엑소시스트는 전투와 아트라는 기본적인 게임의 틀 위에 다층으로 구성된 맵. 마을을 중심으로 하는 퀘스트 시스템. 그리고 보스 챌린지 등 다양한 게임 요소를 덧댔다. 아직 얼리 액세스인 만큼 영어 표현의 오류나 어색한 튜토리얼 등 여러 문제가 있지만, 짜여진 구성 요소들이 계획한 대로 제 기능을 발휘한다면 2D 액션 인디게임 중에서는 올해 나온 게임 중 손에 꼽을 수도 있겠구나 싶다.

▲ 같은 전투라도 숙련도에 따라 진행 속도, 편의성까지 달라진다

착실한 RPG 공식에 개성 넘치는 내러티브로 올해의 게임으로도 꼽힌 디스코 엘리시움이나 아트 하나만으로 충분히 눈길을 끌었던 컵 헤드나 그리스. 기존 성공 공식을 답습하지 않고도 권위있는 시상식 다이스 어워드에서 올해의 게임으로 꼽힌 제목 없는 거위 게임.

아마 최근 시상식에서 인디 게임의 가치를 한없이 드높인 게임들과 비교하면 이스턴 엑소시스트는 7~80점짜리 게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해 최고의 게임을 뽑는 자리에 오를 법한 게임은 아닐지언정 중국 내 게임 행사 아트 부문에서 최고의 게임으로 꼽혔고 글로벌 인디 행사서도 여러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중국 게임이 한국 시장을 넘어서리라는 예측은 이제 좀 낡은 이야기가 되었다. 기존의 성공 문법을 그대로 따르며 모바일 시장에 도전한 신생 개발사는 자금력과 그에 견줄만한 인력 풀을 활용한 중국 게임사를 따라잡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모바일 게임 마켓 순위를 뒤덮은 중국게임의 수만 봐도 답이 나온다.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인디 분야 역시 중국의 성장세가 무섭다. 사실 우리의 뒤를 쫓는다기보다는 서구권이나 일본 등 더 큰 시장의 뒤를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다.

로스트 소울 어사이드나 브라이트 메모리는 1인 개발로 시작한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그래픽을 선보인 게임이다. 올 3월 출시된 언허드는 소리를 통한 독특한 시스템으로 스팀에서 압도적 긍정적(긍정 비율이 95%를 넘어야하고 리뷰 수도 일정 숫자를 넘어야 한다) 평가를 받았다.

▲ 차세대 콘솔인 XSX 지원까지 이루어진 브라이트 메모리: 인피니트

단순히 중국의 돈과 머릿수로 이런 게임이 나온다는 건 아니라는 소리다. 물론 여기에 돈과 인력이 더해지기까지 한다. 실제로 스팀에서 호평받는 다수의 인디 게임을 개발한 넥스트 스튜디오는 중국의 공룡기업 텐센트의 인디 게임 레이블이며 이스턴 엑소시스트 역시 중국의 유튜브로 불리는 비리비리가 서비스를 맡았다. 작은 모바일 화면을 두고 치고받는 사이 중국 게임시장은 더 멀리 바라보고 성장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나름 즐겁게 플레이한 이스턴 엑소시스트를 스팀 라이브러리에서 보고 있으니 왠지 입맛이 텁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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